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어머니의 휴가

2008.07.21 15:30

구미영 조회 수:93 추천:12

어머니의 휴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구미영 "아버지! 저 휴가좀 주세요." 요즘 즐겨보는 주말 연속극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대사다. 이 말은 40년 가까이 시아버 지, 남편, 자식들, 시동생 뒷치닥거리하느라 일방적으로 희생한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을 대변한 말인 것 같다. 딸이란 성별이 그리 축복받지 못한 시대에 태어나 남자 형제에 밀려 교육도 받지 못하 고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그만이라는 인식으로 바느질이나 요리 등 집안일만 배우며 처 녀시절을 마감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그때 그시절이 그려진다. 결혼 후엔 아이를 낳고 집안일과 하루 세 끼 걱정만하다 어느새 중년을 넘겨 버린 그녀들. 내 엄마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주 평범한 그때 그시절의 엄마다. 하지만 나도 어느새 그녀들처럼 닮아가고 있다. 하루 세 끼 챙기는 일이 나의 가장 큰 과제다. 매번 다른 반찬, 다른 찌개가 올라 오는 게 아니어서 식사 시간만 되면 남편의 눈 굴러가는 소리와 아이들의 반찬 가짓수 세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스트레스는 나의 속을 거북하게 만든다. 엄마, 여보, 진이 엄마야, 동서, 이 네 단어들은 내이름 석자보다 더 많이 듣는 소리 다.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 이름은 어쩌다 이동통신 회사나 아니면 보험회사에서 걸려 오는 전화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나 언니들에게서 오는 전화도 '나다!' 이 한마디로 시작되었으니까. 부부 싸움이라도 하는 날이면 작은 방 하나 얻어 힘들 때 쉴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했 다. 친정으로 가버리면 눈치 빠른 엄마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가슴을 미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남편, 아이들과 그 주말 드라마 '엄마, 뿔났다'를 함께 본다. 남편은 보통 엄마는 생각지도 못하는 그 주인공의 선언들이 기가 막히다고 한다. 자기도 엄마가 있고 누나가 있으면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어쩌다 손님이라도 데려 오면 밥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를 왜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더운 휴가 때 계곡이나 바다로 피서 가자는 남편에게 나는 그냥 시원한 절에나 가서 마음 갈아앉히고 오자고 한다. 계곡이나 바다는 아이들과 남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피서지이지만 아이들과 남편이 물속에 들어가 있을 때 여자들은 자리를 지키면서 끼니 준비를 해야 한다. 더운 여름날 고기를 굽거나 닭을 삶는 일이 그들에겐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다. 물속에서 나온 아이들의 몸을 닦아주고 옷을 갈아 입히며 밥을 먹이고 그러다 보면 해는 벌써 서쪽으로 기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설거지와 빨래할 일을 생각하며 엄마를 떠올린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 텐데, 당신 자신은 즐기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치어 여자라는 생각을 해보며 살지 못 했을 텐데 하며 나는 가슴으로 운다. 자식들 공부 시키고 살만큼 해놓으니 이젠 손녀딸까지 봐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시는 우리 엄마. 우리 엄마의 자아 찾기는 언제쯤일까? 드라마 주인공이 1년의 휴가를 받아 놓고 자기만의 공간으로 떠나면서 이렇게 말한 다. "좋다!" 1년밖에 안되는 시간이지만 40년의 세월을 보상 받으며 자아를 찾아 나가는 그녀의 용기에 자꾸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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