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 패기

2007.02.11 13:22

손광성 조회 수:407 추천:6

                 장작 패기


                                 손  광  성

  장작을 패는 일만큼 남성적인 노동도 드물지 싶다. 힘이 든다는 점에서 그렇고 위험이 따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해서 장작을 패는 일만은 언제나 남자들의 몫이었다. 그렇다고 힘으로만 되는 일도 아니다.

  훌륭한 요리사는 한 달에 한 번 칼을 갈고 서툰 요리사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칼을 간다. 이치를 알고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다. 장작을 패는 일도 그렇다. 경험 위에 약간의 안목과 요령이 필요하다. 아니면 도낏날을 버리기 쉽다. 심하면 제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장작을 패려면 우선 도끼를 볼 줄부터 알아야 된다. 도끼라고 다 같은 도끼가 아니다. 볼이 얇고 날이 넓은 것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볼이 두텁고 날이 좁은 것이 있다. 볼이 얇고 날이 넓은 것은 나무를 자르는데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산판(山坂)에서 벌목할 때 주로 이런 도끼를 쓴다. 서양 도끼와 비슷하다. 볼이 두텁고 날이 좁은 것은 나무를 쪼갤 때 쓴다. 날이 좁아서 나무의 결을 파고 드는 데 유리하고 볼이 두터워서 쐐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무가 잘 쪼개진다. 장난감같이 작은 도끼도 있는데 이것은 부엌에서 불쏘시개를 만들 때 쓴다. 모양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나무도 그렇다. 종류에 따라 패기 쉬운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참나무와 낙엽송은 자르기는 어려워도 쪼개기는 쉽다. 대쪽처럼 갈라진다. 소나무는 무른 편이어서 자르기도 쉽고 쪼개기도 쉽다. 밤나무나 대추나무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대추나무 방망이란 말이 있을 정도이다.

  나무의 건조 상태도 문제이다. 갓 베어낸 생나무는 물러서 좋지만 시원스럽게 쪼개지는 맛이 덜한 것이 흠이다. 생나무라고 해도 언 것은 수월하다. 도낏날을 받자마자 제풀에 놀라서 갈라지고 만다. 그러나 광산에서 쓰던 갱목같이 물을 많이 먹어 거죽이 썩은 나무는 종류에 상관없이 패기가 힘이 든다. 겉은 스펀지처럼 무르지만 속은 옹이처럼 단단해서 한 번 도낏날을 물면 놓지 않는다. 갈라질 때도 통쾌한 맛이 적다. 꼭 패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피하는 편이 현명하다.

  이미 썩은 것은 그대로 썩게 하라. 이것이 경험자의 첫번째 충고이다.
이제까지 말한 것은 작업에 대한 전망을 내리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장작패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도끼를 옆에 세워 두고 우선 모탕부터 살펴야 한다. 모탕은 도끼를 보호하기 위한 받침대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단단히 고정되는 것이 안전하다. 말하자면 뿌리째 파낸 나뭇등걸 같은 것이 안성맞춤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모탕이 잘 고정되어 있다고 해도 그 위에 나무토막을 잘못 놓으면 만사 헛수고가 되고 만다. 헛수고 정도가 아니라 낭패를 보는 수도 없지 않다. 도낏날이 닿는 순간 나무토막이 옆으로 몸을 피하면서 정강이를 걷어찰지도 모른다. 아니면 튕겨오르면서 손등을 깨물거나 이마를 받아 버리든가, 심하면 아예 코를 으깨 버리는 수도 있다.

  나무를 깔보지 말라. 나무가 당신을 깔볼까 두렵다. 경험자의 두 번째 충고이다.
나무토막을 놓을 때는 결과 모양을 잘 살핀다. 아무리 작은 나무라도 밑동은 단단하고 질기다. 나무토막은 굵은 쪽을 자기 앞으로 오도록 놓는다. 나무의 종류에 관계없이 지켜야 할 원칙인가 한다. 그래야 잘 쪼개진다. 소나무처럼 옹이가 크고 많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어떤 힘에도 굴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 나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무라고 해서 모두 도끼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럴 경우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되면 언제고 유능한 외교관처럼 한 발 물러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슬그머니 마당 한쪽으로 밀어 두었다가 화분 받침대로 쓰거나, 아니면 걸터앉는 의자로 사용하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여름 밤 같은 때 나무토막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별을 쳐다보는 장면 같은 것을 상상해 보자. 번잡한 세상 살이에 이만한 여유와 낭만이 또 어디 있겠는가. 경험자의 세번째 충고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요령만 터득하고 나면 장작패기도 그렇게 고달픈 노동만은 아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즐거운 운동이 될 수도 있다. 서양 사람들은 장작패기 시합도 한다. 우리 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박사는 일요일이면 경무대 뒤뜰에서 장작을 팼다. 그것이 그의 취미요 스포츠였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나무토막을 마주하고 섰을 때의 그 팽팽한 긴장감, 두 다리로 버티고, 두 손은 도낏자루를 움켜쥔다. 그리고 잠시 침묵의 순간이 흐른다. 이제 호흡을 고르면서 서서히 도끼를 들어올릴 차례다. 이때 도끼의 높이가 머리 위에서 멎느냐, 아니면 그 이상까지 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공격하려는 나무토막의 부피와 강도에 비례한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어깨에 무리한 힘이 주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경직된 어깨로는 표적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다. 도끼의 높이가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 도낏자루를 잡은 손에서 힘을 빼야 한다. 다시 말하면 도끼가 잠시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도낏자루를 잡은 손이 느슨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훌륭한 검객(劍客)은 칼을 가볍게 잡는다고 들었다. 칼은 새와 같아서 너무 꽉 잡으면 질식하고 너무 느슨하게 잡으면 날아간다. 도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도낏날이 나무토막에 닿는 순간, 모든 힘은 하나의 접점에 모아져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아니된다. 대부분의 경우 응집되지 않은 힘은 힘이라고 할 수가 없다. 경험자의 네번째 충고이다.

  드디어 떨어지는 도끼의 무서운 파괴력. 완강하게 버티던 나무토막이 일도양단(一刀兩斷) 둘로 갈라진다. 날카로운 파열음은 가라앉은 주변 공기를 격동시키며 벼락치듯 하늘을 가른다. 몇십 년 또는 몇백 년 동안 나무 속에 갇혀 있던 인고의 침묵이 드디어 경악한다. 정복자의 기쁨이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통쾌하다.

  그 뒤를 따르는 송진 냄새의 저 신선함. 이 건강한 남성적 향기에는 향락적인 인상도 관능적인 자극도 없다. 그것은 살아 있는 숲의 체취요 승자에게 바치는 축배의 향기다. 아니, 그것은 어떤 성소(聖所)에서 스며나오는 신비로운 향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고대 이집트의 사원(寺院)에서 아침마다 송진을 태웠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잠시 과거로 돌아가 제관(祭官)이 된 기분으로 도낏자루에 몸의 무게를 의지하고, 눈을 감은 채 그 향기의 물살에 몸을 맡겨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일상에서 오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그 부드러운 향기 속에 용해되어 나가고, 우리는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될 것이다.

  햇빛에 번들거리는 청동빛 어깨, 온 세계라도 움켜쥘 듯한 단단한 주먹, 그리고 상기된 이마 위에 흐르는 구슬땀. 이 건강한 땀이 우리의 육체를 정화시킨다. 눈물이 우리의 마음을 정화(淨化)시키듯이.
이제 에머슨(R. W. Emerson)처럼 이렇게 외쳐도 좋으리라.

나에게 건강한 하루를 달라.
어떤 제왕의 영광도 일소에 부치리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까지 손수 처리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 그러나 나는 꽃을 가꾸는 일과 장작을 패는 일만은 돈으로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런 것까지 양보하기에는 인생에 주어진 기쁨이란 그리 많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험자인 나의 마지막 충고이다.

  6ㆍ25 직후 겨울만 되면 나는 거의 매일 두 시간씩 장작을 패야 했다. 구공탄조차 보급되기 전이었다. 그 동안 몇 트럭의 통나무가 나의 손에 의해서 장작이 되어 나갔는지 모른다.

  지금 나의 팔은 지난날의 그 힘과 탄력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 때의 그 기쁨과 활기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 장작이 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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