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공원

2007.01.20 09:29

이성열 조회 수:964 추천:29

<소설>                    묘지공원                           이성열 작

  나는 두려움으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서 꿈에서 깨어났다. 등에 흐른 식은땀이 전신에서 스멀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쭈뼛이 펴진 채였다. 나는 무서움으로 꼼짝도 할 수 없이 옆자리만을 살폈다. 캄캄한 입원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만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잠시 후 나는 몸을 뒤채려고 했다. 통증이 허리에까지 느껴져 왔고 나무판에 꽁꽁 묶인 다리가 깍지 통 크기 만한 부피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묘지공원에는 갑자기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늘이 돌연 흐려지더니 바람이 불어왔고, 주위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꽃들이 스산하게 바람에 널브러져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곳은 음침한 지하실 계단이었다. 내가 겁을 먹은 채로 뒷걸음질을 치자 사내가 나를 쫓아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자꾸자꾸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지만 내 다리가 땅에 들러붙기라도 한 듯 꿈쩍도 하질 않았다. 나는 섬뜩한 두려움으로 있는 힘을 다해 땅에서 내 다리를 떼려했다. 그러나 다리는 한 발짝도 움직이질 않았고, 통증만 심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사내는 계속해서 지하실 아래 계단으로 나를 잡아당기려 했지만 천근같은 내 다리는 조금도 떼려야 뗄 수가 없고, 나는 그만 잠에서 깨어났다.
                                * * *
  이 사람아, 장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배 만지고 등치는 곳이 그 세상인걸......
  남편은 한국에서 살 때처럼 이곳에서도 취직을 해서 소박하게 살려고 했었다. 그래서 약간의 준비 후에 정부에서 뽑는다는 우체국 시험에 응시했다. 우체국 창구에 앉아 우표나 팔면서 거기서 받는 봉급으로 조촐하게 살겠다는 게 이민생활을 시작한 그의 작은 소망이었다. 별로 말도 할 필요 없고 나이 많아 계산에도 느려빠진 할망구들도 잘만 해내는 일을 자긴들 왜 못하겠냐는 거였다.
  아무리 한국에선 그가 고급 공무원이었다 하더라도, 그까짓 자존심이야 이민 올 때 저 태평양 바다에 던져 버리고 온지 이미 오래였다. 그곳에선 아마 우체국 장으로 가라고 했어도 마다했을 그의 자존심이었다. 그는 인사이동으로 지방발령이 날 조짐이 보였을 때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그는 순전히 내가 꾸미고 수속해 놓은 미국 이민 길을 택했었다.
  그는 이곳에서 우체국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것도 아주 우수한 성적이었다. 별로 자랑할 건 못되지만, 많아야 두 문제뿐이 틀리지 않았다고 자신을 했었다. 그는 우체국의 서기로 일하고자 매일 부르기만을 기다렸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을 기다렸다. 그러나 우체국에서는 좀처럼 일하러 나오라는 통보가 오질 않았다.
  내가 일류대학 출신인 남편 노형식과 만난 건 그가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관가에 발을 들여놓고 난 후였다.
  나는 그 때 매일같이 어떻게 하면 당시 유행하던 미니 스커트를 더 짧게 입어 내 멋진 각선미를 남에게 보이느냐 에만 잔뜩 신경을 쓰며 하루하루를 보내곤 하던 철없던 모처의 임시직원 시절이었다. 고급 공무원이던 아버지 덕분으로 나는 그곳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나는 그 때 노형식을 만났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나는 주로 옆에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가서 장난을 걸곤 했다. 그의 키는 중키였지만 피부색이 여자같이 희고 귀티가 나는 데다 몸매가 너무 가늘어서 남자라도 남자같이 느껴지지가 않았었다. 그 때 나는 별로 책임질 일이나 중요하게 하는 일도 없이 â홍보계ä 라고 쓰인 팻말 밑에 앉아서 날짜 지난 홍보 물을 몇 부씩 쌓아놓고 허구헌날 손톱이나 갈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누가 들어와서 말을 걸면 그곳에 비치된 홍보 물이나 건네주고 돌아가서 읽어보라고 하면 되는 일이었다.
  처음 그곳에 들어와서 문서발송이나 해 대던 노형식에게도 행운인지 불행인지 눈이 번쩍 뜨여지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부서가 들리는 바에 의하면 무어가 그리 좋은지는 몰라도 엄청 좋다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던 그였다. 그래서 그는 아예 글러먹은 고시공부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남은 실력을 동원해 하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합격이 되자 아는 곳에 부탁을 넣어 그곳으로 발령을 받아 들어 온지가 일년 여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이제까지 그는 그 자리에 앉아서 무엇이 그리 좋다는 건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는 따분한 형편이었다. 그의 임무는 서류가 들어오면 날짜와 시간을 기록해서 해당 부서로 넘기기만 하면 되는 한직이었다.                    
  매일 자리에 앉아 문서가 기안되어 넘어오는 대로 반듯반듯하게 도장을 찍어 결재를 올리곤 하던 그가 갑자기 결근을 하게 되었다. 장마철이던가- 비가 몹시 오는 그런 날이었다. 사흘이 지나도록 꼼짝도 않고 나타나지 않던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청사 앞에 있는 다방에 나와 있으니 그리로 좀 나오라는 거였다.
  내가 다방에서 그를 대면하고 앉았을 때, 면도를 하지 않은 그의 얼굴은 세수조차도 하지 않았는지 부석부석하니 말이 아니었다. 머리도 빗지 않은 채 실업자 몰골을 하고 다방 구석에서 나를 맞았다. 첫눈에도 그는 어디라도 몹시 아픈 환자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어디가 아프세요?
내가 묻자 그는 피식하고 웃더니 감기몸살로 그냥 좀 쉬는 중이라고 했다.
  병원엔 가 보셨나요?
  병원에는 뭐-, 좀 쉬면 괜찮을 걸. 그건 그렇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누군가가 집으로 찾아와서 서류 하나를 좀 빨리 돌려 달라는 군. 한 시간이 급하다는 거야. 내가 한 턱 낼 테니 미스 리가 그 서류를 좀 찾아서 빨리 발송 좀 해 줘, 부탁이야.
그 때 나는 아무 영문도 몰랐다. 우리는 나중에 결혼을 했고, 그 후 그는 나에게 그 때 찾아온 사람이 그에게 최초의 뇌물을 주더라는 말을 했다. 사흘을 결근해서 서류가 돌지 못하고 지체하게 되자 비로소 그에게는 돈 봉투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는 그제야 남들이 좋은 자리라고 하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노형식은 점차 보다 높은 자리로 진급도 했다. 그러나 이권이 따르는 부서의 자리에 앉아 있는 다는 건 치부(÷╚▌ú)의 유무를 떠나 마치 바람 불어 흔들리는 가지에 앉아 있는 새와도 같았다. 결국 그는 잦은 인사이동에 시달려야 했고, 어디론가 지방으로 밀려가야 할 때쯤 사표를 내기로 하고 말았다.
그러던 그가 우체국이나 들어가서 그 직원이 된다는 건 아무리 이곳이 말 섧고 낯선 미국이더라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가 이민을 오기로 한 것도 내 바람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체국 직원이 되려고 했을 때도 내 영향은 컸다.
나는 그를 계속 설득했다. 미국에서 직업의 귀천이란 없다. 이곳 타관에 와서 자기 공부한 만큼 대접받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어떻게든 벌어서 우리 가족만 잘 살면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곳이 미국이다. 그래도 공무원이라 봉급 착착 지불해주고, 보험 다 들어주고, 상여제도가 우체국처럼 좋은 데도 드물다고 하더라, 는 등.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금방 발령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발령이 났다해서 곧 우표 파는 쉽고 편한 자리를 당장 내 주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6개월 이상을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기다리게 한 후에, 그것도 처음엔 임시직원으로 다른 사람이 결근하는 배달부 자리에 남편을 불러다 메꾸웠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 듯 남편은 이 사회에서 대단히 서툰 모습으로 우편배낭을 메고 이웃을 위하여 우편물을 배달하러 다녔다.
한 여름의 미국 남부 조지아 주에서의 한낮의 해는 불덩이처럼 뜨겁고 바람 한 점도 불지 않는다. 그렇게 무덥고 찌는 날씨일수록 고참 배달부들은 결근이 잦은 편이다. 그러면 신출내기 남편과 같은 임시직원들이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여지없이 불려가게 마련이다. 그는 탈수상태가 될 때까지 땀 흘리고 헐떡이며 미국사람들을 위하여 즐거운 소식 또한 슬픈 소식의 편지를 날라야만 했다. 집을 지키는 개들조차도 신참인 그에겐 낯선 얼굴이라 친절하게 굴지를 않았다. 가는 곳마다 개는 미친 듯이 날뛰며 짖어대고 덤벼들었다.  일이 그렇게  힘들게 끝나는 날은 남의 집 넓은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아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를 흘리며 이역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 * *
남편이 후줄근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 온 날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를 졸라댔다. 이 고달픔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공원에라도 한 번 다녀오자고. 하나 뿐인 딸 수아가 학교에 가버리고 나면 진종일 나도 혼자 빈 아파트에서 보내야하는데 날씨는 무덥고 무료하기만 했다.
나에겐 이곳에서 유일하게 발이 되어줄 자동차도 없었고 친구도 하나 없었다. 밖에는 낯선 미국인들이 두려우니 마음놓고 나갈 수조차 없었다. 하루종일 누구한테 전화 한 통 걸려 오지도 않았다. 낮에라도 여자 혼자인 것을 알면 이들은 접근하려 들고, 이들이 접근하면 상서로운 일이 없다는 것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â리버대일ä 길모퉁이에는 항상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화려한 공원이 있었다. 이민 와서 이곳에 정착한 이래, 나는 남편과 차를 몰고 지나칠 때마다 그 공원을 눈여겨보았다. 나는 그 공원이 우리를 늘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운전하는 자동차 옆자리에 앉아서 나는 언제라도 남편이 취직만 하게되면, 그리고 첫 번째의 봉급을 타게되면, 꼭 점심이라도 싸들고 이곳에 오리라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나 막상 취직을 하고 일을 나갔다가 돌아 온 남편은 언제나 꺾인 풀처럼 맥없이 들어와서는 말도 없이 소파에 쓰러져 뒹굴고 그 길로 곧장 잠으로 곯아떨어진다.
이렇게 임시 우편 배달원의 고된 삶이 취직에 대한 우리의 환상과 기대를 초장부터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고 있었다. 언젠가는 편한 직업이 될 거라는 우체국 서기에 대한 기대는 어긋나기 시작했고, 고되고 벅찬 하루하루가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렵 하늘도 우리에게 무심치만은 않았던지 우리 부부에게 상상치도 않던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가끔 나가던 한인교회에 돈 많은 장로로 알려진 권장로께서 남편과 몇 번의 대면 후에 성업 중인 가게 하나를 우리에게 떠맡기겠다는 거였다. 그는 대뜸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천하에 남만도 못한 게 근친이여! 이건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제길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아닌가베!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 그 좋던 가게를 못 쓰게 만들어 놓고...
그는 그의 처남을 이렇게 비난하고 있었다.
  아무리 누이 거라곤 해도 3년간이나 남의 마켓을 이용했거들랑 본전의 이자라도 갚을 요량을 해야하지 않겠나? 이래서 내가 노형께 이 마켓을 맡길 테니 한 3년만 잘 해 보시오. 나도 이민 초창기부터 이 마켓으로 생활기반을 잡은 거니, 잘 만하면 돈은 이미 번 거나 진배없이 잘되는 마켓이요.
남편과는 인상도 달라서 검은 피부, 딱 옆으로 벌어진 어깨, 한 마디로 한국사람이 아닌 어디 남미나 중동쯤의 이국정서가 풍기는 권장로가 다짜고짜 우리 부부 모두를 신임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이라곤 하나도 없이 우물쭈물 이렇게 말했다.
  글쎄, 말씀은 고맙지만, 생각해 볼 여유를 주십시오. 그리고 장로님이 아시다시피 저희는 장사 경험도 없는 데다 당장 가진 돈도 없어서 지금 가게 대금을 갚아 드릴 수도 없습니다.
  내가 노형께 당장 돈을 내라는 것이 아니오. 내가 당장 돈을 원한다면 왜 노형께 마켓을 넘기려 하겠소? 모르는 남에게 팔아 치우면 되지. 그래서 남한테 팔긴 마켓이 너무 잘되고 아까워서 아는 사이인 노형께 의사를 묻는 것이요. 대금은 돈 버는 대로 천천히 조금씩 갚아주면 되겠고......
  권장로는 평소에 예의 바르고 깨끗해 뵈는 남편을 미덥게 생각해서 눈 여겨 보아두었다. 좋은 이웃이 못된 친척보다 낫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그 소식을 들은 후 몹시 좋아하였다. 요즘 세상에 밑천 하나도 없이 어떻게 사업을 꿈이나 꾼단 말인가. 이런 행운은 일생에 한 두 번이나 있을까 말까한 굴러 들어오는 복이었다. 나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는 남편을 설득하여 가게를 인수토록 하였다. 조건도 비길 데 없이 좋았다. 다른 사람에게 라면 15만 달러는 충분히 박을 수 있는 가게를 우리에게는 10만 달러 뿐, 그것도 형편이 되는 데로 조금씩 갚아도 된다는 조건이었다.                             *  *  *
  남편이 우체국을 그만 두는 날, 우리는 딸 수아를 데리고 벼르고 벼르던 공원엘 찾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 괴괴하게 흐르는 정적 때문에 뜨악한 기분으로 차에서 내려섰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곧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여보! 여기가 공원이 아니란 말요?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찾아 간 â리버데일ä 길모퉁이에 있는 호려한 곳은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던 공원이 아니라 그곳 주민들의 공동묘지가 아닌가. 나는 수아를 불러 아이의 손을 잡았다.
엄마! 여기는 공원이 아니라 묘지야!
  잔디 위에 자는 듯이 누워 있는 대리석들에는 망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이 세상을 살고 갔던 날짜가 각인 되어 있었고, 매일매일 가지런하게 피어 있던 꽃들도 살아 있는 꽃이 아니라 죽어 있는 조화들이었다.  
공원 좋아하는 군. 여기가 바로 이 사람들 공동묘지인 모양인데, 이들은 묘지를 이렇게 꾸미나?
  남편은 놀란 나와는 달리 호기심을 가지고 처음 보는 이 사람들의 장지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나는 남편의 팔을 끌며 서둘렀다.
여보, 빨리 갑시다! 뭘 그리 두리번거리우?
아니, 매일 이곳엘 가자고 어린애 보채듯 보챌 땐 언제고, 이제 막상 오니까 돌아가자고 야단이야. 그건 그렇고 여기 묘지엔 봉분도 없고 경계표시조차도 없나?
아이 저렇게 비석이 누워 있잖아요. 얼른 갑시다!
  정말 이곳 무덤에는 십자가조차도 꽂혀 있지 않았고, 가끔씩 글자를 새긴 대리석을 땅에 엎어놓은 게 고작이었다. 나는 영화에서나 본 서양사람들의 십자가가 꽂혀 있던 무덤들을 상기했다.
그럼 이 넓은 땅에 돌이 누워있는 곳에만 죽은 사람이 묻혀있단 말이야?
내가 알아요? 떠들지 좀 말아요!
  나는 불길할 정도로 가득한 정적에 질려 말하는 남편의 입을 손으로라도 막고 싶었다.
아니, 이 사람이 왜 이래? 내가 뭐 벙어리야? 더구나 이곳에서 한국 말 알아들을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 때 마침 지나가던 백인 할머니 하나가 우리를 섬뜩한 눈으로 쳐다봤다. 머리에는 까만 모자를 쓰고 우산을 지팡이처럼 짚고 있었다. 죽은 남편의 묘소를 찾아 온 할머니인 모양이었다. 수아는 이내 차로 돌아 가 앉아서 우리가 빨리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묘지를 빠져 나와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백화점이 모여있는 쇼핑센타로 가서 쓸데없이 이 가게 저 가게를 두리번거리고 다녔다. 백화점으로 오니 묘지의 정적으로 느꼈던 우울함은  금새 사라지고 산사람들의 생기가 넘쳐 났다.
  차로 다시 돌아와서 그 안에서 싸 가지고 온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앞으로 떠맡게될 마켓을 찾아 가 보기로 하였다.
  아틀란타 도심지 외곽으로 타원형으로 돌고 있는 285번 푸리왜이를 타고 서쪽으로 반쯤 돌다가 â볼턴ä이라고 쓰여있는 길을 따라 들어서니 어찌된 게 그곳엔 백인이라곤 한 명도 볼 수 없는 검은 대륙과도 같은 흑인가가 나왔다.
  권장로가 일러준 대로 그곳에서 가장 큰 건물인 병원을 지나 바른 편 좁은 길을 끼고 도니 한 참 동안은 집도 한 채 보이지 않는 오솔길. 나는 어릴 때 줄 곳 외국 동화에서 읽었던 귀신들린 집을 찾아가는 장면을 연상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계속 차를 몰아 그 오솔길을 지나고 커다란 느릅나무 밑에 상엿집이나 하나 있을 만한 외진 주차장에다 차를 세웠다.      
  그곳에는 조그만 가건물처럼 생긴 낡은 건축물이 하나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곳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가게가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위로부터 뻗은 길로는 제법 주택들이 촘촘히 들어서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그야말로 그곳은 번화가와는 완전하게 동떨어진 외진 흑인 주택가였다. 그래서 갈 곳 없는 흑인들이 이 가게로만 몰려드는 모양이었다.
  가게는 고작해야 50여 평 남짓한 작은 규모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진열대가 죽 늘어서 있고, 그 왼편으로 돈을 계산하는 카운터가 있었다. 진열되어 있는 취급 품목들은 이곳 수퍼마켓에 가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 식료품들은 거의 다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카운터를 끼고 안으로 들어가니 고기를 자르고 진열하는 냉동기가 실내를 가로막고 있다.
마을이 좀 외진 편이군요.
  마켓에 나와 있는 권장로에게 남편이 대뜸 푼수 없는 사람처럼 이렇게 말했다. 옆에 서 있던 내가 더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그의 허리를 쿡 찔렀다.
이래봬도 아침이면 동쪽에서 비치는 해가 가게 안을 빛나게 하고 문을 열기가 무섭게 단골들이 몰려 와 붐비곤 합니다.
  권장로는 그냥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받았다.
아, 그래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우리가 잠깐 가게를 방문한 사이에도 흑인 고객들은 연신 물건을 집어들고 계산을 위해 카운터에 줄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권장로의 인척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하나가 무표정하게 서서 일에만 열중하였다.
                               *  *  *
  우리의 처절한 이민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나와 남편은 새벽이면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가게로 나간다. 가게문을 열기 만 하면 권장로의 말처럼 동향인 가게 창으로 해가 비치고 단골 흑인 고객들이 하나 둘 몰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재빨리 계산대 뒤로 돌아가서 서고, 남편은 고기가 진열된 냉동진열대 뒤로 가서 서로의 일과를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밤새 쌓였던 고요는 금방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하루의 활기로 가득 차 흥청거린다.
  이들 고객들과 사귀고 인심을 얻기 위하여 남편은 툭하면 고기를 듬성듬성 크게 썰어서 그들이 요구하는 양보다 더 많게 얹어주곤 한다. 미국에선 흔한 것이 육류이므로 남편은 그걸 이용하여 인심을 얻어들인다.
  이들도 사귀고 보면 인정이 많기는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다. 어쩌다 길에서 만나면 먼저 반기고,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면 금새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어떤 아낙은 가끔씩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고, 고향이 그립지 않느냐고 애처로워 한다. 월남 전쟁이 끝난 직후라서 그런지 나더러 자꾸 베트남 출신인가를 묻는데는 딱 질색이다. 처음엔 고향을 그리워 할 때 쓰는 âmissä 라는 동사를 â내가 처녀인가?ä 라고 묻는 줄 알고 번번이 아니라고 대답하던 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지금도 얼굴이 달아 온다. 그러면 이들은 내가 고향도 그리워 할 줄 모르는 냉혈 인간일 줄 알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나가곤 했었다. 그들은 나로 하여금 이 단어를 비롯해서 많은 말을 배우게 하였다. 그들만의 특유한 남부 악쎈트, 배배 꼬이는 남부 사투리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친근해져 갔다.
  가게를 운영한지 반년이 지났을 때, 가게 앞에서 선머슴처럼 우리를 위하여 일해 주던 낡은 포드 승용차가 팔려가고 새 차가 들어오게 되었다. 물건을 사서 실어 올 때나 급한 일로 다닐 때, 낡은 차를 가지고는 그 기동성과 안전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게 남편이 새 차를 구입하게 된 동기였다.
  포드 차는 우리가 이민 오자마자 헌차 시장에 가서 8백 달러를 주고 구입한 차였다. 운전을 주로 담당한 남편은 항상 이렇게 불평하였다.
무슨 놈의 차가 겨울이 되면 히터를 켜도 찬바람이 들어오고, 여름이 되면 에어컨을 켜도 뜨거운 바람이 들어오나!
  그 뿐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는 연료계기가 아주 고장나버려 연료가 떨어진 걸 모르고 달리다가 차가 서는 바람에 빈 가스통을 들고 근처 주유소를 찾아 뛰어 다녔던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런 것 고치는 데는 소질이 없어놔서 늘 불평만 하며 차를 몰고 다녔다. 그래도 고마운 건 엔진 하나만은 그 성능이 탁월해서 2년을 타고도 우리는 그 낡은 차 버리기를 아까워했다.  
  그런데 그 작은 차로는 도매상에서 물건을 받아와야 할 때 조금만 양이 많으면 한번에 실을 수가 없어서 몇 번씩 다녀와야 했고, 결국 그런 어려움 때문에 우리는 소형 트럭이라도 한 대 사야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미 우리는 경제적으로 그만큼 형편이 나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가족용이면서도 트럭의 짐 싣는 용도를 다 만족할 수 있는 편리한 미니 밴 한 대를 사다가 가게 앞에 세워 놓았다. 그랬더니 그 후 몇 주 동안은 고객의 화제가 자동차에 대한 것 뿐 다른 말이란 없었다.
새 차를 샀나 보군요. 축하해요!
어머, 차 색깔이 아름답군요. 나도 바로 그 색을 좋아해요.
  대부분의 고객들은 우리가 새 차를 샀다고 반가워하거나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간혹 구경하러 오는 거지나 불량배들이 기분 나쁜 말을 걸어오며 트집을 잡을 때도 있었다.
헤이, 뉴 카? 허, 돈 많이 벌었군!
  그들은 우리가 저희 동네에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게되고 새 차도 사게 되었다는 식으로 빈정댔다. 그들이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눈짓을 해서 한 두 푼 줘서 빨리 보내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이 마켓을 운영해 온 이래 줄 곳 돈이 우리의 기대를 능가할 정도로 벌리는데 놀라워했다.  겨우 주는 월급이나 받아서 써보던 우리는 사업이라고 해보니 전에는 감히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벌려 들어왔다. 우리는 돈을 세며 가끔 서로를 쳐다보고 어이없어 했다. 마치 한 탕 해 가지고 들어 온 강도들처럼, 우리는 장사를 끝내고 밤늦게 야 집으로 들어 와 돈 자루를 마루 바닥에 털어놓고 돈을 세기 시작한다. 잠을 자기 전에 그 돈을 다 세어서 다발로 묶어놓고 그리고는 침대로 가 곯아 떨어졌다 하면 아침이었다.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녀석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가게에 들어 왔었다. 그는 내가 서 있는 반대 편, 진열대가 가려 있는 쪽으로 가서 통조림 몇 개를 집어들고 가게 안의 동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주위를 다 살핀 그는 깡통 몇 개를 가져다가 내가 서 있는 계산대 위에다 놓고 물었다.
하우 마치?
  녀석은 내 눈을 뚫어져라 정면으로 째려보면서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턱수염이 까칠하게 자라있고, 깡마르고 키가 큰 흑인이었다. 머리는 곱실거리며 짧았고, 눈은 부리부리하게 컸다.
  아무 영문을 모르는 나는 깡통 값들을 계산기에 하나씩 찍고 합계를 내어 그에게 말하려 할 때, 그는 자켓 안 쪽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척 하더니 검은 물체 하나를 빼내어 내 가슴에다 들이댔다. 권총이었다.
후리즈!(꼼짝마라)
  내가 어쩔 줄을 몰라 손을 올리자 그는 아주 야비한 표정으로 나에게 들이댔던 총을 남편이 있는 쪽으로 얼른 돌려대면서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그 때는 이미 남편도 눈치를 챘고, 그도 주춤거리며 팔을 들어 허공으로 올리고 있었다.
꼼짝하지 마라!
  그는 다시 총을 돌리며 가게 안에 들어와 있는 손님들에게도 들이대며 수상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악을 썼다. 손님들도 손을 들고 부동자세를 취하자, 다시 내게로 총부리를 디밀었다.                
가진 돈 모조리 내 놔!
내가 떨리는 손으로 계산기를 열자, 그는 목각처럼 긴 다리를 들어 내가 있는 카운터 안 쪽으로 펄쩍 뛰어 들어왔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계산기의 돈을 모조리 털어서 비닐봉지에 넣고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내 핸드백도 열어 보았다. 그곳에도 돈은 있었다. 그는 급한 나머지 핸드백 채로 비닐봉지에 쑤셔 넣고, 그것도 모자라 마루바닥에 설치된 금고까지를 열라고 나에게 위협했다.
  쥐 죽은 듯이 마켓 안은 고요했고, 손님들도 각기 손을 들고 선 채로 돌기둥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오전중이고 한가한 때라 가게 안의 손님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나는 엎드려서 떨리는 가슴으로 간신히 금고를 열어 주었다. 내 가슴은 홍두깨 뛰듯 뛰고 있었고, 갈증으로 목이 가랑잎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남편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아마도 그는 엉거주춤 두 손을 든 채로 조용히 녀석과 자신의 허리춤을 번갈아 응시하며 이런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듯 눈알을 굴리고 있는 모양이다.
-한방에 총으로 녀석을 쏘아 버릴까. 그럴까. 아냐 맞지 않는 날엔 아내가 위험하다. 손님이 다치기라도 하는 날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제 안전금고 조차도 그에게 열어주고, 나는 그제야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방심한 채로 마켓을 운영해 왔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권장로는 가게를  맡기면서 몇 번이고 우리에게 되풀이해서 당부했었다.
마켓 안에 절대로 2백 달러 이상은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 날 번 것은 반드시 하루에 한 번씩 은행에 저금시켜야 하구요. 돈 있는 눈치만 채면 강도가 그냥 두지를 않으니까요. 한 번도 이 마켓에서 그런 일은 없었지만 서도...
  그러나 막상 가게를 운영하다보면 손이 열이라도 모자라게 마련이다. 은행은커녕 화장실에도 자주 드나들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는 지난 수 일 동안도 은행에 가는 일을 잊고 있었다. 은행은 고사하고 돈을 세어서 안전금고에 넣어두라는 말조차 잊고 지낸 지가 오래였다. 하기사 이렇게 무서워 다 열어 보일 바에야 금고에 넣으면 뭐하고 안 넣으면 무엇하랴.
  금고에는 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녀석은 다시 계산대 테이블을 펄쩍 뛰어 넘어 한 손에는 총을 들고 가게 안 쪽 우리 모두에게 겨누며, 다른 한 손엔 돈 자루를 들고 뒷걸음질 쳐서 문밖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다.
  그가 도망치고 나자 순간 정지되었던 필름이 다시 돌아가듯 가게 안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찰을 불러요, 경찰을!
  나중에야 가게 안에 있던 손님 두엇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많이 털렸나요? 경찰을 빨리 불러요!
  그제야 고깃간에 서 있던 남편이 서서히 팔을 내리고 자신의 아랫배 혁대 사이에 차고 있던 권총을 말없이 만져 보았다. 총은 총집이 없이 그냥 아랫배에다 차고 있었으므로 뱃가죽이 늘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손님들만 없었대두 쏴 버리는 건데...
  그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써먹고자 아랫배에 멍까지 들어가면서 애써 차고 있는 게 권총이 아닌가. 그는 그 총을 한 번도 쏴 본 적은 없지만, 권장로에게서 그 총을 넘겨받으며 간단한 말로 쓰는 법을 듣기는 했었다.
노형, 군대 갔다 왔죠? 아, 그럼요. 그럼 총을 다룰 줄은 알겠네.
  그들이 총을 주고받으며 이렇게들 말하는 것을 나는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군에 갔을 때, 얼마나 총 다루는 법을 숙달시켰는지는 몰라도 그 총을 그가 쓸 수 있는지는 아내인 나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나에게 어슬렁어슬렁 걸어와서는 맥쩍게 물었다.     얼마나 털렸니?
  아직도 나는 놀라서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몰라요.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기 때문에 당장 무엇을 어떻게, 얼마를 털렸는지 통 가늠할 수가 없었다.
사람 안 다친 게 다행이지. 내가 총을 쏴 버리려다 그래서 그만뒀지. 손님만 없었더라도-. 남편은 다시 아랫배에 감추어진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신고한지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 가게에 나타났다. 나는 허탈감으로 모든 게 귀찮았지만 그래도 어떤 기대를 가지고 떨리는 목소리로 경찰에 신고를 했었다. 서두르기보다는 차라리 여유 있게 천천히 나타난 경찰은 우리들의 이야길 다 듣고 그중 몇 마디를 종이에다 적었으며, 다른 한 명은 범인이 만졌을 법한 몇 군데를 지목해서 약을 뿌리고 지문채취를 했다. 지문채취를 다 끝낸 뒤 그들은 â사고를 예방하는 예비지식ä 이란 몇 장으로 된 인쇄물을 카운터에 올려놓고는 별 말도 없이 돌아가 버렸다.
  나는 허탈감 때문에 멍해져서 손님이 들어오는 것조차도 귀찮아졌다.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고 있었다. 남편이 그러한 나를 보고 내 쪽으로 와서 손님들을 얼른 얼른 받아서 계산을 해줘서 보냈고, 아무런 내색도 내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큰 소리로 인사도 해가며 친절을 가장했다.        
   나는 모든 것이 허망했다. 기분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가게를 닫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러한 작은 마켓은 일년 365일을 다 열고도 모자랄 정도로 쉬는 날이란 없다. 그렇게 항상 열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작은 마켓의 생명이고, 그러한 편리함 때문에 물건값이 다소 비싸더라도 커다란 연쇄백화점의 대매출 작전에도 끄떡하지 않고 견디어내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문을 닫는다는 생각을 하자 나는 돌연 다시 그 공원 생각이 났다. 그 공원이 아닌 묘지, 아니 묘지가 아닌 공원을 한가하게 산책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나는 갑자기 가랑잎 뒹구는 고색이 창연한 공원을 산책하고 싶어졌다.
  나는 서울 덕수궁에서 그이를 만나 한가하게 같이 거닐던 추억을 떠올렸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불현듯 들려왔다. 그들은 공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혹은 몇몇이 뛰어다니며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가을바람이 선들거리며 불어 왔다. 단풍잎들이 땅으로 마구 떨어져 구르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도 들려 왔다. 가을 햇볕이 계집아이들의 까만 머리 위에서 반짝거리며 미끄러져 내렸다.
  이곳 미국엔 덕수궁이나 비원처럼 사람들에 의하여 오랜 세월 동안 사랑 받는 공원이 없는 건 아닐까? 낡은 것과 새 생명이 다 함께 어울리는 그런 공원이 아마도 이곳엔 없는 게 아닐까? 이곳 미국이란 곳에선 공원이란 공원이 불량배들의 총소리에 의하여 다 무덤이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나는 미국에 온 지 2년이 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원다운 공원을 가 본 적이 없었다. 단지 나는 이 마켓을 인수하기 전 남편과 수아를 이끌고 공원도 아닌 묘지를 갔었다는 사실에 돌연 섬뜩해지는 불안감으로 전신이 떨려왔다.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남편에게 소리쳤다.
고깃간 일이나 어서 봐요! 여기는 내가 할 테니!
  오후에 사고소식을 전해듣고 권 장로와 그 부인이 찾아 왔다. 그들은 우리가 5천 달러도 훨씬 넘는 많은 돈을 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아쉬움과 놀람으로 안색들 마저 변해서 우리를 나무랐다. 왜 그들의 충고를 명심해서 듣지 않고 그렇게 많은 돈을 가게에서 소지하고 있었냐고 질책했다. 한 군데 털어 봐야 고작 1-2백 여 달러 털 수 있을까 말까한 강도에게 몇 천 달러를 허용했다는 것은 횡재나 다름없다. 그 소문이 그들 세계에 퍼지면 불원간 누군가가 또 이 마켓을 털러 올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차도 꼭 필요하면 헌 트럭이나 한 대 살 걸 그랬군. 마켓을 인수한지 얼마 안되어 새 차를 들여놓고 하니까 주위에서 생각하기에 돈 꽤나 벌고 있는 줄 알거든. 그러면 강도가 탐을 내게 마련이구. 우리가 이 마켓을 할 때는 있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누더기 옷이나 걸치고 궁상을 있는 대로 떨며 살았지.
  한 마디 한 마디 권 장로의 말을 들으며 공연히 우리는 스스로 자제하지 못한 자책감으로 후회를 하였다. 더구나 나는 수치심과 위축감으로 몸을 도사렸다. 우리를 위해서 하는 말들이긴 해도 마치 강도가 들어 온 것이 우리 부부의 잘못과 불찰로 인하여 자초된 불상사나 되는 것처럼 사정없이 우리를 몰아 부치는 것으로 들렸다.
하긴 그들이 하는 말이 하나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허나 어느 누가 지나치는 말들을 명심해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고 톱니바퀴 물려 돌아가듯 빈틈없이 그대로 생활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한 몸에 배지 않은 생활을 일일이 신경 써가며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피곤한 생활의 연속이 될 것인가?
  그들이 남편을 놓고 이런저런 충고를 계속하는 동안, 나는 간단없이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  *  *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사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고도 또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서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않던 마켓이 밑천 하나 안들이고 우리에게 굴러 들어온 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우리는 그 동안 순조롭게 벌려 들어오는 돈으로 반 정도의 <오우너 케리> 마켓 대금을 권 장로에게 변제해 가고 있었다. 별탈 없이 이러한 계산으로라면 앞으로 1년 정도면 그에게 진 모든 빛을 갚고도 수아를 사립학교에 보낼 수도 있다. 이곳에서 내 집 장만의 꿈도 머지않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얘기가 좀 달라져 가고 있다. 남편은 기회 있을 때 빨리 가게를 팔고 달리 살 궁리를 해 보자는 식으로 나에게 귀띔을 하곤 한다. 돈 좀 벌려다가 더 귀중한 목숨을 잃게 될까 두렵다는 것이다.
  그는 겁을 먹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이제 젊은 사람들 몇 만 가게에 들어와도 잔뜩 긴장을 했고, 하던 일도 손을 놓고는 조바심을 댔다. 그는 처음부터 장사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 일에 덤볐으므로 이것에 대해 크게 기대할 것도 없다는 식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가게를 인수하게 된 것도 내가 부추겼고, 미국으로 이민 와서 고생하는 것도 우리 친정이 먼저 왔으므로 해서 나로 인하여 그렇게 됐다는 말이 되었다. 결국 잘 되면 모르되, 안되면 모두 내 탓인 꼴이 된다.
  이렇게 일을 벌려놓고 아무 보람없이 끝장이 나 버리고 만다면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우체국 일도 그렇고, 사업 일도 그렇고- 나는 이제부터라도 더 더욱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을 억지로 이끌고라도 이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 만일 마지못해 팔아치워야 한다 하더라도 그 동안 진 빚이나 다 갚은 후에나, 그리고 또 이 마켓에 강도가 들어 왔었다는 소문이 말끔히 잊혀진 뒤에나 생각해 볼일이었다. 그래야만 가게를 제 값에 팔 수 있거니와 권리금도 받을 만큼 받아서 달리 살아 볼 궁리를 해도 해야 할 거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이민 패배자로 전락하고 만다.
  우선 우리는 그날 번 돈을 즉시 즉시 은행으로 날아다 예금을 시켜 권 장로의 말대로 가게 안에 현금을 남겨두지 않았다. 그렇게 하자니 이제는 가게에 일손이 모자랐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우리는 최소한 사람 하나를 고용해야 했다.
  근처에 산다는 루이스라는 흑인 아이 하나를 고용해 보았다. 그런데 그는 매사에 책임감이 없고 일도 열심히 하지 않아 오히려 우리의 신경을 더 쓰게 만들고 있었다.
  수아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같은 학급의 친구와 그 부모를 따라 그들의 집으로 가서 오후를 보낸다. 그 집에서 저녁을 먹고 또 숙제를 하며 놀다가 때가 되면 그들이 아파트로 데려다 준다.
  우리는 다행히도 같은 학교, 같은 학급에 다니는 한국 어린이의 부모를 만나게 됐고, 같은 값이면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보육원보다 편리한 점이 있어 수아를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수아가 남의 식구들 틈에 끼어 적응을 하고, 식사며, 숙제 등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부모인 우리들 가슴이 아파 왔다. 그래서 어떤 때는 혼자 집에 있도록 타이르면, 그녀는 집에 있는 다고 했다가도 밤이 늦어지면 혼자 있기가 무섭다고 가게로 전화를 걸고 울어대곤 했다. 나는 수아가 징징거리는 전화를 받고 나면 일도 손에 잡히질 않고 가엾은 생각이 들어 하늘만 쳐다보며 서성거릴 때가 있다.
  수아를 그 집에 처음 맡길 때, 나는 그녀를 우리 아파트에 데려다 놓고 잠이 들 때까지만 옆에 앉아 있다가 돌아가 달라고 그들에게 부탁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점이 처음 약속한 대로 지켜지질 않았다. 그들은 수아를 아파트에 내려놓고는 잠이 들기 전에 그냥 돌아가 버리곤 했는데, 이제 겨우 나이 여덟 살인 수아가 밤에 빈 아파트에 혼자 있기가 무섭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아예 우리가 태워 오거나 식사도 주지 않는 미국인들의 보육원보다는 낫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우리는 소중히 여겨왔다. 그런데도 그들이 만나자고 하거나  혹 찾아 올 때는 수아를 맡지 않겠다고 하지 않을까 하여 겁을 먹고는 했다.
  수아는 그렇게 주중을 혼자 보내고 주말이면 마켓으로 와서 놀기도 하며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마미, 우린 언제 가족이 함께 피크닉 가? 수지네는 스톤마운틴 팍(주립공원)으로 놀러 간다는데-.
우리도 이 담에 돈 벌어서 팍 에도 가고, 프로리다 디즈니에도 가고 하자, 응?
마미, 이 담이 언제야?
  수아는 매일 아침에나 깨어나면 잠깐동안 볼 수 있는 엄마 아빠를 그리워해서 집에 가서 가족끼리 만의 시간을 갖자고 졸라대고는 하지만, 한 시도 비울 수 없는 곳이 작은 비즈니스를 하는 가게의 생리이고 보면, 밤 11시전까지 우리 가족은 가게의 노예가 되어 풀려 날 길이 없다.
  감수성이 많은 아이는 그 즈음부터 가 끔 꿈같은 이야기만을 학교에서 주워듣고 우리에게 옮겼다. 아빠는 언제 거실에 앉아서 신문과 텔레비젼을 보고,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나 하며 사느냐 는 둥, 이런 말을 해서 바쁘기만 한 우리의 생활을 어린 마음이 꼬집었다.
  그러면 나는 딸에게, 우리가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번 다음, 커다란 차를 타고 멀리 공원에도 가고, 동물원에도 가고, 라고 말을 해서 그녀를 달랬다. 말로만 들어왔던 스톤마운틴 공원, 디즈니 월드도 데리고 간다고 당장 지키지도 못할 약속만을 부도수표처럼 남발했다.
                                *    *    *
  다시 기억으로 끄집어올리기조차도 끔찍했던 그 불청객이 또 찾아온 건 전에 한 번 털리고 난지 2 개월이 채 못 돼서 이었다. 우리는 지난날의 경험도 있고 해서 스스로도 재삼 주의를 해 오게 되었고, 늘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살아가자니 생활 자체가 더 피곤한 일과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어언 마켓을 인수한지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우리는 서로가 체내 구석구석까지 쌓인 피로 때문에 처음처럼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그 놈의 일이란 게 끝이 없었다. 주문한 물건 받으랴, 제 자리에 값을 매겨서 진열하랴, 손님들 질문에 답해주랴, 계산해서 싸서 주랴, 팔린 물건 조사해서 다시 주문하랴, 언 고기 녹여서 자르고 갈아서 패키지로 묶는 등, 허구한날 불과 몇 평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북적대다가 집으로 들어가면 입맛도 먹을 것도 없이 피곤해서 썩은 나무토막 쓰러지듯 쓰러져 잠을 자곤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었고,  그 때가 되면 수아는 수아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서로 얼굴 한 번 쳐다 볼 틈 없이 제각기 밖으로 떠나야 한다. 이렇게 훌쩍 1년이 우리에게 금방 접근해 오고 있었다.
  불청객인 녀석이 또 다시 우리 가게를 침범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는 가게에 남편이 없고 손님도 한산한 틈을 타 들어 왔다. 남편은 바로 일과가 되다시피 한 은행 출입을 위해 나가고 없었고, 흑인 종업원 루이스만이 혼자 고깃간을 지키고 있었다.
  주위가 조용 하자 그는 옆을 살필 필요도 없이 다짜고짜 내게로 다가왔고, 그 권총을 내게 디밀었다. 나는 번뜻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같은 놈이었다. 검은 얼굴이라 그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짧은 머리에 길고 깡마른 인상. 권 장로의 말대로 지난 번 단번에 몇 천불을 털어 그 단맛을 본 후에 다시 방문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무서웠으나 한 편 증오심으로 가슴이 들끓었다. 총이 없다면 놈에게 대들어 물어뜯는 한이 있더라도 덤벼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억지로 참았다. 나는 금속성 총부리 아래서 놈이 하라는 대로 손을 들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다는 것이 억울하고 분하기만 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남편은 왜 이렇게 오지 않고 있는가? 녀석은 몸을 돌려 종업원 루이스에게로 총을 겨눴다. 그도 이미 손을 쳐들고 꼼짝 않고 있다.
무릎 꿇고 앉아!
  놈이 루이스에게 명령했다. 그는 천천히 허연 눈을 내리 굴리며 마루에 꿇어앉았다. 그는 총을 돌려 대가며 다시 나와 계산대가 있는 안으로 펄쩍 뛰어 들어왔다. 나는 이번에도 그가 하라는 대로 계산대의 서랍을 열어주었고, 또한 마루에 있는 금고도 열어주었다.
  허나 이번만은 놈도 전처럼 큰돈을 횡재할 수는 없었다. 이제까지 입금된 모든 돈은 바로 조금 전 남편이 들고 은행으로 간 뒤였고, 그래서 계산기 안에는 거스름 돈 2 백여 달러 만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녀석은 실망해서인지 신경질적으로 서랍을 여닫고 있었다.
  장내는 정지한 듯 고요했고, 공중에 떠 있는 몇 마리 파리들의 비행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놈은 계산대에서 꺼낸 돈이 얼마 되지 않자 빠른 속도로 마루에 파놓은 금고로 달려들어 그곳을 후벼파기 시작했다. 텅 빈 채 그곳에도 돈이 없자 당황한 녀석은 나를 윽박지르며 총을 들이대고 소리쳤다.
웨어즈 머니?
  나는 겁에 질려 옆에 널브러져 있던 내 가방이라도 가지라고 그에게 던져 주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돈은 없었다. 그는 가방을 땅에다 내팽개치더니 사방을 한 번 두리번거리고는 총구를 내 몸에다 대고 나를 밀었다.
나를 따라 와!
  그가 하라는 대로 조금을 밀리다가, 나는 언뜻 그가 가게 뒤쪽의 한적한 곳으로 나를 끌고 가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그만 땅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놈은 나를 강간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는 강탈해 갈 충분한 돈이 없고, 가게에 사람도 없자 계산대 그 뒤쪽에 위치한 창고 쪽으로 나를 밀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말로만 들어왔던 범인이 돈을 빼앗고 강간을 범하려 한다는 예감으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무조건 무릎을 꿇고 손이 달아져라 비비며 그에게 애원했다.
저를 놔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놈은 다리를 떡 벌리고 서서 총 끝을 까딱거리며 나에게 명령했다.
일어서!
  나는 애원을 하듯 그를 올려 보았다. 대낮부터 마약을 했는지 그의 눈 흰자위 중앙에 핏발 선 눈동자가 야릇한 광채를 띠고 있는 게 보였다.
  바로 그 때였다. 어디선가 딱! 하는 금속성 소리가 들렸고, 녀석의 행동이 기민해지면서 또 한 번의 둔탁한 쇳소리가 났다.
  총소리였다. 나는 순간 소리가 나는 듯 한 문 앞을 보았다. 그곳에선 남편이 총을 들고, 폴리스! 하고 외치며 어디론가 뛰어 가는 것이 보였다. 놈이 빠른 동작으로 뒷문으로 도망칠 때, 나는 또 한 번의 총소리를 들었다.
  그 때 갑자기 내 몸이 몽둥이로 맞은 듯 무거워지면서 말을 듣지 않는 거였다. 나는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분명한 의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허벅다리가 뻣뻣하며 자유롭지가 않다는 걸 알았다.
  잠시 후 나는 루이스의 부축을 받으며 죽을힘을 다하여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고, 내가 입은 바지가랑이로는 붉은 액체가 번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느새 왔는지 남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옆에 서 있었고, 곧 병원으로 긴급전화를 걸기 위하여 달려갔다.
  얼마 후 달려 온 구급 팀에 의하여 나는 응급치료를 받았고,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나는 그곳에서 내 오른다리에 박힌 실탄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    *    *
  내가 은행엘 다녀와서 열린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까 루이스란 녀석이 손을 쳐든 채 마루에 무릎을 꿇고 있질 않겠어요. 공기가 심상치 않아 가만히 벽에 몸을 붙이고 안의 동정을 살피니까 웬 깜둥이 녀석이 총을 들고 이 사람을 위협하고 있더란 말이에요. 저는 직감적으로 강도가 또 왔구나 생각했지요. 허리춤에서 총을 빼서 겨누니까 녀석이 명중 사거리 한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놈을 그냥 사살해 버릴까 어쩔까 생각하는데, 차마 살인은 못 하겠데요. 그 때 얼핏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본래 도둑은 잡는 게 아니라 쫓는 거 라구요. 그래서 나는, 폴리스! 라고 외치며 총구를 약간 위로 들면서 방아쇠를 당겼지요. 녀석이 그 소리에 놀라 흠칫하더라구요. 그 때 연거푸 한 방을 더 갈겼지요. 놈이 질겁을 해서 도망을 치면서 돌아서더니 이 사람에게 한 방을 쏜 거예요.
  내가 잠에서 깨어나니 권 장로 부부가 내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와 있었고, 남편이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신이 나서 무용담을 이야기하듯 계속 떠들었다.
이제 제까짓 녀석 문제없어요. 다시 마켓 앞에 얼씬거리기만 하면 그대로 쏴 버릴 테니까요. 이번에도 봐 주지 않았다면 그냥 지옥행으로 보내 버리는 건데-.
이젠 혼이 나서도 다신 그 놈이 오지는 않을 거야.
그 녀석이야 이제 다시 못 오겠지요.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이곳에서도 이제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이렇게 되면 다른 놈들도 못 온대요. 소문이 금방 파삭하니 퍼져 나가거든.
그럴까요?
그럼, 이제 한 번 혼이 났으니...... 우리가 할 땐 이런 불상사가 없었는데......
  권 장로가 말을 하며 동의를 구하듯 부인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젠 저도 자신이 있습니다. 막상 당해보니 어떤 녀석이 온다해도 물리칠 자신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래봬도 군에 있을 때는 일등사격이었죠. 그걸 미국에까지 와서 써먹게 될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아하!
  남편이 자신 있게 말했다. 나도 누워서 남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친 다리야 뼈에는 이상이 없다니 시간이 지나면 치료가 되겠고,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으로 남편이 저렇도록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이 나는 기뻤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실의에 빠졌던 우리가 용기를 얻게 된다면 바로 이게 전화위복이 아니겠는가. 세상에 희생 없이는 어떤 대가도 돌아 올 수 없듯이 객지에 와서 살아가자면 이렇게 하나씩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야만 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흐지부지 되면서 권 장로 부부가 돌아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남편이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병실은 다시 고요가 차지했고, 나는 지난밤에 꾸었던 악몽과 그 꿈속의 묘지공원을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사실 그 꿈은 악몽일 것도 없었다. 만일 그가 쏜 총탄이 내 몸의 상부를 관통했다면, 나는 지금쯤 불귀의 객으로 그 묘지 어디쯤 묻히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불운의 순간을 모면했으므로 오히려 누구보다도 더 오래 살 운명이 된 거나 다름이 없다. 아니 이제는 나 자신도 오래 살 자신까지 생겨났다. 그러니 그 꿈속에서조차 녀석은 나를 지하묘지로 끌어들이려고 애를 썼지만 성공하지 못한 게 아닌가. 그 꿈은 생각해 보면 악몽도 아니었고, 오히려 길몽임이 분명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닌 환상에 불과했다.
  나는 이러한 내 스스로의 꿈 해몽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자 내 입가엔 안도의 미소가 피식하고 나도 모르게 번져 나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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