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산자의 계곡 데스벨리

2007.01.31 14:19

박봉진 조회 수:567 추천: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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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어느 날, 겨울잠에서 깨어난 초목들은 새싹과 꽃망울을 피워 올리느라 숨소리를 고루고 있었다. 땅속에서 기어 나온 짐승들도 짝짓기 찬가를 부르느라 분주했다. 다른 사람들은 더러 상춘 나들이를 나가련만, 우리들 더부살이 인생 몇몇 이웃들이 모여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을 좀 깨어보자는 모의를 했었다.

이른 새벽, 우리들은 포장마차 행렬처럼 자동차로 편도 6시간씩의 강행군을 서둘렀다. 150여 년 전 칼리포니아의 골드러쉬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지름길이라고 잘못알고 들어섰다가 떼 죽음상태의 신고를 겪었다는 그 데스밸리(Death Valley)로 행했다. 인생길은 한 번 가면 되돌아 나와 다시 갈 수 없는 외길인데 어찌 지름길이 있을 건가. 있다면 필경 함정의 길 뿐이었을 터인데 그들의 자존심 불굴의 개척정신은 어디다 두고 그 같은 안일을 꾀했을까. 그 데스밸리는 동서의 폭은 그리 넓다고는 할 수 없어도 남북의 길이는 길쭉하게 120마일에 달하는 불가사의 계곡이다. 연중 내내 거의 비라곤 없고 여름엔 화씨134도까지 살인적이 될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이 해수면보다 282피트나 낮은가 하면 외벽처럼 솟아있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남쪽 끝자락엔 알라스카를 제외하면 전 미국에서 제일 높은 휘트니산의 연봉이 만년설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데스밸리에는 수많은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는데 나는 그들이 어느 지점에서 무엇을 보고 오는가가 궁금했다. 방문객이면 누구나 눈 덮인 개활지로 착각하기 마련인 쓰디쓴 물 Bad Water 근방의 광활한 소금밭은 빼놓지 않을 게다. 가까이 가서 보면 아리한 옥색의 청염을 끝없이 쏟아부어놓은 곳에 와있는 것 같기도 할게고, 뼛속까지 시큼거리는 석류 알을 딛고 선 듯도 할게다. 이생의 처소와는 너무 생경스런 섬뜩한 죽음의 계곡에 와있음을 실감할지 모르겠다.

데스벨리는 아득한 옛날엔 바다 밑이었다가 여러 차례 지각변동을 거쳐 육지가 되었다고 했다. 어느 옛날 어느 때 폭우로 인해 산의 토양은 뼈대만 남기고 무너져 내렸으며 양쪽의 언덕과 바위도 거센 물살에 매끄럽게 깎여진 흔적들을 지금도 들어 내놓고 있긴 하다. 그 때만 해도 그곳은 호수로 덥혀있었고 기후도 온화하여 인디언들이 짐승사냥을 하며 살았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칼리포니아의 등뼈격인 높은 씨에라네바다 산맥이 오늘날처럼 서부 해안선과 나란히 남북으로 길게 누운 것은 언제부터 이었을까. 그 것 때문에 산맥의 서쪽은 태평양 난기류의 영향으로 강우량이 많아 수목이 울창하지만 그 동쪽은 난기류가 산맥을 넘지 못해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랜 기간을 두고 시나브로 호수들은 메말라 버렸고 주위엔 Sand Dunes 같은 모래언덕도 생겨나서 바람의 방향과 속도에 따라 수시로 모래의 무늬가 바뀌는 것과 일출과 일몰 때엔 오묘한 빛의 향연을 펼치는 휘한한 경치 때문에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 근인(近因)은 이해될 듯하지만 옛날엔 살아 숨쉬었던 밸리가 지금과 같은 황량한 데스밸리로 되었다는 원인(遠因)은 지질학자가 아닌 나로서는 지식적 접근마저 어려웠다.

데스밸리의 대부분은 칼리포니아주 중남부에 속해있고 북동쪽 일부만 네바다주와 접경을 이뤄있다. 나는 칼리포니아주 땅의 서남쪽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산 사람이 방문하는 곳이라면  그냥 이름 그대로 죽음의 계곡을 보고 오는 것 보다는 다른 살아있는 무언가를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록 지명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곳도 역시 여느 사막들처럼 생명체들의 완전한 진공지역은 아닐 터이다. 공통적으로 있는 초봄의 야생화라든지 그 외 상당 종류의 사막성 동식물들이 생존하고 있는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골드러쉬 때 사람들이 버리고 간 노새의 후손들이 야생마가 되어서 무리지어 살고 있다는 것도 역시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데스밸리의 죽지 않은 상징 같은 것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전망대에 올랐었다. 데스밸리는 침상 밑의 홑이불처럼 흘려 내려 있고 인근 씨에라네바다 산맥 줄기는 걸리버 여행기의 난장이나라에 온 거인보다 더 큰 거인인 듯 발가벗은 채 옆으로 누워 잠들어있었다. 어느 나무꾼이 신선들이 노는 곳에서 한 잠 자고 일어나보니 도끼자루가 썩었더라는 옛 이야기처럼 거인은 얼마나 오랜 동안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만고풍상을 견디지 못한 옷가지는 삭은 누더기가 되어 데스밸리 바닥에 다 흘러내려졌고 육신은 피골이 상접하다 못해 앙상한 나체를 들어내 놓고 있었다. 사람들은 묘지에 묻힌 사람들을 “잠들었다”고 말한다. 세계인의 최다 경전인 성경도 사자에 대한 상태를 확실히 잠잔다고 기록해놓았다. 잠잔다는 것은 언젠가는 깰 때가 있다는 것의 전제이고 보면 시에라네바다란 이름의 거인의 잠은 언제 깰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데스밸리의 흥망성쇠와 운명의 판가름은 잠자는 거인의 몸놀림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만약 거인이 잠시 몸부림이라도 친다면 데스밸리는 그 어느 옛날의 영화로 되돌아갈 수 있겠지만 그대로 잠자고 있는 한 그냥 죽음의 계곡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게다.

데스밸리를 종주해서 얼추 중간지점인 안내소 부근에 조그마한 개울이 있다. 아직 봄철이었기 때문에 물도 조금 고여 흐르고 있었다. 거기서 그리도 찾고 있었던 내 관심의 대상을 만날 줄이야. 데스밸리의 불사어(不死漁) 팝피쉬(Pupfish)가 거기 있었다. 송사리 비슷했으나 그보다는 약간 크고 유선형이었다. 그놈들은 겨울과 봄 동안 눈 녹은 물이 짜 즉하게 흐르면 한여름 동안의 땅속의 하면(夏眠)에서 깨어나 생육 번성한다고 했다. 미꾸라지나 뱀장어처럼 땅속에 적응이 쉬운 피질이 아니었고 논우렁처럼 무논과 땅속을 날고 드는 체형도 아닌데 어찌 땅속에서 한여름의 그 고열을 견디어내는지 모르겠다. 미물보다 허약한 인간 체질들은 다시 한번 생명의 경이 앞에 진심으로 겸허할줄 알아야 할게다.

스코티 별장(Scotty's Castle)은 데스밸리 북쪽 종주의 끝자락에 있다. 거기서도 나는 데스밸리의 색다른 메시지가 하나 더 있음을 보았다. 스코티 별장은 80여 년 전 시카고의 백만장자가 데스밸리의 자연적인 악조건을 역이용하겠다는 발상으로 거액을 들여 별장을 짓고자했단다. 그러나 결국 사막성 황무지의 악천후에 버티지 못하고 지금까지 미완의 형태로 남아있다고 했다.  미완성은 언제까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별장은 지금도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영원한 침잠의 잠에 골아 떨어져있지 않다는 데스밸리의 또 다른 생명의 역설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다른 방향을 잡았다. 깊은 잠에 들어있는 거인의 허리를 넘어 서쪽 길로 들어서서 남행키로 했다. 거기서는 펼쳐지는 계곡마다 푸른 초목들이 생명의 환희를 마음껏 구가하고 있었다. 거인의 몸을 사이에 두고 어쩌면 그렇게 양쪽이 다를 수 있는지가 놀라웠다. 수많은 지진대가 잠복해 있는 캘리포니아 땅, 언젠가 한 번 잠자는 거인이 기지개만 켜도 데스밸리는 확 판도가 뒤바뀔 것이다. 지금 같이 등을 대고 맞붙어있는 죽음과 삶의 실상은 데스밸리의 두 얼굴인 동시에 바로 우리들의 일상의 현주소일지 모르겠다. 데스밸리의 거인은 언제쯤 잠에서 깨어 뒤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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