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기차통학

2008.03.28 07:37

양희선 조회 수:90 추천:14

     기차통학                                                                  전주안골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양희선 가끔 기차여행을 할 때면 어린시절 기차통학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부터 10여 년을 기차로 통학했던 때가 많은 추억으로 남는다. 우리 집은 전주시내에서 10여 리 떨어진 덕진이었다.들녘에는 논과 밭이 풍요롭게 펼쳐져 있었고, 전주천 맑은 물이 한가로이 흐르는 곳이었다.앞동산의 솔밭냄새는 온 동네를 향기롭게 하고, 뒷동산은 아이들 놀이터여서 우리 마을은 온화하고 양지바른 마을이었다. 5,60년 전에는 자동차와 버스가 귀한 때여서 교통수단으로는 기차 뿐이었다. 전주역 은 언제나 붐비는 집합장소였다.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 여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늘 시끌벅적하여 시장 속 같았다. 목판을 어깨에 멘 엿장수, 찹쌀떡을 파는 이들은 빈틈을 잘도 헤집고 다녔다. 시원한 물이 그리운 여름날, 아이들이 아이스케키 통을 깔고 앉아 아이스 케~키하고 목청껏 노래할 때 먹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여수에서 올라오는 완행열차는 장사들로 붐볐다. 미역, 멸치, 자반, 피문어, 새우 등을 한 보따리씩 가득 안은 아주머니들의 억센 수다는 세상 사는 이야기들이었다. 등하교 때에는 학생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기차는 2,30분 연착하는 때가 많아서 지각하는 일도 있었으나 통학생에게는 특혜를 주었었다. 통근하는 직장인과 통학생들은 많은데 객차가 부족하여 통학차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마치 피난민을 가득 실은 얼차처럼 매달려가는 사람도 많았다. 화물 칸에 탈 때도 있었고 뛰어내릴 때는 가냘픈 다리가 후들 거리고 무서웠다. 어느 날 기억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사고가 났다. 덕진역 대 참사였다. 내가 여중학교 3학년 때였다. 아침 등교시간에 기차가 연착되어 많은 학생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가 홈에 서서히 들어오자 많은 학생들이 서로 먼저 타려고 밀치는 바람에 연약한 1학년 여학생 3명이 기차 바퀴 속으로 떠밀리고 말았다. 순간적인 일이라 비명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여학생들은 영영 눈을 감아버렸다. 희망에 부푼 여린 꽃망울들이 미처 피지도 못한 채 꺾이고 만 것이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악몽같은 현실에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후둘거려 어떻게 학교에 갔는지 모르겠다. 그 뒤 얼마 동안은 기차를 탈 수가 없어서 걸어다녔다. 시내를 벗어나면 신작로 양쪽은모두 논이었다. 민가도 없는 길을 쓸쓸히 걸으면 금암동이 나왔다. 이제 반절쯤 왔나 생각하며 전주역을 향해 걸었다. 찌는 듯한 여름날엔 가로수의 그늘을 따라 더위를 피하며 걸었다. 냉혹한 추위엔 짐을 가득 실은 우마차 뒤를 졸졸 따라가면 북풍의 아린 바람을 조금은 막을 수가 있어서 좋았다. 외롭고 힘들 땐 시내에 사는 친구가 한없이 부러웠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방한복도 없었고, 따뜻한 양말이나 털장갑도 귀하여 손발이 트고, 얼음이 박히기도 했었다. 시대는 날로 발전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5,60년 전에는 인부들이 증기기관차 화통에 검은 석탄을 퍼 넣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도 기차화통에 받아 넣었다. 석탄으로 물을 끓여 증기의 팽창을 이용하여 왕복운동을 일으켜 동력을 얻어 달리는 게 기관차다. 디젤기관차에 비해 큰 힘이 없어 객차를 많이 이을 수가 없다. 지금은 디젤기관차로 기름을 태워 전기를 발생하게 하여 전기의 힘으로 간다. 간편하면서도 힘이 있기 때문에 수십 칸의 객차를 끌고 갈 수가 있다. 또한 선로는 어떠했는가. 옛날엔 단선으로 상하 행선의 교차 때문에 많은 배차를 할 수가 없다. 지금은 복선과 복복선이 전국적으로 잘 되어 있어서 많은 열차를 배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명절 때는 임시열차를 배정하여 고향방문객들을 즐겁게 도와주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고 교통도 일일권세상이 되었다. 큰길만 나가면 버스가 줄을 잇고, 택시는 승객을 찾아다니는 세상이다.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고, 필요에 따라 2,3대가 있기도 하다. 문화가 발달하면 상반된 폐단도 따르기 마련이다. 컴퓨터로 인해 시력이 약해지듯 차를 타기 좋아하면 하체가 약해진다. 복된 시대에 태어난 행운아들은 한 정거장도 걸어 다니질 않는다. 편히 사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체격만 좋았지 체력이 부족하여 힘이 없다. 버스 한두 정거장은 걸어서 다니도록 우리 어른들이 솔선수범을 해야 할 것 같다. 체력단련에 힘쓸 일이다. 체력은 국력이라고 하지 않던가.나이가 들어가도 대때로 기차통학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가난했지만 그때가 무척 그립다.                                    (2008.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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