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2007.02.12 07:40

성영라 조회 수:964 추천:125

  종종 사전이나 <<우리 토박이말 3000>> 등과 같은 책들 속에서 질박하고 말맛 좋은 우리 토박이말을 만날 때면 사랑이 시작될 때처럼 가슴이 설레곤 한다. 몇 해 전 친한 선배에게서 ‘마중물’ 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도 나지막이 소리내어 곱씹어 보았다.  ‘펌프의 물을 이끌어 올리기 위하여 위로부터 먼저 붓는 물’. 분명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나는데 왜일까? 아! 까마득한 시간 저편으로부터 어린 시절 외가에서 한동안 지냈을 적에, 물을 긷기 위해 펌프질을 하던 기억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시골집 마당엔 온갖 야채가 심어져 있던 텃밭과 그 옆으로 우물을 없앤 자리에 구리 빛 나는 펌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펌프에 약간의 물을 먼저 붓고 뿜다 보면 땅 속 깊은 곳으로부터 물들이 달려 나와 폭포처럼 쏟아지곤 했다. 마중물 없이 펌프질을 하면 떨거덩 철거덩 맥없는 소리나 내며 물을 뿜어 올리지 않다가도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펌프질을 하면 어느새 손에 낭창한 물의 무게가 느껴졌다. 한 바가지 물은 부어지던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 싶었지만 많은 물을 불러왔다. 큰 물을 데몰고 왔다.

  이 세상에는 온전히 자신을 쏟아 부어 누군가의 마중물이 되기를 꿈꾸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담겨져 있는 그릇의 질이나 모양, 크기는 각각 일지라도, 어느 들판에 이름도 없이 피어있는 들꽃같이 보잘 것 없고 연약해 보이는 존재일지라도 묵묵히 자신을 불살라 누군가의 언 몸을 녹여줄 불꽃처럼 사는 이들이 있다.

  요 며칠동안 생활성서사에서 출간된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를 읽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소록도에 들어가 헌신하고자 하는 소망을 품어왔던 K신부님. 마침내 그 곳 본당의 책임자가 되어 나환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엮어내는 에피소드와 신앙고백을 거침없는 말투로 솔직하고도 정답게 털어놓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가고 싶어하는 곳을 자원하여 신바람으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곳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다 어느 날엔가는 그들의 납골당으로 가리라 꿈꾸며. 스스로를 작은 키에 앙상한 몸, 머리도 벗겨져 볼품없는 사람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거인의 가슴을 지닌 아름다운 사람이다. 책을 읽으며 혼자 울다가 웃다가 세상이 아직은 살만한 곳이란 생각을 한다. 지금은 우리가 사랑할 때라고 따스한 바람 한 줄기가 가슴 저 밑바닥을 훑고 지나간다.

  얼마 전 ‘태양의 눈물’(Tears of The Sun) 이란 영화를 봤다. 관람 시작 시간이 딱 맞아 떨어져 무심코 보게 되었다. 생존과 신앙의 자유를 갈구하며 이디오피아 국경을 향해 목숨을 건 여정을 걷게 되는 20여 명의 수단인들과 미국인 여의사,그리고 죽음을 감수하며 그들을 돕는 미특공부대원들이 펼쳐가는 실화에 근거한 영화였다. 아프리카 수단은 정권이 바뀌고 기존의 정치 세력들은 숙청을 당하며 더 이상 개인의 자유도 허락되지 않는다. 탈출한 왕자를 찾아 살해하기 위해 차출된 군인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양민들을 도륙한다. 총알을 아끼려고 엄마의 가슴을 도려내고 아기와 엄마를 서서히 죽어가게 하는 잔인함은 숨소리 조차 멎게 한다.

  미국 정부에서는 피로 물들어가는 수단 현지로부터 선교사들과 의학계의 중요한 인물들을 구출하기 의해 특공대를 파견한다. 선교사들은 끝내 탈출을 거부하고 신음하는 병자들을 돌보다 순교를 당한다. 남편은 이미 살해당하고 혼자 몸으로 원주민들을 치료하며 그들의 어머니 역할을 감당하고 있던 여의사는 자신의 안위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남기를 자처한다. 영화가 끝나면서 메시지 하나가 자막 위로 흘렀다. “이 세상에 악마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착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온종일 악마와 좋은 사람 사이를 오가며 머리가 띵해진 주말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권정생님의 동화들 중에 <<강아지 똥>> 이야기는 아직도 내 가슴에서 별 박힌 강물처럼 찰랑거린다. 시골집 담벼락에 버려진 강아지 똥 한무더기가 있다. 새들도 병아리들도 더럽다고 피해 다니며 외면하는 통에 너무도 외롭고 비참해진 강아지 똥. 어느날 민들레 씨앗이 날아 와 박히면서 서로 친구가 된다. 어느 비 오는 날 강아지 똥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지고 얼마 후 그 자리엔 앙증맞은 민들레 꽃이 피어났다. 자신의 무가치한 존재성에 대해 고민하던 가여운 강아지 똥. 그는 흙과 비와 섞여 꽃을 피우는 거름이 되었던 거다. 나는 과연 누군가의 거름이 된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거름이 되었기에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

  학창시절의 어느 날, 우스개 소리 잘 하던 친구가 탄생(born) 과 죽음(death) 사이에 뭐가 있는지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내가 고개만 갸우뚱거리고 있으니까 답은 선택(choice)이라고 했다. 생명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인간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선상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는 거라고. 언제부턴가 마중물 얘기와 오래전 친구의 질문이 새끼줄처럼 엮이어 머릿속을 맴돈다.

  마중물과 같은 마음가짐은 분명 향기로운 삶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저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옳고 아름다운 선택들로 더 많이 수놓아진 삶은 분명 향기로울 것이다. 그러나 매 번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는다는 건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래도 꿈꾸어 볼 일이다. 향기로울 수 있기를 꿈꾸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아름답지 않은가. 거창하지 않아도 실수, 모순 투성이 인생일지라도 말이다. 누군가의 빈 독을 채우는 물이면 좋겠다. 마중물이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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