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007.04.25 08:01

성영라 조회 수:795 추천:119

  지난 수요일 예배가 끝난 후 주위를 둘러보다가 가슴 아픈 장면을 보게 되었다. 여러 해 동안 찬양팀에서 함께 활동하며 알고 지내던 K가 호수처럼 파란 눈이 빨갛게 된 채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K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늘씬한 팔등신 몸매를 가진 파란 눈의 금발미녀이다. 미모에 비해 성격은 수수하고 모델 겸 에이전시의 직함을 갖고 있는 소위 잘 나가는 전문직 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눈물을 보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젖은 목소리에 실려 흘러나오는 대답을 듣고 있자니 몸 속 어디선가 혈관 하나가 투둑 하며 끊어져 나가는 듯했다. 근래에 그녀는 석 달 남짓 간격으로 교통사고를 두 번씩이나 겪으면서 재정적으로 손실을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과 마음에도 무리가 왔던 모양이다.

  양,한방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데도 목의 통증과 두통에는 별 차도가 없다고 했다. 당장 일을 놓아서는 안될 현실 여건상 완쾌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쉴새 없이 라스베가스로 뉴욕으로 출장을 다녀야 했고, 통증을 참으며 미소 띤 얼굴로 무대 위에서 워킹을 해야만 했단다.

  내면의 아름다움보다는 겉모습에 열을 올리는 외모우선주의에다 경쟁과 긴장의 끈을 잠시도 늦출 수 없는 자신의 직업에 넌더리를 내고 있었지만, 막상 그만 두면 무슨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서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래 전, 지금 자신의 나이와 같은 불혹을 갓 넘긴 나이에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이 내내 슬픔과 상처로 남아있었는데 근래에 잇달아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들과  연결되면서, 어쩌면 자신의 삶도 그렇게 마감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얄궂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연로하신 아버지마저 돌아가신다면 세상에 혼자 남게 될 자신의 처지가 슬프고 한심스러워 마음이 무겁고 외롭다고 했다. 더 깊은 신앙으로 곤고한 이 상황을 이겨내고 싶지만 인간인지라 맘먹은 대로 되지 않고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나서 자꾸 불평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교통사고 소식을 접했던 날 밤에 그녀에게 위로의 말이랍시고 몇 줄 채운 이메일 한 통을 보내놓고 내 할 일 다한 것마냥 여기고 있었다. 그런 나의 관심부족, 사랑부족이 미안하기만 했다. 그 몇 줄의 글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말해서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동안 간간이 흘리던 그녀의 속내를 무심히 듣고 넘겼던 일들이 생각나서 쓴 물을 마신 것마냥 속이 쓰리고 아렸다. 함께 듣고 있던 A도 밝히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아 나를 또 한 번 아프게 했다. 나 또한 마이너리티로서 지닌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고 단속하려는 데만 급급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밤에 우리가 함께 나눈 대화와 기도, 그리고 눈물은 진실했고 서로를 위로하기에 충분히 따뜻했다. 그동안 수없이 반복해왔던, “안녕, 요즘 어떻게 지내니?” “잘 지내, 좋아, 너는?” “응, 나도 좋아.” 그런 식의 수박 겉핥기식 인간관계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던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어제 친구 H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라는 부제가 붙여진 이해인님의 시집 <<작은 위로>>를 건네주었다. 책장을 넘기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잔디밭에 쓰러진 분홍색 상사화를 보며 혼자서 울었어요
                쓰러진 꽃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하늘을 봅니다… /
                            
아, 세상 한 귀퉁이에서 분홍색 상사화보다도 더 아름답고 귀한 사람들이 숨죽여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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