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세 평의 땅 쟁탈전

2008.05.20 16:10

형효순 조회 수:85 추천:5

세 평의 땅 쟁탈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형효순 우리 집 작은 마당에는 세 평의 화단이 있다. 이 땅이 평화로워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 시골 마당은 넓을수록 좋았다. 여름에는 보리를 널어 말리고, 가을에는 벼를 말리며, 고추와 참깨, 콩 등 어느 것 하나 타작하고 말리지 않는 곡식이 없었다. 한여름 밤에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서 밥을 먹고 아이들과 별자리를 세던 곳도 마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촌에도 건조기와 선풍기,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마당의 필요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 집도 행랑채를 새로 지으면서 마당이 더 좁아졌지만 세 평 남짓한 화단을 만들었다. 그 작은 꽃밭에 무엇을 심을까,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채송화와 붕숭아, 분꽃 나팔꽃을 정성들여 심었다. 꽃씨들이 뾰족뾰족 예쁜 싹을 내밀며 나올 때쯤이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화단은 온통 파헤쳐져 있었고 고추와 오이, 호박, 가지 심지어는 생강을 심어놓았다는 표지판까지 턱 들어서 있었다. 어머님이 그러신 것이다. 심사가 뒤틀린 나는 밤새도록 어떻게 해야 다시 꽃을 심을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이튿날 감나무와 석류나무, 오가피나무, 앵두나무가 고추와 오이, 호박, 가지를 밀어내고 위풍당당하게 심어져 있었다. 남편이 그런 것이다. 그날 저녁 거실에서는 심각한 회의가 열렸다. 나는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엄중하게 항의를 했다. "당신에게는 땅이 오천 평이나 있지 않습니까? 고작 세 평 땅도 내 앞으로 돌려주지 않다니요, 어머님도 그래요. 조금만 가면 삼밭에 70평이나 되는 땅이 있는데 생전 처음으로 가져보는 세 평의 땅을 저에게 주지 않으시다니요?" 그러나 어머님은 꽃은 살아가는데 필요 없는 것들이라 하고, 남편은 과일을 심어야 훗날 좋다며 팽팽한 의견이 맞섰다. 합의를 보지 못한 채 어머님은 안방에서, 남편은 거실에서, 나는 아이들 방에서 냉랭한 장기전에 들어갔다. 다음날 나는 파헤쳐진 어린 꽃 싹을 일으켜 세우고, 어머님은 다시 고추모종과 가지모종을 다독여 심고, 남편은 나무에 물을 주면서도 서로의 영역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못했다. 저 기압 속에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어느 날 집에 온 둘째 딸애가 명쾌한 재판장이 되었다.   아빠는 감나무와 석류나무만 양쪽 귀퉁이에 심고, 할머니는 오이와 호박은 넝쿨이 너무 나가니 포기하시고, 엄마는 돌구유와 돌확에 금붕어를 기르는 것으로 만족하고 채송화만 둘레에 심으라는 판정이었다. 그것으로 세 평 땅 쟁탈전은 막을 내렸다. 여름이 한참이던 어느 날 점심 때 금방 화단에서 싱싱한 고추를 따오면 어머님은 “그것 봐라. 어른 말을 들으면 손해날 것 없느니라!”라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하시고, 가을이면 석류가 열릴지 모른다면서 여자에게 좋다는 석류를 당신을 위해 심었노라고 남편은 자랑을 했다. 내가 소유한 돌구유와 돌확에는 금돌이와 금순이 네 마리가 수초 사이를 한가롭게 헤엄치며 놀고 있고, 채송화가 화단 가장자리를 따라 줄지어 붉게 피어났다. 사실 땅의 주인이 있을까? 식물이 자라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하고도 땅은 그 자리에 말없이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담을 쌓아 네 땅이 얼마 내 땅이 얼마 하면서 선을 그어 놓는다. 그것도 모자라서 형제가 싸우고, 아흔아홉 마지기 부자가 한 마지기 땅을 빼앗으며, 부동산 투기로 가난한 사람을 더욱 주눅 들게 하고, 한없는 욕심을 채우려 늙어가지만 정작 죽어서는 겨우 한 평 남짓한 땅만 차지할 뿐이다. 지금은 그 한 평마저도 필요 없는 사람도 많다. 화장을 해서 한 그루의 나무뿌리에 뿌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도 모름지기 한 번쯤 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달 밝은 거실에 앉아 마당 가 세평이 주는 작은 행복을 맛보며 지금은 어머님과 남편 그리고 나 셋이서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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