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즈텍의 숨구멍

2007.01.31 14:13

박봉진 조회 수:420 추천: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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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갑갑할까?

고소증세(高所症勢)가 있는 사람은 낮은 데로 내려가면 낫는 다는 것이 그곳 사람들의 처방전이었으니 그 때문이었더라면 나는 벌써 멀쩡해져있어야 하는 것이다. ‘멕시코시티’는 해발 2천3백m의 고원 도시다. 그러니까 백두산의 7부 능선쯤에 위치한 멕시코의 수도이다. 인구 2천만이 북적대고 있어 도시의 비대순위와 과밀비율은 세계 제일위라고 했다. 그 때 거기서 달라붙은 갑갑했고 답답했던 증상이 내게서 좀체 떠나지 않을 것만 같다.

지난해 나는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던 국제펜클럽대회를 참관한 후 “떡 본 김에 제사”격으로 몇 명 일행과 함께 시내 관광 팀에 합류했었다. 대성당과 대통령 궁과 관공서가 들어서있는 ‘소칼로광장’은 도보로 둘러봐야만했다. 450 여년 전만해도 텍스코코 호수의 섬 위에 그림처럼 떠 있었다는 아즈텍의 고도(古都) 테노치티틀란은 흡사 어렴풋한 남극 땅 지도처럼 동판으로 새겨놓아져있었다. 내가 선 발밑과 인근 일대가 모두 매몰된 아즈텍의 고도(古都)이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사람들에 떠밀리며 나도 따라 흐르는 물살이되어 한 곳에 우뚝 섰다. 거기엔 코만 빠꿈이 물위에 내놓고 물속에 들어앉아있는 하마가 그대로 굳어 화석이 된 것처럼 토석에 메워지고 육중한 건물들에 짓눌린 아즈텍이 겨우 숨구멍 하나를 틔워 내놓고 있었다. 수도공사와 대성당 뒤쪽 건축공사를 할 때도 귀한 유물들이 여러 번 나왔지만 본체만체했던 멕시코 당국이 무게가 8톤이나 되는 거대한 달의 신전 석판이 발견되니까 그 때에야 아즈텍문화 복원에 관심을 가졌었다고 했다. 발견 때의 지표면인 듯 건너편 두어 길 아래쪽에 엉성하게 복원해놓은 벽돌의 구조물이 아즈텍의 유물이라니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것도 불과 20여 년 전에 땅속에서 밖으로 나와 바람을 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즈텍의 하마는 피돌기를 멈춘 것 같아 보이니 자 질러지던 신음도 끝났는지 모르겠다.

뜨거운 고원의 햇볕은 내 아랫도리를 휘감고 발걸음을 붙잡는데 아즈텍의 슬픈 그 날처럼 왜 바람 한 점 불지 않는가? 바람은 세상 이야기들을 실어다주고 처참하게 말살당하고 기막히게 묻혀버린 역사를 소문으로라도 실어 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즈텍을 되돌아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즈텍은 멸망 당시 어느 유럽 제국보다 잘 분화 발전된 사회조직에다 1년 365일의 태양력을 써왔던 천문학 그리고 일조 음향까지 고려해서 기하학적으로 돌을 쌓아올린 건축술엔 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고 그 궁성에서 약탈당한 금은보화는 유럽의 어떤 황제의 재산보다도 많은 가치였다고 했다.

아즈텍을 일으켜 세운 인디오들은 북쪽지역에서 남하하다가 이른바 신들의 고향이라고 일컫는 멕시코의 중앙고원지대에 정착, 테오티와칸 고대문명을 계승해서 태양신에게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어 제단에 올렸다지만 13세기~15세기경에는 중미대륙을 호령했던 제국이었다고 했다. 테오티와칸이란 기원전 2세기~후 7세기경에 번성했다가 지금 관광명소가 되어있는 웅장한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 그리고 케찰코아 신전과 숱한 신화를 남겨놓고 사라 저버린 고대문명을 말한다. 그렇지만 테오티와칸은 동양의 용(龍)과 유사한 깃털달린 뱀 신을 형상화해서 신전에 부조한 것과 우주관과 문화형태는 중남미대륙의 3대문명인 아즈텍과 마야와 잉카문명을 한 줄의 고리로 연결되게 했다고 했다.

아즈텍과 잉카제국의 멸망 사를 보면 비슷한 사례로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너무 쉽게 멸망해버린 것이 놀라웠고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카톨릭 수도사를 앞세운 스페인 정복군은 마치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것처럼 치밀히 계획된 각본에 의해 인디오들이 그들보다 덜 간교한 지능을 악용했고 잔인한 방법으로 아즈텍을 말살해버렸던 것은 씻어지지 않을 반인류적 죄악일 게다. 지금은 그것이 당시의 종군 카톨릭 수도사들이 남긴 기록 등을 통해 대체로 들어나 있지만 그 사악한 각본은 몇 세기 후까지를 계산에 넣고 고도(古都)를 통째로 매몰해버린 것이나 인종과 언어와 종교란 근간(根幹)의 뿌리들을 넓고 깊게 엉켜지게 해놓아서 수백 년 동안 침묵으로 일관되게 했었고, 현재도 도무지 어쩌지 못하도록 되어있지 않는가?

그 당시 중남미 문화권의 인디오들에겐 기막힌 신화 하나가 전해오고 있었다고 했다. “얼굴과 피부는 하얗고 턱수염이 더부룩한 키가 큰 신이 짐승을 타고 나타나서 구원으로 인도해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아즈텍은 1521년에 멸망했지만 실제로 그 신화 같은 상황은 두해 전에 생겼었다. 아즈텍 황제 목테즈마 2세는 말을 타고 나타난 스페인의 정복자 헤르난드 코르테스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황궁으로 모셔 들이고 신격의 예우를 다해주었다고 했다. 그로 인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의해 그는 이듬해에 타살(打殺)되었고 그 다음해에 제국 아즈텍은 단400명의 스페인 정복 군에 의해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스페인의 정복자는 그 많은 아즈텍 황궁의 황금을 다 쓸어갔지만 그것에 만족했겠는가? 더 많은 황금을 끌어 모우기 위해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잔인한 인간사냥에 나섰다. 남자들은 막무가내로 황금의 소재를 대라고 죽이거나 노예로 끌어갔고 여자들은 닥치는 대로 욕정의 제물로 삼았으며 마구 혼혈의 씨를 뿌렸기 때문에 당시 한 세대를 살다간 스페인 병사 한 사람당 평균 백 명꼴의 혼혈족을 고의적으로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약 7천만 멕시코 인구 중 종족비율은 혼혈족(Mestizo)이 약70%로 주종을 이뤄있고 원주민(Indio)은 약20%. 백인(Espanol)은 약10%라고 했다. 말문이 닫힐 수밖에 없다.

아즈텍의 알려지지 않은 비사는 남미 잉카의 멸망 사를 통해 유추해 볼 수밖에 없으리라. 1531년 스페인의 또 다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단 180명의 침략군과 말 27필을 가지고 잉카에 들어갔다. 안테스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은 잉카의 황궁은 천연요새(天然要塞)였고 5천명이나 되는 황제의 근위병도 있었다. 정복자는 자신을 스페인왕의 사절이라고 사칭하여 황궁 입성을 허락받았고, 잉카제국의 황제 아타왈파는 사절을 맞는 예우로 근위병에겐 무기를 들리지 않고 방심하고 사절을 맞았다. 치밀한 각본대로 사절들의 태도는 일순 돌변했고 카톨릭 수도사가 황제에게 성경을 건네며 “여기에 손을 얹고 하나님과 스페인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라.”라고 윽박질렀다. 그것이 내동댕이쳐지는 것을 기다린 듯 사절들이 들었던 막대기 인줄 알았던 총구가 천둥소리를 내며 불을 뿜었고 창기병들이 이상한 짐승 말을 타고 뛰쳐나와 근위병을 살육함과 동시에 황제를 사로잡아버렸다. 정복자는 황제의 몸값으로 엄청난 량의 황금을 요구해서 황금 200상자, 은 20상자, 보석 60상자를 챙겼지만 약속이행은커녕 황제를 이교도의 처형방식으로 불태워 죽이려고 했다. 황제는 다시 카톨릭을 믿겠다고 애원했으나 다만 화형대신 목 졸라 주겠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다시 ‘과다루페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은 카톨릭의 세계 3대기적의 성지 중 하나라고 했다. 1531년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의 인디오 성모가 나타나 먼저 믿은 인디오 신자 한 사람의 망토에 성모상을 찍어준 이후 인디오들이 카토릭을 믿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즈텍이 멸망한 후 꼭 십년이 되는 연대에 해당한다. 그것은 해석상의 문제점을 떠나 그들에겐 두 번째의 신화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첫 번째의 신화와 두 번째의 신화 간에는 예언과 성취란 점에선 다르지만 같은 것은 아즈텍의 옛 인디오들과 그 후예가 각각의 신화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했다는 것이다. ‘과다루페성당’은 고색창연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육중한 기둥과 보가 약간씩 기울고 균열이 생겨있는 것이 놀라웠다. 굵은 강철선으로 서로 감고 당겨서 흉물스럽게 얽어놓았다. 아즈텍의 매몰된 호수의 지반 위에 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님에게 씌운 가시관도 저렇듯 흉물스럽게 보이지 않았을까?

성당 광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 객들로 붐볐고 성자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맨 무릎으로 포도 위를 기는 고행자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혼혈족 메스티조로 구성된 거리의 악사 마리아치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스페인풍의 정열적인 음악을 연주할 땐 절로 흥이 돋우어졌지만 애절한 민요가락의 선율이 흐를 땐 아즈텍의 슬픈 역사와 탄식이 절절한 한으로 서려서 나오는 듯 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들의 혈관엔 인디오와 스페인의 피가 함께 흐르고 있고 지금도 스페인어로만 말을 하며 카톨릭을 믿고 있지 않는가? 스페인의 정복자에 의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아즈텍은 그대로 땅속에 묻혀버렸고 그 위에 성당을 짓고 매머드 도시를 건설해놓았는데 무엇이 제대로 보이겠는가?

나그네에게만 화석화되어버린 아즈텍의 숨구멍이 겨우 보인 것이리라. 그러나 내 인생 역시 백년도 살지 못하고 떠나갈 것이 아닌가? 사백오십 여년이나 땅속에 묻혀있는 아즈텍을 제대로 바라보기엔 턱없이 짧은 수명일 것이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가 계속 이어왔지만 아즈택의 한을 마음속에 담고 있으려니 우리 민요 ‘한 오백년’이 한숨 토해지 듯 내 목젖을 따갑게 넘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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