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나는 지금 휴가 중

2008.08.06 16:07

오명순 조회 수:96 추천:20

나는 지금 휴가 중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오명순 “저는 지금 휴가 중이오니 급한 용건이 있으신 분은 메모를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음성녹음을 해놓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차를 타고 어딜 간다는 것이 두렵다. 허리가 탈이 난 탓이다. 아픈 걸 참고 8개월을 버텼더니 밤낮으로 고통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일도 그만 두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수술하지 않고 한방치료와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또 그동안 미루어 왔던 다른 여러 가지 건강 체크를 해서 청소를 할 것은 청소하고 채울 것은 채우며 한 달을 보냈다. 몸의 기둥이 허둥대니 오래 걷고 오래 서 있고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자주 자세를 바꾸어 주어야 하므로 민망할 때가 많다. 때로는 체면불구하고 눕기까지 한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니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어서 난처하다. 우리 몸은 허리가, 가정은 가장이, 나라는 대통령이 건강해야 한다. 기둥이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싫다면 당장 그만 두라고 권하고 싶다. 인정에 끌려서, 주위 시선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리다가는 나처럼 되기 쉬운 까닭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더 참아보자 억지로 계속하면 몸이 상하고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니 속히 결단해야 한다. 다시 회복하는 데까지 그보다 더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하고 회복할 수 없는 아픔이 따를 수도 있다. 애벌레가 자기를 포기하고 번데기가 되어야만 아름다운 나비로 태어날 수 있고, 매미는 7년여를 기다려 날개를 달고 한 달을 살다가 생을 마친다지 않던가. 그들은 변신을 꿈꾸었기에 아픔을 참을 수 있었고, 그렇게 기다려서 제 몫을 다 해 낸다. 때로는 아픔과 긴 기다림이 이처럼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도 한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참고 기다려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잃은 것도 있지만 반드시 다 잃은 것만은 아니다. 몇 번의 기회를 놓쳤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반드시 더 좋은 기회는 또 찾아 올 것이다. 너무 사랑해서 집착하고 더 잘 해 주려고 하다 보니 아픔도 컸다. 이제 내 몸의 세포들이 하나씩 살아나고 있다. 그 아픔 때문에 죽어가던 세포들의 새 살 돋는 소리가 들린다. 온 몸이 구석구석 피가 돌고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가벼운 것을 왜 그렇게 얽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 했을까. 나 아니면 안 되는 줄 알고, 내가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내가 그만 두면 배신자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내가 필요하고 그만큼 있어 주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 대신 잇몸이란 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어찌 됐든 나는 이제 벗어났다. 새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때도 내가 선택했었고 지금도 또 내가 선택해야 만 한다. 무엇인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가슴이 설레고, 힘이 솟으며, 눈동자가 커진다. 가끔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고 또한 감당할 힘도 주신다는 것을 체험으로 믿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내 몸이 긴 휴가를 끝내는 날, 나의 새로운 도전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나는 지금 휴가 중이다.                        (2008. 8. 7.)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214,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