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강의 셋째날

2008.03.26 14:34

박영순 조회 수:93 추천:4

강의 셋째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박영순 나에겐 요즈음 새로운 화두가 생겼다. 여지껏 아무 생각없이 살기에 급급해 대충대충 살아왔는데 글을 좀 써보려니 맞춤법이 맞나틀리나, 글씨도 맞는 글씨인가아닌가 걱정이다. 그러나 곁에는 물어볼 사람도 없다. 예전에 큰아들이 살았을 적에는 컴퓨터를 아들녀석한테 배웠는데, 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큰아들이 컴퓨터를 켜는 순서대로 적어서 컴퓨터 앞에 그쪽지를 붙여주기도 했었다. 혼자서 하다 모르면 전화로 아들녀석한테 물어보면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잘 알려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아빠와 둘이서 나란히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글을 좀 써보려고 생각하니 별 생각이 다 든다. 머~언 옛일부터 방금 먹은 저녁밥까지머릿속이 너무 꽉 차서 "버리기"를 해야 할 지경이다. 가슴 속에 하얀 소금이 되어버린 일들까지 뛰쳐나와 버리니 이게 무슨일인가. 수필명상을 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머릿속엔 온통 지난 일들을 생각하느라 아름다운 봄꽃을 바라볼 새도 없다. 도대체 얼마나 생각하고 생각해야 글이 되어 나오는 걸까.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하면 또다시 머리속은 하얘진다. 너무 답답해 꺼버리고 오락이나 한 판 할까 하는 숨은 악마가 살며시 고개를 든다. 교수님께서 박영순 씨도 글을 써서 올려봐요 하셨다. 그 말씀이 귀에 쟁쟁한데, 나는 어찌해야 하나? 교수 님은 오늘 '10년 법칙'이라면서 무슨 일이든지 꾸준히 십년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 그 말씀을 들었는데 그 이야기로 위로를 삼아 볼까? 나는 또다시 비겁하게 핑계거리를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이제 나이를 먹으니 교활의 극치를 달리는 양, 자기합리화의 선수가 되어버린 나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과 싸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겉으론 이젠 편한 게 좋다면서 빠져나갈 거리를 만들기에 바쁘다. 적당히 늙어가는 게 싫어서 수필창작반에 들어왔는데 더 어려운 '화두'가 생겨버린 것 같다. 일을 하거나 놀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가득했다. 그 전엔 꽤나 쓸데없는 생각들이 나를 지배해온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좀 품격이 높아진 생각들로 바뀐 것 같다. 교수님이 주신 수필집을 읽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맑아지고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다. 이른 아침 산 속에서 차가운 샘물로 세수를 하고 난 그런 기분이다. 힘들면서 한편으론 나의 영혼에 보약을 먹이는 것 같아서 이런 고민이 달콤하기까지 하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다른 문제에 매달려 보는 이런 기분, 고생을 안하고 살아온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나 혼자 생각하고 이런 가르침에 감사를 드린다. 아주 힘들게 글을 써보는데 벌써 바닥이 났다. 다른 사람들은 긴 글을 잘도 쓰던데 난 벌써 쓸 말이 없다. 휴, 나는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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