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어떤 잉꼬부부

2008.04.07 17:18

이의 조회 수:93 추천:9

어떤 잉꼬부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의 내 첫 아기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의 화창한 어느 봄날이었다. 8쌍의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아차산으로 봄나들이를 갔었다. 남자들은 고향 또래친구들이w만 여자들은 서먹서먹한 만남이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나는 동안 정이 쌓여 슬리퍼를 끌고 예고 없이 찾아가 차 한 잔 마셔도 좋은 편한 이웃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한 쪽이 먼저 떠난 외톨이도 생기고, 혼자는 외로워서 자식 따라 외국에 가서 사는 이도 있다. 그 모임도 2005년 말 드디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시작은 온전하였으나 어느덧 이 빠진 그릇인 양 듬성듬성 빈자리가 늘면서 맥이 빠져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부부사이가 원만하고 평안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이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잉꼬부부였던 광현네가 더 생각난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광현 엄마는 부담 없이 친해지고 싶은  여자였다. 그녀의 남편은 공무원으로서 내 남편처럼 마른 체격이고 얼굴에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사람이었다. 여자를 챙기고 배려하는 모습이 오히려 생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날씨가 조금 무더웠던 초여름 어느 날,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남자들은 성큼성큼 앞서 오르다 뒤따라오는 이들을 위하여 쉬고 있었다. 허우적거리며 오르던 여자들은 질투 반 부러움 반으로 우두커니 바라보고만 서 있었다. 광현이 아빠가 부인의 손을 잡고 편편한 바위 쪽으로 가더니 하얀 손수건을 바위에 깔고 “이 여사 여기 앉아요.”했기 때문이다. 난 솔직히 부러우면서도 닭살이 돋아 오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들을 잘 모른 탓이었다. 그 여자는 보통여자와는 다른 면이 많았다. 아들 둘에 딸 하나를 기르며 첫아들에게는 사장님, 작은 아들에게는 박사님이라고 부르며 길렀다. 요즘 유행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아는 여자였다. 음식을 장만할 때도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실험하며 최고의 맛을 내는 실험정신이 투철했다.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을 끌어당기고 나쁜 생각은 나쁜 생각을 끌어들여 더 강력해진다는 것을 이해한 세계인구의 1% 범주에 들 만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한 그녀도 병 앞에서는 나약하기 마련이었다. 40대에 얻은 심장병 때문에 날씬하던 몸이 더 여위어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애처로워 보였다. 그 병중에도 시어머니를 지성으로 모셔 동네사람의 추천으로 효부상까지 탔다고 한다. 그녀 남편의 아내에 대한 배려는 보통생각으로는 짐작이 안 갈 정도였다. 아침이면 여자가 하기 힘든 일이며 화장실 청소까지 말끔히 하고 출근했단다. 밤이면 몇 차례씩 일어나 부인의 얼굴을 드려다 보며 이상이 없나 확인하곤 했다고 한다. 모임의 야외식사 때나 음식점에서 두 사람이 하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아 넘기는 데는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였다. 이빨 사이에 음식물이 끼면 부인이 남편 앞에서 입을 벌리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편은 이쑤시개로 그걸 빼주곤 하였다. 주위 사람들을 전연 의식하는 법이 없었다. 몇 번이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여자가 50대 후반에 다시 심장수술을 받았다. 여자는 중환자실에 있는지라 그 남편을 위로하려고 집을 방문하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하는 말에 우린 큰 충격을 받았다. 어제도 그제도 산소자리를 보고 다녔다고 한다. 이번에는 부인이 소생하기 어렵다고하며 부인이 죽으면 자기도 죽어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부인이 없는 세상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면서……. 남편의 지순한 사랑으로 부인은 다시 10여년을 더 살다 70이 되던 작년에 떠났다. 죽기 전 4-5년은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던 부인은 남편의 보살핌으로 겨우 연명할 수 있었다. 부부란 병석에 누워있을망정 옆에 있어 돌볼 수만 있어도 힘이 되는 모양이다. 자식들을 모두 내보내고 ‘살아만 있어다오’ 라고 말버릇처럼 되뇌던 그 남편은 정갈하게 살림을 꾸리고 부인을 보살피며 긴긴 시간을 함께 하였다. 부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산에도 오르고 여행도 다닌다. 아마도 혼자가 아니고 부인과 함께 가고오며 더불어 살고 있겠거니 싶다. 한 번 잉꼬부부는 이승과 저승을 건너뛰어 영원히 잉꼬부부로 사는 것 같다.                                                 (2008.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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