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항해

2008.07.28 22:15

신기정 조회 수:110 추천:15

인터넷 항해
행촌수필문학회 신기정



참 좋은 세상이다. 조금의 수고로 인터넷 지식의 바다에서 마음껏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귀찮은 선마저 잘라버려 달리는 차 속이든 어디든 장소의 제약마저 없어졌다. 며칠이 걸렸던 일도 몇 번의 검색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 마치 해적들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은 듯한 횡재에 버금간다. 그러나 왜 좋은 일에는 항상 그에 상응한 그늘이 있는 것일까? 인터넷의 편리함 뒤에 자리한 해킹, 개인정보 유출, 악성 댓글, 인터넷 중독이나 스팸 메일과 같은 복병들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비둘기가 주위에 있으면 말을 조심하라.”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발견하면 긴장하라.”
청와대 직원들이 최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받은 보안교육 내용이다. 마치 공상과학(SF)영화 속의 이야기 같은 첨단기술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편리함을 위해 개발한 기술이 똑 같은 무게로 악용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예로부터 비둘기는 귀소본능이 있어 전서구(傳書鳩) 등 비밀통신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요즘에도 무리와 떨어져있는 외톨이 비둘기는 도청장치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많으니 조심해야할 대상이란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제대로 들어맞는다. 잠자리도 카메라와 송신장치를 갖춘 ‘로봇 정찰기’일수도 있어 경계해야 한다. 실제 몇몇 선진국에서 곤충이나 작은 동물 모양으로 위장한 초소형 로봇들이 이미 개발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여름 하늘을 수놓던 붉은 고추잠자리의 추억마저 잊어야할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건물 안이라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국가정보원은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때 나오는 전자파를 건물 밖에서 수집, 분석하여 문서의 내용을 알아내는 장면까지 시연했다고 한다. 이쯤이면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감시권력의 대명사인 빅 브라더(Big Brother)가 “거 참, 세상 편해졌구나.”라고 감탄할 만도 하다. 그는 사람들을 감시하고자 화장실에까지 ‘텔레스크린’을 설치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처음 빅 브라더는 사회혼란을 막으려는 선의의 보호적 감시에서 출발했다. 요즘 부자동네에서 방범용 CCTV를 설치하여 범죄예방을 꾀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정보의 독점과 일상적 감시는 필연적으로 가공할 만한 사생활 침해로 나타났다. 더하여 민중을 유혹하고 정보를 왜곡하여 사람들을 통제하는 거대한 독점 권력으로까지 변하게 된다. 처음 소설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빅 브라더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요즈음 정보통신기술은 빅 브라더를 오히려 더 강력한 현재진행형으로 바꾸어 놓았다.

1984년 미국가수 Rockwell은 ‘Somebody's watching me’라는 노래로 감시당하는 사람의 공포와 고독을 전하여 인기를 끌었다.

  지금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까?
  항상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야.
  안전하다는 느낌을 전혀 가질 수 없어.
  내겐 사생활이 없어.

어떤 이유로든 감시당하는 것은 기분 나쁘고 소름끼치는 일이다. ‘사생활 보호’가 헌법상의 권리로 보호받는 이유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한 순간도 감시망을 벗어날 수가 없다. 교통카드 기록은 어느 정류장에서 몇 시 몇 분 몇 초에 차를 탔고, 어느 곳에서 내렸는지까지 소상히도 알려준다. 신용카드를 써도 마찬가지다. 원하지 않아도 곳곳에 널려있는 CCTV에 찍히고 있다. 편리하게 쓰고 있는 핸드폰도 달리 보면 가장 확실한 위치추적장치가 된다. 집안에서의 은밀한 대화마저 먼 하늘의 위성에서 생생하게 구분하여 녹화를 한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가까이 사생활침해 방지와 관련하여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모든 통신사업자는 수사기관이 원할 때 감청할 수 있도록 감청설비를 갖춰야 한다. 또 휴대전화를 비롯한 전화 통화내역과 전자우편, 메신저, 로그 인 시간 및 장소(IP주소) 등 인터넷 이용기록을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보관해야 한다. 이 역시 수사기관이 원할 때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개정안에 찬성하는 쪽은 효율적인 범죄수사로 범죄예방 및 첨단기술의 유출과 산업피해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반대 측은 확정되지 않은 범죄의 수사편의를 위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사생활이 침해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현재 수준만으로도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수집과 유출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세계1위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거기에 추가하여 자료보관을 의무화한다면 임의 유출과 불법도용의 가능성을 더욱 키우게 된다. 통신사업자의 내·외부 관계자에 의한 비밀감청이나 수사기관의 오남용을 막을 대안이 없다면 반대 측의 우려는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 시간을 두고 좀 더 많이 고민해야할 이유이다.

우리의 인터넷 문화도 더 성숙한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터넷은 온갖 정보를 공유하여 지식기반사회를 앞당기게 한 공로가 크다. 그러나 익명성의 편리함 뒤에 숨어서 교묘히 이득을 챙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았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인터넷 실명제’가 거론되지만, 이 또한 헌법상 인정된 표현의 자유 보장과 대칭점을 이룬다. 대안은 결국 역지사지(易地思之) 뿐이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 실천하는 일이다. 누리꾼 스스로 정보의 바다를 더럽히는 오염행위를 막아 자유로운 인터넷 항해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자정력(自淨力)이 떨어지면 언제든 그 빈자리에 인위적 규제와 통제의 칼날이 파고들 것이다. 어떻든 나는 마우스를 휘저으며 청정한 지식의 바다를 유영하는 자유인이고 싶다.
                        (2008.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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