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그림

2008.04.11 14:47

박봉진 조회 수:1396 추천: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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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걷다보면 흔치는 않지만 말이 통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길벗을 만날 때가 있다. 그 날 아침은 저만치 여름을 밀어내고 있던 가을의 전령이 나를 필드로 불러낸 것이리라. 은퇴 후 뒤늦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했기에 나는 여태 '홀인 원' 같은 것은 못해봤지만, 요행이 그것에 버금가는 ‘이글’은 뒤따라 잡은 것인지 모르겠다.

약도 없이 코스에 나갔던 고로 누구와 파트너가 될지 내 자신도 알 수없는 노릇. 대기자는 인종이나 남녀노소를 가릴 처지도 못되고 그저 순서에 따라 돼지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을. 내 나이쯤의 한국인 내외와 수인사를 나누었다. 대개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면 함께 이동하거나 티박스 에어리어에서 잠깐씩 일상사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그들은 서울에서 온 여행자이고 며칠 뒤 돌아갈 것이라고 했지만, 이곳에 사는 아들네 집에 자주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홀에서는 앞 팀이 지체하는 바람에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내 말 억양이 그 부인에겐 동향이란 호기심에 심지를 당겼나보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고향 이야기와 추억담으로 옮겨갔다. 차츰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눈에 빛이 나고 있었다. 통성명을 다시 하고 악수도 새로 나눴다. Y여사는 마산에서 태어나 나와 같은 연도에 그곳 여고를 졸업했고 부군은 공직에서 명예퇴직하신 분이었다. 가없이 넓은 세상, 밤과 낮이 다른 지구 반대쪽 모퉁이에서 누구라고 하면 알 만한 사람을 만날 줄이야-.

가 말했었나. 골프코스는 인생 여정과 같다고... "세상은 참으로 넓고도 좁네요." 그녀의 말마따나 골프장은 매 홀마다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건너갈 개울과 호수가 있는가하면 나무숲과 모래구덩이를 비켜나오다 보면 갔던 곳을 지근거리로 되돌 때도, 간발의 차이로 만나거나 스치는 사람도 있다. 기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여정. 코스를 잘 통과하려면 항상 기본을 생각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라고 하지 않던가. 힘이 들어간 상태로 클럽을 잡거나 조급하거나 과욕을 부리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자기 분수와 능력 안에서 편한 마음으로 너그럽게 베풀 듯 경기를 즐길 때 잘 풀리는 골프. 그것이 골프의 황금률인 것이 참으로 신통하다. 그래서 골프는 자기를 다스리는 훈련이고 자신과 겨루는 경기라고 했을까.

레야 캐년을 건너온 바람 한 줄기가 페어워이에 서있는 키다리 팜추리의 넙적 잎들을 흔들었다. 설핏 철 바꿈을 시작한 초가을의 몸짓일 게다. 봄은 소생의 계절이고 가을은 생각하는 계절이라서 그럴까. 그 바람은 내 고향 마산의 쪽빛 바다와 무학산 연봉의 바위와 푸른 소나무들을 한 아름으로 휘몰아 올리며 나를 점 하나의 존재로 둥둥 띄운다. 비릿한 갯냄새와 쌍긋한 송진 냄새가 내 기억을 새록새록 되살린다.

난 50년대 후반. 6.25전란의 부산물인양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군 요양소로 징발돼있었고, 이 구석 저 구석의 사람들은 춥고 배고프고 암울했다. 그러나 한줄기 빛처럼 어렵게 지내던 사람일수록 유순한 이웃들이 많았으며 인정은 훈훈했다. 그 인정 속에서 우리의 꽃다운 나이는 성년을 넘겼다. 비록 그녀와 나는 당시 맞대면은 못했어도 피차 많이 보았던 얼굴이고 많이 들었던 이름이다. 옛 고려와 몽고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려다 태풍 때문에 좌절하고 남긴 큰 돌 수레바퀴 한 짝이 아직도 있을 몽고정(샘) 앞길. 그 등하교 길에서 우리는 얼굴에 몇 번이나 꽃물을 드렸는지 모른다. 아득한 그 학창의 뒤안길이 오늘은 그리움의 꽃 대궁으로 뽑아 올리고 있다.

향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 그리운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화제로 올려놓고 티샷을 날리는 대로 그 거리만큼 토막토막 이야기를 이으면서 걸었다. 누구의 말이더라. 순간이란 영원하지는 않지만 띄염 띄염 행복한 징검다리가 되어준다고... 우리는 홀이 계속 될수록 켜켜이 가라앉은 세월의 앙금 아래서 40년도 넘은 마음의 동판조각 하나씩을 건져 올려 닦고 또 닦았다. 어렴풋 윤곽을 드러내는 그 조각 그림들을 맞춰나갔다.

녀와 나는 학교는 달랐어도 동급생이기 때문에 내가 잘 아는 사람은 그녀의 친구였고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은 나의 친구였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사는 것에 홀려있어 들을 수 없었던 그 말들. 이런 시간이 아니면 어찌 그런 말들을 들을 수 있으랴. “임OO 알겠네요?” “걔와는 친하게 지냈는데 작년에 죽었어요. 참 안됐어요.” 그 망자는 나와 같은 문학동인회 멤버였다. 그녀는 그 때 그 동인회 사람들이나 행사들을 거의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망자와 S씨 간의 풋사랑 이야기도 해줬다. 서울에 살고 있는 김OO의 말이 나왔을 때 내가 잠시 어적거렸더니. “아, 그 사이다공장 집 딸 말이에요.” 내 의식의 도화선에 확 불을 붙이는 총기를 보면 그녀에게는 세월도 얼마쯤은 뒷걸음질 칠 듯싶었다.

샷이 개울을 바로 넘지 못하고 홀컵과는 먼 나무 아래서 뒹굴다 멎는다. 얼마 남지 않은 인코스의 홀들이 빤히 내려다보이는데 나는 무슨 상념에 잠겨 있은 것일까.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하 듯 기왕 그리됐으니 지금이라도 흘러내린 의지의 클럽을 알맞은 장력으로 고쳐 잡고 돌아서 가라는 암시인지 모르겠다. 내 젊은 날의 꿈은 묻은 채, 외인부대의 용병처럼 아까운 세월동안 계수놀이에 안경 도수만 높였고. 어설픈 숙련자 흉내를 내면서 주름살만 늘렸지 않은가. 연어는 거친 바다 속을 헤매다가 모천으로 돌아간다지만, 나의 세월은 저 개울물처럼 흘러갔고 모천회귀 또한 내 앞에는 건널 수 없는 대양이 가로놓여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의 티샷은 돌아서 가라고 하고 있으니.

구가 좋아서 연 며칠 동안 함께 돌았던 코스를 마치던 날. 나는 그녀 내외를 태우고 차를 몰아 야트막한 구릉에 올랐다. 하얀 억새꽃 무더기를 건너보고 있었다. 눈이 마음을 불렀음인지 아이멕스 영화처럼 추억여행으로 화면이 바뀌어졌다. 내 고향 마산. 자산동 골목길을 따라 산 허리께에 이르러 '낙천대'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그 집 수밀도만큼 맛있는 것은 없으니까. 거기서 산길을 타고 올라가다 너럭바위에 올라앉으면 저만치 멀어져가는 가을이 아쉽다고 솔바람에도 속 아리를 하는 억새들의 흐느낌소리를 들어줘야한다. 양팔이 원호를 그리며 바다 바람을 폐부까지 깊이 들이킨 후, 추산공원 활터에 내려가서 그 옛날의 예술제 때처럼 백일장 시제도 받아야지.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어찌 지금까지 남아있으랴.

어짐은 언제나 아쉬운 것. 언제 또 만나질는지요? 주고받은 전화번호와 주소 쪽지-. 아, 그 보다 우리에겐 그동안 맞춰놓고 서로 마음 안에 바꿔 쟁여 넣을 조각 그림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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