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

2007.01.19 01:59

이성열 조회 수:1005 추천:31

단편소설                  -목걸이-
                                                 이성열 작
( 1 )

    까만 법의를 걸친 것처럼 미끈한 불랙팬더(표범의 일종)가 높은 언덕에 앉아 있고, 그 아래 야비한 하이에나의 주장에 따라 버팔로 살덩이를 마구 찢어 갖기 위한 동종의 다른 팬더가 으르렁대고 있다. 미력하나마 그걸 방어하기 위하여 수놈 버팔로가 가련하게 저항하며 자리에 기진맥진하여 쳐져 있다.
하이에나의 주장에 의하면 소의 들이받는 행위는 범죄가 될지언정, 발톱으로 할퀴고 이빨로 물어뜯는 짓은  보상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온몸에 선혈이 낭자하게 물어뜯긴 버팔로는 울분에 못 이겨 마구 닥치는 대로 들이받으려 나대었지만, 이미 다리는 묶이고 온 몸 군데군데가 그들 발톱에 의하여 다 손상이 나고 만 후여서 남을 해하기엔 권위도 힘도 없이 가당치도 않게 어깨를 마구 흔들어 대며 주위가 소란하게 울부짖고 있다.
그게 무서워 이리 몰리고 저리 피해 뛰어다니다가 상호는 그만 잠에서 깨었다.
깨고 보니 악몽이었다. 온 몸이 땀으로 후줄근 젖어 있었고, 몸무게가 천근은 되는 성싶었다.
상호는 오늘 비로소 날이 새면 재판소에 가야 하는 날 임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의 상념이 이렇게 허황하게 꿈으로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허나 그는 곧 괘념치 않기로 했다. 언짢은 꿈을 꾸었다고 해서 꼭 현실이 나쁜 것만도 아니니까. 차라리 꿈은 실제와 반대라고 하지 않던가?
대신 그는 잠자리에서나마 법원에서 일어날 일들을 마음으로 다시 정리하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아침을 맞았다. 예를 들면 절대로 예스를 쉽게 말하면 안되고,  사인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주의사항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일을 잊지 않았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법원으로 갈 때, 상호는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차를 몰고 다운타운에 들어가면 자칫하다가 미로에 빠져든 꼴이 되곤 하는 실수를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었다. 번 번히 갈 적마다 혼잡해서 가려고 목표한 건물에 가까운 주차장 찾기도 그에겐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 또 비싼 주차료는 어떤가? 그는 어려서부터 어렵게 살아온 환경 때문에 한 푼도 아끼는 것이 몸에 배었다.
그래서 그는 차를 몰고 다운타운 근처쯤에 가다가 한가한 골목 아무 데나 차를 세워 놓고 버스를 타는 것이다. 시내버스 요금이 편도 당 1달라 35쎈트이니 유료주차장에 차를 10여 분 세우는 금액과 겨우 같은 금액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법원까지 3-4 블록은 걸어야 하지만, 걷는 것은 매일매일 하게되는 산보운동과 다를 바 없으므로 그에겐 버릇이 되다시피 한 일과 중 하나였다.
                            
( 2 ).
법원 앞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으로 줄을 서있다. 왼 사람이 저리도 많은가? 그는 의아했다.
알고 보니 법원 출입을 위해 소지품 및 안보조사를 받는 출입자들의 행렬이었다. 하긴 911 뉴욕테러가 있은 후엔 어느 공공장소든 출입하려면 다 저런 조사를 감당해야 한다.
한 때 그가 군복무로 한국에 파견 가 있을 때도 북쪽에서 공산군이 쳐들어온다고 매일 저런 일들을 일 삼더니, 이제 이곳, 평화를 상징하던 미국마저 이런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에 살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 세대란 평화와는 별 인연이 없는 불안한 역사의 한 중간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하기사 인간 역사에서 전쟁이 없는 태평성세란 거의 없다시피 하다니까 말해 뭣하겠냐 마는, 누구나 일평생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피해 없이 살아 남는 것만도 행운으로 알고 살아야 할 일이다. 하긴 자신은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다 잃고 버려진 고아였으므로 이미 그 피해자인 셈이었다.
  이런 일들이 결국 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 테지만, 하여튼 테러 사건이래 이 평화롭던 미국의 생활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건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런 살상과 파괴, 불편의 원인제공을 빈 라덴 인가하는 그릇된 영웅주의를 신조로 삼고 사는 한 인간과 그 일당이 저질렀다고 한다지만, 그런 죄를 짖고도 그는 버젓이 살아 영웅대접을 받으며 활보하고 있으니, 어느 게 선이고 또 악이라는 건지-, 그는 고개를 저어 흔들었다.
911 그 사건이 아니라도 법원은 늘 무기의 반입 등을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판결이라는 일 자체가 타의적이라 소송에 관련된 당사자들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테고, 그러다 보면 불만 쪽인 사람이 감정을 품고 흉기로 판사나 또는 제 삼자에게 어떤 분풀이를 하려고 덤벼들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꿈에서 본 성난 버팔로처럼 말이다.
상호는 사람들 틈에 끼어 줄을 서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문 앞에서 보안경찰의 지시에 따라 소지품을 다 꺼내 놓고, 금속 탐지기로 된 검문을 거친 다음, 다시 소지품을 받아 넣고 해당 가정법원이 있는 2층으로 갔다.
약속시간보다 약 4분이 늦은 시간이었다. 삼엄한 정문의 검문검색이 없었다면 그는 아주 적당하게 시간에 맞춰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각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법원에 관련된 사람들이야말로 시간지체를 능사로 알고 행동하고 있는 자들임을 그가 이곳을 여러 번 드나들면서 비로소 터득한 사실이었다.

( 3 )
생각대로 상호의 변호사 왓슨도 오지 않았고, 상대편 변호사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당사자인 그의 아내, 그 일당조차도 없었다.
그랬다. 그들은 일당이었다. 아내가 가는 길엔 그녀가 영어를 할 수 없으므로 통역사가 따라 다녔다. 그리고 그녀의 변호사 유태인을 보좌하기 위하여 한국인 부로커가 또 그녀 옆에 따라 붙었다.
그는 가정법원 9지부라고 쓰인 문 앞에 가서 그 앞에 붙은 고시를 보았다. A-4 용지 두 장에는 그날 심의에 오를 원고, 피고들의 이름이 나란히 명시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그의 이름 상호 코맨과 그의 아내 신자라는 이름도 예외 없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명단을 훑어 본 다음 바로 그 벽 아래 놓여있는 돌로 만든 평상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복도 중간엔, â법원이 재판 중이오니 목소리를 낮추라ä 라는 팻말이 써 있고 사람들은 그걸 의식하는지 마는지 바쁘게 또는 천천히 지나 다녔다. 그는 무심히  그리로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상호는 순간 팝송노래 한 구절을 생각했다. â부레킨 업 이즈 하-드 띵 투 두-ä 뭐 어쩌고 하는 노래였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처럼 인간사 중에서 맺기는 쉬워도 떼기는 어려운 일인 모양이었다.
뭣이 좋아 좋다고 결혼한지가 어영부영 몇 년... 허나 좋다고 기억에 남은 날들은 그야말로 몇 날 몇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서 헤어지자니 타의에 끌려 이 지겨운 짓을 일년여가 넘도록 끌려 다니며 하고 있는 터이다.
같이 살다가 그만 싫어서 헤어지겠다는 것도 범죄에 해당하는가? 인생의 가치관이 맞질 않아서, 갈수록 서로는 조금도 사랑이 가꾸어지고 무어라도 결실을 맺는 사이가 되질 않아서, 서로는 신뢰가 없는 사이라 자꾸 뭔가 속은 것만 같아서, 점차 집에 들어오는 것조차 점점 괴로운 일이 되어가서, 그래서 본래대로 원점으로 되돌아가 보겠다는 것도 죄인가?
그는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지나친 걸 요구하거나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도 같이 땀 흘려 일을 해 돈을 벌어 집안살림에 보탬이 되는걸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뻔질뻔질 집에서 놀면서, 소위 호강하며 편하게 잘 먹고 잘 살기 만을 요구하는 천박한 생활태도에는 신물이 났고, 돈을 보기만 하면 가족의 복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남편 몰래 어디에 감추고 있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녀에 대해 환멸감이 들기 시작했다. 일하기 싫으면 근검 절약하는 생활습관이라도 몸에 붙여 가며 함께 정직하게 살아주기를 바랬다.
꼭 어떤 목적을 가지고 아껴 써서 큰돈을 모으자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그런 생활태도가 몸에 배었고, 그런 사람들을 좋아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이 척박한 세상에 본받고 살아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그런 태도는 그가 보고자란 근검했던 양부모와 불우했던 자신의 성장기와 무관하지가 않았다.
소박한 그의 그런 가치관이 그의 아내와는 맞질 않았다. 이런 점등이 왠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녀도 성장기가 뭐 그리 퍽 나은 유복하게 살아온 건 아닌 듯 했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녀는 내일이 없다는 식으로 매사 될 대로 되라 였다.   그래서 인생을 원점으로 돌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데, 왜 이렇게 양측 사법관계자들이 비싼 돈과 시간을 부과해가며 코를 꿰고 못살게 끌고 다니는가. 겨우 짝짓는 일에 실패한 죄뿐이 없는 선량한 시민들을.
당사자들 합의만 이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일이, 한 쪽이 선의 건 악의 건 뭘 좀 더 뺏어 내려고 사법기관으로 끌고 간다. 그러면 법원의 공인 하에 변호사가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하므로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세워 그나마 좀 가진  쪽을 풍비 박산 시키고, 일을 더 어렵게 흙구덩이와도 같은 곤경으로 처박는다.
혼인신고를 안하고 동거만을 하다가 도망가는 파렴치한들은 오히려 아무런 책임이 없다? 허지만 충실하게 당국에 신고하는 사람은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한다...... 왜? 결혼을 신고한 국민들은 그 동안 국가로부터 그 잘난 세금 공제를 받았으므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상호는 생각했다.
그는 딱딱한 돌 의자에 앉아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다.
  변호사는 그들 특유의 표정이 있다. 또 경호원은 경호원대로 그들만의 표정이 있으며, 서기는 서기대로 자신만의 표정을 고이 얼굴에 지어서 붙이고 다닌다. 이렇게 사람들은 그 얼굴만 봐도 지금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아무리 사회가 보이게 혹은 뵈지 않게 성차별을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성들은 참으로 당당하다. 마치 인류는 태초로부터 자신들로부터 잉태되었다는 듯이, 그런 잠재의식이 그들을 그렇게 당당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조용 하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도 그들은 개의치 않고 걷는 것부터가 소란하다. 대개는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마치 망치로 대리석을 치듯 또각 또각 소리내며 복도를 지나친다. 그 비대한 몸무게를 나뭇잎 같은 작은 구두에 실은 채 굽과 창이 부러져 나갈 듯이 휘청거리는 그 탄력을 이용해서 잘도 걷는다.
옆에 대단하게 몸집이 큰 여자가 그런 모습으로 와서 앉는다. 돌로 만든 평상 의자조차 놀라듯 약간 기우뚱 움직인다.
그녀는 왜 이곳에 왔을까? 그녀도 자신처럼 결혼을 깨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송사에 말려 온 것인가?

( 4 )
몸이 커서 자신의 신체 하나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듯한 그런 남미 계 여인을 보며 상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같은 벽 왼쪽으로 붙은 다른 의자에 동양 계 여자 둘이 와서 앉는 것이 보인다.
그의 아내 신자와 아마도 통역을 할 법정 통역사인 모양이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통역사까지 대동하는가. 통역사가 오늘은 한 명  뿐이다. 지난번엔 두 명이 왔었다. 통역사 한 명이 도중에 바쁜 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예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처음부터 나타나질 않으면 되는 게 아닌가.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진 않겠다는 욕심의 발로인가?
세상엔 이해 안 가는 일이 하도 많은 법이니까 신경 쓰지 말자.
그와 그의 아내 신자는 이미 철저하게 남일 뿐 아니라 원수가 되어서 불과 수 발짝 사이 떨어져 앉아 있어도 그 거리가 지구 반 바퀴만큼이나 되었다. 이제 서로는 어떻게 하면 상대를 밟고 그 피와 살을 도려내는가, 상처를 내는가 하는 것이 목적일 따름이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데 그런 말은 그들에겐 조금도 해당되질 않았다. 단지 동물본능의 원시감정에만 충실해서 그들은 서로를 해할 방법만을 도모할 뿐이다.
상호는 사태가 이렇게까지 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도대체 변호사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이 이렇게끔 번지기 전에 서로 나눌 만큼 나누고 신사적으로 헤어지기를 바랐다. 그는 자신이 좀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들었어도 얼마의 돈을 그녀에게 제안했다. 그런데 그녀의 계산은 달랐고, 상호가 생각한 큰돈도 성에 차질 않아 코방귀로 일축하였다.
그녀는 그 동안 그들이 살던 집을 통 채로 차지하겠다는 거였다. 시가 오 십만 달러가 넘는 집이었다. 상호에게 이 집은 애착이 가는 재산이었고, 생후 처음으로 자신이 투자한 부동산이었다. 그는 포기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끌려오게 된 것이다. 상호는 차마 상대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었다.
상호가 그의 아내 신자를 맞이한 이유는 한국에서 온 여자라 조금은 순진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성우위에 길들여진 미국여성과는 다른......그런데 어디 여자라 해도 여자 나름이었다.
고아출신으로 미국에 양자로 와서 자라난 상호는 미군에 복무한 경험이 있었다. 그 때 한국으로 파견되어 그곳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야릇한 느낌을 경험하게 되었다. 자신과의 피가 같은 동족이라 그런지 그곳에서 만난 여자들은 한결같이 누이처럼 친근감이 들었고, 심지어는 연민의 정까지 지니게 되었었다. 그리고 미국여자들보다는 한결 부드럽고 순종적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군에서 제대를 한 후 첫 번 결혼에 실패하게되자, 그는 한국에서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는 거였다. 그래서 그는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옛날에 복무하던 기지촌을 다시 찾게 되었다.
준비성이 있기로는 둘째가라면 서운하달 그가 떠나기 전 값진 패물 하나를 샀는데, 그게 바로 여자 목걸이였다. 한국에서 여자를 만나면 구혼을 하고 그녀에게 줄 선물이었다. 반지를 살 까도 생각했지만 손가락 사이즈를 알아 오라는 거였고, 만나고 싶은 여자가 누가 될지 아직 미지수였으므로 그 크기를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크기 하나로 누구에게나 다 맞는 목걸이를 사가기로 정했었다.
그러나 자신을 아는 연고라곤 거의 없는 타관에서 참신하고 의지할 만한 여자를 만난다는 건 처음부터 아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한 해 쯤 그곳에서 복무를 했다고는 하나 급류처럼 인심이 밀려들어오고 빠저나가는 곳이 그곳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옛날에 전전하던 기지촌 동두천 보산동에 소재한 결혼소개소 문을 두드렸다. 그곳 알선으로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꽤 괜찮다는 생각에 즉석에서 프로포즈를 한 여자가 지금의 신자였다. 눈에 콩 까풀이 낀다는 속말이 있지만, 상호가 그녀를 만났을 때도 그런 기분에 속은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지금 봐도 섹시해 보이는 데가 좀 있었다. 피부가 희었고 이목구비가 준수했다. 특히 크지 않고 다소곳해 보이는 입매가 헤프지 않고 다부졌다.
그러나 몸매는 키가 작은 편인데다 몸 전체가 균형이 맞질 않았다. 상체에 비해 하체가 지나치게 짧아 사 입는 옷이 맞을 리가 없었고,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오리나 돼지가 걷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들이 살아가면서 상호의 눈에 천천히 비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점은 아내가 줄담배를 피고 살아간다는 거였다. 처음에 그는 담배쯤이야 그녀의 말처럼 마음먹기에 따라 결혼해서 살면 언제고 끊을 수 있을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그녀는 끊을 의지조차도 없어 보였고, 그래서 궁극으론 냄새 때문에 방 하나를 따로 그녀에게 할당했다. 그래도 담배 냄새는 거미발처럼 문틈으로 기어 나와 상호를 괴롭혔고, 그렇게 순차로 별거는 시작됐다. 그녀의 주위 모두는 담배 연기에 졸아 갔다. 어쩌다 마시는 그녀의 주량도 만만치는 않았다.
어쨌거나 아내 신자는 애초부터 급조 식으로 만난 남편에게서 애틋한 애정을 주고받을 수 없음을 직감했는지, 때만 되면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처럼 철저하게 깨져 나갈 준비는 하고 있은 듯 했다. 이혼 말이 나오기 무섭게 그녀는 유능한 변호사를 대동하고 정리작업에 착수하였고, 어디로 가서 어디에 얼마의 돈이 있다는 사실들을 주저 없이 파헤치고 달려들었다. 분산되어 있는 각기 다른 은행잔고는 물론 주식투자의 지분과 회사에서 나오는 401K 등, 돈 될 만한 것은 한 푼도 그녀에게 숨어 있을 자리라곤 없었다.
      
( 5 )
오늘 어찌된 일이 양측 변호사들이 모두 법원에 나타나질 않는 건가? 한 참도 더 된 것 같다.
하긴 그들이 한 시간 정도씩 늦는 것은 예사 일이다. 시간이 바로 돈이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소송의뢰인들이니까... 그걸 뻔히 알면서도 상호는 딱 제 시간에 나와 이렇게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다.  아, 이 무슨 살아가면서 치러야 할 낭비며, 봉변이란 말인가! 일생에 3번 송사에 걸린 사람 치고 집안 거덜나지 않은 사람 없다더니, 인생을 한 번 더 다시 살라고 한다 해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자 해도 결과는 지금과 별로 다를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팔자에 있다면 몰라도 서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걸 뻔히 알면서도 이 짓을 해야 하니까-.
상호가 벽면에다 머리를 기대고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맞은편 의자에 두 남녀가 와서 앉는다. 정장 차림의 남자요, 또 하나는 제법 멋을 낸 여자다.
그들도 보아하니 변호사와 소송의뢰인처럼 보인다. 남자가 주로 말을 해서 설득하는 편이고, 여자가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듣고 있다. 몸매나 생김새가 상당히 매력적인 여성이다. 머리는 뒤로 가지런히 빗어 넘겨서 핀으로 처리를 했고, 커다란 눈은 불타듯 빛났으며, 무엇보다 탐스런 그 입술이 가히 뇌쇄적이다. 터질 듯이 풍만한 가슴과 풍요로운 몸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가볍게 날아갈 듯 날렵하기만 한 저런 여성이 남자 앞에 서서 â사랑ä 어쩌고 친절하게만 군다면 어떤 남자 건 자석처럼 빨려 들지 않을 자가 없을 것 같다. 옛날 왕 앞에만 나선다면 그에게 간택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한 때 남자를 녹여냈음직한 그녀가 이제는 뭐 하러 이곳에 온 걸까. 이곳은 인간관계의 결합을 도모하는 곳이 아니다. 수술을 하듯 아프지만 환부를 떼어 내 한 가정을 찢어 버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다시금 추구할 기회를 주려는 곳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레테의 강을 건너 듯 깨끗하게 지금까지의 과거를 청산하고 망각하러 이곳에 온 것일까?
잠시 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여자도 따라서 일어나며 그의 말을 경청한다. 그러나 한 단어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녀의 온 몸이 그를 향하여 스폰지처럼 흡입력을 가지고 대기하고 서 있는 듯 보인다.
활개를 쭉 늘어뜨리고 서 있는 폼이 초여름의 물 오른 나무 옆 꽃을 꺾으러 나온 여인과도 같다.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면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오를 선녀처럼 풍요롭다. 그녀를 보니 상호도 저만큼은 아니라도 꽤나 괜찮은 히스패닉 여자 하나를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다니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다듬는 미용사가 그녀였다. 이름도 모르는 그녀는 퍽 이나 청결해 보이고 아름다워 남성 손님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헌데 왜 맞은 편 여자를 보며 갑자기 미용사가 생각났을까? 미인이라는 이미지가 같아서였을까? 언젠가 상호는 머리를 깎으러 가서 주위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그녀에게 말했었다. ü난 당신처럼 아름다운 미용사를 본 적이 없어요.é 그랬더니 그녀는 얼굴까지 빨개지며 좋아했고, 그 다음부터 상호에 대한 서비스는 더욱 좋아졌었다.
그 때만 해도 상호는 아내라는 장애물이 있어서 더 이상의 접근은 상상조차 삼가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다음 번에 다시 그 이발소에 갈 때는 그녀라도 다시 눈여겨보고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앞에서는 남자가 말을 끝내고 여자를 데리고 법정으로 들어간다.

( 6 )
잠시 후 아내 변호사 골드가 먼저 그들에게 나타나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상호에게로 왔다. 그가 상호에게 말했다.
ü당신 변호사 왓슨이 나에게 전화했는데, 지금부터 약 30분 가량 늦는다더라. 그래서 우리는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오려 한다.é
상호는 그냥 자리에 앉은 채로 ü그러시지요!é하고 만다. 커피를 마시던, 보약을 마시던  제돈 가지고 제가 마시는데 상관할 바 뭐람-.
하긴 이 건물 안에 커피 값도 만만치 않을텐데, 넷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 커피를 마셔야 한다면, 결국엔 그 돈도 다 상호 자신의 지갑에서 나가게 되는 것 아닌가? 왜냐하면 이 소송에 걸린 당사자인 그와 소송을 건 아내 사이에서 결국 모든 비용을 긁어 낼 돈주머니, 즉 돈 가진 사람은 상호 자신이지 그의 아내 신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저들 모두는 그가 소유한 돈을 빼앗기 위하여 저렇게 동원되었다. 그 돈이 있는 창고의 열쇠를 내 준 건 바로 일말의 동정심마저도 없는, 꿈속에서 본 하이에나나 다를 바 없는 이기적이고 야비한 그의 아내 신자라는 여자이다. 자신이 피땀 흘려 일하고 구축해 놓은, 가진 사람이 볼 때는 하루 저녁 유흥비로도 모자랄 초라한 은행 구좌를......  
이제 골드라고 하는 상대방 유태계 변호사는 저렇게 얼굴을 붉히면서 상호에게 접근하고 말이라도 건네는 처지가 되었다. 소송이 이제 거의 끝마무리 단계에 이르니까 그에게도 저렇게 접근을 하는 것 같다. 그야 뭐 특별히 상호가 밉겠는가? 그가 가진 돈을 뺏어내려니까 저렇게 미운 짓을 하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 상호는 골드를 보면 소리 없는 총이라도 사용해서 살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었다. 법정 뒷좌석에 앉아서 앞에 앉은 바알갛게 벗겨진 그의 머리  통을 노려보며 얼마나 오랜 시간 총의 과녁을 겨누는 심정으로 그를 저주하고 괴로워했는지 모른다.
골드는 이유 없이 법원 진행을 그의 의도대로 오래오래 지연시켰었다. 이 쪽 편 변호사가 연락을 시도해도 접촉이 어려웠으며, 남겨 놓은 메시지에 대해서도 아예 묵살해 버리곤 했었다.
심지어는 해당 소집 일에 법원에 예고도 없이 출두하지 않았으며, 법원서기에게 가서 물어보면 개인사정으로 일정을 연기해 놓고, 제대로 연락 하나 해 주질 않았다. 그는 아주 능수 능란하게 법정의 일과를 주물렀다. 늘 한 수 앞서 일을 진행해 나가므로 대개 이 편에서 알아 차렸을 땐 이미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그런 연유로 소송은 2년이 가까워도 아직까지 끝이 나질 않아 계속 오리무중 속을 헤매고 있다. 그들의 이혼이 무슨 세계적 스타인 심슨 케이스처럼 백만장자 의 소송이라도 된단 말인가.
처음 소송이 걸렸을 때, 상호는 너무 기대 밖이라 아연실색 할 말조차 잊었었다. 그는 더 이상 서로간에 애정을 발견할 수가 없고 그렇게는 함께 평생을 보낼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아내에게 말했었다.
â내가 재산을 현금으로 나누어 줄 테니 우리 그만 헤어지자. 그리고 이제 각기 제 갈 길을 가자. 난 솔직하게 가진 몫 돈도 없어. 하지만 하나 뿐인 이 집을 걸고 융자를 하면 얼마만큼은 빌릴 수 있을 거야.ä
그는 생각하기를 봉급쟁이인 자신이 아내와 겨우 얼마도 못살고 십여 만 달러를 제의하는 것은 과히 섭섭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현금이었다. 그 돈이면 한국 돈으로 환산해도 수억 원은 넘는 금액이었고, 그녀가 무얼 해서 벌었다 해도 정상으로 모으기는 힘든 돈이었다.
그런데 여자는 50만 달러가 넘는 집을 통 채로 독식하겠다는 거였다. 이런 기회에 무슨 횡재를 노리는 것도 아니고, 상호는 물론 한마디로 거절했다.
급기야 그녀는 주장이 먹히지 않자 최고로 비싼 변호사를 고용했다. 어떻게 그 변호사가 좋은 것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주위 사람들의 부추김으로 그를 찾았고, 대개의 변호사들이 소송을 맡기 전에 장담하듯 상대를 이겨서 돈을 무진장 빼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겁 없이 송사를 진행시킨 것이다.

( 7 )
아내 신자는 상호가 처음 기대한 것처럼 순진하고 선량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쉽게 그녀와 헤어질 걸 결정했었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결혼 초부터 이 때를 대비해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임신도 이런저런 구실로 회피해 왔었다. 변호사의 소재를 손바닥 보듯 파악하고 있었고, 남편의 재산상태 조사가 이미 철저하게 끝나 있었다.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상호는 그 자신도 모르고 아내라는 여자조차도 몰랐지만, 아내는 이미 남편을 적으로 생각하고 모든 파악을 세세하게 끝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손자병법의 말대로 싸움의 결과는 보나마나 뻔한 셈이었다.  
이 소송의 시작은 벌써 근 2년 전의 일이었다. 신 새벽에 일어나 직장엘 가려고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느닷없이 문을 부수는 듯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수저를 든 채 뛰어 나가 문을 열어보니 법원 메신저가 서슬이 퍼래서  봉투를 건네며 사인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를 돌려보내고 봉투를 뜯어 내용을 살펴보니 어이없게 아내가 자신을 상대로 고소를 걸었다는 통보가 들어 있었다. 아침부터 일어난 소란이기에 방에 있던 아내도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인 줄도 모르고 옆에 나와 멀건 하게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는 하도 기대 밖이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곤 이말 한 마디 만을 반복했다.
ü당신......, 고맙구려, 고마워!é
ü누굴 원망하고 하지 말아요! 헤어지는 마당에 나도 내 권리를 찾아야겠다고요.é
앙칼진 그녀의 대답이었고, 그렇게 뺏고 빼앗기는 수탈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녀는 이 말 한 마디를 던지고 식탁을 지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상호는 아래위로 그의 아내 뒤 꼭지를 훑어보고 나서 봉투 안의 내용물을 읽어  보았다.
법원 출두 날짜가 약 1 개월 후로 잡혀 있었고, 그도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설명과, 그리고 아내의 고소 사유가 장황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바삐 그 소장을 훑어보았다. 소장에서 아내 신자가 진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원고, 코맨 신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나는 내 사적인 지식과 견해로 아는 바 대로 다음을 진술합니다.
만일 이 문제에 대하여 호출되어도, 나는 여기에 말한 내용을 사실대로 재확인하는 바입니다.
미스터 코맨과 나는 함께 집에 살아가는 동안 폭력이나 폭언 또는 신체적 압박이 일체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집에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 접촉을 피하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미스터 코맨은 자신이 스스로 소파에서 자길 원했습니다. 그는 또 한 아무도 그를 깨도록 소란피지 않았으므로 밤새껏 잠을 잘 잘 수 있습니다.
-우리는 19XX년 X월에 결혼했습니다. 그는 한국에 살고 있는 나더러 결혼해서 미국에 오면 집안 일만 돌보며 집에 있어도 좋고, 또 원한다면 일을 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이혼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달 후부터 그는 생활비조차 내놓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혼 서류를 접수한 후부터 서로 다른 방에서 별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결혼 전 그의 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 집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낡았는지 정말 놀랐습니다. 특히 부엌은 말 할 나위 없이 바퀴벌레도 많았고, 찬장 문은 떨어지기 직전이었으며, 스토브조차 다 부셔져 있었습니다. 목욕실도 목욕탕과 변기가 필요했고, 유리창과 카펫도 새것이 필요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수리하자고 했고 그는 승낙을 했습니다.
우리가 결혼을 한 후, 집은 수리가 시작됐고, 그 동안 우리는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그동안 내가 벌어서 모은 돈 2만 달러를 여행자 수표로 바꿔 미스터 코맨에게 모두 주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그중 그가 1만5천 달러를 가졌고, 제가 나머지를 보관했습니다. 우리는 소파를 비롯한 새 가구를 샀습니다.(영수증 첨부)
-결혼 후 나는 직업을 가지려 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유지보수와 수리하기가 귀찮다며 거절했습니다.
그가 주는 생활비가 충분치 않아서 살림을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방 하나를 누구에게 세주자고 그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부엌 용품이 없으니 그런 기본설비를 설치한 다음 세를 주자고 했더니, 그가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돈을 이웃과 동생에게 빌려 독단적으로 수리를 했습니다.
-미스터 코맨은 나에게 집의 명의와 은행예금을 맡기지 않은 것은 그가 나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 말하지만, 그 말은 타당치 않습니다. 그는 나에게 그의 봉급 명세도 안 보여 주었고 재정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는 결혼 후 재정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집의 가치나 은행예금, 주식 가격 등 모두가 증액되었습니다.
나는 수 차례 집의 소유주 명으로 나를 넣어 줄 것과 은행도 같은 이름으로 사용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원래 소유라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더구나 그는 돈이 많이 쓰고 싶으면 벌어서 얼마든지 쓰라고까지 했습니다. 결혼기간 몇 년 동안에 그는 나로부터 재정적 독립심과 이 사회의 다른 면을 배울 기회를 박탈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이혼에 합의하면 10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나는 이 집을 원했지만, 그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집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을 일으켜 세운 사람이 바로 본인이며, 미스터 코맨은 집이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입으로도 말했습니다. 집은 부담이 많이 가므로 관리가 쉬운 작은 아파트면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그가 한 재산 평가에 의하면 이 집의 가격이 40만 달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요즘 시세를 기만한 것입니다. 제가 전문가에게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는 집 값을 내리기 위하여 지금 집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싼 집들과 비교해서 얻어낸 가격이라는 것입니다. 이 집의 현 시세는 50만을 넘고 있습니다.
이 사실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입니다.
나는 결혼 후 이제까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손상되어 가며 참고 살아 왔습니다. 정신적 침체와 구역질, 신경성 질환으로 체중이 감소되어 95 파운드까지 줄었습니다. 나는 병원에서 여성질환 수술을 받았고, 그로 인한 치료가 요구되기도 합니다.
저의 바램은 이 결혼이 빨리 정지되기를 바라며, 그에 상당한 보상을 하루 빨리 받고(별도 청구서 첨부) 내 자신이 그 전의 쾌활하고 희망이 가득한 새 삶을 되찾고 싶습니다.
나는 켈리포니아 주법과 위증 법에 의하여 상기 사실이 정확하고 진실한 증언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그는 소장을 빠르게 읽은 후 몇 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도 기가 막혀 더 더욱 말이 나오질 않았다. 허나 싸움은 시작되었고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자신도 모든 걸 준비해 법원으로 가서 사실대로 싸워야 한다는 생각만 지배했다. 시시비비를 억울하지 않게 가리려면 자신도 바짝 서둘러야만 했다.

( 8 )
  상호는 소장을 읽고 나니 수치스런 감정이 들기도 하고 한 편 황당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분기가 가시질 않아 떨리는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질 않았다.
그녀가 주장한 사실은 너무도 일방적이었고 파렴치하기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상당 부분은 지나치게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었고 왜곡되어 있었다.
아내라고 이제까지 믿고 살아 온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함으로 가득한 내용으로 극렬하게 남자를 공격할 수 있는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언제 그렇게 집안의 재정 조사를 손바닥 살피듯 철저하게 해두었냐는 거였다. 첨부한 위자료 청구서 내용의 치밀함을 보았을 때, 그는 다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분명 이는 하루 이틀 사이에 준비한 일들이 아니었다. 허구한 날 해야 할 집안살림은 안하고 남편의 재정 뒷조사만 하며 소일했음이 분명했다.
그는 돌연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법 상식이나 준비가 없는 그에겐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장을 준비해 법원에 가야 할 한 달 기간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는 회사에 출근해서도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터놓고 말을 할 수도 없는 한낮 사사롭고 부끄러운 집안 일이었다.
아직도 주위에서는 너도나도 겪게되는 이혼문제에 대해서 행여 자신이 남의 일에 관여될까봐 그래서 불똥이 튈까봐 쉬쉬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다른 일로는 모두가 서로를 위로해 주거나 걱정해 주며 또는 축하해 준다. 심지어는 부조금, 위로금, 축의금까지도 마다 않고 도우려 한다. 허나 이혼 문제에 대해선, 변호사 고용하랴, 감정사 구하랴 마음이 상하고 비용이 억수로 드는 힘든 싸움인데도 불구하고 주위에선 아무도 나서서 도우려 들질 않는다. 상호는 비로소 세상인심 얼음장처럼 냉정하기만 하다는 걸 뼛속 깊이 체험하며 외로운 싸움을 감당해야만 했다.
  생각다 못한 그는 일을 마치고 회사 노동조합 민원실엘 찾아갔다. 그곳에서 간단한 상담을 마친 후 추천된 변호사 중 왓슨이라는 흑인 변호사를 소개받기에 이르렀다. 그는 가정법 전문 변호사로 그 방면에서 만 20여 년을 일했다는 것이다.
그 후 상호는 몇 번에 걸쳐 윌셔 가에 소재한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야 했다.
처음 상담료는 100달러. 그리고 소송을 맡기려면 착수금이 5천 달러. 그는 이렇게 큰 몫의 착수금을 내고서야 비로소 그 동안 그가 살아 온 사사롭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그에게 털어놓아야 했다. 자신에게 걸려 든 올가미를 풀기 위하여 그는 우선 법정에 가서 대항할 반박문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수정과 의논을 거듭한 끝에 만든 자신의 진술서는 시간만 소요되었지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에 꼭 들고 흡족하게 완성되질 않았다.
변호사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바로 돈이었다. 그들은 교묘하게 시간을 끌었고, 그 시간에 수백 달러의 시간당 수임료를 곱해서 부과했다. 대부분은 변호사가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고, 주로 비서로 불리는 법과대학 재학 중 인턴으로 와 있다는 모니카 라는 여자직원에게 상호가 말해주면 받아쓰는 형식으로 서류작성이 진행되었다. 상호는 모니카에게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우리는 19XX년 X월에 결혼했으며 둘 사이에 아직 아이들은 없습니다.
나는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15년간이나 같은 집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택은 나 단독의 투자와 소유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결혼도 하기 전에 집부터 고치자고 우겼고, 이제는 자신의 수리비가 들어서 자신이 집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건 전적으로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이며,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하나의 계락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나의 집은 그녀의 주장처럼 그렇게 더럽거나 낡지도 않았으며,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수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일을 벌여 온 것입니다. 집이 낡았다고 해도 아내의 주장대로 바퀴벌레가 있었다거나, 목욕탕과 변기조차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단지 집이 오래되어 고치면 기분도 새로워지고 집도 개선된다는 차원에서 고치기로 동의했을 따름입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만, 나 자신도 수리에는 돈이 들었고, 지금 와서 누가 얼마를 썼는지는 알 길도 없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의 결혼 비용과 살림살이 구매대금 등을 다 포함해서 집 수리비에 넣어 계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공인평가사가 한 것이므로 나의 의견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집의 평가를 40 여만 달러로 한 것은 변호사가 고용한 감정사의 의견이지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그들이 누구의 요구나 요청에 의해 평가를 하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추호의 그런 부탁을 한 적도 없습니다.
XX년 X월부터 그녀는 집의 남는 방들을 세놓기 시작하여 수백 여 달러의 임대료를 받았고, 그 합계가 지금까지 몇 만 달러에 달합니다. 그 수입의 절반은 나에게도 권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후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 신뢰를 할 수 없었으므로 은행구좌나 저축을 따로 하며 살았습니다. 집의 명의를 공동재산으로 한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급한 일이 아니라 생각되었기에 서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켈리포니아 법이 같이 살고 있는 한 자동으로 공동재산으로 취급하는데 서둘러 서류를 만들 필요도 없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계속 그걸 주장하는 저의부터가 왠지 순수하지가 않다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가 남편인 나를 무시하고 큰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어서 은행구좌도 같은 이름으로 하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아도 역시 아내의 의도는 순수하지가 않았다는 저의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녀는 생활비를 적게 주어 힘들게 살았다고 주장하나, 그녀는 결혼 후 한 번도 자신이 손 수 일해 본 적이 없으면서도 부족함이 없이 관광객처럼 풍족한 생활을 영위해 왔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일을 하고 벌어서 쓰라고 했던 것은 재정적 독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였지 그걸 박탈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지나친 사치나 소비를 원한다면 벌어서 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현재 우리는 같은 집에 함께 살고있지만 서로 대화도 없고, 부부간의 관계가 아닌 지도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서로 대화를 할라치면 그녀가 폭언을 일삼기 때문에 대화는 불가능하고, 폭력을 유발하기 쉬운 대단히 위험한 처지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녀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자살을 하겠다고 위협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나를 함부로 대할 뿐 아니라, 모든 내 일용품들을 쓰지 못하도록 감추고, 잠을 못 자도록 TV나 라디오를 밤늦도록 크게 켜는가 하면, 문을 열어 젖히고 소란을 피우기 때문에 나는 그를 피하기 위하여 거실 소파에서 밤을 지새고는 합니다. 침대에서 아내가 밤늦게까지 등불을 켜고 뭐를 읽는지 부스럭거리거나 티브이를 켜대며 본인의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에 견디다못해 밖의 거실로 나와 자기에 이른 것입니다.
나는 미국에 양자로 온 이래 이 낯선 외국에서 살아 남기 위해 숱한 고생과 노력으로 이제까지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원고는 나에게 결혼해 와서 내 인생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고 내 재산과 돈을 쉽게 갈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며, 올바르지도, 공평하지도 않은 일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집을 15 년간이나 소유해 왔습니다. 원고는 불과 수 년 전에 나에게 와서 함께 살아온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재산의 단독 소유를 주장하는 바이며, 그 밖에 다른 동산과 저축은 결혼 후부터 계산하여 그 절반을 나눌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ü
모니카는 우선 상호가 진술하는 대로 푸른 선이 그어져 있는 백지에다 받아썼다. 그런 후 나중에 다시 정리할 모양이었다.  
(  9  )
얼마 후 다시 유태인 변호사 골드가 와서 ü아직 안 왔냐?é고 상호에게 물었다. 그는 머리를 저으며 ü놉!é하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가 오면 내가 6층에 다녀온다고 전해줘요.é
ü얍!é
이번에 그는 정반대의 대답을 크고 퉁명스레 해야 했다.
그가 가고 다시 반대편 의자에 좀 전의 그 매력 만점의 여자가 나와 앉아서 이번에 어떤 노인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그는 다시 그들을 보며 상상의 머리를 굴렸다. 저렇게 멋있는 여자에게도 가시가 있다. 독 가시가-. 그러니까 그녀도 이 싸움터에 나와서 싸우다 또 작전을 구하다 하는 것일 것이다.
누구에게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가시가 있다. 아마도 장미는 아름다워서 가시가 더 많아야 하듯, 그녀도 아주 많은 독한 가시를 지니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정상에 깃발을 꽂듯 그녀를 먼저 차지했던 남자는 다시 그녀를 포기해야만 하는가? 이혼을 해서 갈라서야 하는 자세한 내막이야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알 재간이 없다 할지라도 결국 가정법원이란 뭐 하는 곳인가? 싸움을 화해하고 찢어진 사이를 되돌려 꿰매어 붙이는 그런 곳이 아니잖는가?
그 때 현관 왼쪽이 갑자기 소란해지더니 각 법정으로부터 경호원들이 방망이를 쥐고 뛰어 나와 마치 군대처럼 현관 오른쪽으로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들은 모두 현관 오른쪽 맨 끝 직각 커브를 돌아 사라졌다. 각 법정에서 나온 경호원들이 숫자로도 스무 명 이상은 뛰고 있었다.
무슨 난동이 법정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순간 그는 간밤에 꾼 꿈을 생각했다. 이 난동을 보기 위해 버팔로 들소가 난동을 부리는 그런 꿈을 꾸었단 말인가?
하긴 상호도 소송이 진행된 이래 항의 난동이라도 부려보고 싶은 그런 기분이 여러 번 들었었다. 그의 주장은 번번이 묵살되었던 것이다. 그의 집이니 마음대로 살 수 있게 침실 하나 만이라도 혼자 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를 판사는 거절해 버렸다. 집 전체를 다 아내가 점령해서 드나들고 치우고 소란을 피는 바람에 그는 거실로 피해 소파에서 잠이나 자고 생활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판사는 상호 측의 주장을 듣고도 침대를 놓으면 거실도 침실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그들이 대치상태의 생활을 계속 유지하도록 아무런 조처도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내고있는 아이도 없는 배우자 부양비가 터무니없이 많다는 주장도 이유 없다고 판사는 기각했다.
상호는 정말 답답했다. 그래도 이 사회는 어느 정도 법 아래 공정하다는 이제까지 그가 지녔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이곳도 어떤 보이지 않는 제도의 벽이 인간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사회구나 라는 생각이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약자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그런다고 인정을 해도, 그걸 악용하려는 무리들에게 지나치게 자비를 베풀어 정직하고 선량한 시민들의 살아 갈 의욕을 꺾어 버린다는 건 바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직한 시민임을 자처하며 열심히 일해 꼬박꼬박 세금 바쳐가며 살아 온 상호 자신이 아직까지 세금 한 푼 안내고 겨우 자신 때문에 초청되어 와서 얻은 영주권으로 소일해온 자신의 아내에게 이렇게 아무 힘없이 무참하게 빼앗기고 당하기만 한다는 억울한 심정이 그를 허무의 나락으로 빠지게 했다. 자신의 집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모든 권리를 유보 당하고 살아야 하다니-. 허나 죽인다 해도 나라 법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는 이렇게 진흙창과도 같은 상태에서 1년여를 살아왔다. 그러므로 난동을 부릴 수 있는 자는 그래도 용기 있는 이 시대의 영웅이라는 심증까지 들게 되었다.
( 12 )
그 때 마침 자신의 변호사 왓슨이 나타났다. 상호는 이제까지 기다린 것이 무척 짜증이 났지만, 법을 다룬다는 변호사들의 공통된 특성이 그런 모양이었고, 오늘 그가 나타난 목적은 시간 엄수가 아니라 자신이 걸려 있는 소송의 진전에 있었으므로 일말의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ü굿모닝é하고 상냥하게 인사를 한 다음, 상대방의 변호사 골드는 6층에 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곧 내려 올 테지.é 하며 그는 자신의 서류 가방을 열었다. 그는 가방에서 서류들을 꺼내었다. 그가 얼마 전에 팩스로 마련해 준 서류들이었다. 그가 소유한 현재 주택가격은 얼마고, 결혼전의 가격은 얼마이므로 그 차액을 둘로 나누면 얼마로 된다, 또 현재 보유하고 있는 저축과 결혼 전 저축 액의 차액은 얼마-, 이렇게 돈 액수를 간단한 셈 법으로 계산한 메모였다.
왓슨은 그 위에다 자기 나름대로 다시 나눗셈의 계산을 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상호는 미국변호사의 계산 실력에 대해 약간의 불신감을 내면으로 감추며 귀를 가져다 댔다.
뭐랄까... 이 주택매매에 관하여, 여기에 써 있는 매매 비용이나, 재 융자 비용 등은 공제가 되지 않아요. 왜냐면 법원에선 주택의 가격은 늘 오르는 추세이기 때문에 집을 소유한 사람이 유리하고, 그래서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므로 당신이 공제를 원하는 비용은 인정해 줄 수가 없다는 말이지...é
자신이 고용한 변호사지만 누구의 편인지 도대체 못 마땅한 구석뿐이다. 어떻게 그의 의도를 관철시켜 볼 의향도 없이 안 된다는 말부터 먼저 하는 것일까, 상호는 생각했다.
하긴 변호사는 그를 위해 싸우고 뭐할 의도가 아예 없는지도 몰랐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결과는 뻔히 나와 있는 거고, 그는 이미 내심 모두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변호사들은 처음 사건을 맡을 때부터 이 재판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난다는 사실을 벌써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 찾아 온 고객인지라 그런 실망스럽고 김 빠지는 말들은 최대한 억제하며 심의과정을 묵묵히 따라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전문가에게 그는 반론의 여지가 많지 않다는 걸 알아 차려야 한다. 그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결과는 당연히 그런 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집에 관한 한 상호의 애착은 적잖이 강했다.
집은 원래 모두에게 평생 투자나 다름없다. 그는 이미 결혼하기 오래 전에 가진 돈을 다 털어 집 값에 30%나 선불로 내고 독자적으로 구입했다. 아파트로 전전하기도 싫증이 난 데다, 또 투자 중에 제일 기본은 집을 사는 거라는 세간의 의견을 받아드린 결과였다.
그래서 지난 15년 동안 자신이 한 달도 빠짐없이 은행대출금을 지불하고 있으며, 세금, 보험료, 수리비까지 친다면 그야말로 뼈빠지게 번 돈의 3분의 2는 주거비용으로 다 투자한 셈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혼을 앞 두고보니 그가 이제까지 알고 믿어 온 상식은 잘못된 것  이 많았다. 그는 결혼하는 날부터 집 뿐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 즉 재산의 가치가 있는 것은 법적으로 아내와 반반 공유된다는 사실은 그녀가 같이 경제활동을 했을 경우에만 해당될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그가 마음으로 승복이 안되고, 법이 형평의 원리를 벗어났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왜 처음부터 돈과 마음과 시간을 들여 투자한 사람의 노력이나 의도까지도 아예 인정해 주지 않고 모조리 무시하는 가였다. 그 15년이란 오랜 기간 전에 30% 혹은 얼만가의 돈과 마음을 써가며 처음 소유한 사람은 최소한 그 얼마만큼의 권리라도 인정해 줘야 하는 게 논리 상 합당한 이론이 아닐까? 어떻게 그 걸 무시하고 나중에 나타나 아무런 책임감 없이 손님처럼 누리며 소일만 한 사람에게 그 권리가 똑같다고 할 수가 있는가? 그 결과로 불과 5년 전 까지만 해도 부동산 거래의 침체로 그 가격이 되려 내려가더니, 그 후부터 천정부지로 올라 비로소 구매가격의 갑절이 되었다고 해서 그 오른 값의 절반을 떼어 주어야 하다니,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어느 놈이 먹는다는 속담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게 이곳 법이라는 게 아닌가?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런 모든 걸 증명하는 비용 또 법적인 비용까지 피고인 상호가 부담해야 된다면, 이건 하기 좋은 말로 절반이지 거의 다 빼앗아 가는 거나 매 한가지였다.  더구나 만약 사태가 돌변해서 다시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어 거품이 다 빠지는 날엔 그 은행 빚이며 손실을 피고인 상호 혼자서 다 감당해야만 한다.
그래서 최소한 지금 매각하는 기준으로 비용이라도 같이 부담하게 해 달라는 그의 요구가 또 묵살 당하는 순간이다. 그는 소용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시 이렇게 말했다.
ü그건 매우 공평하지가 않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지, 또는 다시 내릴 지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 아니오? 더구나 요즘 오른 주택가격은 거품이라 하지 않습니까?é
ü글세, 그건 아무도 모르지요. 허나 긴 안목으로 볼 때, 주택은 결국 오르는 상승세를 탄다는 것이 법원의 견해이니 낸들 어이 하겠소? 그리고 재 융자도 결국 당신이 집을 팔지 않으려고 하는 일이니 전적으로 당신이 부담해야 한다는 거요. 대개의 경우 이혼을 하는 부부들은 그 살던 집을 팔아서 여러 비용을 갚아 버리곤 하지요. 그러면 재 융자가 필요 없는 것 아니겠소?é
ü그렇다면, 우리가 소송을 시작한 건 작년인데, 왜 법원은 현재의 가격을 환산하려는 거요?é
ü글세 그 문제는......우리 판사에게 물어서 결정하기로 합시다.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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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이렇게 자신 없이 그 책임을 판사에게 돌리고 있을 때, 상대의 유태인변호사 골드가 나타났다. 그들은 새삼스레 10년 지기라도 된 듯 서로 반가워했다.
그들을 보면서 상호는, 이들이 이제 소송의 막판이 돼가니까 친구라도 된 듯 구는구나. 하기야 그들은 적이 아니지. 똑 같은 직업을 가진 동료일 뿐이지. 소송이 걸릴 당시엔 상대 변호사인 유태사람은 하도 거만을 떨어서 흑인인 왓슨을 만나주기는커녕 전화연락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상호는 어리석게도 그가 지독한 인종차별 주의자라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들은 가까이 밀착해서 귓속말로 소곤대며 무슨 의견인가를 주고받더니 좀 떨어진 곳으로 가서 서로의 종이를 보여주며 오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상호는 다시, 진작 그렇게 사이좋게 대화를 했으면 한 두 번의 만남으로 간단하게 타협을 이끌어냈을 일을 가지고, 그렇게도 오랜동안 시간을 끌고 일을 확대해서 크게 벌릴 게 뭐였담, 하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 동안 진술서를 작성한다, 대질질문을 한다, 증인을 데리고 오라 는 둥, 일을 자꾸자꾸 벌리기만 했었다. 하더니 이제는 아예 그런 일은 없었다는 듯, 장사꾼처럼 아예 저렇게 흥정만을 일삼고 있다.
복도 끝에서 조금 전 뛰어 갔던 경호원들이 삼삼오오 이쪽으로 다시 몰려오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들은 뛰어갔을까?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배속된 법정으로 들어갔다. 그 때 다시 왓슨이 상호에게 왔다.
미스터 코맨, 결혼 전 저금 액 말이오, 금액이 저쪽에서 주장하는 액수와 다른데, 어디 그 증거를 댈 수 있겠소? 저쪽에선 4만 달러였다고 하고 당신은 5만 5천이었다고 하고.....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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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이들은 손으로 떡을 떼 듯 상호의 재산을 마구 나누고 있다. 그것도 칼로 정확하게 자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부스러기가 뚝뚝 떨어지는 떡을 떼듯,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이리 저리로 더도 가고 덜도 갈 수 있도록 대충 대충 남의 귀한 재산을 풍비박산 떼어 돌리려 하고 있다. 상호가 말했다.
ü그건 결혼 한 달 후의 금액이요. 자- 보시오, 여기 증거 서류가 이렇게 있지 않소.é 그는 자신이 가진 서류봉투에서 서류들을 꺼내 보였다. 왓슨이 그 서류를 골드에게 가져가서 보여줬고, 그가 수긍을 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다시 왓슨이 그에게로 왔다.
미스터 코맨, 상대편에서 말이오, 이 저축 액과 상호금융 투자액에서 좀 올려 달라고 하는데 말이오, 작년 수준으로 말이오.é
그는 어이가 없어 흑인 변호사를 쳐다봤다. 도대체 이 작자가 누구 편에 서서 변호를 하는 것인가? 상호는 다시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타운에 떠도는 말처럼 변호사는 유태인을 써야 이긴다는데-. 아내 신자는 약삭빠르게도 그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증명이라도 하듯 가장 비싼 유태인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다. 그는 그 소문을 익히 들어왔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유태인만 변호사를 하란 말인가? 하는 오기도 있고, 또 막상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그냥 아무 변호사나 고용하게 되었다.
심슨 재판 때도 코크란이란 흑인 변호사가 잘해서 이겼으므로 그걸 생각하고 스스로의 위로를 삼기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같이하고 보니 유태인인 상대편 변호사가 더 착실하며 용이 주도하게, 나쁘게 말하면 악랄하게 그의 고객을 챙기는 점은 사실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매사에 일관성을 가지고 사건에 임하는 자세를 왓슨이 당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집 값도 작년 수준으로 해요. 그러면 지금보다 기만 달라는 적은 액수가 될 거요. 그런 다음에는 나도 모든 금액을 작년 수준으로 계산할 수 있겠소.é
ü구체적으로 얼마 씩-?é
ü약 2천 씩은 더 올릴 수 있어요.é
변호사는 볼펜으로 합계 금액을 북북 지우고 나서 다시 써넣었다. 상호가 다시 말했다.
ü집 값을 작년 수준으로 내린 다음에야 나도 올려 주겠다는 말이오! 알겠소?é
ü그 문제는 판사에게 일임합시다. 우리도 그건 잘 모르겠오. 그리고 남은 문제가 상대편 변호비용인데......3 만 달라요.é
말을 듣고 상호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화를 벌컥 냈다.
ü왜 내가 도대체 상대편 변호 비를 내야 한단 말이오? 내가 그를 고용하길 했오? 아니면 그가 나를 도와서 뭐를 했단 말이요? 그건 돈도 돈이지만 자존심에 관한 문제요, 그가 날 이제까지 괴롭혀 온 것도 화가 나는 일이고, 그가 누구를 위해 여태껏 일했냐 말요? 그 덕을 본 게 누구냔 말요? 내가 아니쟎소? 더구나 그리 많은 금액을-!.é
그는 하마터면 â쥬이쉬놈, 도둑놈! 하고 그에 대고 소리를 칠 뻔했다.
이제야 상호는 그 유태인의 속셈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만 달러, 혹은 그 이상의 거금을 덮어씌우기 위해서 그가 고의로 그렇게 시간을  끌어 온 것이다. 그러니까 골드라는 유태인은 이제까지 자신이 일 한 만큼의 돈을 받은 게 아니라, 재판에 걸린 상호의 재산을 보고 이미 정해 놓은 돈 액수에 시간을 짜 맞추기 위하여 교묘하게 재판 일정을 지리멸렬 끌어 온 셈이었다.
그 동안 같은 시간을 일해 왔어도 그의 변호사 왓슨의 변호비는 그 절반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상호는 그것도 적지 않은 비용이라고 억울해하는 터였다.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그의 고객인 상호가 강력하게 반발하자 왓슨도 질린 얼굴로 이제 그만 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이혼의 경우 대게 재산을 가진 쪽에서 변호비를 내곤 하니까...... 어쨌거나 이 문제도 판사가 정할 문제 같소. 그렇게 합시다. 우선 조금만 떼어 주고......é
우선 조금을 누구에게 떼어 주어요?é 상호가 다시 반발하자,
ü우선 조금은 가져가도록 합시다. 그래야 판사 앞에 가서도 â우리는 할만큼 했다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소? 나야 다 당신 좋으라고 하는 짓이요. 돈은 조금 넘겨주게 될지 모르지만 당신은 소원대로 당신이 원하는 집을 지니게 되지 않았소?é
변호사라 번지르르 말은 잘하고 있다. 제 집 제가 지니는 게 무슨 자기 덕인 양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집만 가지면 뭘 하는가. 다시 얻어 낸 융자로 빚을 터무니없이 지게 되는 마당에-.
말해 무엇 하는가? 자꾸 까탈을 부려봐야 시간만 더 축나는 이유에서 상호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상대 변호비는 절대 안 내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 몇 항목을 제외하고는 거의 부분 합의에 도달하게 되겠습니다. 나와 상대 변호사가 거의 합의를 했으므로-. 그리고 참 집 가격 문제와 변호사비, 그밖에 다른 소소한 일들에 대해서 판사의 결정을 받아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요.é 하며 왓슨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상호가 물었다.
그러면 참, 지금 이미 내고 있는 부양비는 어찌합니까? 그만 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목돈이 다 계산되어 나간 후엔?é
부양비는 소송이 시작된 이래 법원에서 그에게 이미 부과된 여자의 생활 부담금이었다. 그런데 그 부양비라는 게 터무니없이 많이 책정되어서 상호에게 지나치게 부담이 되었다. 이것이 그가 왓슨을 불신하게 만들었고, 그의 무능력을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였다. 그래서 그를 다른 변호인으로 대체할 가도 고려해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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