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수기} 영원한 반주자

2009.11.13 00:44

김명순 조회 수:765 추천:46


        영원한 반주자 / 김명순








    남편의 출장으로 모처럼 자유롭게 된 어느 주말, 나는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로마린다 대학 교회로 말머리를 돌렸다. 나성으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혼자 덜덜 떨며 운전하여 찾아 간 곳. 장장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말로만 듣던 로마린다 대학교. 믿음 안에서 언니 동생 하자는 J 언니 부부가 스스럼없이 대해주어 마치 친정에 온 기분으로 아주 편한 주말을 보냈다.

    금요일 저녁 언니가 속한 대학 합창단에 슬그머니 끼어 목청껏 찬양도 했고, 안식일에는 대학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여 하늘의 한 장면을 연상하기도 했다. 비록 영어가 짧아 말씀으로는 그리 큰 은혜를 받지 못했을지라도, 잘 준비된 설교예배는 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도록 이끌었다. 때로는 웅장하게 때로는 고요하게, 교회당을 온통 하늘의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파이프 오르간의 아름다운 선율에 이끌려, 나는 문득 어느 초라한 시골 교회에서 자그마한 손으로 풍금을 켜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어린 계집아이를 떠올렸다.



    딸이 자라 교회 반주라도 하면 원이 없겠다는 엄마의 소박한(?) 소원에 떠밀려 유난히도 손가락이 짧던 그 어린 계집아이는, 울며 겨자 먹기로 피아노를 쳐야했다. 지긋지긋했던 엄마의 잔소리.... 바로 엊그제 같기도 하고 까마득히 먼 옛날 같기도 한, 드디어 엄마의 소원이 어렴풋이나마 윤곽을 드러내던 섭리 속의 어느 날.

    “다음 주에 예식 목사님이 오신다는데, 네가 피아노 칠 줄 아니까 반주 좀 해 줄래? 몇 장 찬미 부를지 알려 줄 테니 미리 연습하면 너는 아주 잘할 것 같구나.”

    “네? 저는 풍금은 한 번도 켜보지 않았고 더군다나 찬미가는 아직 배우지도....”

    내 평생 반주자라는 호칭을 달게 해 준 역사적인 그 날이 정확히 언제였는지, 무슨 찬미를 불렀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대략 어림잡아 1970년 정도? 나름대로 피아노와 풍금의 차이를 파악하여 발로는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그 짧은 손가락을 연결하여 음이 끊어지지 않게 노심초사 애쓰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하라니까 그냥 했다. 초라한 시골 교회에서 풍금 소리가 흘러나오니 몇 안 되는 교인들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다음 안식일에 부를 찬미를 미리 받아 일주일 동안 연습해서 반주하고, 연습하고 반주하고, 하고 또 하고...

    삼육 대학의 신학생들이 자주 드나들던 볼 품 없는 교회 옆에는 한국에서 내 노라 하던 어느 재벌의 정성들여 잘 가꾸어 놓은 정원 같은 아름다운 묘소가 있었다. 그 곳 연못의 예쁜 연꽃이 피고지면서 반주 실력도 점점 늘어갔다. 목회실습 차 찾아오는 신학생들이 특창 한다며 불쑥불쑥 찬미가를 들이밀 때는 당장이라도 풍금에서 내려오고 싶더니만, 자꾸 반주하다 보니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젊은 신학생들의 힘찬 찬미소리 따라 풍금도 갈수록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더불어 영원을 사모케 하는 성령의 축복이 아직은 순수한 계집아이의 마음 한 귀퉁이에 알듯 모르듯 조용히 쌓여갔다.

    어린 마음에도 풍금소리는 어찌 그리 포근하고 정감이 있던지. 이런 작은 풍금이 아니라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이라는 게 있다는데, 언제나 한 번 볼 수 있을까.... 풍금소리 따라 파이프 오르간에 대한 동경도 작은 가슴 깊은 곳에 꼭꼭 숨겼다.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학교교회로 출석해야 되어, 무거운 마음으로 그 교회를 떠나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죄스러운 한 토막 필름이다.

    ‘이 작은 교회에 풍금소리라도 나야 조금이라도 활기가 돌 텐데. 학교를 마치면 꼭 이 교회에 다시 와서 힘이 되어줘야지....’

    거의 40 년이 다 된 이야기다. 다시 돌아와 어려운 교회를 돕겠다는 생각은 이루지 못한 채 세월이 베틀의 북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꿈같은 학창시절을 훌쩍 보내고 때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반주자 아내를 모시고(?) 사니 너무 행복하다.”는 착한 남편 만나 알콩달콩 살며. 하늘의 귀한 선물인 떡두꺼비 두 아들 낳아 귀하게, 아주 귀하게 키우며.... 주의 부르심 따라 여기저기에서 하늘의 뜻을 배우다가.... 어엿한 중년 부인이 된, 촌스럽기 짝이 없던 그 계집아이는 이제 LA의 한 귀퉁이에 고단한 나그네 인생길의 무거운 짐을 살며시 푼 것이다.

    로버트 풀컴이 쓴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김영사 간)>라는 책이 한동안 한국에서 널리 알려졌었다. 나야말로 반주자로서 배워야 할 것들을 그 어린 시절에 다 배운 것 같다. 지난 40여 년 믿음 생활을 하며 반주자가 교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새록새록 깨달으면서 지천명을 바라보는 지금, 과연 나는 어떤 반주자였는지 조용히 돌이켜 본다.



    예배에 있어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 중 반주자의 역할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예배 첫 시작부터 맨 마지막 순간까지를 아우르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예배에 앞서 성도들이 한 분 두 분 모이기 시작하면 반주자는 그 때부터 조용한 음악으로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이렇듯 모든 예배는 피아노 소리를 기점으로 시작하여 피아노 소리로 끝난다(대부분의 미주 재림 교회에서는 주로 피아노를 사용하기에 편의상 피아노로 지칭한다). 그만큼 예배 자체가 알게 모르게 반주자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에 반주자는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물론 시간 개념이야 어느 누구, 어떤 형편에라도 적용되겠지만 특히 반주자는 시간에 대해서 더 철저해야 한다. 요즈음에는 문명의 발달로 좋은 음악이 녹음된 매체들이 많이 있어 각 교회마다 예배 시간 전에 그러한 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으나, 그보다는 반주자가 미리 와서 준비된 음악을 조용히 들려주는 것이 훨씬 더 예배 분위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하기에 반주자는 누구보다도 일찍 교회에 와서 본인이 먼저 마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어느 은행에서는 신입 사원을 뽑을 때 먼저 시간관념이 어떤지를 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시간을 잘 지킨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감이 있다는 말이다. 사회에서도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들에게, 한걸음 나가 반주자들에게 있어서랴! 반주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정규 예배 시작 2-30분 전에는 교회에 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성으로 이사와 주변의 여러 교회들을 참석하며, 간혹 찬미 인도자는 왔는데 반주자가 미쳐 오지 않아 당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럴 때면 어찌 내가 괜히 죄스럽던지...

    반주자로서 나의 음악적 안목이 제대로 뜨인 때는 남편 따라 왔던 앤드루스 대학교의 유학생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이름도 멋졌던 <선구자 기념 예배당>이라는 대학 교회. 어린 가슴 속 어딘가에 꼭꼭 숨겨 놓았던 동경의 파이프 오르간과 마주 대하던 순간의 감격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오르간으로 원도 없이 연습하며, 졸업 연주까지 하는 특권을 누리다니!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의 마음을 다하는 오르간 연주는 예배당을 온통 하늘의 음악으로 채우며 성도들의 마음을 주께로 고정시키기에 넉넉했다. 이곳 나성에서 다시 한 번 그 때의 감동을 받으며 훌쩍 옛날 앤드루스 대학교의 유학 시절로 돌아갔던 경험이 있었는데...

    신임 목사의 부임을 축하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참석했던 어느 교회의 안식일 아침, 미리 와서 조용한 피아노 연주로 차분히 예배를 준비하는 반주자가 눈에 띄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옛날 앤드루스에서 받았던 감동을 정말 모처럼만에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식일이 다른 여느 때 보다도 더 좋았던 것은 비단 새 목사님을 모신 기쁨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반주자의 정성스런 음악에 예배당이 하늘 분위기로 충만해졌기 때문이라는 아주 중요한 -그러나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실을 나성 중앙교회 성도들은 아셨을까?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말씀을 모든 반주자들은 명심할 것이다. 맡겨진 일을 감사함으로 받아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행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더 큰 일을 맡기겠다.” 또한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라는 말씀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으며 주님께 감사드린다. 생명의 면류관을 재림의 때가 아닌 바로 이 땅에서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 어쩌면 모든 반주자들은 그 축복을 받았음에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반주자로서 예배 시간 전에 교회에 오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작은 일에 충성했을 뿐인 나에게 주님께서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을 주신 것이다, 바로 지금 이 땅에서 말이다.

    가끔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 편하게 예배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었다. 돌이켜 보니 아직 어린 철부지의 행복한 투정이었다. 반주자는 예배 마치는 순간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지, 자칫 잘못하다가는 예배의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교회에 따라 다르겠으나 등단 송을 시작으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는 예배는 반주자가 편히 앉아 말씀에 빠질 수 없게 한다. 첫 기도 후 또는 마지막 설교자의 축도 후, 기도에 푹 빠져 혹 다른 생각을 하다가 그만 기도 송을 놓쳐버린 적이 있었다. 한 순간의 당혹감이라니! 간혹 말씀 중에 찬미를 부르자는 설교자도 있어 반주자는 항상 대기 상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예배 시간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음이라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대로 반주자로 봉사하면서 열심히 말씀을 들으며 내 마음 속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알게 모르게 자랐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배워가며, 나도 무엇을 드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었다. 누구처럼 눈썰미가 좋아 예쁘게 꽃꽂이도 못하지, 아무개처럼 안교 시간을 잘 쓰지도 못하지, 숫기가 없어 나가 전도지 돌리는 것도 버겁지, 그렇다고 유년 반 교사도 적성에 안 맞지, 무엇 하나 자신 있는 것이라고는 도무지 없었던 대학 시절. 선머슴아 같이 교회 주변을 겉돌던 그 당시, 그나마 반주를 하며 예수님을 조금씩 깨달아 갔다. 어린 시절 알듯 모를 듯 쌓여진 성령의 축복이 이때에 싹이 텄는가 보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일을 주신 것이다. 반주자라는 직분이 아니면 나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기에.

    그저 맡은 일이니까 욕먹기 싫어 그냥 저냥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드리다가 점점 말씀이 들어가며 어느 때부터인가 마음으로 반주를 하게 됐다. 묵상과 더불어, 기도자의 기도 후에 나오는 짧은 곡들, 특히 마지막 부분의 아멘 코드는 얼마나 멋진 화음이던가! 이 세상어디에도 아멘 코드 이상으로 아름다운 화음은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언제까지라도 그 화음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한참동안이나 건반에서 손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성찬 예식의 떡과 포도즙을 돌리는 고요한 시간, 온 예배당을 조용한 찬미로 채우노라면, 이토록 보잘 것 없는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마다않으신 주님의 살과 피가 온통 내 영혼에 절절이 와 닿으며 내 자신이 먼저 감동을 받곤 했다. ‘과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는가?’

    외국어를 모국어로 번역하는 일에 있어 번역자는 결코 드러나지 말아야 한단다. 마찬가지로 반주자 역시 언제라도 주인공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반주가 아닌 독주를 할 것이다. 합창이건 독창이건 혹 악기건 어떠한 반주를 하던지 반주자는 연주자의 요구대로 반주를 해 주면 되는 것이다. 혹 반주를 요청하는 쪽에서 반주자의 의견을 물어 올 경우가 아니라면 반주자는 이의를 달지 말고 연주자를 잘 따라야 한다는 할 것이다.

    물론 반주를 하다 보면 혹 마음에 썩 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을 텐데, 저기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등등. 처음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생각을 바꿨다. 순서를 맡은 분은 나름대로 마음을 다해 준비하였으리라 생각하니 나의 의견이 전혀 의미가 없었다. 순서 맡은 분이 준비하며 은혜 받고, 듣는 회중이 함께 은혜 받는 것 이상으로 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노라면 하나님께도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닌가? 단지 음악적으로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하등 문제 될 것이 아니었다.

    연주자와 반주자가 한 마음이 되어 하늘의 선율을 만들 때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또 어디 있을까? 반주를 하면서 매 번은 아니지만 간혹 마음에 진정 흡족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훌륭한, 어떤 유명한 분의 반주를 해서가 아니라, 연주자와 내가 정말 한 마음으로 특창을 한 후에는 마음 가득 희열을 느끼며 ‘아, 하늘에서도 이 순서를 열납 하셨구나.’라는 전율이 흘렀다. 그럴 때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그리도 간절히 원하셨던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라”는 기도의 의미가 조금씩 마음에 와 닿았다. ‘하나 됨이 정녕 이런 것이구나.’

    때로 연주자가 그만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반주자는 듣는 회중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재치를 발휘하여 슬그머니 넘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일 또한 중요하다. 그런 멋진 반주자들이 많을진대 우리의 반주로 진정 주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날마다 죽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아 갔다. 물론 그 일이 쉽지는 않았을지라도, 은연중에 나를 죽이는 훈련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기에 주께서 허락하신 사모의 길을 걸으며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마음 편히 교회를 섬겼다고 감히 고백한다. 나를 내세우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는 사람임을 알기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간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반주자로서 부단히 노력했노라 말이다. 그럼에도 자주자주 넘어지곤 했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족한 사람, 오직 내 안에 예수님만을 모시려고 날마다 나를 죽이는 훈련을 하였다, 내게 주신 반주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려고 몸부림치며.... 그것이 바로 주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경건의 연습이리라.

    반주자가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모아지는 것 같다. 반주를 하건, 주차 안내를 하건, 설거지를 하건 무엇을 하건 간에 우리의 마음이 주님만을 바라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어려울 일이 아니다.

    이렇듯 반주자로 교회를 섬기며 나는 무수한 축복을 받았다. 반주를 하면서 말씀을 알아가는 축복만큼 큰 축복이 또 어디 있을까보냐! 말씀이 구절구절 나에게 적용되며 주의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으니, 반주자 된 특권이야말로 굉장한 것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였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나야말로 분에 넘치는 하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다, 반주자라는 직분으로 인하여.



    로마린다 대학 교회의 예배는 한마디로 너무 멋졌다. 가끔 이곳에 와 예배드리며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는 달리 그리 멀지 않았다. 한국인 교회의 장로, 집사, 모든 제직들이 한 번씩이라도 오셔서 예배를 드려보면 어떨까?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는 없다 하더라도, 개 교회의 책임자들이 잘 준비된 예배에 참석하여 많은 것을 보고 배워 본 교회에 보탬을 줄 수 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이 글을 쓰는 도중 잠시 한국을 다녀왔다. 그 옛날 초라하기 짝이 없던, 하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바로 그 교회. 이제는 한국의 유수한 교회로 성장하여 주의 귀한 영혼들을 수확하기에 여념이 없다는, 아스라이 추억어린 옛 교회에서 한 안식일을 보냈다. 아직도 교회를 지키고 계시는 어린 시절의 몇몇 분들과 정담을 나누며 마음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합창단이 몇 개요, 어린이 교회를 비롯하여 중 고교생 교회, 청년 교회 등 네 개의 교회가 예배 드릴만큼 놀랍게 성장한 고향 교회. 내 마음의 영원한 고향인 퇴계원 교회에 하늘의 크신 축복이 넘치기를!



    저 바깥 세상에 한 번 가보고 싶어 덜컥 한 발 내 디딘 대학 생활. 10여 년도 넘게 받은 교육과는 너무도 판이한 세계에서 한참을 우왕좌왕 하던 시절. 나만 홀로 절대고도에 떨어져버린 것 같은 외로움 속에서도 교회에 가면 왠지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한 주 또 한 주 재충전 받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던 교회. 당시 문성민, 류재광 찬양대장, 또래의 청년들과 더불어 내 평생 또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영원히 남아있을 소중한 교회다.

    가끔 미국에서 다니러 오셨다는 장로님도 스쳐 지났었는데, 최근 로마린다 교회에서 바로 그 장로님을 만났다. 내 기억에는 당시 인사 한 번 제대로 드린 적이 없는 것 같은 데, 그 분께서는 나를 기억하신다는 말씀에 그만 화들짝 놀랐다. 양유승 장로님은 어떤 모습의 나를 기억하실까? 그런 분들의 은근한 사랑 속에 잘 될 성싶지 않던 철부지 반주자는 면사포를 쓰며 철부지 사모가 되었다.

    내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다는 한국의 가장 유서 깊은 본부교회는 내 마음의 영원한 친정 교회다. 창립 100 주년에 걸 맞는, 영적으로 살아 숨 쉬는 교회로 도약하기를!



    때가 되어 이 땅에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한 3년 정들었던 필리핀을 뒤로하고 첫 발을 내 디딘 미국 동부의 어느 교회.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더니 나로하여금 반주자의 길을 가게 한, 그리하여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옛날 퇴계원 교회의 예식 목사님을 그곳에서 만날 줄이야!

    당신에게 맡겨진 모든 일을 훌륭히 마치고 은퇴하여 이제는 평신도로 어려운 교회를 위해 말없이 헌신하시던 목사님. 나를 보시고는 기억의 실타래를 술술 끌러 30여 년 전의 촌스럽기 짝이 없던 그 어린 계집아이를 정확히 내 앞에 내려놓으시던 명민하신 목사님. 물설고 낯 설은 미국 목회 초년병 사모에게 목사님 내외분의 사랑은 너무도 과분했다.

    끝까지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다가 하늘이 정하신 날, 이생의 모든 짐 벗고 주께서 예비한 밀실로 가신 목사님의 영결예배, 정말 송구했다. 편찮으시다는 소식에도 멀리 있다는 핑계로 한 번 찾아뵙지 못했는데.... 송권 목사님은 내 마음의 영원한 담임목사님이시다. 미망인께 전화라도 한 통 올려야지.



    유난히도 고운 목소리에 웬만한 고음도 무난히 올라가시던 친정엄마. 제대로 성악 교육을받으셨더라면 상당히 이름을 날렸을 정말 아름다운 음성의 소유자시다. 워낙 신경이 예민하여 혹 삼남매의 다투는 소리라도 나는 것 같으면 당장 날벼락을 치던 엄마가, 시끄러운 피아노 소리는 어찌 그리도 잘 참아내셨는지, 우리 집안 불가사의 중 하나. 오로지 딸에게 “피아노 쳐라, 왜 피아노 안치니? 오늘 피아노 소리 못 들었다!” 등 지긋지긋한 호통으로, 하늘이 엄마에게 맡긴 막중한 임무를 훌륭히 이루어 내신 장한 내 엄마!

    “피아노 쳤다는 에미가 어떻게 자기 아이들에게는 그리 무심하냐?”

    외손자들이 걱정되어 딸에게 하던 것보다 더 심하게 채근 하시던 한없는 열정의 소유자, 이성숙 여사! 엄마의 그 사랑을 먹고 나는 지금 여기까지 와 있거늘.... 정작 받은 것은 아랑곳없이 엄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물려받지 못한 것만 아쉬워하는 욕심쟁이 못된 딸. 아주 잘 어울리는 모녀지간이다.

    한 평생 자식만을 위해 당신 몸을 불사르시어 이제는 몸도 마음도 무척이나 약해지신 엄마의 여생에 하늘의 평안을 빈다.>

    엄마의 소박한 소원에 떠밀려 무던히도 엄마와 씨름하며 자란 그 계집아이. 나중에 자기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피아노 따위는 시키지 않을 거라며 엄마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대들던 못난 딸은 이제 옛날 자기 엄마의 소박한 소원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엄청난(?) 욕심을 부리는 철면피 여인으로 바뀌고 말았으니.... 그래서 인생은 아이러니라고 했나?

    남편은 담임목사, 큰 아들은 청년목사, 작은 아들은 음악목사, 자기는 반주자. 조만간 미주 한국인 재림교회 역사에 없는, 족벌체제로 이루어진 최초의 독립교회가 탄생할지도!! 하늘에서 보시고 뻔뻔스럽다며 호통 치지는 않으시겠지.

    그 못난 딸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가까운 장래의 감격적인 광경을 그리는 못 말리는 여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미천한 계집아이를 불러내어 주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게 하신 하늘의 놀라운 은혜를 맛보았기에 열심히 주 앞에 떼쓰는,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철부지(?) 여인으로.



    올해 베이징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막식 식전 행사에 2008 대의 피아노 연주가 있다는,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읽었다.

    ‘아, 얼마나 멋있을까? 2008 대의 피아노 연주라니,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문득, 분명 나도 참여할 하늘 유리 바닷가의 장엄한 광경이 떠올랐다.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는,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무수한 무리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었을 하고 있을까?
    확실히 믿기는 하늘 유리 바닷가에서도 나는, 보잘것없는 계집아이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힘껏 찬양할 것이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힘차게 건반을 두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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