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보의 '팥 시루떡' 행진

2009.10.29 08:57

신영 조회 수:856 추천:72

떡보의 '팥 시루떡' 행진 "떡보는, 뭐니뭐니 해도 떡을 무지 좋아해!" 어릴 적 유년의 뜰에 서면 어렴풋한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 기억 중에는 늦가을(동지)에 맛나게 먹었던 '팥죽과 팥 시루떡'을 잊을 수 없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팥죽과 팥 시루떡이 떠오르면서 함께 내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아마도 그랬으리라, 시골의 가을걷이 끝나갈 무렵 햅쌀과 햇곡식을 거둬들이며 감사한 마음으로 뒤꼍에 놓인 장독대에 '팥 시루떡' 올려놓고 마음과 정성을 모아 어머니는 하늘에 두 손으로 빌었으리라. 가족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빌었을 것이다. 또한, 어머니가 떡을 만드셨던 이유 중에는 술을 못하시는 아버지를 위한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술을 안 하시는 분들은 군음식을 찾는다지 않던가. 지금도 팥 시루떡을 좋아하는 것은 아버지의 식성을 따라 좋아하는가 싶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팥 시루떡'은 아버지를 유난히 좋아했던 쉰둥이 막내딸과 막내딸을 유독 사랑하셨던 늙은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떡'이기도 하다.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시어머님께서는 가끔 팥 시루떡을 만들어 주셨다. 떡을 만들고 남은 팥고물은 언제나 막내며느리인 내 차지였다. 팥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이맘때쯤이면 더욱 팥 시루떡이 먹고 싶어진다. 바람이 차갑고 단풍이 하나 둘 가을비에 젖어 낙엽이 될 즈음엔 언제나처럼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 무엇인가 입이 심심해지고 군음식을 찾는 것을 보니 동지가 가까워져 오는 모양이다. 팥죽이 생각나고 팥 시루떡이 먹고 싶은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딱히 과자나 빵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니 주로 계절 과일로 군것질을 대신한다. 하지만, 동네 떡집에 떡을 주문하면 $70.00 이란 금액이 정해져 있다. 혼자서 먹을 떡의 양도 많고 액수도 적지 않으니 늘 고민하다 주문을 그만두고 만다. 어릴 적 친정어머니가 만드셨던 팥 시루떡 찌는 방법은 기억이 생생치 않아 할 수 없고 결혼 후 시어머님이 가끔 만들어주시면 곁에서 보았던 '팥 시루떡'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작정을 했다. 한국 마켙에서 얼린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를 사가지고 왔다. 팥은 먼저 사두었던 것이 있어 그것으로 쓰기로 하고 돌아와 팥을 먼저 삶아 놓았다. 팥이 조금 식을 즈음 팥을 절구로 찧어 놓고 시루떡을 안쳐보기로 했다. 그 옛날 이른 새벽 정화수 떠놓고 하늘에 정성 들이는 여인처럼 마음이 떨리고 잘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젖은 하얀 보자기를 찜통에 깔고 붉은 팥 찧은 것을 골고루 펴 놓았다. 붉은 팥 깔아 놓은 것 위에 멥쌀가루를 골고루 쌓아 올렸다. 그리고 그 멥쌀가루 위에 찧어 놓은 팥을 또 골고루 펴 올렸다. 그 위에는 다시 찹쌀가루를 정성스럽게 펴고 찧은 붉은 팥을 곱게 펴 올렸다. 하얀 보자기에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는 담기고 위에 찌어 놓은 붉은 팥만이 얹혀 있다. 찜통 뚜껑을 덮고 보자기를 그 위에 감싸놓았다. 그리고 스토브에 불을 붙이고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더니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길 한참을 지났을까, 시간을 재어보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날 즈음 그만해도 되겠다 싶었다. 스토브의 불을 끄고 쌓았던 보자기를 펴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나무 젓가락으로 붉은 팥 사이를 비집고 '찹쌀가루와 멥쌀가루'가 '찰떡과 메떡'이 된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바로, 다름 아닌 새로이 변화된 그 순간의 그 찰나이다. 찜통에서 팥 시루떡을 내려놓고 떡을 떼어 먹는 순간 아뿔싸! 첫 작품이려니…. 소금 간을 하지 않아 너무도 싱거웠다. 나의 첫 작품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다. 첫 작품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음 작품은 제대로 만들어 볼까 싶어 어릴 적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다. 팥 시루떡을 혼자서 난생처음 만들어 본 자랑과 함께 두 번째 작품은 친구에게 선물하겠노라고 말을 전했다. 이 친구는 내가 '떡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떡을 썩 좋아하지 않는 친구는 동네잔치(돌, 결혼)에서 얻게 되는 떡은 모두 내게로 가져온다. 요즘은 쌍둥이(친구의 딸) 둘이서 떡을 좋아해 내 몫은 물 건너간 얘기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맛나고 멋진 두 번째의 성공 작품을 친구와 친구 딸들에게 선물로 보냈다. 10/26/2009. 깊은 새벽에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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