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또 네 짓이냐

2008.08.25 05:21

형효순 조회 수:81 추천:9

또 네 짓이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형효순 긴 장마가 지나고 모든 것을 익혀 버릴 것처럼 태양이 작열하고 있다. 이런 더위가 있어야만 곡식들은 알갱이를 잉태한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남편과 논에 약을 치러 나가니 잠에서 덜 깬 나를 반기는 것은 달맞이꽃의 노란 웃음이다. 안개가 사방에 가득하고 풀잎에 앉은 이슬이 함초롬하다. 약통에 물을 담고 줄을 늘여 놓는다. 분무기에서 하얗게 퍼져나가는 농약의 포말들을 보며 벼들이 통통하게 이삭을 배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란다. 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농약을 전혀 하지 않고서는 수확할 수가 없다. 시집 와서 얼마 되지 않는 새댁소리를 듣던 때였다. '팽고개'에 있는 수렁논 서너 마지기에 유난히 물달개비라는 풀이 많았다. 물달개비는 한 번 뿌리를 내리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퍼져 식구가 있는대로 논을 매러 갔는데 사실 그 풀이 물달개비란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생전 처음 논을 매던 나는 작고 귀여운 보라색 물달개비 꽃에 반해 차마 뽑아내지 못하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아가면서 더러 남겨 놓았다. 오는 길에 식구들 몰래 논 둑에 버려진 물달개비를 가져와 뒤란 장독가에 어머님이 아끼시는 꼭정백이 질그릇에 옮겨 심어 놓았다. 아침저녁 보라색 꽃을 은밀하게 들여다보고 즐겼는데 그만 된장을 뜨러 가셨던 어머님에게 들키고 말았다. 물달개비가 든 꼭정백이는 마당에 죄인처럼 옮겨졌다. 도대체 누가 이 원수 같은 풀을 심어놓았는지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모두 무사히 넘어가지 못할 문초(?)가 아버님 주도 아래 치러졌다. 그 때 우리 식구는 13명이었다. 그런데 어찌하겠는가? 차마 맏며느리인 내가 한 톨이라도 더 먹기위해 땡볕에 그을려 가며 논에서 뽑아 없애는 풀을 집으로 모셔와 심었노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마침 학교에 다녀오는 큰 딸애가 다 뒤집어 쓰도록 발뺌을 했다. 딸애는 내가 아니라고 엉엉 울고 물달개비는 무참하게 뽑혀 마당에 내 던져졌다. 그 뒤로 몇년이 지나서 범인이 나라는 것이 밝혀졌다. 촌에 살면서도 지천에 피고 지는 풀꽃들을 가져다 장광에 심고 보는 내 소행에 식구들이 손발을 들었지만 나는 풀꽃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올해도 우리 논에는 물달개비가 많이 났다. 그리고 오늘 기어이 그 물달개비 때문에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일곱 마지기가 넘는 논에서 남편 혼자 들어가 약을 치고, 나는 논둑에서 줄을 풀어주거나 감아주면서 일을 하는데 하필이면 논 고랑에 그 매혹적인 보라색 물달개비꽃이 피어있지 않은가! 줄을 잡는 것도 잠시 잊어버리고 고랑에 업드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싱그러운 꽃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의 고함소리가 천둥치듯 들려왔다.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아뿔사, 약 줄이 논둑에 있는 말뚝에 걸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걸 모르는 남편이 힘껏 줄을 당기다 보니 약 통에서 줄이 빠져 사방 천지에 약물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논에서 뛰어나온 남편은 이미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다 알고 있었다. "아이고 이놈의 마누라야! 언제 철이 들래? 나이가 몇 살이냐? 몇 살~!" 남편은 화가 나서 소리치는데 내 눈에는 오직 물달개비 꽃만 어른거렸다. 이 일로 약 치는 일이 30분이나 지연된 것을 보면 나도 철이 없기는 없는 모양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돌아오는 길에 그 물달개비를 한 아름 뽑아 그날 그 꼭정백이에 보란 듯이 심어 금붕어가 살고 있는 확독 옆에 놓아 두었다. 마당에서 돔부콩을 널고 계시던 시어머니, "쯧쯧, 또 네 짓이냐?" *물달개비: 외떡잎식물 분질배유목 물옥잠과의 한 해 살이 풀로 논이나 못의 물가에서 자란다. 7-8월에 보라빛 꽃을 피운다. 한 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곡초'라는 약재로 쓰는데, 고열, 해열,천식에 효과가 있다. 한국, 일본, 타이완. 중국 인도 말레시아 등지에 분포한다. *2004년 농어촌여성문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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