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逆轉)에 산다

2007.03.04 00:11

성영라 조회 수:767 추천:111

                            역전(逆轉)에 산다

                                                                 성 영 라

  2004아테네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요즘, TV채널을 NBC에 맞춰 놓고 졸리운 눈을 비벼가며 올림픽 중계를 보는 재미에 포옥 빠져있다. 매일 아침 일터로 배달되는 신문과 인터넷에 올려진 경기소식이나 뒷얘기 등을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데도 잘 정리된 기사를 읽는 동안에는 흥분과 긴장, 희비가 엇갈리는 게 요즘 인기 있는 여느 드라마보다 더 생생한 재미가 느껴진다.

  엊그저께 여럿이 모여 티타임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한 필리피노 친구가 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승에서 양태영 선수가 금메달을 도둑맞은 사건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남아공에서 온 다른 친구는 동방의 조그만 나라 한국이 올림픽 상위 10위권에 진입하다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해 내 어깨에 살짝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강도, 절도 사건을 줄어들게 만들고 물이 스폰지 구석구석까지 흡수되듯이 사람들이 올림픽에 푸욱 빠져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 진정 매력적인 휴먼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갖가지 사연과 꿈을 간직하고 있는 선수들이 있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흘린 피와 땀, 고통과 인내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있고,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대반란과 역전의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용광로 같은 드라마.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의 톡 쏘는 맛뿐 아니라 실패와 아픔의 알싸함이 김치양념처럼 골고루 버무려진 예측불허의 드라마. 그것에 중독되어 우리는 더운 여름 밤에 잠을 설쳐가며 토끼 눈이 되어도 좋아라 하며 응원을 하는 걸게다.

  어제는 이런 올림픽 드라마보다도 더 반갑고 나를 감동케 하는 친구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근래에 우리 부부와 좀 더 가까워진 미국인 친구인데 2년 전 한 모임에서 그와 처음 인사를 나누었었다. 거인 같은 키와 당당한 체구에 비해 송아지 같이 순한 눈빛과 한없이 따스하던 미소와 말투가 참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눈물도 많고 겸손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십 수년 전에는 마약에 깊이 빠져 살았던 이력이 있다.

  함께 하던 친구가 죽고 그 자신 또한 험한 일을 겪으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돌이킬 수 없을 것처럼 허물어졌던 젊은 날을 일으켜 세우려 노력하는 동안 참기 힘든 유혹을 견뎌야 했다. 경제적 어려움, 마음 고생이 많았지만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지금은 시공무원이 되었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화목한 가정도 이루었다. 신에게 의탁한 이후로는 더 깊어진 내면의 아름다움을 쌓아가며 이전과는 360도 달라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역전의 명수’. 우리부부는 그를 그렇게 부른다. 우리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그는 당당하게 ‘인생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 해에는 고아원 시설을 만들 계획으로 있는 돈 탈탈 털어 멕시코 엔시나다 변두리에 허름한 건물을 구입했다. 틈나는 대로 달려가 집을 보수하고, 아이들 방학 때뿐 아니라 우리가 선물교환에 여념이 없는 성탄절에도 그곳 고아원들을 방문하곤 한다.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킨 경우가 비단 내 친구뿐이랴? 올림픽에서만이겠는가? 이 땅 어디에선가 이름 모를 누군가가 푸른 꿈을 가슴에 품고서 오늘도 가슴 저린 역전 드라마를 쓰고 있을 것이다. 불리한 여건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겸허한 자세로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 칭찬에 으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해주는 쓴 소리를 진정 고맙게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용기, 이런 것이 인생 역전에 숨은 비결이 아닐까? 그렇게 하기 참 힘들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저마다의 인생역전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 어느 드라마에서 힘들 때마다 주인공이 하는 것처럼 외쳐보고 싶다.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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