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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도심에 둘러싸여 있지만 키 큰 나무들과 잔디와 화초들의 생기 나눔이 사람들의 호흡에 살맛을 더해준다.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다고는 해도 잎새 갈이를 끝낸 활엽수(闊葉樹)는 일제히 짙은 녹색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헌팅톤비치쪽에서 불어오는 안부 바람 한 다발에 우듬지 잎새들은 흔들거림으로 평안을 화답하고. 거실 바닥에서 놀고 있는 손녀의 볼통이 좌우로 둘레거릴 때마다 까만 머리를 두 갈래로 묶은 매듭의 나비는 연신 날개 질을 한다. 일상 셈을 하고 있은 것은 아니지만 그날 이후 열일곱 번째의 초여름은 이렇게 내 곁에 다가와서 삶의 더위를 입힌다.

그와 함께 살았던 십육 년보다 어느새 앞지른 세월의 흔적에 나는 깊은 숨을 들이켰다. 소득수준에 따라 턱없이 적은 렌트비만 내고 혼자 사는 시영 아파트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열기는 마냥 훈훈하다. 쟤네들 집을 두고 아직 미혼인 작은 딸은 모녀의 심령 주파수에 신경을 쓰는 듯, 셋 나흘들이 여기를 들락거리고. 결혼한 큰 딸은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불쑥 아기를 마껴 놓고 가기도한다. 거실 안은 아이의 나부댐으로 분주하다. 제 손 닿을 데 놓여있는 작은 사진 액자들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다. 제 어미 사진과 이모 사진 그리고 제 사진을 들고 무슨 말인가를 해놓고 이리저리 바꿔놓기 일쑤다. 손자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있다지만 내겐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R.N인 큰 딸은 낮엔 병원 일을 해야 하고 작은 딸은 C.P.A로 회계사무실 일을 하기 때문에 도리 없는 노릇이긴 해도 나는 그것이 즐겁다.

언제부터 이었을까? 저 아이가 들고 있는 액자 자리에서 그의 사진이 거둬진 것은-. 우리 첫 만남 때 그대로 그는 언제나 푸른 공군 제복을 입고 내 마음 자리와 거실의 실내를 채우고 있었는데. 정녕 그는 쇠잔한 기력에 최후의 생기를 짜내 듯 육필로 쓴 ‘마지막 일기’를 남겨놓고 하늘로 갔을까? 그리고 나는 그 인고의 세월을 거치면서 어느 때부터 손 따로 마음 따로로 망각의 더께 위에 안주해왔을까? 이제는 빛바랜 편지뭉치라고 하겠지만 미혼 때 받은 그 편지들은 거개가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 연모의 말 위주였고 약간의 잔소리가 보태진 것들이기에 훤히 외우다시피 한다.

그러나 ‘마지막 일기’는 아직도 그 한 단어에 막혀서 힁허케 읽히지도, 줄줄 내용이 말해지지도 않는다. 경황 중에 손에 쥐게 된 그것은 내 삶의 무게로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것이란 것을 그 때는 상상도 못했었다. 아니 명줄을 놓아버리려고 했던 사람에게는 전혀 마음 쓸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글은 건성으로 보고 넘어갈 뻔 했었다. 시작은 반듯했다가 비뚤거렸고 지우고 긋고 한 필적과 정리(整理)라는 말에 눈이 멎었다. 그것이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쓴 사람 이름 석자에 이어 그 때 상황이 자꾸 눈에 밟혀 더 나갈 수 없는 그 말 때문에 내 목안은 바싹 졸아들었고 시계(視界)는 뿌연 물안개에 젖곤 했었다. 그랬는데 오늘은 그 글이 쉽게 읽히고 있다.

“밤은 깊어 사방이 고요하다. 진정제를 주사한 탓인지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다. 나는 정신이 조금 맑아져 대강 마음 정리라도 해두고 싶다. 그러나 무슨 정리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의사는 정확한 말은 안했지만 나는 며칠 못살고 죽게 될 것 이란 것을 알고 있다. 내 나이 이제 45세. 젊다면 젊고 살만큼 살았다면 그런 것도 같은 나이. 그러나 이대로는 도저히 떠날 수 없는 처지다......중략”(주, 1)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나는 사랑하는 그를 어디에 묻었을까? 두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걸 보면 아마도 눈 안에 묻었는지 모르겠다. 자동차 운전대를 잡지 않았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랬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약한 모성을 보여줘서는 안 되었다. 막 사십 고개를 넘긴 막막한 여인이 그의 손때가 묻은 자동차 핸들을 잡고 겁 없이 외국인 회사에 칠 년여를 다녔던 것은 분명히 내 능력은 아니었으리라.

내게 무슨 힘이 있어서 그 무거운 종이 뭉치들을 옮겨 놓아가며 자르고 접고 찍으면서 책과 신문을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그때 그 업주는 회사가 잘 돼가니까 단시일에 다섯 군데로 업소를 불렸었다. 인쇄소 일을 하면서 내 손은 수세미처럼 되어갔고 콩팥은 탈이 나서 값으로 환산할 수없는 하나뿐인 내 담보물을 거덜 낸 샘이 된 것이다.

그랬어도 후회는 없다. 그 즈음 그 회사도 한쪽 업소에 문제가 생기니까 큰 덩치가 한꺼번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내 능력의 안팎이 묘하게도 한계점에서 그것에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던 것과 세상살이의 이치와 자기 다스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조금은 엿볼 수 있은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자동차가 또 말썽을 부린다. 나를 닮는다. 자주 숨을 헐떡거리며 털털거린다. 이럴 땐 오래 잊고 있은 생각이 날개를 달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외면한다. 그의 말은 씨가 돼서 이미 그의 세상은 나와 바꾼 것이 됐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하마 들려올 때가 된 듯 도한데, 작은 딸한테의 회소씩은 아직 가뭇하기만 하다. 세월은 잠을 자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 남은 정리(整理)를 얼마만큼 해낼 수 있을까?

아내와 같은 나이의 해방둥이들. 그 닭띠들 몇 명이 모여앉아 뒷산 알밤 터지는 소리 같은 것을 내고 있다. 그날 이후 십칠 년이란 세월의 강을 혼자 건너온 차여사는 지금 자기가 얼마나 뻔뻔이가 됐냐고 마르지 않을 샘물 같은 눈웃음을 흘린다.

바람과 햇볕을 맞받은 활엽수(闊葉樹)의 잎새는 언제나 짙푸를 게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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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본문은, <나의 수필창작 관습>에서 말한 관례들을 거의 시도해 본 실험성의 창작품이다.
***......(주, 1)은, 죽은 사람 이름으로 남은 유필로서 인용한 글임이 앞글에 설명돼있다.
또, 나의 전 후 창작 문장들과 구별을 위해 한 칸을 더 띄웠다. 따옴표(“ ”)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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