채무자

2007.01.19 01:36

이성열 조회 수:802 추천:45

(단편소설)         채무자-             이 성열 작
<1>                                                          
식당은 한가한 모양이었다. 주위가 조용한 그 문을 열고 나오던 선혜는 주차장에 비치는 강렬한 수은등 빛에 미간을 찌프렸다. 그녀 눈가에 번진 주름살들이 내 눈에 그로즈업 되어 들어왔다. 선혜가 입은 자주색 유니폼이 수은등 빛깔에 혼합되어 오렌지색에 가까운 일그러지고 묘한 기분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녀의 외모는, 만일 그녀가 젊기만 하다면, 과히 빠지는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을 나는 얼핏 했다. 큼직한 눈매며 반듯한 콧날, 그리고 갸름한 인중 아래 입술도 치열(÷═╓¬)도 모두 균형있고 고랐다. 그러한 그녀의 외모는 바로 그녀의 성장기가 유복했고 또 평탄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나는 믿었다. 모든 생물의 그 육체의 비틀림없는 바른 성장은 바로 그 발육기에 충분하고 고른 섭생과 안정된 생활의 결과이므로. 뒤로 땋아서 묶어 빗어 넘긴 머리도 그 나이에 어울리진 않았지만 보기에 과히 흉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왜 이처럼 나의 미움을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는가.
어려서의 순조로운 환경이 우리의 삶을 끝내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 삶의 지속적인 안정을 위하여는 자신 스스로가 그 풍토를 끝까지 책임지고 가꾸며 일구어 가야 한다. 하지만 철부지 어린애도 아니고 누가 몰라서 그렇게 하지 않는단 말인가. 어느 누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얼키고 설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을 피하며 살아가지 않을 자가 있을까.
차문을 열고 선혜는 내 옆 자리에 털석 몸을 디리 밀고 앉았다. 그녀의 가운에서 구수힌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도 과히 싫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고된 이민생활에서 풍겨나는 건전한 냄새라고나 할까.
그녀는 차에 오른 후에 싱긋하고 내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무런 표정없이 그녀를 흘끗 보았을 뿐이다.
오래 기다리셨죠? 같이 일하는 여자 애가 글세, 미세스강! 밖에 미스터강이 피캅 오셔서 기다리고 계세요, 하는 바람에 그제서야 일 손을 놓고 허겁지겁 나오는 중이지 뭐예요.é
열쇠를 돌려 차에 시동을 건 다음 기어를 뒤로 물리고 차를 빼면서 나는 그녀가 말하는 â미세스강ä 이라는 말에 약간 신경이 거슬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져 약간이었다. 그 약간은, 이를테면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양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2>
이제껏 나는 이 여자가 내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성을 미국식으로 따라 쓰고, 그래서 내 아내가 될 여자라는 건 손톱 털끝만큼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비록 지금 내가 이 나라에 와서 적어도 이 나라 법에 의하여 부부라고 짝지어진 우리는, 어디까지나 내 편의에 의한 임시적 방편이요, 형식에 불과했다. 그런 관계를 제하면 그녀는 내게 타인이고 또한 내 채무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랬다. 그녀는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 용서할 수 없는 내 돈을 갚아내지 않는 채무자-, 바로 그거였다.
그리고 그녀는 적어도 내 눈에는 식당에서 심부름이나 하는 하찮은 접대부일 뿐
이다. 그녀는 처음 남자일 남편으로부터 아이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은 늘 그 쪽으로 향하고 있는 듯 했다.
이렇게 그녀는 나에게 속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가당찮은 여자였다.
그러나 이런 모든 사실은 내가 그녀에 대해서 지나치게 좋지 않은 면만을 드러내놓고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다른 눈으로 볼라치면 그녀에게 좋은 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은 무엇보다도 최근 내 심경의 변화에서 오는 일종의 기상변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금전 그녀가 식당에서 나올 때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그녀의 꽤 준수한 외모라든가, 다 늦게 그래도 나가서 일해 보겠다고 열심인 그 정신상태, 그리고  나이에 비해 곱게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 등은 우선 나라도 꼽을 수 있는 그녀의 좋은 점이다.
또 사실 그녀는 유복한 집안 출신인 것 같았다. 그 오빠인가 하는 자는 미 동부 어디엔가 살고 있으며 무슨 박사라던가 꽤나 교육도 받은 처지였다. 그 아버지는 메디칼 의사였다는 말도 얼핏 들은 적이 있는 듯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런 이야기들은 흘려들은 이야기일 뿐이고, 내가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맞닥트려 본 구체적 인물은 그녀의 동생이었다. 그는 말하자면 이곳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유일한 그녀의 혈육인 셈이었다. 그는 가끔 누이를 찾아 오고는 했는데, 그도 누이처럼 꽤나 잘 생긴 준수한 젊은이였고, 명문의 공과대학을 나온 엔지니어였다.
식당 주차장을 빠져 나와 식료품 가게가 있는 곳을 지날 때 선혜는, ü장을 좀 봐야 돼요. 당장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우유조차도 없어요.é 했다.
나는 재빨리 차를 돌려 식품상 주차장으로 들어 갔다. 밤이 되어서 마켓은 더 더욱 흥청거리는 듯, 주차장은 좀처럼 차 한대를 세울 곳이 없었다. 구석구석에 차들은 마치 고된 일과 후에 여물을 먹으려 쉬고 있는 소들처럼 무겁게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차를 돌려 멀리 떨어진 외진 곳으로 가서야 간신히 빈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차를 세우자 선혜가 문을 열며 말했다.
제가 대충 필요한 것 집어들고 올테니 그냥 차에서 기다리고 계세요.é
나는 묵묵히, 그러나 그 말을 기다렸던 것처럼, 고개를 얼른 끄덕였다. 선혜가 날랜 동작으로 식품점을 향해 뛰어 갔고, 나는 운전석에 기대어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LA 도시의 밤이 공해 때문인지 칙칙하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어느듯 선혜가 마켓 자동문으로 뛰어 들고 잇었고, 그녀를 삼킨 자동 개페기 문이 연방 사람들을 삼키고는 또 뱉어내곤 했다.
나는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았다가 곧 한 숨처럼 뿜어 냈다. 연기가 저녁 안개처럼 내 시야를 가리며 도금을 하듯 차 창으로 깔려 내렸다.
<3>
내가 선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미국에 먼저 와서 살고 계시던 삼촌을 통해서 였다. 당시 삼촌의 편지소개로 세종로에 위치한 조선일보사 아래층 커피샾에서 처음 만났던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물었었다.
저희 삼촌은 어떻게 해서 알고 계신 사입니까?é
ü제가 다니는 교회 장노님이세요. 같은 교회에서 5 년 이상을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타국 생활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의지하며 친척처럼 잘 지내지요.é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중년의 여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활함이나 뻔뻔스러움 같은 건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서울에 사는 여자들에 비해 왠지 좀 촌스러워 보였고, 또 교회를 다닌대서 그랬는지 몰라도 좀 신앙심도 있어 보였다. 하긴 그때 나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래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미국행 이민병이라는 유행병이 중증에 걸려 있던 터라 어떻게든 가능성이 있다면 지프라기의 도움도 마다하지 않을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삼촌께 친한 척하며 연락을 취하곤 했었다. 나 혼자 단신이라도 미국에 갈 수 있는 방법만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즈음 나는 내 인생을 달리 어떻게 헤쳐 나갈 방법이 없는 듯 여겨졌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제까지 일그러진 인생사와 그로 인한 잡념 때문에 괴로웠던 추억을 다 지워버리고 재충전해야만 비로소 나는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때 아내와 헤어지기로 합의하고 아이들만을 떠 맡은 채 독신으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패턴을 송두리채 바꾸고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다시 시작하기에 이민보다 더 좋은 방책이 없는 듯 느껴졌다. 더구나 애들에게 이미 떠나버린 제 엄마생각을 잊게 하기에도 그 방법이 제일 좋은 듯 하였다.
그러나 나의 이런 요구가 절박하면 할수록 삼촌의 대답은 상대적으로 무성의와무기력하였고, 내 이민병 증세는 더욱 골이 깊어져 허구헌날 초조와 안달로 날을 지세웠다. 미국에 살고있는 삼촌이 손을 쓴다면 그래도 어떻게 이민길이 열리지 않을까하는 나의 기대는 그의 터무니없이 미지근한 반응으로 나를 허탈하게 만들곤 했다.
무엇하러 이민을 오려고 하니? 요즘은 이민 오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더라. 와 봐야 직업도 없다하고-é
나는 기대했던 삼촌의 반응이 시원찮고 나혼자만 끙끙대며 시간만 덧없이 흐르게 되자 삼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라도 이민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때 겨우 내가 수소문 끝에 알아낸 방법이 미주관광이라는 묘안이었다. 말하자면 단체로 미국에 관광을 하러 가는 관광단에 끼어서 미본토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슬쩍 어디론가 잠적해 버리면 된다는 거였다.
나는 아쉽던 김에 이 수법을 내 이민병 처방책으로 삼기로 하였다. 이는 당시 내가 알아 낸 가장 확실한 미국 본토 잠입 수단이었고, 이 조차도 알아내기 위하여 내가 허비한 시간과 돈만도 이미 나에겐 큰 출혈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에 그즈음 나는 여러모로 초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곧 구체적인 준비작업에 들어 갔다. 그동안 내가 틈틈히 모아 둔 돈의 전부와 또 그동안 틈나는 대로 가재를 정리해서 모일 돈 일부를 내가 미국에 도착해서 쓸 수 있도록 그곳에 살고 있는 삼촌에게 보내 놓을 궁리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또 삼촌에게 전화를 넣었다. 내 복안을 다 들은 삼촌은 예상과는 달리 곧 바로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마침 인편이 있으므로  돈을 보내려면 그 편에 보내도 좋다는 것이었다. 얼마가 지난 후 선혜가 그 인편이 되어 서울에 왔고, 나는 그녀를 그렇게 처음으로 만났다.
저희 삼촌과는 아주 친하신 모양이군요.é
ü친하구 말구요. 교회에선 우리 모두 가족처럼 지내는 걸요. 저도 장로님 부탁이니까 바쁜데 이렇게 왔지, 그렇지 않으면 그럴 시간도 없지요.é
이런 말만을 믿고 나는 그녀에게 가지고 있던 내 돈의 전부를 맡기기로 하고, 그녀가 서울에 체재하는 동안 몇차레에 걸쳐 극진한 대접으로 보답했다.
<4>
선혜가 미국으로 떠나는 길에 준비해 두었던 자금을 선뜻 보내놓고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기어이 내가 미국 LA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한가지 병이 치료가 될 기미가 보이는 걸 알았다.
이민병이란 결국 그런 것이었다. 그에 터무니없이 한 번 감염되기만 하면 일단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한 번 건너와서 거지가 되든 페인이 되든 몸소 체험을 해 봐야만 실제로 고쳐지는 그런 병이었다.
  나는 며칠이 지나 여독이 풀리자 정신이 들었고, 그제서야 이제 내가 맡겼던 돈의 행방을 위하여 삼촌에게 찾아가서 묻기에 이르렀다.
그 여자를 만나봐라. 어디다가 맡겨서 잘 늘리고 있다고 하드라만.é
맡겨서 늘리고 있다고? 나는 어째 그 말이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즉시 나는 선혜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우선 교회를 찾아 갔고, 그 휴게실에서 그녀를 대면했다. 그녀는 나를 갑자기 대하자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잘 오셨어요... 그런데 너무나 오랬만이군요... 그래서 사실 무제한 제가 그런 걸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누구에서 주어서 불리고 있거든요. 어쨌든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조금 시간적 여유를 주세요. 곧 될 꺼예요.é
그녀는 힘겹게 말을 돌리려고 했지만, 결국은 지금 내 돈을 줄 수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그동안 삼촌이 보관하고 있으리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내 돈이 아직도 삼촌의 수중엔 도달하지도 않고, 이 여자가 다른 사람의 수중에다 넣어서 돌리고 있다니.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바싹 말라오는 입술을 혓바닥으로 핥았다.
아니, 조금 후가 구체적으로 언제이며, 그 누가 어떤 사람이란 말입니까?é
ü그건 지금 확실하게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군요. 그 돈의 안전을 위해서도 지금 가르쳐 드릴 수가 없어요.é
세상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돈의 안전을 위해서 내 돈의 행방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알려줄 수가 없다면 신용사회라던 미국에선 돈거래도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단 말인가.
<5>
그때 나는 나의 고질이던 이민병 치유를 놓고 좋아도 하기 전, 내가 치뤄야 할 또 하나의 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그 돈의 행방을 알길이 없는채로 앞으로 타국에서 살아가야 할 길이 막연했다.
2년 반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 내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의 삼촌은 이미 너무 늙어서 아무 하는 일없이 교회에나 들락거리는 페인같은 노부에 지나지 않았고, 선혜는 그동안 몰라보게 살이오른 중년 부인이 되어 나를 만나 주었으나, 내가 당부해서 맡겨놓은 돈 10여 만 달라의 행방에 대해선 분명히 밝히기를 꺼려하며 같은 말 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갚아드릴 날이 올거라는 말이 그 말이였다. 그리고는 지금까지도 그 돈의 한 푼도 내 손에 건네 주지를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사용처까지도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시나 지금이나 내 생명 줄과도 같은 그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그녀가 늘어놓는 변명을  하나도 귀 담아 들을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삼촌을 원망할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교회 장로라는 직함을 가지고 갖은 선행은 도맡아 하는 듯 몇 푼 생기면 그걸로 생색이 내가며 교회에 갖다 바치고는 매일 허허거리며 남은 여생을 교인들에 둘러싸여 살아 가고 있는 하나의 무능력자에 불과한 노인이었다. 이곳에 와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다행이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천국은 천국인 것이 삼촌같은 무능력자들도 다 나라에서 책임지고 먹여 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놀고 있는, 그래서 이 사회에 기여한 바도 없는 사람들 마져도 무위도식하도록 매달 사회보장비를 주어 기생충처럼 이 사회에서 살아 가게 한다.
그런 사실도 몰랐던 나는 삼촌이 누구에게 손 하나 벌리지 않고 늙어서까지 자기 스스로를 건사해 가며 살아 가는 모범 노인상으로 그를 존경해 마지 않았던 것이다.
추측컨데 선혜는 마음좋고 어리석은 노인 삼촌을 구워 삼는데 성공했던 모양이었다. 그 돈을 내가 미국에 들어 올 때까지 가만히 묵혀만 놔두기 보다는 굴려서 늘려보자는 그럴듯한 말로 노인을 설득시킨 뒤, 마치 그 돈이 자신에게 굴러 들어온 세금 한 푼 낼 필요조차 없는 가처분 소득으로 생각하고 출처불명의 미궁으로 빼 돌려 쓴 것이 분명하였다.
그토록 오고싶던 미국에 도착하여 나는 1년 여를 하는일 없이 헤메며 허송한 나는 아무리 세월이 흐른대도 선혜로부터 그 돈을 받아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에 이르렀다. 돈의 회수만 믿고 가져온 돈도 없이 지참금마져 거의 써버린 나는 비로소 호구지책을 위하여 취직이라도 해야 할 판국에 이르고 말았다.
<6>
  나는 생각다 못해 선혜를 다른 각도로라도 이용하자는 궁리조차 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맡긴 돈만 제데로 가지고 미국에 도달했다면 영주권 문제야 저절로도 해결이 날 수 있는 문제라고 쉽게 생각했던 계획이 그녀때문에 초장부터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사업을 벌리든지, 돈을 주고 가짜로라도 결혼을 하던지, 당시만 해도 이민국 단속이 수월한 편이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그 문제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정보를 주위로부터 익히 들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일에 차질을 빗기 시작한 것이다.
그 즈음 나는 삼촌한테 가서 이렇게 말했다.
ü작은 아버님, 전 아무래도 김선혜씨와 결혼을 해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녀에게 삼촌이 다리를 좀 놓아 주세요.é
삼촌은 내 제안을 순순히 받아 들였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는,
ü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야, 김집사에게 내가 말을 꺼내보지.é
나는 결혼을 할 것이다. 그래서 영주권이라도 따야 이곳에서 취직을 하던지 뭘 하던지 계속 붙어 살 수 있을 거였다. 나는 그녀와 결혼, 아니 계약결혼을 할 것이다. 계약결혼이래야 그 당시 이곳 공정가격이 2만 여 달라면 충분하다는 소문을 들어온 게 사실이라면, 선혜는 내 돈 10만 달라를 가져다 다 썼으므로 결혼을 다섯 번을 해주어도 충분한 돈을 내게 빚진 셈이었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그녀도 남편과는 마침 오래 전에 이혼한 걸로 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조차 다 남편에게 넘겨 준 후 혼자 지내고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나의 계획은 그나마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그녀는 삼촌한테 이렇게 말했다.
그거야 어려울 것도 없지요. 하지만 어떻게 갑자기야 하겠어요?é
그 나이에 결혼식을 갑자기 한다는 거야 그녀에게 좀 쑥쓰럽게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입장이야 나도 마찮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정부당국에 결혼신고만 하자는데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선 형식적으로 부부라는 것을 등록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에게 분명히 하기 위하여 이 결혼의 목적은 내가 영주권을 얻는데 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그렇게 쉽지 만은 않았다. 그즈음은 나도 여자 냄새라곤 맡아 본지도 오래였고, 선혜도 혼자 지내고 있었으므로 자칫하면 계약결혼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이 충분이 있었던 것이다. 속 마음은 어디까지나 돈을 못 받는 대가로 영주권을 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일 뿐, 그 밖에 어떤 생각도 해서는 안된다고 얼마나 다짐했던가.
또한 그 이후 일은 점점 묘하게 틀어져 갔다. 점점 불법이민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미국정부의 완강한 정책 때문에 영주권을 내어주는 미국관리들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다루기 어려운 상대가 되어 갔다. 더구나 보도에 의하면 이민국 당국도 상당수의 시민권자와의 결혼이 영주권 취득만을 위한 위장결혼이라는 사실을 이미 감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선혜에게 매달려야 했다. 이곳 영주권 취득을 위해서 못할 짓이 없는 신세인 나에게 체면이고 뭐고가 없었다.
선혜씨, 이왕 이렇게 된 바에 나에게 협조를 해줘야 겠어요.é
협조라니, 무슨 말씀이세요?é
그녀는 담담했다. 눈치조차도 없는 듯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ü아무래도 내가 선혜씨에게 들어와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é
나는 스스로도 나의 뻔뻔스러움에 구역질이 났다. 얼굴이 달아 오르고 속이 메스꺼워 옴을 참아야 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조금만 참자, 뻔뻔스러운건 이 여자지 내가 아니야, 그 많은 돈을 집어먹고 돌려주지 않는 이 여자가 뻔뻔스러운 거야. 나는 왜 이렇게 못나게 구는 걸까? 그녀가 잠시 내 얼굴을 살피더니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우린 엄연히 결혼한 사인데 그런게 무슨 협조가 필요하겠어요?é
나는 그녀의 말에 오히려 쩍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무슨 천연덕스러움인가? 그녀도 이제 나이가 40줄이 되었고, 저토록 순진하기만 할 나이도 아니지 않는가. 나는 내심으로, 난 당신과 함께 살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김치국 마실 생각은 마세요. 하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
그래요, 고마워요. 준비가 되는대로 곧 선혜씨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겠어요.é 하고 어물어물 말하고는 얼른 그 자리를 떴다.
그즈음 나는 불안했다. 떠돌아 들리는 소문은 가지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이민국당국은 결혼한 사람들이 실제로 같이 살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불시로 가정을 방문하고 조사를 벌린다고도 하였다. 또 영주권 자격심사를 위한 면접시 신청자 부부를 다른 방에다 넣어놓고 상대방의 육체적 특징이나 버릇등을 심문하여 가짜를 골라 낸다는 거였다.
이런저런 말들이 나를 극도로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세월만 그동안 덧없이 흘러가고 이때나 저때나 애비 소식만을 기다리는 두고온 자식들을 생각하면 금방이래도 피가 마르고 가슴이 터질 듯 했다.
나는 선혜의 아파트로 나의 짐 모두를 날랐다. 그리고 처음 얼마간은 시간이 어물정 어물정 잘도 갔다. 이왕지사 남녀가 만났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자위했다. 그동안 서로는 혼자 지내 왔으므로 이성에 대한 욕정이 어찌 참고만 있을 수 있으랴. 그렇게 몇 주가 훌쩍 지나갔다.
<7>
그런데 다시 얼마가 지나니까 나는 그녀에 대한 증오심이 야금야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새삼 오리무중인 그녀의 과거도 마음에 걸려왔고, 또 돈 푼이나 벌자고 그녀가 식당 종업원 노릇이나 하러 다니는 꼴도 천박스러워 보였다. 도대체 이 여자는 내가 맡긴 그 많은 돈을 어떤 용도로 다 꿀꺽해 버리고는 그 되지도않은 푼돈을 벌기위하여 그 짓이나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멸시와 업신여김은 날이 갈수록 점점 쌓여만 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제발 하루 빨리 영주권만 나오너라, 그러면 당신과의 모든 건 당장 깨끗이 끝장이다. 라고 울부짓고는 했다.
어느날 선혜는 일을 하러 나가고 나 혼자 침대에서 널부러져 깜짝 잠이 들었을 때, 나는 그만 섬찟한 차거움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그녀가 어느틈에 집에 들어와서 차거운 몸으로 내 곁에 누워 있다는 걸 알았다. 옆에 누운 그녀의 몸은 차거웠고, 샤워를 했는지 안했는지 머리에서는 음식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다.
조금을 그렇게 누워 있자니 나는 속이 역겨워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녀를 냅다 발길로 걷어찼다.
ü저리가서 자, 너는 오늘부터 마루에서나 자라구, 어디 옆에서 자려고 하는거야!é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그녀가 마루에 떨어져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올려다 보았다.
왜 그래요, 갑자기?é
ü이유없어! 앞으론 절대 내 옆에서 잘 생각을 말어!é
갑자기 나는 잠에서 깬 이리처럼 울부짖었다. 선혜는 기가 막힌 듯 멀건히 나를 쳐다 보다가는 일과 잠에 지쳐 상대할 기력도 없는지 그냥 담요를 줏어들고 거실로 나갔다.
그 이후로 나는 무슨 핑계를 써서라도 선혜가 내 침대로 들어 올 때마다 밖으로 밀쳐냈다. 그리고 그걸로도 직성이 풀리지 않으면 공연한 일로 시비를 걸고 싸움질을 시작하곤 했다. 나는 점점 짜증으로 지새우게 되었고, 내 성격은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며 난폭해져 가고 있었다. 영주권은 부지하세월로 시간을 끌었고, 선혜는 날이 갈수록 나에게 박해만을 당했으며, 가구며 살림 도구들 마져 하나 씩 둘 씩 남아 배기질 못했다.
어떤 때는 서로 참을 수 없도록 오랜기간 냉전으로 버텨가기도 했다. 몇 날 또는 몇 주를 나는 그녀가 식사 준비를 해서 가지고 와도 받아 먹지를 않았으며, 옷도 벗지 않은 상태에서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곤 했다.
대낮이면 나는 하릴없이 근처 인적이 드문 산타모니카 바닷가로 가서 시원하게 트인 바닷가를 바라보며 진토양난에 빠져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소일하기도 했다. 도대체 내 이 꼴이 뭔가, 이 바다로 곧장 갈 수만 있다면 조국이 나올테고, 그곳에 가기만하면 그리운 자식들과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는데-.
나는 태평양 바다를 쳐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리며 소일하다 때 늦게 아파트에 돌아 오면 우선 그녀가 일가고 없는 텅 빈 아파트가 좋았다. 야릇한 해방감에 젖어 샤워를 하고 나면 뱃속이 출출해진다. 혹시 먹을게 있나하고 냉장고를 열어 본다. 사람 사는 집이건만 먹을 거라곤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집에서 먹는 일이 드물다는 걸 아는 그녀는 이제 아무런 준비도 할 생각을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렇지 그녀는 그녀대로 자신의 식사문제를 일하는 식당에서 해결할테니까. 먹지도 않는 나를 위해서 준비할 필요도 없겠지.
그냥 벌러덩 침대에 누워서 TV를 켠다. 화면이 가득 눈앞으로 튀어 나온다. 솰라대는 이들의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다. 그래도 TV를 켠 채로 자막을 응시한다. 총알처럼 튀고 나르는 영어를 들어보려고 하지만 정신과 육체 모두가 너무나 나른하다. 나는 지친대로 잠이 든다.
<8>
그날도 나는 해변에 가서 하루를 보내다가 일찌감치 아파트로 돌아 왔다. 돌아 왔을 때 나는 짐짓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아직 선혜가 돌아올 시간도 아닌데 내가 차를 세울 주차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급 승용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검정색 올스모빌 <리젼시>라는 모델이었다.
나는 직감이 이상해서 아무데나 차를 세워놓고 아파트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발정난 들개처럼 헐레벌떡 아파트로 들이 닥쳐 문을 틀어 열었으나 문은 안에서 굳게 잠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몸으로 문을 힘껏 밀쳐 보았다. 그러나 내힘으로 문은 꼼짝도 않았다. 나는 그래서 발길로도 차 보았다. 그래도 안으로부터는 죽은 듯 아무 인기척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터덜터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내 차의 문을 열고 차속에 잠시동안  앉아서 뻗쳐오르는 분기를 진정시키느라 애쓰고 있을 때, 아파트 문이 그제서야 조용히 열리는게 보였고, 왠 중년의 말쑥한 차림의 한국인 사내 하나가 바쁘게 아파트 계단을 내려왔다. 자세히 보니 선혜가 일하고 있는 식당 주인 정씨였다. 그는 서둘러 세워 둔 올스모빌을 타고 쏜살같이 주차장을 빠져 사라져 갔다.
육실헐 년 놈들, 잘들 놀고 자빠졌다.ä
얼마동안 차에 앉아 열을 가라 앉히던 나는 아파트로 들어갈까 하다가 홧김에 그 길로 카페로 향했다.
결국 그 년의 행실이 그렇구나, 지가 그럼 그렇지 별 수 있냐.ä 나는 혼자 지씹고 있었다.
카페는 아직 일러서인지 손님도 없이 한산했다. 나는 스탠드에 그대로 앉아 찬 맥주를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 카페 실내엔 아직 음악도 없었고, 대형 TV에서 소란스러운 야구 중계가 방영되고 있었다. 아메리칸 리그 <엔젤스>와 캐나다 팀인 <불루제이스>가 득점없이 지루한 게임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투모어 플리스!é
나는 바텐더에게 맥주 두 병을 더 시켰다. 벌써 나는 여섯 병째를 비우고 있었다. 이렇게 찬 맥주를 퍼 부어도 바싹 올라 있던 분기가 풀리질 않았다. 두 병을 더 비우고 나는 아파트로 돌아 갈 심산이었다.
풀리지 않던 분기가 막상 아파트로 돌아 가려고 차로 와서 올라 타니까 조금씩 풀어지면서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아파트까지는 경찰에 걸리지 않고 무사하게 돌아 가야 한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 걸리는 날엔 감옥에 가야 할 뿐 아니라 영주권이고 뭐고 불법체류자로 들통이 나 산통 다 깨지고 말 것이다.
혼자 분통만 터트릴게 아니라 집에 가는 즉시 그녀를 마구 두들겨 팬다-, 그런데 그 짓도 아파트가 소란스러워서 창피할 노릇이고, 언젠가 한 번 사람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늘씬하게 패 주리라-.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을 하면서 어찌어찌 보복을 해서 이 분함을 풀 것인가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아파트에 와 보니 그녀는 다시 어디에 갔는지 방에 없었다. 나는 그냥 옷 입은채로 베드에 몸을 던져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늦잠에서 깨어보니 그녀는 이미 방에 없었다. 나는 그대로 누워서 만감으로 교차되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어제의 일도 생각해 보았다. 식당 주인 정씨가 보였고 , 나는 홧김에 술을 좀 마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어제 일은 자신이 별반 화낼 일이 못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서방질을 하든, 그보다 더 한 창녀 노릇을 하든 그러한 사실이 대관절 나에게 무슨 큰 대수인가? 어짜피 그녀와의 관계는 영주권 때문에 생긴 관계이고, 그것만 해결된다면 그 후엔 내 기억에서 조차 남겨두고 싶지 않은 그런 존재가 그녀가 아닌가? 미국과 같이 하 넓은 땅에서는 일단 떨어져 나가기만 하면 서로가 다시 만날 확률이란 거의 제로, 전무(ε∩┘φ)의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도 선혜와의 인연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사리 원점으로 돌려지도록 정리되어지질 않았다. 좀체로 모든 여건이 그렇게 되어지질 않았다.
나는 그놈의 영주권을 위해서 2년을 죽도록 기다렸다. 그리고 내 생애에서 제일 길었던 그 기간 후에 나도 그 그린카-드란 걸 받아 내는데 성공했다.
내가 영주권을 받은 후에 제일 먼저 잽싸게 해치워야 할 건 한국에 있는 자식들에게 초청장을 만들어 이민국에 접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초청을 해 놓고도 그 애들이 막상 내곁으로 오게 될 날은 또 언제가 될지 까마득하기만 한 노릇이었다. 그것만 얻으면 마치 나뭇꾼에게서 옷을 찾은 선녀처럼 금방이래도 훨훨 선혜 품으로부터 날아가 버릴 것 같았건만, 아직도 나는 그녀의 그늘을 헤어나질 못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녀에 대한 증오와 환멸감은 그대로인 채 여전히 함께 해결해야 할 일들은 버젓이 기다리고 있었다.
<9>
ü너도 이제 영주권도 있고하니 슬슬 활동을 해 보아라. 너 서울에서는 장사해서 돈을 꽤 잘 벌었지 않느냐?é
삼촌은 그 후부터 나를 보면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나는 삼촌을 원망하듯,
ü장사 밑천이 있어야 스왑밋이라도 해보려 덤비보지 않겠어요? 내가 삼촌만 믿고 보낸 돈을 그 여자가 다 써 버렸으니 제가 사람구실도 못하고 죽을 지경이잖아요.é
그렇게 네 주머니에 한 푼도 없느냐?é 삼촌은 마치 백치같은 말로 내 부아만을 건드렸다. 알츠하이머라는 얼간이 병이 있다더니 아마 삼촌이 그 병의 초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만한 여자도 없는 줄 알아라. 함께 살며 네가 여태 한 푼도 벌어오지 않아도 별 군소리없이 벌어 먹이며 같이 살려고 하지 않니? 그게 다 하느님 믿는 사람이니 그렇지.é
믿는 사람 너무 강조하지 마세요, 그 말만 믿었다가 나는 이 꼴이 되었으니-.é
고대하던 영주권을 받은 후부터 나는 점차로 선혜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도 해 보았다. 많은 날들을 그녀를 피해서 삼촌이 사는 아파트에도 가서 소일하며 보내려고도 했다. 그것만 받으면 금방이래도 할 일이 있을 것 같던 나는 막상 손에 쥐고보니 더더욱 모든게 난감하기만 할 뿐이었다. 원래 같고 있는 기술이라곤 없는데다, 그래도 괜찮게 살아오신 부모덕택으로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은 어중떼기가 바로 내 정체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가업으로 해 오던 가게를 인수받아 그럭저럭 살아왔던 내가 수중에 돈도 없고보니 할 일이란 눈 씻고 볼래야 없었다.
이쯤 돼 가니 이젠 그토록 기다렸던 영주권이 차라리 원망스런 물건이 되어 갔다. 그게 없을 때는 핑계 모두를 영주권으로 돌릴 수도 있었지만, 이제 그걸 가지고 보니 그 핑계도 할 수가 없는 처지가 돼 버렸다. 그러니 이제 영주권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구심점마져도 잃어 버리고 만 꼴이 되었다. 그러니 차라리 이제는 그 카-드가 없던 때가 더 좋았던 것 같은 생각마져 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필요한 건 영주권이라기보다 그녀가 탕진해 버린 돈 10만 달라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고, 그렇게 생각이 미치면 그녀를 미워하는 감정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럴 때는 내 감정을 눅이기 위해 삼촌 아파트로 달려가서 많은 시간을 빈둥거리기도 했다. 이곳에선 여자를 때리면 형사입건이라는 중벌이란 것도 나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삼촌은 교회에서 얼마 되지않는 거리에 위치한 정부소유의 노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아파트가 깨끗하고 그 세가 시중 아파트의 삼분지 일도 안되는 저렴한 까닭에 많은 노인들이 신청만 해 놓고 아들이나 딸네 집에 가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든가 또는 여행을 가기 때문에 언제 보아도 빈집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삼촌이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너 그렇게 놀고 먹는데 느이 색시가 멕여 살리니 다행이다.é
나를 먹여 살리는 게 뭐 있어요. 자고나면 매일 매식이고, 그렇게 몇 년 소일하다 보니 그나마 가지고 온 주머니 푼 돈도 다 써버렸는데요.é
느히들 그릏게 정이 읎냐? 매일 밥도 안해 주냐?é
정은 무슨 정이에요. 영주권 때문에 마지 못해 같이 살아 온거죠.é
왜, 그 여자 어때서 그러냐? 내가 보기엔 괜찮던데, 믿음도 있고-é
ü아유, 작은 아버지두-, 과거가 복잡한 여자 아네요? 아이들도 몇 씩이나 있고-, 하필이면 내가 여기까지 와서 식당 왜이추리스와 살아야 해요?é
원 별 말두 다 헌다, 넌..., 너는 뭐냐? 너는 그 나마도 실업자 아니냐? 넌... 아이들이 읎냐?...... 미국에서 왜이추리스면 어떠냐? 그나마도 일을 안 하는게 문제지. 철이 날래믄 멀었다, 넌.é
삼촌은 얼굴까지 상기된 채 나에게 이렇게 나무랐다. 속으로 나도 부아가 끓어 왔다. 삼촌만 해도 내 친 부모가 아닌 한 치 건너니까 저렇게 쉽게 자존심 상하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만 아무말도 없이 자리를 떴다.
<10>
밖으로 나오니 미국인 노인 하나가 봉투에다 팝콘을 들고 비둘기들을 모아놓고 먹이다가 지나가는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코 언저리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마치 상처받은 짐승처럼 헐떡거리며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파트에서 소파에 누워 나는 내가 이곳에 와서 만나는 몇 명 안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우선 식당으로 선혜를 데릴러 가면 거기에서 간혹 식당 주인 정씨를 만난다. 어쩌다 밖에서 그를 마주치는 날엔 아주 반색을 한다.
식당은 잘 되세요?é 하고 묻는 날엔,
ü네, 그러믄요. 특히 미세스 강이 일을 잘 해 주셔서 늘 고맙게 생각하지요.é 그는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은 남자다. ü강 선생이 이렇게 듬직하시니 미세스 강이 행복하시겠어요. 들어 가셔서 식사나 하고 가시지요, 강선생.é
이 사람이 길에서 이렇게 크게 떠드나, 창피하게-ä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계면적어 하고 있는데, 선혜가 어느듯 나타나서 차에 오른다. 언제나처럼 식당 가운은 입은 채로. 아마도 그녀는 그 가운이 큰 식당의 것이라 아주 자랑스런 유니폼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말씀만이래도 감사합니다. 저희는 바쁜 볼 일이 있어서 가 봐야 겠습니다. 그럼 또 다음에...é 고개를 꾸벅하고 얼른 차를 뺀다.
아니 왜, 한 번 들어 오시지 않고-é
가끔 골프장에 가서 만나는 친구 심해식은 아예 선혜의 유급 대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입만 뻥긋하면 그녀 편에서 그녀를 싸고 돈다.
한 마디로 미국에서 그만한 여자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거였다. 열심히 일해서 살려고 하겠다, 인물, 키 그만하면 됐고, 제데로 갖출 것 다 갖춘 사람을 왜 바른 대접을 안해주고 그러냐는 거였다. 더구나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건 지가 무슨 소크라테스라도 되는 것처럼 나더러, 자신을 좀 알고 살라. 는 심한 말까지 하는 거였다. 그 뒤부터 나는 혼자 골프를 치는 한이 있어도 그를 점차 멀리하기로 마음 먹기에 이르렀다. 같은 편에서 이해해주고 위로해줄  줄도 모르는 자가 무슨 친구인가?
그때 식료품 가게의 자동문이 활짝 열리고 선혜가 양 팔에 식품이 가득 든 봉투를 안고 나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무슨 살맛이 날 일이라도 생겼다는 식으로 쾌활하고도 잰 걸음으로 주차장을 가로 질러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 왔다. 내가 안에서 차의 문을 밀어 열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막상 가게에 오니 생각보다 살 물건이 많았어요. 그래도 무랑 라면 등을 사려면 한국마켓에 한 번 더 들르는게 좋겠는데, 어떠세요?é
그녀가 식품이 든 봉지를 뒷좌석에 밀어 넣으며 이렇게 말했고, 나는 별 말이 없이 그녀가 차에 오르자마자 핸들을 돌려 한국 식료품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버릇이 되다시피한 내 무표정과 벌레라도 씹은 얼굴 모습에 아예 무신경한 듯 관심에 두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대로 한 번 말을 했으면 아예 내 반응은 기대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올림픽 가를 지나다 제일 처음 눈에 띄는 한국마켓으로 내가 차를 돌려서 세울 때 선혜가 차문을 열었다.
이번엔 얼마 기다리지 않으셔도 될꺼예요.é 이렇게 말하고 그녀가 종종 걸음으로 마켓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차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한국마켓이 미국마켓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음을 보았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처럼 빨리 나올 수 없음을 알았다. 저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녀는 물건을 찾고, 고르고 또 돈을 지불하기 위해서 줄을 서고 기다려야 할테니까.
<11>
나 강병일은 이미 나이가 30대는 아니었다. 모든 희망을 걸고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래도 30대 막바지에서 항상 젊음이 내 것인 양 젊었고 뭔가 믿는 바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벌써 미국에서 5년여를 허망하게 허비하고 난 지금 40도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이 되어 버렸다.
나의 능력이라는 것도 이 미국이라는 땅에 발이 닿고부터 거세 당한 숫소 모양 무능력하게 되어 버린 바나 다를 바가 없다. 하늘처럼 믿던 돈을 잃게되자 그렇게 되 버렸고, 영주권이 없어서도 그랬으며, 무엇보다도 심한 것은 말이 안 통해서 더욱 답답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되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잔뜩 주눅 든 짐승모양 기죽은 벙어리 신세가 되었다. 영어를 하는 미국인만 보면 겁이 났으며, 그들이 말을 걸어 오면 알아 들을 수 없다는 공포 때문에 하반신마져 후들거렸다.
내 나라에서 부모의 보호망 아래 땅집고 헤엄치는 식의 생활 통념이 여기에서 통할 리가 없었다. 특히 이성 문제만 해도 그랬다. 미국이란 한국에서 처럼 사람 하나 지속적으로 만나기가 쉬운 고장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선혜에 대한 이제까지의 나의 질시는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편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녀가 나의 돈을 책임있게 보관하지 못한 죄도 있지만, 그동안 나의 철부지같은 버릇없는 태도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주위에서 우리 문제를 어느정도 보고 듣고해서 알고있는 친구 심해식은 나에게는 섭섭한 견해가 되어도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이 강형의 돈을 가져다가 못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한 번쯤의 실수는 저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특히 돈 문제야 돈이 사람을 속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물론 그 분이 하찮은 접대부를 하고는 있을지언정, 이 미국에서 어디 직업의 귀천이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건 열심히 해서 살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한 게 아닙니까? 강형도 이제 이곳에 살면 아시게 되겠지만 접대부를 하는 사람들도 다 그들의 집안이 남만 못하거나 교육수준이 낮아서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에요. 일하는 시간이 자기들에게 편리하다거나 또는 여러 가지 사정과 이유 때문에 그런일을 하고 있을 따름이에요. 그들 중에도 버젓이 최고학부를 나온 양가집 출신도 많다는 걸 알아야 해요. 특히 이민을 처음 오신 많은 분들이 첫 번째 직업이 접대부 같은 허접스레 일부터 경험한다는걸 잘 아시쟎아요. 그리고 강 형이 첫 번 결혼에 실패한 것처럼 그 분도 결혼에 실패했을 뿐이고, 또 강형도 한국에 애들이 있듯이 그 분도 아이......é
아, 알았어요. 그만해 둬요. 미스터심 혹시 그 외사촌 이라도 되는 것 아니오?é
나는 그 분을 위해서 이렇게 열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강 형이 공연히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써가며 아까운 인생을 허비하니까 위해서 하는 소리지.é
해식은 전화로 공연히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세 살 가량이 어린 년하의 친구였다. 시간을 죽이기 위하여 골프장에 가서 흔들거리다가 만난 친구였는데, 미국에 온지도 20여 년이 넘었고, 이곳 생활에 관한 한 여러모로 아는 게 많았다.
<12>
주위로부터 이런 달갑지 않은 말들을 들을 때 나는 비로소 그래 모두 옳다, 모든 것 다 될대로 되거라, 하는 자포자기에 빠지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내가 모든 걸 포기하면 포기할수록 내 마음은 한 구석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바로 모르면 몰라도 나 자신이 수양이 되어가는 과정인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미진한 구석이 있었다. 물론 그 때 내가 아무리 그녀를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조차 허용치않고 인간이하 잔인한 취급을 했다손 치드라도, 어떻게 그녀가 나와 동거를 하면서 식당 주인 정씨를 다른 곳도 아닌 이 아파트로 불러 드릴 수 있냐는 거였다. 하긴 이 사건도 그 진위 여부가 불투명한 구석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그 일이 있은 후 그녀와 말 다툼을 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벼르고 있다가 이렇게 쿡 찔러 본 적이 있었다.
자네 요즘도 그 정씨와 재미 좀 보구있나?é
선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식으로 눈이 둥그래졌다.
왜 그 때 아파트로 찾아 온 올스모빌 신사말인데-, 누가 모를 줄 알고?é
그녀는 벌어진 입을 한 참 다물지 못하더니,
ü그 때... 골프치러 나가셨드랬지 않았어요?... 내 참 기가 막혀서-.é 하더니 당시의 자초지종을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식당 주인 정사장이 간 밤에 잠을 한 숨도 못 잤다면서 어디서 눈 좀 잠깐 붙힐 곳이 없는가를 물었었다. 그의 집은 원체 시내에서 먼 곳인 우드랜드힐에 위치하고 있었다. 얼굴도 퍽 피곤해 보이는데다 선혜가 타운에 살고 있다는 걸 다 아는터러 그녀는 별 생각없이 선뜻 아파트 키를 그에게 넘겨주며 가서 잠깐 눈 붙히고 와도 된다는 허락을 하였다는 거였다. 말을 듣고 있던 나는 그래도 석연치 않아서,
아파트 열쇠를 빌려 줄 사이면 그게 보통사인가?é 하고 다그쳤다.
ü아유, 생 사람 잡지 마세요. 의심 나면 당장이래도 정사장이나 다른 종업원에게 가서 물어 보세요.é
오죽 못 났으면 그런 일을 가지고 밖으로 떠 벌리고 다닐까?é
나는 그냥 그렇게 넘기고 말았다. 집안 일을 밖에서 떠드는 것도 우수웠지만, 그 때는 그녀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나는 애써 그녀 일에 대하여 무관심한체 넘기려 햇던 것이다. 그러니 그 때 내가 한 발짝 더 나아가 확인해 보지 않은 이상 지금에 와서 나도 할 말은 없었다.
<13>
초청장을 보낸지 1년이 지난 후 며칠 전 나는 서울에 아이들에게로부터 한 통의 두툼한 편지를 받았다. 대사관 면접에서 비자 발급이 거부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앞이 캄캄했다. 비자 발급을 위한 면접을 다시 하기 위하여는 그동안 내가 선혜와 계속 살고 있다는 여러 증명이 될 서류와 사진들, 특히 결혼사진을 첨부해서 보내야 한다는 거였다.
다른 서류들이야 아직 그래도 법적으로 결혼이 된 상태이고 보면 어덯게 어렵게라도 만들어 볼 수도 있겠지만, 끝 내 신경에 걸리는 것은 이제까지의 어설프기만 한 우리의 관계에서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이라도 있을 리가 만무한 사실이었다. 특히 결혼이야 순전히 서류상으로나 한 결혼인데 무슨 얼어죽을 사진이고 뭐고가 우리사이에 있겠는가.
그제서야 나는 뒤 늦게 또 다시 그녀의 협조가 없이는 안 될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이제와서 10년은 아니지만 5년이 가까운 공들인 탑이 무너져도 된다는 식으로 모두를 끝장내 버릴 수도 없었다. 이제 나는 나의 모두를 다 포기한다 해도 자식들까지 더 이상 떨어져 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굴욕을 참고 나는 선혜에게 사정이라도 해야했다. 하긴 이 마당에 나에게 체면이 다 어디 뭣 말라죽은 넋두리인가. 그녀의 협조가 없이는 옴치고 뛸 수도 없는 처지에서. 하는 수없이 나는 그녀에게,
언제 나와 함께 같이 하루 보낼수 없오?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é 하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리가 하도 기어 들어가는 작은 소리여서 그녀가 제대로 말을 알아 들었는지도 궁금할 정도였다. 허나 그녀는 예의 자상함으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되 물어왔다.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é
ü다름이 아니고... 우리 아이들한테 편지가 왔는데...é
나는 이렇게까지 사정조로 말해야 하는 내가 몹시도 부끄럽고도 한심스러웠다. 하던 말을 계속해서 끝내지도 못하자 선혜가 다시 다그쳐 물었다.
그래서? 편지가 어쨌다는 거예요?é
ü비러먹을, 사진을 보내라는군... 같이 찍은 사진을...é
애들 비자 발급이 거절된 모양이군요.é
그녀가 벌써 빠른 눈치로 사태를 건너 짚었다. 나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도움이 저토록 절실할 때도 있군.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외부로 내색을 하진 않았다.
<14>
선혜가 어느새 한국마켓을 나와 누군가와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중녀을 넘어 보이는 여자와 그 옆에 남편인 듯 남자가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과 헤어진 후 그녀는 재빠르게 차로 와서 문을 열고 올라 탔다.
많이 기다리셨죠? 우리교회 집사님들 이예요. 마켓에서 만났어요. 한국인 마켓을 들르면 꼭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é
그녀가 오늘 따라 기분이 좋은지 헤프게 말을 많이 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잰 동작으로 식료품이 든 마켓봉지를 뒷좌석으로 옮겼다. 세 개나 되는 식품이 든 봉투가 뒷좌석에서 쌍둥이처럼 입을 벌리고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옆에 있는 그녀가 신이 나서 콧노래라도 부르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반면 나는 계속 풀기가 없는 시늉을 하며 아무말도 없이 아파트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잠시 후 선혜가 입을 열었다.
내일은 식당에 일을 나가지 않기로 했어요. 정 사장은 일 손이 딸린다고 투덜댔지만, 하루라도 빨리 서류준비를 해야하지 않겠어요? 사진도 찍고... 너무 걱정 말아요. 만일 대사관에서 영 비자를 주지 않을 경우 내가 서울에라도 직접 가서 아이들을 데려오면 되지 않겠어요?é
?.....é
그녀의 말을 듣고 앉아서도 나는 돌부처처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까지 아이들에게 비자가 나온다면 이 여자와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말리라는 생각을 죽 해왔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그러한 계획은 점점 눈 녹듯 진창으로 화해 버리고, 차라리 아이들 때문에 이 생활이 계속적으로 지속되어 가는 꼴이 되고 있었다.
아파트에 돌아 와서 선혜는 식품들을 부지런히 냉장고에 집어 넣은 후, 소파에 있는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내가 켜 놓은 TV를 리모컨을 들어 찰칵하고 꺼 버렸다. 나는 그녀의 돌출적인 행동에 그녀를 쳐다봤다.
나-, 할 말이 있어요.é
그러더니 그녀는 주머니에서 만 달라라 쓰여 있는 수표용지 하나를 꺼내어 테이불 위에 놓았다.
이제부터 돈의 일부를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은 그 돈을 내가 정 사장에게 주고 물려 있었거든요.é
나는 그녀의 행동이 전혀 뜻 밖이라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확인이라도 하듯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정 사장이 누구요?é
ü식당주인 말이에요. 처음 그 식당을 살 때 동업을 하자 해서 돈을 건네 준거거든요. 그러더니 동업도 안해주고 돈도 빨리 돌려주지도 않고 이렇게 애를 먹였지 뭐예요. 이제부터 형편이 되는대로 나누어서라도 그 돈을 갚아주기로 했어요. 그 돈만 받으면 전 이제 그 식당에 나가서 종업원 짓을 그만 하지 않아도 돼요......é
그날 저녁 선혜가 처음으로 돈의 행방에 대하여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5>
그녀가 나가고 있는 식당 주인인 정씨가 그 식당을 살 때 선혜에게 식당에 드는 경비를 같이 투자해서 동업할 것을 제의해 왔었다. 양 쪽에서 10만 달라 씩을 투자해서 지금의 식당을 인수받은 후에 거기서 나오는 수입을 비용을 다 제한 후에 깨끗이 절 반씩 나누자는 거였다.
구미는 당기는 일이었지만 10만 달라란 거금이 자신의 자금이 아니라는 걸 의식한 선혜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망서렸다. 그러나 어떻게 선혜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 정씨는 그녀를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그 10만 달라를 아주 잠깐 빌려라도 달라는 거였다. 그러면 2할의 이자와 늦어도 1년 후에는 원금을 다 갚아 주겠다고, 집이라도 팔아서 갚겠다고 장담을 하였다.
선혜가 선뜻 대답을 않해주자 정씨는 또 다른 제안을 가지고 그녀에게 와서 계속 설득했다. 즉 식당을 살 때에 선혜를 식당소유주 명의에 동업자로 포함시켜서 한 다음, 돈을 다 갚은 연 후에 그녀의 이름을 빼겠다는 구체적 제안에 비로소 그녀는 구미가 당겼던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선혜의 생각에 돈 주인인 강병일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국도 하기 전에 감쪽같이 2할의 이자가 벌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정씨도 명색이 같은 교회 집사 신분인데 믿는 사람이 남의 돈을 떼어먹는 그런 파렴치한 행동이야 하겠나 하는 생각도 돈을 내어 주는데 한 몫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돈을 가져간 후에 정씨의 태도는 돌변하기 시작했다. 식당 명의를 동업으로 하겠다던 약속도 절차가 복잡하다는 핑계로 단독으로 서류를 만들었으며, 1년이 지나도 돈을 주기는커녕 집을 팔 낌새조차 보이질 않았다. 1년이 가까웠을 때 선혜는 비로소 증서 하나 믿고 돈을 선뜻 내어 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몸이 달기 시작했지만, 반대로 정씨는 조금도 서두는 눈치가 아니었으며 매일 이핑계 저 핑계만 둘러대기에 능해졌다.
꿔 준 돈 받으려면 빚쟁이 집에 가서 누워서라도 받아내야 한다는 말, 그런 말 있잖아요? 나는 그 때 그 생각을 했어요. 말이 10만 달라지 그 돈이 어디 보통 미국사람이 평생을 모으려고 한들 쉽게 모을 수 있는 돈이겠어요? 할 수없이 나는 결심을 했어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그 굴에 들어 가야 한다. 그러니 나는 그 식당에 가서 무조건 일을 하기로 했던 거예요... 그 땐 제가 뭐 특별히 다른 일 하는 것도 없었으니까요.é
항상 꿔 준 돈을 받을 수 없을 때는 그 의미가 돈 자체보다도 더한 무엇이 있다. 인간적 배신감, 더 나아가서 패배감이 그것이다. 그 패배적 굴욕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선혜는 그 돈을 어떤 수라도 써서 받아내야 한다고 작심했다. 그렇지 못하면 그녀는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돈 자체보다도 더 커다란 그 무엇을 영 잃게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말은 계속되었다.
저는 분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까지도 오지 않았지요. 하지만 마음이 그렇게 달아도 냉정을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정말 크리스챤으로서 만이 할 수 있는 제 정성을 다해서 내 집 일처럼 그 식당에서 일해 주었어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라도 감동하여 제 편이 되어 주실거러 믿었거든요. 전 마음 속으로 매일 기도 했어요. 그리곤 이렇게 되뇌이곤 했어요. 이건 내 인생의 시련이다. 그러니 이 시련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 라고요......é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당시의 상황을 재연이라도 하듯 약간의 흥분으로 경직되기도 하였다. 그녀가 그렇게 살아 온게 어언 5년 가까운 세월을 넘기고 있었다. 본래 얕은 꾀에 능하던 정 사장도 선혜의 확고한 의지와 정성에 감동한 듯 돈을 갚긴 갚아야 한다고 마음 먹게 이르렀다.
그러던 중 오늘 낮에 정씨는 선혜를 빈방으로 조용히 불렀다.
이런 말 하기에도 나는 미세스 강한테 면목이 없어요. 하지만 나도 최선을 다 하는 거요. 이번 달부터 만 달라씩, 또는 그 반이라도 나누어서 형편 닿는대로 끊어 드릴테니까 조금만 더 참아 줘요. 돈이 항상 사람을 속이는 법이니까-.é
선혜는 그의 손에서 1만 달라짜리 수표를 보는 순간 그만 눈을 감고 주님께 감사했다. 그랬다. 주님이 그로 하여금 빚진 돈을 갚도록 능력을 발휘하시고 있는게 틀림이 없다고 믿어졌다.
저는 그제사 처음으로 안심하기 시작했어요. 중요한 건, 정 사장이 돈을 갚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쟎아요. 그 사실을 알아낸 것만도 저는 만족했어요.é
그녀는 말을 마치고 눈이 붉게 충혈되어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감동되어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넋을 읽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몰랐다. 잠시 후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왜 그런 자초지종을 나에게 진작 말하지 않았소?é
ü제가 어떻게 그 내막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어요? 빚 준 사람이 잘못하고 죄진 사람이라는데.....é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북바치는 감정으로 잠시 눈 언저리를 닦았다. 울먹이며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그런 말을 했다면 당장에라도 정 사장에게 가서 칼부림이라도 하지 않았겠어요? 그렇게 되면 돈은 결국 받지도 못하게 되고 모든 잘못은 우리가 뒤집어 쓰는 결과가 되죠...... 이제와서 얘기지만 저는 다 이해해요...누군들 그렇게 많은 돈을 잃고 바보처럼 가만히 있겠어요......é
나는 선혜의 말을 수긍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그 녀만을 미워해야만 했던 자신의 과거가 심히 부끄러웠다.
밤이 늦어서 사위가 고요하게 잠들어 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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