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나는 연극배우

2008.03.28 18:15

김영희 조회 수:98 추천:9

나는 연극배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영희 눈을 뜨자마자 커튼을 힘차게 젖히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어젯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어서 날이 밝기를 기대하며 입가에 웃음까지 띄우지 않았던가. 나에게만 밝아오는 새아침은 아닐 텐데 다른 날보다 더 상쾌하고 즐겁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날씨 좋고!” 창밖에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거기다가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연극을 소리문화의 전당 연지홀에서 보기로 예약된 날이다. 내가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가 내 전주생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연년생 두 딸을 학교에 보내고 나는 시내를 온통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가 볼만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혼자서 용감하게 영화를 보기도 했다. 이 극장 저 극장 전전하다가 신물이 나면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오기도 여러 차례, 지금 생각해도 나는 조금은 이상한 여자요, 괴상한 엄마였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연극 포스터를 발견하게 되고 1년에 몇 번 안 되는 연극 공연이었지만 빠짐없이 관람하면서 연극의 묘미를 스스로 느끼고 그 매력에 빠졌다. 한편 극의 줄거리를 미리 파악하고 내 정신세계의 정화를 위해 손수건을 미리 준비하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대극장도 여럿 있지만 그때만 해도 소극장 한두 개 뿐이었다. 나는 입장시간보다 30분쯤 일찍 도착하여 맨 앞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소극장은 관객과 배우와의 간격이 좁아서 관람을 하다보면 내가 연기를 한다고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연극 보기에 몰두한 나머지 아니다 싶을 땐 “안돼!”하고 소리를 질러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버릴 때도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지면 나는 연극에 푹 빠져있었던 조금 전의 내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어쩌다가 가끔 서울에서 유명배우가 내려와 모노를 볼 기회가 되면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뒤돌아보면 정말 짧은 20년이다. 내가 처음 연극을 접했을 때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나의 연극 사랑을 부채질했던 젊은 배우는 지금 중년의 막바지에서 시립극단의 상임연출을 맡고 있다. 지금 나는 전주시립극단, 창작극단, 극단“판”의 관극회원으로 등록해놓고 공연 때마다 입장권을 받아서 관람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20년 전엔 그만두고라도 10년 전에 만이라도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극단에 가서 떼를 써볼 것을 하는 것이다. 두어 달 전이었던가? 사석에서 극단 “판”대표님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연극을 좋아해서 여러 극단의 관극회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터라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었다. “연극을 보다보면 무대로 뛰어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니까요. 할머니 역할 좀 안될까요?” 좌중은 내 말이 재미있었는지 한바탕 웃고 말았지만 나는 웃어넘겨버린 상황이 조금은 서운하고 계면쩍었다. 그래! 인생은 어차피 연극이 아니겠는가! 내 인생의 무대에 올려지는 극본에 충실하자.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대사가 조금은 마음에 안 들지라도 노련한 연출로 관객들을 살짝, 아주 살짝 따돌리고 나는 훌륭한 주인공 배우였노라고 최면을 거는 거야. tm스로 감격해서 엉엉 울어버린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사랑하는 두 딸이 객석에서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나는 두 딸을 향해 마음속으로 외친다. “관객 여러분! 이어지는 저의 성숙된 연기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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