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30년 만의 수업

2008.06.01 08:42

김상권 조회 수:107 추천:7

  30년 만의 수업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김상권 30년 만에 교단에 섰다. 온고을중학교의 계발학습프로그램 일부분인 일본어 교육을 맡았다. 한 달에 2일간 가르치기로 되어있다. 집에 있던 일본어 교재를 찾아보고, 서점에 들려 《독학 일본어 첫걸음》《EBS 초급․중급일본어》를 구입했다. 20년 전부터 일본어를 공부했지만 중도에서 포기했기 때문에 다시 일본어공부를 시작해야만 했다.      한국어가 독창성‧과학성․합리성을 인정받아 유엔 산하 세계지식재산권기구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어 공식어로 채택되었다. 또 지구상에서 현재 사용 중인 언어가 6,912개 인데, 사용자수로 본 순위는 한국어가 세계13위이고, 세계 10대 언어 순위는 9위이며, 세계10대 실용언어로서는 7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고등학교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1995년 73곳에서 2005년 286곳으로 4배나 증가했다는 것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첫 시간의 도입단계에서 위의 신문 내용을 소개했다. 일본어반은 1․2학년으로 편성된 35명이었다. 사전 교재연구와 수업에 필요한 시청각교재를 충분히 준비했기 때문에 가르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학생들은 처음 대하는 언어라 그런지 호기심에 찬 표정들로 열심히 들었다. 46년 전의 첫 수업모습이 머리를 스쳐갔다. 준비되지 않았던 햇병아리 교사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을 교육의 위기라고 한다. 공교육의 믿음이 무너지고 있는 대신 사설학원은 늘어만 가고 있다. 영어 몰입교육, 우열반 편성 등으로 학생들을 사설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인성교육은 멀리 가버린 지 오래다. 학부모들이 어찌하여 공교육을 믿지 못하고 사설학원으로 자녀들을 보내려고 하는지 곰곰 생각해볼 때다. 한 때 배운 것을 계속 꺼내어 쓰는 은행통장식 교육관으로서는 학부모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다. 230점 교사가 300점 제자를 가르칠 수는 없다. 교사들의 뼈를 깎는 노력과 연수 없이는 공교육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학동들에게 맨 처음에 천자문을, 그 다음으로 동몽선습, 계몽편, 격몽요결, 명심보감, 통감, 소학, 사서오경 등을 가르쳤다. 한 방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한 내용을 가르친 셈이다.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게 1:1로 완전학습을 시켰던 것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 조상들의 서당식 교육방법의 지혜를 본받을 때가 아닌가 싶다. 요즘 부르짖고 있는 눈높이에 맞춘 맞춤형교육이라고나 할까. 엊그제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시각장애인 부인과 정상인 남편이 살았는데 부인은 남편의 보살핌으로 자주 바깥나들이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이제부터는 혼자 다니라고 했다. 부인은 남편이 서운하고 분했지만 하는 수없이 혼자 다닐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혼자 다니기에 익숙해졌다. 부인은 남편이 지금까지 줄곧 자기 뒤를 따라다녔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남편과 부인의 자리에 교사와 학생을 대입시켜 생각해 보았다. 해부의 세계적 권위자인 히라자와 박사의 저서에서 “들 고양이의 뇌와 집고양이의 뇌를 해부하여 비교해 보면 들 고양이의 뇌가 집고양이의 뇌보다 훨씬 잘 발달되어 있다.”고 하였다. 집고양이는 먹이를 비롯해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주인이 해결해 주지만, 들 고양이는 먹이를 비롯하여 적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는 일까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학습자 각자가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모든 지식과 모든 능력을 다하여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좋은 수업이란 보통의 학생들이 지적(知的) 땀을 뻘뻘 흘리고 이모저모를 사고하며 모두가 참가하고 모두가 성취하는 그런 수업이라야 한다. 또한 학습과정에서는 물론 결과에서 “알아냈다.” “할 수 있게 됐다.”고 하는 ‘자신감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그런 수업이라야 할 것이다.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경험의 장을 마련해주고 학습자의 길잡이, 조언자, 안내자로서의 교사라야 존중받지 않을까. 좋은 스승은 나에게 인격적 감화를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30년 만의 수업에서 지식을 팔지나 않았는지, 그리고 획일적이고 주입식으로만 진행된 수업은 아니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고 있다.                           (2008. 4. 15.)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214,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