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변신(2)

2009.06.28 02:13

이성열 조회 수:911 추천:90

(전편으로부터 계속)
<16>
젊은 목사는 수 백 명, 아니 천도 넘을 눈망울들이 주시하고 있는 집회에서 그의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검은 싱글 차림의 나이 40도 채 안된 동안의 혈기 좋은 목사가 토해 내는 웅변의 위력에 청중은 물을 끼얹은 듯 경건한 태도와 고요로 화답했다.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만이 마치 호렙산상에서 여호와 신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내릴 순간처럼 장내를 울려 퍼졌다. 그 안에선 그 누구도 그의 설교를 가지고 비판적 안목으로 알아듣고 이해하거나 하는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그의 설교가 세속에 절어든 우리들 사고와 느낌에는 마치 이렇게 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온통 지금은 천지가 나 자신에게 주어졌다! 나는 그대들 가엾은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이렇게 당연히 외치노라!
내 앞에 그대들은 머리를 숙이라!
그는 이렇게 자신이 중생들을 위하여 쥐고 있는 고삐를 당겼다, 느췄다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청중은 호흡조차도 정지된 듯 가슴을 옥죄며 듣고 있었다.
나도 그만 탄복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젊은 패기를 저토록 온전하게 쓰고 있는 것인가?
나는 불편하게 앉아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혜수가 어디에 있는 가를 보기 위하여 였다. 그녀가 바로 네댓 줄 앞 열, 오른 편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므로 쉽게도 내 눈에 들어왔다. 연필과 노트를 들고 열심히 목사의 설교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또 부지런히 기록하고 있었다.
목사가 지금 무슨 말을 하기에 그녀는 저리도 열심히 듣고 공감하며 또 받아 적고 있는가?
나도 잠시 그의 설교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말끝인지는 몰라도 그의 설교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남녀의 결혼이란 하나님이 태초부터 만든 제도입니다. 여러분은 구약성서 창세기 2장 24절을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무어라 써 있습니까?
"-이리하여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이렇게 하나님이 혼자 있는 아담이 보기에 딱해서 그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후에, 그에게 배필로 주시니 하나님이 보기에도 좋았더라.
그러기 때문에 결혼 제도를 만드시게 됩니다. 인간이 그 가슴에서 빼낸 갈비뼈로 혼자서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반쪽의 짝을 찾아야 비로소 완전해지기 때문에-. 혼자서는 불완전한 인간을 하나님이 비로소 결혼제도에 의해서 완성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인간인 것입니다. 인간이 이 신성한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혼을 깨고 이혼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성한 제도를 깨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도전을 하는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메리카에선 두 쌍 중 한 쌍이, 그리고 조국에서도 서너 쌍 중에 한 가정은 적어도 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계속 늘고 있는 현상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사랑이란 예수님의 사랑과는 달리 바로 감정의 장난에 불과합니다. 좋아하던 감정이 수시로 기분 내키는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너 아니면 죽겠다던 사람이, 이제 너 때문에 죽겠다는 것 이예요. 불과 얼마 전 가족 친지를 모아 놓고 검은머리가 세어 흰 파뿌리가 되도록 변치 않겠다고 맹세한 그들이 아닙니까?
이때 청중들 중에 웃는 사람들이 있어 잠시의 소요가 일었고 목사의 설교는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오늘날 그렇게 많은 부부들이 그렇도록 진실하게 사랑의 선서를 하고도, 몇 년 후에는 서로가 도저히 살수가 없노라고 파경으로 몰고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주님을 의지하듯 믿음에 바탕을 둔 사랑이라야 온전한 사랑입니다....... 무조건 믿고 기대는 그런 사랑......, 여러분들은 오늘부터라도 그러한 사랑 관계를 유지하기 바랍니다......그렇게 믿고 사랑을 하다보면 온 가족이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사랑의 둥지 속에서 살아가게 되지요. 오늘날 그 많은 문제아들이 다 어떤 가정에서 나옵니까? 깨어진 가정에서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가정이 깨어지고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서 문제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쓰지 맙시다. 약한 여자라고 때리려 든다거나 심지어는 아이들이라도 때려서 어떻게 해 보자는 발상부터가 큰 화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런 물리적인 폭력은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수 없는 자들에 의해서 가해지는 고문행위이며,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인 것입니다......나는 이제까지 사랑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변화된 많은 사람들은 보아 왔어도 매 맞고 난 다음 바뀌었다는 사람은 하나도 본적이 없습니다. 오른 쪽 뺨을 때리면 왼 쪽마저 치라고 내놓는, 그리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줄 수 있는 예수님의 숭고한 사랑.....
목사의 설교가 여기에 이르자 주위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고요를 깨고, ü아멘-,아멘-é을 연발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17>
나조차도 그 젊은 목사의 설교에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감동을 받고 있었다. 바로 이 목사가 혜수로 하여금 신앙심으로 불붙게 만든 대단한 목사가 아닌가. 그러기에 그의 입김 하나 하나가 지금 혜수의 생활 속에 배어 있는 것이 아닌가. 목사가 좀 전에 말한 대로 혜수는 자신의 딸이 아무리 못되어도 폭력의 수단으로 그걸 바로잡으려 들지 않겠다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말은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또 명쾌한가. 그의 설교는 돌연 내 머리 속을 강타했다. 그러자 부족한 나의 모두가 부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느끼지도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던 적들이 사면에서 나를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이  엄습해 왔다. 그건 내게 확고한 주관이나 믿음이 없어서 일까?
믿음이 없는 내가 설교를 듣고 이럴 진데, 혜수처럼 그를 존경하고 신뢰하는 신도들은 어떻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그의 가르침이 저럴진데 하물며 혜수가 그의 친자식을 무자비한 매를 들어서 버릇을 고쳐보려고 하겠는가? 나는 이제야 그녀가 지키며 살아오고 있는 사랑에 바탕을 둔 자녀교육이 어떻게 어디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내 자신이 서서히 해체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공연히 항복이라도 하듯 이렇게 되뇌었다.
"당신은... 훌륭하다... 그 젊은 나이에..., 겨우 40을 넘었을까?... 훌륭하고 말고..., 당신의 그 젊음과 위용..., 사람들을 흠뻑 감동하게 하는 그 조리 있고 정정당당한 설교..., 천에 가까운 청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그 능력......"
나는 점점 이렇게 한 마리의 벌레처럼 위축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절망했다. 곧 나 자신이기를 포기했다
잠시 후 집회가 끝났을 때, 나는 어깨가 축 늘어진 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틈에 끼어 밖으로 나왔다. 오후의 태양이 빛났고, 사람들은 그 빛같은 성령의 감화를 받은 듯 환한 얼굴들을 하고 조수처럼 밀려 나왔다. 그들 틈에서 무언가 그 기반이 확고하지 못한 나는 초라하고 부끄러워져서 볓에 나온 한 마리의 지렁이와도 같은 신세가 되었다.
나는 혜수를 만나 볼 기력조차도 없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신앙기를 그녀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그것은 그녀의 명령과도 같은 약속이었고, 그것만이 그 순간 내가 속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커다란 과제였던 것이다.
그녀에게 무력한 모습으로 그 신앙기를 돌려주고 바빠서 가야한다는 말을 남긴 채 돌아서려니까 그녀도 나를 더 이상 잡으려는 노력은커녕 무슨 한 마리의 벌레라도 보 듯 시큰둥하게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기진해 있었다.  나는 마치 무슨 경기에서 지고 돌아온 패배자처럼 냉장고로 달려 가 물 한 컵을 따라서 들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모를 당해도 이렇도록 허망하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이제 혜수를 더 이상 만나지 않을 심산이다. 만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락조차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손을 이마에 얹고 한 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얼마 후 탁자를 보니 그녀가 준 성경책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그 책마저 그녀에게 돌려주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다음 기회가 또 있을 것 같지 않은 기분 때문이었다. 어젠가는 우체국이라도 가서 우송이라도 해 주리라.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18>
그러나 얼마가 지난 후에도 그 성경책은 내 집 테이블 위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그대로 놓여 있었다. 좀처럼 우체국을 가야 하는 기회란 생기질 않았다. 그렇다고 바쁜 일도 없이 그것 하나를 위해서 우체국엘 가고 싶은 마음은 내키질 않았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내가 생각해도 막연했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아무렇게나 그 성경책 갈피를 펼쳤다. 까만 글씨들이 빽빽한 가운데 붉은 선이 또렷하게 쳐진 구절도 보였다. 아마도 혜수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들 밑에 쳐 놓은 줄인 모양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 구절을 들여다보았다. 신약성경 로마서 3장 28절이었다.
그 구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바울 사도의 말이었다. 특히 행위라는 단어와 믿음이라는 단어 밑에는 한 줄도 모자라 두 줄씩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그 구절들이 예사롭지 않게 나의 관심을 이끌었다. 사람의 의롭다 함이 행위에 있지 않다, 그리고 믿음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다시 몇 장을 넘겨보았다. 역시 그녀가 붉은 줄을 친 구절이 또 나왔다. 이번에는 로마서 8장 1절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곳에서도 또 정죄라는 말과 해방이란 단어에는 선이 두 개나 그어져 있었다. 여기에선 결코 신이 인간을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과 사망의 법에서 해방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면 죽음이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는 아마도 우리가 그를 믿기만 하면 우리의 육신은 죽어도 그 영이 영원히 산다는 말이겠다. 글쎄 육신이 죽은 다음에야 영이 사는지 죽는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또 과연 영이 영원히 산다는 게 삶에 모두 지쳐있는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나 한 단 말인가? 나는 이렇게 의심하며 또 책갈피를 넘겼다. 나는 이렇게 마치 엄마가 손으로 짚어 주는 책을 따라 읽듯 줄 친 부분들만 따라 가면서 읽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에 내가 품은 의심의 해답이 마치 사도 바울이 내 앞에 서서 대답이라도 하듯 바로 나오는 게 아닌가. 다음 줄 친 부분의 로마서 14장 23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 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쫓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쫓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여기에선 마지막 구절 즉 '믿음으로 쫓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전체를 두 줄로 표시해 놓고 있었다. 다시 나는 책장을 넘겼다. 이번엔 갈라디아서에 역시 줄 친 부분이 눈에 띄었다. 2장 16절이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다음엔 또 에베소서 2장 8절에 붉은 줄이 쳐져 있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 뜻은 사람이 그 율법적 행위, 즉 선행 또는 자기 딴에는 옳다고 인정, 판단되는 행위로 스스로 교만해지기 때문에 행위의 잘잘못을 페하고 믿음으로만 그 공과를 인정한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여기까지 읽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깨달음의 빛 같은 것이 내 머리 속을 스쳐갔기 때문이었다. 마치 누가 옆에서 읽어 주듯 나는 아주 쉽게 진리의 말씀을 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천사라도 내 위에 날개를 달고 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주위에는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천사가 내 옆에 와서 서 있다해도 내 눈에는 보이질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갑자기 몸이 오싹해졌다.
이제까지 내가 기독교를 대할 때마다 그 벗어 날 수 없었던 죄의식 때문에(도덕적, 양심적) 도저히 그런 걸 믿을 수 없다고 반신반의하며 살아 온 게 사실이 아닌가?
  우리가 늘 단편적, 피상적으로 대해 오던 성경 구절만 해도 그랬다. 무슨 무슨 외간 여자를 쳐다만 보아도 벌써 간음을 저질은 죄라든가, 오른 뺨을 칠 때 왼 뺨도 내주고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벗어 주라든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든가,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재산을 도적질하는 것이라든가, 또는 구약성서에 보면 웬 그렇게 먹지 말라는 음식과, 하지 말라는 명령은 많은지-, 이런 구절들이 인간으로 살면서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가당치 않은 행위의 율법이라고 현실성이 없는 한 갓 위선적인 종교로 믿어 왔지 않나? 하물며 인간들의 현재의 죄는 물론 과거에 저지른 위선적 행위까지 들춰내고, 나아가서 그 아비가 돼지고기와 술에 젖어 있었다면 그 아들이 어떻게 죄 없다 하겠느냐, 하는 식으로 그 조상이 저지른 죄까지 들춰가며 구원의 자격을 운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구원이 이런 행위에 있지 않고 오로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는 선물이라면 그걸 믿지 않을 아무런 이유도 우리에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바로 그런 하나님이라야 공의롭고 은혜로우신 존재로서 합당할 것이었다. 그는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무상으로 주고 계신 분이다. 혜수가 그녀의 신앙기 묵상록에 썼던 바와 같이 하늘의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축복의 태양 빛까지 어디 하늘에 속한 것 치고 무상이 아닌 것들이 있던가? 그런데 그런 능력의 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구원만은 일일이 율법을 만들어 조건을 붙이고 그 행위 유무를 조사하고 따지고 하실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인간 세계에서 만은 서로서로 하나도 공짜가 없는 법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조차 무상으로 준다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믿기를 꺼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피땀 흘려 주를 믿게 하려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의심하고 신조차도 믿으려 들지를 않는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었다.
이렇게 터득하고 나니 이제야 나는 지금까지 고루하고 고리타분하기만 하다고 생각한 부피의 성경책이 새로운 의미의 책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성경책을 집어들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새로운 의미와 각오로 빠른 기일 내에 이 책을 다 독파하고 말리라.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혜수를 만나 보리라. 아니 그녀는 분명 천사의 지시를 받아 나에게 접근한 것이고, 그래서 그녀는 신앙심이 없고 의심과 비판만을 일삼는 죄인인 나를 결국 이렇게 이끌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녀는 다시 시도하게 될 나의 접근을 기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된다는 기쁨으로 더욱 마음이 고조되었다.
어느 듯 피곤했던 나의 종전 모습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새 생명처럼 일어나는 원기로 대단한 기쁨이 넘쳐 났다. 그리고 이제까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성경 구절들이 새로운 의미로, 진리로 나에게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그 중의 하나, 정말 이 순간에 마음에 와 닿는 구절 하나가 있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이제까지 우리가 지킬 수 없었던 행위율법 때문에) 다 내게로 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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