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의 희망

2008.04.16 07:56

윤석조 조회 수:98 추천:11

새만금의 희망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수필가 윤석조

  매달 만나는 친구들이 4월에는 새만금 둑을 돌아 서해안 지방의 봄내음을 맡고 오자고 하였다.
  전주 덕진구청 앞 20여 그루가 넘는 벚나무가 활짝 꽃잎을 열고 화려한 몸짓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친구들이 모두 모여 승용차 2대로 부안군 변산면에 있는 한국농촌공사 새만금사업단 전시관을 찾았다. 상황실에서 새만금사업의 배경과 공사추진사항, 수질개선대책, 종합 관리시스템, 기대효과 등을 영상으로 보며 전시관장의 설명도 들었다. 단군(檀君) 이래 최대의 공사라고 했다.
1970년대 세계적인 식량파동과 1980년대 냉해로 인한 쌀 수입을 계기로 농토 확장의 필요성에 따라 착공(1991. 11. 28)하였다. 그동안 ‘국토개발’과 ‘환경보호’의 대립(4년 7개월 법정공방)이라는 산고를 겪으면서, 14년 5개월(2006. 4. 21)만에 새만금방조제가 모두 연결되었다. 세계 최장(33Km)의 친환경 방조제를 축조하여 서울면적의 2/3의 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방조제는 특수공법으로 바닷모래를 사용하여 만들었고, 수면을 조절하는 갑문을  2곳에 설치하였다. 가력배수갑문(16련)과 신시배수갑문(20련)으로 1개당 규모는 폭(30m)과 높이(15m), 무게(484ton)라니 놀랄만했다. 이 갑문의 엄청난 무게 때문에 섬을 깎아 드러난 바위 위에 갑문을 설치하였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공장 부지로 빼앗기는 농토를 보충하기 위한 간척사업이었다. 새로 생기는 땅이 넓고 수심이 깊어 세계적인 공항과 좋은 항구조건을 갖추었으므로, 산업 발전에 희망이 열려있다고 하였다. 농지와 산업시설용지의 비가 거꾸로 3:7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야미도와 신시도 사이에 매립지를 더 확장(200ha)하여 휴식과 체험이 가능한 다기능 부지를 만든다고 한다. 그곳에서 고군산군도의 섬들과 연결하는 다리를 놓아, 세계적인 관광명소를 만든다고 하니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길이 잘 포장된 대항리와 가력도 사이는 변산반도에 올 때 자주 들렀던 길이었다. 가력도와 신시도 사이는 제일 늦게 연결된 방조제로 차량이 통제되었다. 우리들이 탄 승용차 2대는 통제소와 가력도 배수갑문을 지나니, 좌우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에는 배만 떠 있었다. 방조제에서는 도로포장공사를 하려는 인부들이 듬성듬성 눈에 띠었으며, 작업차량들만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신시도에는 한국농촌공사 건물이 좌측 넓은 터에 높이 서 있었고, 배수갑문을 지나기 전에 군산 쪽에서 들어오는 차량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차에서 내려 배수갑문의 규모와 방조제 안쪽에 있는 물이 하얀 포말을 만들며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세계로 발전하는 꿈을 그려 보았다. 산에는 활짝 핀 연분홍 진달래가 바닷바람으로 춤을 추며 우리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신시도 선착장을 돌아볼 때는 벌써 시장기가 들었고, 두어 차례 와 본 야미도가 반가웠다. 2년 전 기린문학 회원들과 봄 소풍으로 이기반 교수님을 모시고 이곳을 찾아와, 푸른 물결이 시멘트 도로 위까지 출렁일 때 산모퉁이를 돌아 나온 일이 엊그제 같다. 너른 식당을 전세 낸 것처럼 우리들이 독차지하고 싱싱한 생선회와 곁들이는 술잔에 정이 오가면서, 젊은 날의 추억들을 돌이키고 있었다. 비응도까지 제일 긴(11Km )방조제 좌우측에는 푸른 물뿐이었고, 도로 포장준비에 바쁜 차량들이 우리들의 길을 방해하였다. 비응도 부터는 방조제도 없어 이미 섬이 아니었다. 경제 자유지역으로 지정된 허허벌판을 지나면서 앞으로 이 지역이 많이 발전하길 기원(祈願)했다.
  군산의 이름난 은파유원지를 찾았다. 30여 년 전 군산여고에서 근무할 때  학생들과 함께 두어 차례 소풍을 왔던 곳인데, 주변이 몰라보게 변했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잘 조성되어 있었다. 양지쪽의 성급한 벚나무는 망울을 터트렸으며, 유원지에서는 푸른 물이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유원지를 가로 지르는 ‘물빛다리’가 아주 멋있게 뻗어 있고, 출입구에 ‘사랑의 문’이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 다정한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다리를 건너고 있어서, 우리도 그 사람들 틈에 끼었다. 사이사이에는 쉬어가는 공간도 설치되어 있었다. 밤에는 조명이 화려하여 훨씬 더 아름답다고 했다.
  전군가도(全群街道)의 100리 벚꽃 길을 찾기로 하였다. 게이트볼 활성화에 공이 큰 H교장의 권고로 군산공설운동장에 들렀다. 노란 개나리를 비롯하여 봄꽃들은 사흘 뒤에 시작될 ‘군산 벚꽃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3년간 버스로 통근하였던 번영로를 달려 전주로 돌아왔다. 그 번영로는 철 따라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 번영로 구비 구비에 젊은 날의 내 추억이 서려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화려한 새만금의 꿈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2008.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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