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봉하마을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2008.05.10 08:28

최윤 조회 수:75 추천:10

봉하마을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최윤 문학기행을 떠나기 전날 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잠을 설쳤다. 초등학교 때 정말 신기하게도 소풍날만 되면 비가 내렸다. 아마도 못된 요정이 나의 설렌 마음을 시기하여 벌이는 소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날도 그랬다. 아빠가 지붕에 달아놓은 풍경 소리가 계속 귀에 들려, 선잠을 자면서 ‘바람이 이렇게 부니 내일 봉하마을 가는 것은 무리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다음 날, 다행히 비는 멈췄지만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나는 집결지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으로 향했다. 가보니 교수님과 회장님이 미소로 맞아 주셨다. 시간이 되자 버스 안에는 형형색색의 나들이 복을 차려입은 수필창작반 학생들이 하나둘씩 올랐다. 낯선 얼굴들이 많았지만 모두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웠다. 감기에 걸렸지만 참석한 오명순 선생님이랑 짝꿍이 되어 문학기행은 시작되었다. 진안에 사는 김재환 님을 모시고 가려고 진안휴게소에 들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는 조금 내리고 있었다. 진안에서 타신 김재환 선생님의 중앙 분리대를 넘어왔다는 말이 어찌나 재밌던지 웃음이 났다. 열정이 대단했다. 잠시 후, 떡과 과일 등 맛있는 간식이 나누어졌고 33명의 자기 소개가 시작 되었다. 나이나 직업이 모두 달랐지만 누구나 문학을 사랑한다는 점, 작은 사물에도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모두들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어디선가 글을 써본 사람들이겠지 생각하니 따스한 물에 몸을 담갔을 때처럼  평온함이 느껴졌다. 11시 반쯤 진영읍에 도착했다. 먼저 그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메뉴는 양푼동태찌개였다. 맛의 고장 전라도 사람들이라 입맛에 안 맞을까 걱정하였다지만 모두 만족한 얼굴들이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본격적인 여행은 시작되었다. 버스로 5분 정도 가니 작은 마을이 보였다. 펄럭이는 수많은 환영 현수막들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쳐도 모를 만큼 작은 곳이었다. 봉하마을은 옛적에 봉화산 봉수대 아래 마을이라고 해서 ‘봉하’ 라 했다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우뚝 솟은 봉화산이었다. 봉화산의 정기를 받은 탓인지 이곳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권영숙 여사, 그리고 국회의원을 배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득 생각난 건 옛날에는 이런 공기 좋은 시골에서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지만 요즘 같이 사교육열풍이 부는 시대에는 과연 그런 일이 있을까 생각하니 왠지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바람은 많이 불었지만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 날씨는 맑게 개었다. 관광인파들과 함께 대통령의 생가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보았다. 대통령의 외모답게 지금 사는 곳도 소박해 보였다. 오히려 옆 집 이장님의 집이 더 높고 화려해서 우리들은 수필 강의시간에 들었던 ‘당나귀와 금불상’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그 뒤 봉화산 등반이 시작되었다. 오 선생님은 감기 때문에, 난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도중에 쉬었다. 나이 든 분들도 거뜬히 정상까지 올라가셔서 좀 미안했고 아쉬웠지만 그 대신 오 선생님이랑 친구가 된 기분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고향 이야기와 친구들이랑 놀았던 이야기 그리고 수필반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모든 분이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내려가는 시간과 대통령이 나오는 시간이 맞았다. 집 앞으로 가니,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노무현 대통령이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옆 집 아저씨처럼 소박한 인상의 대통령을 보니, 대통령을 꿈에서만 봐도 길몽이라는데 난 앞에서 보니 앞으로 운수가 좋겠다는 생각에 들떴다. 자랑스럽게도 수필반 온영복 선생님이 “카터 대통령처럼 되십시오.” 하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대표자로서 말씀을 하셨다. 잠시 뒤, 대통령이 들어가고 봉하마을을 떠나고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버스가 출발하고 산행에 지쳤는지 모두 잠이 들거나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누거나 했다. 나도 짝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다음 기행지인 진주에 도착했다. 여러 문학작품에서 나와 있기도 한 남강은 이름값을 할 만하게 푸르렀고 멋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촉석루였다. 의기 논개가 왜장을 품에 안고 뛰어들었다는 남강이다. 가수 이동기의 ‘논개’ 라는 노래와 여러 드라마에서 각색되곤 하는 논개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처음으로 찾은 것이다. 구성진 경상도 말씨가 묻어나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촉석루기행은 시작 되었다. 먼저 사람들이 ‘충무공 이순신’인 줄 알고 지나치는 동상 앞에서 멈추었다. 그 동상의 인물은 이순신이 아니라 ‘충무공 김시민’이라고 했다. 이순신은 매체를 통해서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김시민 장군도 그에 못지않게 공을 세운 인물로 진주에서는 이순신 장군보다 더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날씨가 좋은 탓도 있겠지만 촉석루의 경치는 참 맑고 담백한 느낌이었다. 나무나 풀도 모두 옛날에 멈춘 듯 점잖고 여유 있는 선비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들떠서 시끄럽게 떠들며 가기에는 왠지 숙연한 기분이 들어 조용히 혼자 돌아다니고 싶은 기분이었다. 남강에는 예전에 운행하다 지금은 그저 관상용일 뿐인 나룻배와 함께 관광객들을 태운 오리배가 떠다니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구분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개가 저 나룻배에 구조되지 않았을까 상상하는데 오리배가 통통거리며 다가오니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논개가 저 오리배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다음엔 논개의 사당에 가보았다. 친일 화가가 그렸다는 이유로 논개의 초상화가 곧 바뀐 그림으로 다시 새 단장을 한단다. 그때도 다시 와서 그 모습을 보고 싶다. 바뀐다고 해도 논개의 아름다운 얼굴은 그대로겠지만 말이다. 또 논개와 더불어 선홍이라는 기생도 유명하다고 한다. 재색을 갖춘 선홍도 왜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결하였다 한다. 얼굴이 아름다워 한 번 행차를 하면 모든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예뻤으면 그랬을까 싶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논개는 정말로 용기 있는 여성이라고 느낀 건, 그녀가 뛰어들었다는 절벽에 갔을 때였다. 고소공포증이 약간 있는 나는 무서워서 위에서만 구경했는데 그녀는 이곳에서 뛰어내렸다니, 정말 지극한 애국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용기야말로 오늘까지도 논개가 사랑을 받는 이유인 것 같았다. 촉석루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가이드의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목련과 백목련의 이야기다. 옛날에 공주가 장차 뱃사공과 자신이 결혼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사공을 찾아왔는데 그는 이미 아내가 있어 그냥 돌아가자 뱃사공은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공주와 결혼하려고 찾아갔더란다. 그 사실을 안 공주도 자살하고, 살인을 저지른 사공은 사형을 당하는데, 아내의 무덤가엔 적 목련이 또 공주의 무덤엔 백목련이 피어 사공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나타냈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황당한 이야기지만 어찌 되었든 결론은 변치 않은 사랑이라니 변치 않은 나라사랑을 했던 논개 같은 마음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3시쯤에 전주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 행사는 장기자랑이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노래도 잘 하는지 가수 못지않은 노래 솜씨들이었다. 비록 반주기가 말썽을 부렸지만 말이다. 모두 여행에 지치지 않고 즐기다가 어느덧 전주에 도착했다. 참 길고도 짧게 느껴지는 여행이었다. 문학기행을 떠나기 전, 그저 먼 곳이어서 피곤하려니 했지만 다녀오면 무언가 남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이렇듯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남는 것이 많았다. 다만 그걸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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