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2007.02.05 18:53

이의 조회 수:97 추천:10

어머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 이의



  노모를 뵐 때마다 생명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본다. 금년으로 93세시다. ' 그래 살만큼 사셨으니 이제 가셔도 괜찮아.'라고 나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오늘은 어떠신지 궁금해 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지난해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앞뜰에 나가시어 콩이나 파도 심으시더니 두어 달째 문 밖 출입을 못하신다.

난 어느날 어머니에게 물었다.
"지금 누가 제일 보고 싶으세요? "
당연히 친정 어머니를 말씀하시리라 생각 하였다. 그런데 어머니의 대답은 날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네 할머니가 보고 싶다."
"네에엤?"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와 어머니는 보통 고부 사이와는 다르다고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내 반응을 재미있어 하시며 웃으셨다. 돌아가신지 40년이 되는 시어머니를 보고 싶어하는 며느리가 우리 어머니 말고 또 있을까?
"네 할머닌 참 현명하신 분이셨다. 예쁘지도 않은 나를 끔찍이도 위해 주셨지, 나도 시어머니께 잘 하려고 했지만 그런다고 누구나 며느리를 예뻐하지는  않거든."

중매를 선 큰할머니 말씀만 듣고 결혼식날 처음 대면한 외며느리의 외모에 매우 실망하셨다고 한다. 키도 작고 이마가 튀어 나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어머니의 이마는 외손녀인 내 딸이 닮더니 나의 외손녀 딸까지 닮았으니 대를 이을 모양이다. 그런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마음을 주실 일이 일어났다. 할머니가 병이 나신 것이다. 할아버지의 정성을 다한 처방에도 차도가 없고 병이 점점 깊어졌다. 새댁인 어머니는 친정 어머니가 하시던 방법대로 치성을 드리기로 하였다. 춥고 깜깜한 겨울 한 밤중에 물동이를 이고 동네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오자면 너무 무서워 온 몸이 떨리고 오그라들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정성껏 치성을 드리기 시작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물동이를 이고 막 대문을 넘으려 한 발을 문 밖으로 내딛은 순간 귀청을 찌르는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섬뜩함을 떨치고 물을 길어 집에 오니 시어머니께서 일어나 앉아 계셨다. 오늘 치성은 직접 하신다며 장독대로 오시어 며느리의 손을 꼭 잡으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원래 중신한 사람이 할머니께 천거한 말이 바느질 솜씨 좋고 음전하여 이집 며느리로 마땅하다고 한 말이 증명되어 거북하던 동서 사이도 원만해졌다.이후로 할머니는 딸들은 제처두고 오로지 며느리만을 사랑하셨다고 한다. 방학이 되어 시골에 가면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조금 색다른 음식만 있으면
"에미 좀 줬으면 좋겠다."
이렇듯 살뜰한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결국은 손자와 손녀까지도 그리도 끔찍히 생각하셨던 듯싶다.

지금도 어머니가 계신 방 한 구석에는 오래된 재봉틀이 놓여있다. 어머니가 새색씨 때부터 함께 늙어온 재봉틀이다. 오래된 물건은 버려지기 마련이지만 70년이 넘었는데도 이 재봉틀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제구실을 하였는데 지금은 사용하는 이 없어 먼지만 뽀얗게 앉아있다. 당시 재봉틀 값은 지금의 컴푸터 값보다 고가였던 것 같다. 바느질 솜씨를 높이 사신 시어머니께서 무리를 하면서 사주셨다고 한다. 농촌에 살면서 밭에 나가 일 안하고 산 것도 모두가 이 재봉틀 덕이었다고 회상하신다. 세모시 두루마기로 시작해서 잠뱅이 속곳까지 엄마의 손을 거친 바느질이 품삯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대신해 주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친정 나들이를 가시는데 새 버선에 볼을 대고 기워 놓은 버선을 신고 가셨는데 얼마나 섬세하게 기웠는지 잔치집에 모인 사람들이 새버선인지 기운 버선인지 모르겠다고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재주 많은 사람 바쁘기만 하다.'는 속담과 같이 한평생을 바쁘게 사셨다. 자식들의 학비에 보태려고 시작한 시장 바느질은 동대문 시장 장사꾼이 되어 우리 형제들을 대학까지 다닐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주셨다. 자식들이 모두 부모 곁을 떠나자 심심풀이 삼아 시장을 늦도록 다니시더니 이제는 문 밖 출입조차 할 수 없도록 쇠약해지셨다. 어느날 내 곁을 떠나시면 회한없이 보내드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누구나 가는 길이건만 내 어머니라서일까, 생명의 줄을 늘이고 싶을 뿐이다.



                                                            (2007.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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