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농부 연습

2008.08.29 08:46

채선심 조회 수:88 추천:9

  농부 연습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채선심 무성한 콘크리트숲이 싫어 정감이 가는 나무숲을 찾아 이곳에 온 지도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농촌은 힘들다며 주위에선 말렸지만, 그래도 복잡한 도시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했었다. 자라면서 보는 농촌의 일은 어렵게 보이지 않았는데 내가 직접 해보니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첫해에는 못자리를 잘못하여 나만 흉년을 만나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농촌을 택했던 게 잘못된 거라 생각하며 도회지를 동경했었다. 그러나 집이 문제였다. 위치도 좋았지만 아담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이어서 남에게 주기 싫었다. 달팽이처럼 집을 지고 이사를 다닐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도회로 나가는 데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따랐다. 그래서 1년만 더 버텨 보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 이듬해에는 첫해의 실패를 거울삼아 하나하나 조심스레 엮어 나갔다. 그러면서 조금씩 농부가 되어 가는 모습이 느껴졌다. 내가 지은 벼가 정미기에서 새하얀 쌀로 콸콸 쏟아져 나오는 재미는 농부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리라. 빨갛게 익은 고추와 풀벌레 울음소리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찬란한 아침 태양을 받으며 풀잎에서 반짝이는 오색영롱한 보석들은 나만의 것이었다. 농부 아닌 그 누가 이처럼 아름다운 보석을 가져 보았으랴. 가끔 부푼 마음으로 귀농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우리도 덩달아 가슴이 설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부풀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밀조밀한 보따리를 끌고 도로 도시로 돌아가는 게 농촌의 실정이다. 참고 뿌리를 내리면 아직 살 만도한데 농촌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의 농부생활은 즐거움의 연속이다. 몇 년 전부터 부업으로 누에를 치게 되었다. 지금은 하우스에다 비닐을 깔고 누에를 키우며 뽕을 가지 채 던져 준다. 저녁때 뽕을 많이베어다 누에에게 밥을 주고 이튿날 아침에 나갔더니 누에가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해 놓았었다. 뽕밖에 다른 건 먹지 않은 누에가 뽕나무를 감고 올라가 꽃을 피운 나팔꽃 넝쿨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 누에와 나팔꽃만 남겨진 그 모습이 놀라웠다. 하얗게 쌓인 눈 위에 분홍색과 보라색 나팔꽃이 넝쿨로 수 놓아진 모습이라니. 내 나이도 잊은 채 소녀처럼 "야,예쁘다. 정말 예쁘다!"만 연발했었다. 농부가 아니면 이 진풍경을 그 누가 구경할 수 있으랴. 누에가 하얗게 굶고있는 모양이 안타까운지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뽕 안가져오고 멋혀? 지금!" 정신을 차리고 뽕을 가져 왔지만 뽕으로 덮어 버리기에는 참으로 아까운 장면이었다. 그러나 나팔꽃의 수효가 많아져 뽕나무를 뒤덮는 바람에 뽕나무가 자라지 못했다. 뿐만아니라 뽕을 따는 작업도 힘들었다. 이듬해 봄부터 나팔꽃의 떡잎만 나오면 뽑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듬성듬성 하나 씩 놓아 두었다. 그래서 그 이듬해 또 그 이듬해에도 눈 위의 나팔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렇게 뽑았는데 어디서 또 나온다지?"하여 나는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오락가락 하는 농업정책에 콩을 심을까 팥을 심을까 헷갈리지만 그래도 품에 안기고 싶은 게 농촌이다. 먼저 수확한 야채도 이 집 저 집 나누어 먹고 비 오는 날은 부친개로 넉넉한 인심을 푼다. 현란한 조명이 아닌 묵묵한 가로등이 지켜 주는  농촌은 아직도 풋풋한 사람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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