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신작수필>세종대왕이 노하셨다

2007.02.05 08:25

정현창 조회 수:180 추천:7

세종대왕이 怒~ 하셨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정현창                                                                                                                      “앵~앵~앵~” 요란하게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커다란 소방차 한 대가 삼천둔치 쪽으로 달려왔다. 지난 일요일 오후 삼천둔치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삼천둔치엔 초등학생 몇 명이 긴 장대를 들고 둔치의 마른 풀밭에서 불을 질렀다. 겨울가뭄에 바짝 마른 풀들이 기세 좋게 타면서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둔치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그저 이맘때쯤엔 항상 그랬듯이 쥐불놀이를 하는구나 생각하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린애들의 불장난을 보고 소방서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며칠 뒤 다시 삼천둔치를 뛰다가 곳곳에 ‘소각금지’라고 쓴  푯말들이 세워진 것을 보았다. 초등학생들의 불장난을 방지하고자 시청에서 세운 모양이었다. ‘소각금지’라는 푯말을 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직도 전시행정을 하는 공무원이 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한문세대는 ‘소각금지’라는 뜻을 바로 알 수가 있지만, 한글세대인 초등학생들이 얼마나 그 뜻을 알까?  ‘태우지 마시오.’나 ‘불을 놓지 마시오.’ 같이 누구나 알 수 있는 말들을 써놓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보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할 수 있게 써놓았어야 좋을 텐데, 담당 공무원이 그저 자기 생각대로 한자를 써놓은 것 같다. 아름답고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가.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가 지금도 남아 있다. ‘잔디밭 출입금지’보다는 ‘들어가면 잔디가 아파요!’정도로 써 놓으면 얼마나 상큼할 것인가. 우리 회사에서도 직원들이 알림글을 쓸 때마다 ‘엄중 문책할 것’ 등 너무 딱딱하거나 윽박지르는 글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그때마다 주의를 주고 있다. 승용차로 도로를 달리다보면 ‘사고다발지역’이라는 푯말을 볼 수 있었다. ‘꽃다발’은 보았지만 ‘사고다발’은 보지 못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표현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사고 많은 지역’이라고 바꾸어 써놓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썼더라면 예산낭비가 없었을 것을. ‘갓길’이란 말이 있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 도로 등의 양쪽 가장자리 부분을 말하는 말인데 전에는 노견(路肩)이란 한자를 썼었다. ‘갓길’은 이어령 님이 초대 문화부장관 때 주장하여 고쳐진 말이다.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우리들 주위에는 아직도 한자어나 외래어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씌어지고 있다. 요즘은 한 발 더 나가 인터넷을 통한 젊은이들의 언어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지 오래다. 공직자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한자들과 젊은이들이 재미로 쓰는 은어 사이에서 우리의 고운 한글은 질식사 직전에 있다. 늦은 나이에 수필을 배워 210편이 넘는 많은 습작을 써왔다. 요즘에는 어줍지 않게 시를 60편 가까이나 썼다. 하지만 글을 많이 쓰면 쓸수록 어휘의 빈곤을 느낀다. 마침 내가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에 한글 맞춤법 기능이 첨가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만일 옛날처럼 원고지에 직접 글을 쓴다면 얼마나 엉망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찔해진다. 김학 교수께서 수업시간마다 강조하시는 말이 있다.   “겨울나무처럼 글을 써라.”   “초등학생들이 읽어도 알아 볼 수 있도록 쉽게 써라.”   “한자를 쓰지 말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서 써라.” 하지만 지금도 한자와 외래어를 많이 섞어 써야 멋진 글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늘 글을 쓰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그것이다. 나도 글을 쓰면서 ‘소각금지’라는 푯말을 붙인 공무원처럼 아무생각 없이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는지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요즘 인터넷에서의 악성 댓글 때문에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여가수 한 사람이 자살한 일이 있었다. 이렇듯 인터넷의 말들은 이미 폭력수준을 넘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걱정하는 단체가 있어 다행이다. 지난해 여름 KT문화재단에서  ‘네트켓 지키기’라는 주제로 포스터 공모전이 있었다. 그중에서 ‘악성 댓글, 세종대왕이 노~하셨다.’라는 작품이 대상을 차지했다. 포스터에는 세종대왕의 잔뜩 찡그린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함부로, 재미로 쓰는 우리들의 말과 글을 내려다보시는 세종대왕께서 노(NO)라고 노(怒)하시는 일이 결코 생기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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