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11호 자가용

2008.04.20 13:41

김정길 조회 수:98 추천:9

11호 자가용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 정 길 아내는 우리 가족의 튼실한 두 다리를 승용차에 비유해 11호 자가용이라고 부른다. 우리부부와 두 아들까지 합하면 11호 자가용이 4대고, 장롱 운전면허도 4개나 돼 마음이 항상 부자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운전면허를 취득하도록 권장해 놓고 건강하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며 승용차를 구입하지 않는 나를 은근슬쩍 꼬집는 말인지도 모른다. 두 아들은 한술 더 떠서 승용차가 없는 우리 집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한다고 목청을 높이곤 한다.   나의 11호 자가용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여름에 고고성을 울리며 태어났다. 어머니는 배고파 칭얼대는 나에게 빈 젖가슴을 물리기 일쑤였고, 빨치산에게 들킬까봐 삼복더위에도 포대기에 꼭꼭 싸서 피난을 다니셨다고 한다. 굶주림과 산고로 혼자 몸도 건사하기 힘드셨을 텐데 피난살이와 자식양육에 애쓰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육남매의 무녀리에다 먹는 것이 부실했던 나는 성장이 더디고 키가 작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나의 11호 자가용은 대기만성을 실감케 하듯 건강미가 넘치고 주행거리도 엄청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백두산, 금강산, 한라산 등 전국의 산줄기와 강줄기까지 거의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몇 년 전부터는 해외의 지리와 문화유적답사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주차걱정은 물론 음주단속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연료비에도 끄떡없다. 튼실한 나의 11호 자가용을 만들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그 자가용을 잘 관리해준 아내의 내조에 고마워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신혼 때는 아내의 11호 자가용이 더 튼실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아내의 허리디스크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안타깝다. 반면 나의 11호 자가용은 운행 횟수가 많아지고 더욱 튼실해져 미안할 따름이다. 주 5일근무가 시작된 뒤부터는 더욱 신바람을 내고 있다. 아내가 마련해준 도시락과 산행 참가비만 있으면 산 친구들과 호연지기를 기르며 전국 어느 산이든지 달려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그런가하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가정경제사정이 어려워도 승용차가 없으면 천연기념물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됐다. 게다가 한 집에 자가용이 몇 대씩 되다보니 오나가나 주차전쟁이 벌어지고, 버스회사는 손님 감소로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드디어 우리 집도 큰 변화의 물결이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부터 대학교와 학원에 강의를 나가는 큰아들과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승용차를 구입하게 됐기 때문이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올해 대기업에 취업한 작은아들도 승용차를 사야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나왔다. 큰아들에게 승용차를 빼앗겼다며 우리 부부 몫으로 승용차를 구입했으면 하는 아내의 바람을 언제까지 모르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우리 가족도 두 아들이 주장하던 천연기념물이 아닌 것 같다. 문화재청에 우리 가족의 11호 자가용에 대한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해 달라고 요청해야 할 때가 온 성싶다.                             (2008. 4. 19.)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214,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