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장승이 되어버린 해바라기

2008.08.13 06:21

이금영 조회 수:89 추천:9

장승이 되어버린 해바라기 전주안골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이금영 아침공기가 상큼하다. 이 아침에 창문을 열고 유유히 달리면 아침 특유의 풋풋한 풀 냄새가 향기롭다. 도로변에 피어있는 백일홍이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보인다. 차는 무주를 향해 달린다. 조카들과 리조트 두솔마을에서 오후 두시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우리 부부는 먼저 출발하였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 일찍 나서서 우리의 추억을 더듬어볼 요량으로 옛 도로를 선택했다. 딱 일 년 만에 다시 찾는 무주다. 그런데 그곳은 수많은 날을 오고 갔지만 전혀 생소하며 낯선 곳도 있었다. 구불구불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가니 학교 앞 주유소가 먼저 우리를 반겨주었다. 삼유리 마을, 그곳에 도착하니 어제 떠났다가 오늘 돌아오는 것 같은 착각 속에 친근감이 묻어났다. 아담하고 예쁜 우리 집, 이미 폐교가 된 학교는 인적이 끊겨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굳게 닫힌 교문에 붙여진 폐교 안내문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본교는 1953년 개교하여 2008년 2월 29일 폐교하였습니다.” 이렇게 삼방초등학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만했다. 관사 앞 해바라기 한 그루, 빨래줄 옆 뜨락에 심어 유난히 내 손길이 닿았고 어찌나 튼튼하게 잘 자랐던지 빨래줄 바지랑대로 이용해도 좋을 것 같았던 그 해바라기를 남겨놓고 떠나 왔었다. 그런데 매섭고 모진 한파도 무던히 견뎌내고 잡초 속에서 앙상한 줄기로만 남아 고개를 떨군 채 장승이 되어 우리 부부를 맞아주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해바라기는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말하는 듯하였다. 이곳에 부임한 남편을 따라와 애면글면 잡초와 씨름하며 가꾸던 텃밭도 쑥대머리가 되어 있었고, 후문 담장 밑의 봉숭아꽃은 누구하나 보아주는 이 없어도 예전 그대로 꽃을 피우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아름답고 조그만 우리 집, 행복했던 관사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급식소 앞 화단에 돌보는 이 없어도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들국화 몇 포기를 솎아서 아파트화단에 심어볼 생각으로 신주단지 모시듯 차안으로 모셨다. 시골오지의 인구가 줄면 따라서 아이들의 숫자도 적어지기 마련이다. 학생 수가 줄어 폐교된 삼방초등학교를 뒤로 하고 무주구천동 계곡으로 향하였다. 요즘같이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 구천동계곡은 시원한 물소리와 산새소리, 매미소리,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까지 한데 어우러져 그곳이 피서지임이 실감났다. 구천동계곡의 상류를 따라 우리도 그들과 나란히 걸었다. 길 가에는 시화가 전시되어 있어서 마음에 와 닿는 시를 몇 편을 읽을 수 있었다. 녹음방초(綠陰芳草) 속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니 어찌나 시원한지 도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솔바람이 마냥 시원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유난히 우리 부부를 챙겨주던 무주사람 유치원 선생님과 약속시간이 다가왔다. 가슴이 설렌다. 그동안 몇 번의 이메일로 소식만 주고받았지만 헤어진 뒤 처음 만남이다. 어서 보고 싶었다. 우리는 만나서 포옹도 하고, S라인으로 사진도 찍고, 마주앉아 점심을 맛있게 먹으며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계절학기 대학원을 수강중이라며 청주에서 달려왔다.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손잡고 걸어 본 뒤 아쉬움을 달래며 헤어져야 했다. 오는 이 가는 이, 옹기종기 둘러않은 피서인파만큼이나 많은 차량들, 이 시대는 마이카시대라서 고유가가 무색할지경이다. 우리 같이 모처럼 더위를 피해 떠나온 피서객이겠지 싶었다. 리조트 두솔마을에서 조카들과 합류하였다. 시골 큰댁에서 명절과 부모님 제사 때 만나는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가슴속까지 시원한 천연에어컨바람과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무주의 밤은 깊어만 갔다. 밤새 내린 장대비와 회색하늘은 어디로 가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몇 점 떠있는 맑고 화창한 아침이다. 비갠 골짜기는 더 깊어 보이고 숲은 더 푸르렀다. 향적봉으로 오르는 콘도라 안에 서울에서 2학년, 5학년 초등학생을 데리고 와서 여름방학 여행을 즐기는 가족과 동승했다. 그들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대천해수욕장을 들러 무주에 왔는데 어디를 어떻게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할지 예비지식이 없노라고 하였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이루던 곳이 있다. 석모산의 기암절벽을 뚫고 동서를 통하는 옛 신라와 백제의 관문역할을 했던 나제통문이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있으니 그곳도 가보라고 하였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무주 33경을 인터넷으로 알아보라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콘도라에서 내려 한 발짝 내딛는 순간 이곳의 계절이 어느 때인가 싶을 정도로 기온이 차갑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설천봉의 휘몰아치는 바람에 밀려서 건너 쪽 산 너머의 구름이 뻗친 내 손에 잡힐 것 같이 다가왔다. 폭풍 같은 바람에 커다란 구름 떼가 향적봉을 에워싸다가 금방 사라지고 광활한 시야가 운해를 이루었다가 다시 또 맑게 트인다. 나는 꿈을 꾸는 듯이 그 경이롭고 신비스런 아름다움에 마냥 취했다. 세찬 바람소리와 사람들의 탄성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가히 시공을 초월한 고원지대의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위력이 놀라웠다. 온몸이 시원하다 못해 시리기까지 하여 옷깃을 여미지 않으면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다. 언젠가 이곳에 왔을 때는 가을이었는데 온통 안개가 끼고 시야가 흐렸다. 고운 단풍도 보이지 않고 너무 추워 서둘러 하산해야만 했었다. 오늘은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설천봉에서 그대로 굴러도 흙 한 점 묻지 않을 것 같은 녹색의 대가 펼쳐졌다. 저 너머 짙푸른 산 산 산, 그 아래의 맑은 호수, 비 갠 설천봉의 아침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한라산이나 고원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버틴다는 주목의 그 자태가 특이하여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전주로 돌아오는 길에 시야에 들어오는 들녘의 벼이삭들과 인삼밭, 죽죽 뻗어있는 옥수수도 볼만했다. 아직은 태풍이 오지 않아 참 가지런하고 정갈했다. 얼마나 공들여 가꾸었으면 저렇게 농사가 잘 되었을까! 올가을에는 풍년을 기대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2008. 08. 13.) ㅏ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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