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날개

2007.03.12 09:42

박봉진 조회 수:1061 추천: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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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외출은 집안에 작은 소란을 피우고 나서 시작된다. 원만큼의 세월을 살았건만, 분주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헤어드라이어 돌아가는 소리, 병뚜껑 딸각거리는 소리, 옷장 문 여닫는 소리로 이어지고. 옷 입는 것은 혼자서 하는 줄 알았더니 무슨 패션이 그런가. 옛날엔 생명이 떠난 사람에게 옷을 거꾸로 입혔다는데, 옷 단추를 뒤쪽에 달아놓고 멀쩡한 사람 옷 시중들게 하더니 자동차의 발동을 걸어 놔 달랬다. 종종걸음으로 화장실과 부엌순례를 끝내고도 몇 차례 현관문이 퉁탕거린 후에야 겨우 바람불은 뒷날처럼 집안이 조용해졌다.

이럴 때 나는 뒤뜰에 나가있기를 좋아한다. 일 년 중 낮이 길어져가는 봄날 늦은 오후, 집과 울타리 옆의 큰 나무들이 땅 바닥에 그늘을 깔기 시작했고, 지붕위의 빨간 벽돌 굴뚝에는 극지의 오로라처럼 사광(斜光)의 빗금이 눈을 부시게 하고 있었다. 나는 나날이 녹색을 더해가는 자두나무와 대추나무 그리고 포도나무 시렁을 돌아서 새로 옮긴 화초며 제법 키를 키운 도마도와 오이 모종을 돌아볼 참이었다. 이것들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심어놓았다고 저절로 바라는 만큼 커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익어가는 것은 아니다. 스피링쿨러의 물은 잘 닿고 있는지 수시로 살펴줘야 하고, 제 때에 지주를 꽂아서 식물이 쓰러지지 않게 매어주며, 겉 자라는 순은 쳐주어야하는 것은 내 몫이다. 아이들이 다 떠난 후, 둘이서만 사는 집이지만 내겐 늘 돌봐야하는 식물이 있어왔다.

아내가 집에서 나간 지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토닥거리는 소리가 집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필경 빠뜨린 것을 뒤 늦게 알아차리고 그것을 챙겨가려고 들린 것이리라.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났는데 딸각거리는 소리는 여전했다. 이쯤 되면 차분했던 내 마음도 입에서 쉰 소리를 내게 한다. “원, 허둥대는 것은 알아줘야 돼. 어디까지 갔다 온 거유?” 나는 못마땅해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참 어이가 없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제비만한 새 한 마리가 부엌창문의 미니 블라인더에 붙어 푸닥거리고 있었다. 거실창밑 바닥에도 기진맥진한 한 마리가 떨어져있었다.

“쯧쯧, 정신없는 사람. 현관문을 열어놓고 나간 게로군.” 전에 살았던 집에서도 뒷문을 닫지 않아 벌새가 날라 들어 소동을 피웠다. 징글맞게 생긴 팟슴 한 마리는 안방 화장실까지 들어와서 그놈과 마주쳤던 아내는 잠시 혼절을 했다. 나는 거실의 소파를 돌아 현관문 쪽으로 가봤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일까? 현관문은 닫혀있었다. 새가 날아들어 올만한 데는 아무데도 없었다. 내 정신을 의심하며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흔들어보고, 손등으로 눈까풀을 문질러보기도 했다.

어쨌거나 새를 먼저 집 밖으로 내 보내야했다. 먼저 거실 바닥에 떨어져있는 놈 쪽으로 갔다. 살며시 날개를 모아 쥐고 배 쪽을 뒤집어봤다.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처럼 가녀린 두 다리가 너무 애처로웠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산초 씨 같은 까만 눈을 굴러댔다. 파르르 떨고 있는 새의 맥박이 내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왔다. 야생 세계에서 잡힌 놈이 어찌 살기를 바랐으랴 만은, 그래도 이 순간의 새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내가 절대자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보였나 보다. 그랬기에 새는 저항을 단념하고 간절히 내게 자비를 호소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내 이십대 때 요양시절의 자화상이었다. 절대자는 사는 길로 인도해주려 했는데 그 때의 내가 그랬고, 지금 이 새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새를 좀 세게 쥐면 손안에서 압사할 것 같고. 느슨하게 쥐면 빠져나가버리기 때문에 알맞은 장력으로 쥐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관계 경영도 어려운가 보다. 나는 새의 날개를 쓰다듬어주면서 어디 부러지거나 다친 데는 없는 가를 살핀 후, 뒤뜰로 나가 새를 동쪽 하늘로 날려 보냈다. 새는 새 물을 만난 잉어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 듯 허공을 싹싹 가르며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그 다음 놈이 문제였다. 거실에서 이리저리 나는 통에 몇 번이나 유리 창문을 들이 받았고 가구 위의 작은 액자들을 넘어뜨렸다. 새의 소란도 파업 궐기 같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일까. 작은 흔들림 후에 큰 흔들림이 뒤따르는 지진처럼 여기저기서 풀쑥 거렸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상황파악을 해야 했다. 소란의 진원지는 벽난로 안이었다. 동료 새의 필사적인 저항에 자극되어 그 안에 있던 새들이 탈출을 위해 다투어 거실로 날라 나왔다. 미처 나오지 못한 놈들이 벽난로의 좁은 공간 안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푸닥거리고 있었다.

참 희귀한 일이었다. 도합 여덟 마리의 새-. 그 새들은 이동 중인 철새 가족들 같았다. 우리 집의 지붕 위 굴뚝에 걸려있는 햇빛을 보고, 마치 원양선이 등댓불을 보며 내해로 들어오듯 거기를 통해 벽난로 안으로 몰려 들어온 것이리라. 맨손으로 그 새를 잡아낼 수 없었다. 나는 낚시를 다녔을 때 썼던 뜰채로 한 마리씩 안전하게 잡아낼 수 있었다. 해 저문 시간에 새들이 이산가족이 안 되도록 똑 같은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새들이 날아간 동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나는 알 수 없는 자문(自問)에 발을 옮길 수 없었다. 사람과 새는 공존관계(共存關係)일까? 공생관계(共生關係)일까? 아니면 적대관계(敵對關係)일까? 이 땅의 양심을 자처하는 환경단체 사람들은 야생조류 보호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 야생조류의 본거지인 산수가 좋은 땅은 일찍부터 사람들의 이속을 채우는 매개물이 되고 말지 않았던가. 그런 곳을 선점해서 주거지로 또는 투기의 대상으로 삼은 후, 점차 촉수를 외곽으로 뻗으며 게걸스럽게 자연 생태계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높은 곳은 깎아내고 낮은 곳은 메우며 길을 내고 관을 연결하고 선을 잇고 있다.

오늘 날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약육강식의 탓이 아니다. 먹이 사슬은 자연 생태계에서는 항상 균형을 이루는데 사람이 그것을 뒤틀어놓고 엉뚱한 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사람처럼 영악하지 않는 새들은 마음 놓고 먹이를 쪼고, 둥지를 틀고, 알을 부화 할 터전을 잃고 방황하다가 우리 집에 잘못 날라든 것이 아닐까. 병들게 해놓고 약을 처방한들 그것은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만도 못한 사람과 새의 공존관계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1855년 지금의 워싱톤주 땅에 살았던 인디언 쓰와네족 추장 씨아틀이 당대 어느 백인 지도자들 보다 훌륭한 예지 자였던 것 같다. 그 땅을 강압적인 매매 형식으로 취합코자 했던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에게 조건을 달아 보냈다는 그의 메시지가 내겐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늘을,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습니까? 인디언들은 신선한 공기와 물의 거품조차 자기 소유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백인들의 도시 광경은 우리들의 눈을 아프게 합니다. 숲 속의 신성한 구석들이 인간들로 인해 손상이 될 때 그것은 생활의 종말이며 죽어가는 것의 시작입니다. 봄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며 벌레들의 날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없고... 쏙독새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와 연못가 개구리들의 합창을 들을 수 없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새들이 한동안 소란을 피웠던 거실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그놈들이 벽난로 안의 그을음을 풀무처럼 날갯짓으로 마구 불어냈다. 또 몸에 무쳐서 사방으로 날라 다녔기 때문에 거실바닥과 창문틀엔 새까맣게 그을음을 앉혔다. 아내가 먼지를 털곤 했던 아이보리 색 가죽소파는 온통 그을음을 뒤집어썼다. 내 상황판단의 잘못으로 그 소란을 일찍 잠재우지 못했던 것과 아내는 굼뜨고 잊기를 잘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울 뻔 했던 것은 순전히 내 착각에서 비롯됐다.

그 착각이란 것은 때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면 좀체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이 탈이다. 그러나 마음먹기 따라서는 신속히 날려 보낼 수 있는 가변의 날개를 달 수 있지 않는가. 그 기미가 얼 듯 보이기만 하면 나는 지체 없이 그것에 날개를 달아줄 테다. 후회는 행위에 매여서 끈처럼 뒤따라 올 텐데 그것에 한 발 앞서면 날려보낸 새들처럼 모두가 편안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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