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선생님과의 여행

2008.06.05 15:25

오명순 조회 수:91 추천:11

  선생님과의 여행                     전북대학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오명순 오월은 신록의 계절이자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올해에도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이 생각났다.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에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 들어 선물을 골랐다. 고민 끝에 허브향초, 허브 차, 운전 중에 드시라고 허브사탕을 예쁘게 포장해서 퀵 써비스로 보내 드리고 전화로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고맙다고 하시며 선물보다 너희들 얼굴 보는 것이 더 좋은데 그렇게 바쁘냐고 하셨다. 꼭 시간을 내어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다. 작년 스승의 날에 선생님을 모시고 떠났던 여행이 생각났다. 선물이나 식사대접보다 기억에 남을 이벤트를 생각하다가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했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우리는 예정대로 길을 나섰다. 약간 흐리긴 해도 햇볕이 뜨겁지 않아 더 좋았다. 어린 소녀시절 흠모했던 선생님과 함께 고속도로를 달리며 그 시절 이야기를 하노라니 마치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먼 옛날로 돌아 간 듯했다. 그때와 똑같이 짧은 스포츠 머리에 스포티한 복장, 아마 체중도 변함없어 보였다. 체육선생님이어서 그럴까, 지금도 현역이시고 운동을 계속 하셔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보다 더 젊어 보인다는 나의 너스레에 선생님을 놀린다며 꿀밤을 먹이셨다. 그래도 속으로 은근히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희끗희끗 머리에 흰머리가 늘고 중년이 다 된 우리를 보시며 같이 늙어 가는구나 하시며 세월이 참 빠르다고 말끝을 흐리셨다. 30여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선생님 앞에서는 소녀처럼 여전히 부끄럽고 수줍기만 했다.    자그마한 시골중학교. 학생 수도 별로 많지 않은 신설학교였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우리들은 교정을 가꾸고 꾸미느라 많은 정성을 쏟았다. 화단을 만들어 꽃을 심고 돌을 주워다가 예쁘게 장식하며 아름다운 학교를 만드느라 땀을 흘렸다. 학교 정문에서 본관으로 가는 길에 가을이면 빨간 사르비아꽃이 피어 참 아름다웠는데 눈을 감으면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운동장을 돌아 산으로 들어서면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국화와 코스모스. 풀잎을 적당히 섞어 들국화 한 다발을 안아다가 선생님의 교탁에 꽂아 놓으면 교실 안에 들국화 향기가 가득했었다. 2시간쯤 달려서 청원IC를 지나니 충북 청원 성수허브농장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허브축제 중이어서 사람들이 참 많았다. 끝없이 넓은 하우스에 세상의 허브 꽃이 거기 다 모여 있는 듯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허브는 10여 가지 정도였는데 종류가 그리 많다니 놀라웠다. 꽃의 이름들이 어렵기도 하고 너무 많아서 수첩에 적어 보려다 그만두었다.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그저 푹 빠지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커서였다. 산을 좋아하시는 선생님은 우리나라 산야에 피어 있는 야생화도 여기 있는 꽃들만큼 아름답고 향기로운 허브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꽃이 하나 있다. 해바라기처럼 큰 키에 마치 수십 개의 작은 종을 매달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디기탈리스' 라는 꽃이었다. 꽃 옆에 가까이 귀를 대고 들어 보았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 귀에는 분명 종소리였다. 사진을 찍고 있는 다른 사람들 틈에 끼여 나도 핸드폰 사진기로 여러 장 담아 왔다. 요즘 허브가 건강에 좋다고 널리 알려지면서 식품이나 생활기구로 만들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허브 차는 물론이고 허브향초, 비누, 베개, 수건 등 수십 가지의 상품들이 진열돼 있고 비누와 향초는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장도 있었다. 허브 아이스크림 허브 물, 그 중에서 허브비빔밥은 정말 예쁘고 황홀해서 감히 비벼 먹을 수가 없었다. 꽃잎 하나하나를 입에 넣는 순간 입 안에 퍼지는 그 향기를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향기로운 비빔밥을 한 번 더 먹어 보고 싶다. 미로처럼 끝없이 넓은 농장을 다 둘러보고 나니 꽃향기에 취해버린 듯 어지럼증이 왔다. 갖가지 꽃들이 각각 다른 향기를 뿜어 내니 그 향기들이 섞여 그럴 것이다. 허브향기를 가득 안고 청남대로 향했다. 대청댐을 한참 돌아서 청남대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꼭꼭 숨어 있는 청남대는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대통령의 휴식처로는 안성맞춤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금방이라도 내릴 것처럼 하늘에 구름이 몰려왔다. 햇님이 구름과 숨바꼭질하더니 결국 구름이 이겼나 보다. 발길을 서둘렀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가 조금 이상했다. 우박인지 눈인지 아니 정말 눈이었다. 5월에 눈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세상이 하 수상하고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나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도 믿기지 않아서 차창을 열고 손으로 받아 보았다. 아카시아꽃이었다. 아카시아꽃이 지면서 바람에 날려 흩어지고 있는 모습이 꼭 눈이 오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니 분명 오월에 내리는 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바람에 날리는 꽃눈을 보며 하루가 참 보람되고 행복한 날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 수학여행 갈 때의 그 기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스무고개를 넘어 온 것처럼 인생의 많은 고비를 넘나들며 살아 온 세월 때문일까. 여전히 선생님과 제자인 것은 맞지만 주고받는 대화는 친구나 선배처럼 벽이 낮아져 있었다. 선생님께도 장애인 아들이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하여 아파했던 날들, 그 아픔이 아직도 진행 중이며  아파서 먼저 하늘나라 보낸 내 딸 이야기 등. 무엇보다도 선생님께서 얼마 전 장로님이 되셨고 교회성가대에도 서신다고 하셔서 기쁘고 감사했다. 선생님도 나처럼 고난 속에서 장미꽃을 피우셨구나 생각할 때 나도 몰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장애인 자녀를 두지 않은 사람은 이런 마음을 아마 모를 것이다. 이제 선생님은 정년을 앞두고 계신다. 그동안 전국의 산을 다 오르셨다고 할 만큼 산을 좋아하신다고 하니 정년 후에도 건강한 몸으로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시기를 기도해야겠다. "선생님, 자주 전화 드릴께 요!"                                            (2008. 6.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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