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추억여행

2008.05.19 10:01

최윤 조회 수:96 추천:6

추억여행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최윤 석가탄신일 전날 아침, 남편이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했다. 말다툼을 하고서 일주일쯤 서먹하게 지냈었다. 그런데 마음은 ‘같이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데, 창 밖의 빛나는 햇살은 날 밖으로 나오라고 유혹했다. ‘남편을 기사라고 생각하자’ 얼렁뚱땅 합리화를 시키며 나들이 준비를 서둘렀다. 전라남도 보성 녹차 밭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우리가 연인시절에 가끔 갔던 곳이었다. 남편은 그곳에 가면 그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 화해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무튼 네비게이션에 종착점을 찍으며 그이는 뾰로통한 얼굴로 날더러 운전을 하라고 했다. 난 혼자 운전하기엔 먼 거리이기도 해서 그럼 일단은 고창까지만 운전을 하겠다고 했다. 고창까지 갈 때에도 서로 말이 없었다. 내 서툰 운전에 주의를 줄 때만 제외하곤 말이다. 고창 휴게소에서 운전대를 남편과 바꾼 뒤, 다시 보성으로 출발했다. 옆에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심심했다. 그래서 난 우리가 냉전 중이라는 사실을 잠시 보류하기로 하고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네비게이션에 의지하고 또 예전에 갔던 길을 기억해내며 우리는 3시쯤 보성에 도착했다. 녹차의 한창 때가 지난 5월이고 오후시간이라 어느 정도 인파들이 빠져 나갔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구에서부터 명절 때 귀성차량들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겨우 차밭 입구까지 갔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러나 오랜만에 찾은 차밭은 여전히 멋이 있었다. 예전 이 녹차 밭을 배경으로 전도연이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가 있었다. 그 때 이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진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반해서 난 해마다 이곳을 찾곤 했었다. 우리는 녹차 밭을 거닐며 예전에 우리가 사진을 찍었던 곳과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곳을 찾아냈다. 서먹하던 기분은 어느덧 풀려있었다. ‘보성 녹차 밭’, 그 곳은 남편뿐만 아니라 친구들과도 자주 왔던 곳이다. 차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오기도 했었고, 사진을 찍고 걸어 다니며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났다. 지금은 모두 시집가서 아기 엄마가 된 친구들이다. 차 밭을 구경하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 다음엔 율포해수욕장을 잠시 들른 뒤, 군산으로 돌아가려는데 남편은 새로 난 길로 가보자며 낯선 길로 들어섰다. 자꾸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과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믿고 가보기로 했다.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우리는 자꾸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러다 송광사까지 가겠네!’ 내가 농담을 했더니 정말 송광사로 가는 길이 나왔다. 여기까지 온 김에 남편은 들렀다 가자고 했다. 난 날도 저물고 추워져서 걱정이었지만 그냥 가보기로 했다. 송광사도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다. 결혼하자마자 우리가 첫 나들이를 한 곳도 이곳이었고, 친구들과도 자주 왔었다. 송광사 산책로에 들어서자 연등들이 걸려있어 그제야 내일이 석가탄신일인 걸 알았다. 연등행사를 보고 싶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저녁 무렵이라 그 수려한 절의 자태나 경관들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대신 수행자들이 저녁예불 올릴 준비를 하는 걸 보았다. 범종이 울리고 예불이 시작되었다. 그에 맞추어 연등에 불이 들어왔다. 색색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곳은 민간인들이 드나들기에는 먼 곳이라 예불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불경 소리에 이끌려 하나둘씩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홀린 듯 들어가려 했지만 결혼하고서 가톨릭신자가 되었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밖에서만 보았다. 그런데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때, 내 친구 미선이가 떠올랐다. 2주 전 둘째 아기를 낳은 친구다. 미선이와 나는 아주 친해서 결혼 전 버스를 타고 먼 곳으로 여행을 자주 다니곤 했었다. 그 친구는 절에만 오면 각 불당마다 다 들어가서 합장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 모습이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소원 비는 아낙 같아서 웃음이 났었다. 이름 모를 봄꽃 아래서 별 포즈를 다 잡으며 사진을 찍던 스님이 웃고 지나가기도 했다. 여름이면 템플 스테이(산사 체험)에 꼭 오자고 약속도 했었다. 그때와 모든 것은 하나도 변함이 없건만 그 약속은 언제나 지켜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두 아이의 엄마고 멀리 시집을 가, 1년에 한두 번 보기도 힘든데 말이다. 나 역시 여행을 온다고 해도 남편 밥걱정에 맘이 편치 않을 것이다. 어스름은 져가고 평온한 분위기에서 그때 함께 하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모두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동전을 넣어 소원을 비는 연못으로 가보았다. 그 때, 미선이와 나는 동전을 던지며 기도했었다. 아마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었던 것 같다. 그 때가 5년 전 일이다. 그 기도를 하던 내가 이렇게 좋은 남편을 만나 여기에 서서 그 날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때 기도하던 내 모습과 친구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지금 그 동전은 없어졌겠지만 3년 전, 막 결혼을 하고서 이 곳에 와서 남편과 동전을 던지며 기도를 하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 이대로 행복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 때의 남편은 그대로인데 하물며 입고 있는 옷도 그때와 같은데 우리는 요즘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할까. 예전 송광사박물관에서 보았던 글이 떠올랐다. 사람이 생명을 다하면 저승이라는 곳에 가는데, 그 곳에 ‘저승의 대왕’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 저승에 가면 심판하여 죄가 있는 자는 벌을 받고, 죄가 없는 자는  환생을 시키는 일을 하는 게 대왕인데, 그 대왕들 중 ‘동자판관’이라는 대왕이 있다고 한다. 이 대왕은 죄를 짓지 않는 자에 한하여 앞으로 무엇으로 환생하고 싶은지 물어서 원하는 대로 환생시켜준다고 한다. 그때의 나는 그 대왕에게 지금 내 남편의 아내로 태어날 수 있도록 착한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말할 만큼 남편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왜 그렇게 다투었을까. 날이 어두워져서 남편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았다. 연등만이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이유는 남편과 서먹해서가 아니라 그냥 예전의 나의 모습들을 재회하고 난 뒤라 묘한 감상에 젖어 있어서였다. 그땐 모든 게 희망적이었고 꿈과 웃음도 많았다. 그때의 내 모습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 녹차 밭의 푸른빛과 맑은 공기, 그리고 우연히 들르게 된 송광사의 추억들이 내 마음 속에 쌓인 불만을 다독여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의 나들이는 즐거운 추억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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