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오클랜드 교포의 눈물

2008.04.11 04:20

윤상기 조회 수:98 추천:13

오클랜드 교포의 눈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상기 뉴질랜드 북섬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사십대 중반의 가이드를 만나게 되었다. 뉴질랜드 여름, 강한 자외선에 그을린 얼굴은 검은 선글라스 같은 색깔이었다. 오클랜드를 소개하는 그의 말은 청산유수여서 차만 타면 졸던 일행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가이드의 고향은 충남 예산이었다. 느린 충청도 억양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고향에 부모님이 계시고 큰형님은 개신교 목사라고 했다. 그는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이곳 오클랜드지사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직장을 그만둔 다음 무용을 전공한 유학생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다. 지금은 두 자녀를 둔 오클랜드에 정착한 이민가족이다. 이곳에서 16년을 사는 동안 8년 전 그리던 조국을 꼭 한 번 다녀왔다고 했다. 오클랜드에서 로투로아를 가는 동안 그의 입담이 얼마나 경쾌한지 여행하는 일행들은 즐거움에 싱글벙글 했다. 그는  뉴질랜드 민요 포-카레-카레(Po-Kare-Kare) 마오리족 노래를 한 곡조 부른 다음 우리에게 마리오족 언어로 합창할 것을 제의했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오면(Po karekare ana Nga wai o Waiapu)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Whiti atu koe E hine  Marino ana e)   그대만을 기다리리(E hine e Hoki mai ra)     내-사랑- 영원히-기다리리(Ka mate ahau I Te aroha e )”   <중략> 우리의 어린 시절, 마을 사랑방에서 형이나 누나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리오족 노래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알았다. 이 노래는 6.25전쟁 때 참전한 뉴질랜드 군인들에 의해  전해진 듯하다. 뉴질랜드 북섬 가이드는  남섬 가이드와 전혀 다른 화술로 일행들을 압도했다. 그의 캐리어는 16년 동안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은 백전노장(百戰老將)답게 리드를 하였다. 대한민국은 화려한 천국이고 뉴질랜드는 지루한 천국이라고 운을 뗐다. “뉴질랜드에 이민 온 자식 집에 경상도 할머니와 전라도 할머니가 살았는데 자주 놀려오고 놀러가고 그랬습니다. 전라도 할머니가 경상도 할머니 댁을 가서 벨을 눌렀습니다. 경상도할머니 왈 ‘후(who)꼬?’ 라고 물으니, 전라도 할머니 왈 ‘미(me)랑깨.’” 라고 대답했다는 그의 유머에 일행들은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로투로아에서 온천욕과 마리오족 전통무용을 구경하고 개인적으로 호텔 카페에서 가이드와 커피타임을 가졌다. 그의 가정과 신앙, 뉴질랜드 생활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이곳이 사람살기에 아무리 좋아도 고향만 하겠느냐는 고백이었다. 오후 5시 일찍 종료되는 일과는 향수병이 도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방황하고 산다고 했다. 이곳에서 하는 일 없이 사는 해외동포도 많다는 이야기였다. 이들은 알코올중독과 카지노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백수가 된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그들은 오클랜드의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다. 백수건달이 된 그들은 그리운 조국에 갈 수도 없고 오갈 데 없는 처지에 비관하여 자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도 자기는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교회에 나가 믿음으로 외로움을 이긴다고 했다. 이곳에서 경제적인 기반을 닦은 후 여생은 대한민국에서 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음날 오클랜드로 돌아가는 시간. 버스 속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하였다. 이번 우리 여행팀들은 대부분 기독교장로가족과  안수집사 가족들로 이루어졌다. 모두들 부르는 노래는 복음 송과 찬송으로 진행되었다. 교회집사인 가이드도 찬송으로 답하였다. 오클랜드 시내에 들어오자 마지막으로 한 곡을 부르겠다면 가곡 ‘가고파’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 가고파라 가고파…….   가이드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갑자기 굵은 눈물을 흘리며 퍽퍽 우는 것이었다. 8년 동안 그리던 고향에 가보지 못한 향수병이 물밀듯 터진 듯했다. 사나이의 진한 눈물이 일행들의 마음을 숙연해지게 하였다. 잠시 후 정말로 죄송하다며 여기에 오신 분들을 대하니 부모님, 형님이 생각나서 본의 아닌 실수를 했다고 사과하였다. 외국에 나가있는 해외교포들은 모두 조국을 그리며 애국자가 된다. 또한 성공해서 고향에 뼈를 묻히기를 원한다. 물설고 낯선 타국에서 오직 조국을 생각하며 힘들게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을 대하며 찹찹한 심정이 앞을 가렸다. 고향은 어머니다. 어머니를 떠나 사는 모든 교포들은 어머니 품과 같은 조국의 산천을 밤마다 꿈에서 보기를 원할 것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밖에 나와 부모형제가 있는 하늘의 별자리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시간,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해외교포가 흘린 눈물이 더욱 애잔한 마음이 되어 내 가슴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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