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여자의 섬의 물돌이

2007.01.31 13:31

박봉진 조회 수:418 추천: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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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섬의 물돌이


                                                                 박 봉 진: benpk@hanmail.net

                                  

    뜻밖의 얽힘이다. 기내서 예감이 이상했어도 그렇지. 일면식도 없는 여류의 서신은 황당했다. 그때. 어째 그런 발상을 했냐고, 야단친 답장을 썼다. 투어 차에서 먼저 내린 일행 두 사람씩의 두 팀이 큰 튜브를 타버렸다. 남은 이는 여류와 나뿐. 오월동주 상황이다. 마침 튜브는 일인용뿐이었다. 동승을 면했다 싶어 숨을 불어냈다. 누가 알랴. 그다음 일들을-.

    일행 여섯이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던 국제펜클럽 행사에 참석했다. 귀로에 휴양도시 칸쿤행을 예약했었다. 칸쿤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끝자락 카리브해에 닿아있다. 여자의 섬이라 불리는 무헤레스(Mujueres)섬은 거기서 약 5마일쯤이었다. 그곳엔 튜브타기가 단연 인기였다. 한 시간 반 남짓 유유자적하면서 흐르는 물살 따라 떠내려가는 재미를 보는 거다.

    그 튜브 타기는 출발점에서부터 난감한 상황이 돼갔다. 거기는 바닷물에 강물이 맞닿고 있는 하구쯤인 듯 했다. 관목들의 둥치가 잠긴 두어 길 물밑에서 물이 마구 솟구쳤다. 나무뿌리들 사이에선 부글부글 팥죽 끓듯 했다. 대소쿠리처럼 생긴 내해 건너편, 그러니까 우리가 당도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거였다. 본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물돌이 뿐이겠는가.

    내키지 않았지만 선택도 없었다. 내게 여류의 라이프 가드(Life Guard)역할이 주어져버렸다. 설핏 눈을 둘러본 순간 곁눈에 들어온 여류는 둥그런 튜브안의 물밑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다급했다. 그러나 물밑에서 내 몸이 붙잡히면 두 사람 다 끝장난다. 튜브 줄에 내 몸을 묶었다. 침착히 잠수했다. 물먹은 여류를 간신히 튜브위로 끌어올렸다. 간발의 생환이다.

    거기는 구조선을 띄우지 않는 해역이다. 그 다음부터가 또 문제였다. 큰 튜브는 그냥 사람이 타고 양옆쪽 물에 손놀림만 해주면 방향이 잡힌다. 커다란 바퀴인 일인용 튜브는 좀 다르다. 먼저 튜브를 양 겨드랑 밑에 낀다. 그리고 손발을 쭉쭉 뻗고 헤엄쳐 방향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생판초보를 가까운 너럭바위로 떠밀어 올렸다. 여류의 양 겨드랑에 튜브를 입혔다.

    한차례 실습을 시켜봤다. 하겠다 싶었다. “일행들이 걱정하고 있을 거니 먼저 갑니다.” 그 말을 하고선 부리나케 나는 튜브를 밀쳤다. 순풍에 돛단 듯, 물길도 인간관계도 방향을 제대로 잡으면 문제꺼리는 생기지 않을 터다. 오래전 나는 정부부서 주관의 동포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그 직후다. 여류는 나와 아무런 인과가 없었는데도 해악이 될 말을 퍼뜨리고 다녔다.

    내 작품은 아내와 동갑 H여사의 삶에 대한 내용이다. 그녀는 졸지에 남편을 여의었다. 뼛속까지 아렸던 인생의 설 한기를 온몸으로 견뎌냈다. “여자는 약해도 모성은 강하다.”는 말처럼 자신은 신장이 망가지면서도 일을 해 두 딸을 간호사로, 공인회계사로 키워냈다. 본인도 성숙한 인품으로 살아가고 있다. 동해(凍害)를 입긴 해도 잎갈이를 잘 해낸 산표본의 글이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아픔을 딛고 재기한 인간승리 내용이 심사위원 마음에 닿았던 모양이다. 그 작품을 쓸 때 나는 그녀의 삶의 모습을 관찰했던 것과 궁금한 것은 문답으로 자료를 얻었다. 작고한 남편의 유필이란 것도 받아 읽어봤다. 내 글은 산 사람이 대상이었기로 망자언급은 비켰다. 그 유필을 좀 더하면 가족사가 될 듯싶어 그 부분을 따옴표 안에 넣었던 거다.

    여류는 그 단락을 말하고 있었다. 내게 보내온 서신엔 그 유필에 대한 금시초문의 말을 했다. 그 글은 자기가 쓴 거라 했다. 알아보니 그때 운전교습 선생에게서 그의 친구 망자 이야기를 들은 여류가 그 망자인양 유필을 써 신문사에 냈다고 했다. 사실이면 자기과오를 떠들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희롱당한 꼴이 된 내게 그 말을 입에 담고 있음이 한심하고 기가 찼다.

    어찌 그런 일을. 남의 글을 자기 이름으로 쓰면 표절 시비가 따르는데, 반대로 자기가 쓴 글을 함부로 망자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것은 큰 문제꺼리다. 여류의 동기는 어쨌어도 그런 글은 절대 금물이다. 유가족과 관계 처와 선의의 독자들을 희롱했다. 실상을 모른 유가족은 애틋한 마음으로 신문사에 찾아가 유필을 찾아왔단다. 본의 아니게 얽힌 사람에게도 파장을 불렀다.

    한참 앞서 내려온 나는 뒤돌아보고 또 놀랬다. 여류의 튜브는 곧장 흘러오지 못했다. 외진 곳에 떠밀려서 빙빙 돌고 있지 않은가. 내 튜브는 부력 땜에 물살을 역류해 갈수 없다. 튜브 줄을 내 몸에 맸다. 맨몸으로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 갈 수밖에. 입에 덴 내가 났다. 기진맥진 직전 여류의 튜브를 붙잡았다. 이후는 그 튜브를 잡고 다리를 쭉쭉 뻗어 물살을 타면 됐다.

    물은 끊임없이 물살로 흐른다. 아옹다옹 사람들도 유속 따라 흐른다. 반 나나 다름없는 수영복차림 두 남녀가 그런 일을 겪으며 어째 서로 간 살가운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을까. 종착이 가까울수록 물살은 바삐 물 고리들을 연결해가며 흘렀다. 오래 기다린 일행들이 왁자지껄 환호다. 둘이 뭔 깨를 그리 오래 볶았냐. . 오늘 점심은 두 분이 쏘랬다. 누명이 덧붙었다.

    그 얼마 후, 지인을 통한 카더라 통신한 마디를 들었다. “그분은 내 생명의 은인이다.”라는-. 강심 깊이로 흐른 물살일까. 이후 여류의 종적을 아는 사람은 없다. 마음이 시리다.

 

박봉진 1998년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정부 부처 주관 재외동포문학상 대상수상.

경희대, 한국문학평론협회 주관 해외동포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국제펜클럽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내 마음 바다에 살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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