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아들과 나비난

2008.04.23 08:27

김수영 조회 수:86 추천:11

아들과 나비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수영    우리집 부엌엔 뒷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이 하나 있다. 좁은 부엌에 더 좁은 수납장. 가스레인지 위와 그 옆 공간에 난 넓직한 창이다. 좁아서 설거지를 혼자밖에 못하는 그 공간에 숨을 트게 해주는 곳이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우아하게(?) 식사준비를 하고 싶지만 불행히도 서향이다. 그렇지만 저녁놀이 길게 창문을 건너 식탁까지 파고 들면 몸도 나른해지고 마음도 여유로워진다. 물론 7,8월의 살인적인 더위와 동반 하지만 않으면 말이다. 이 창가에 화초들의 보금자리가 있다. 창가 왼쪽엔 검정콩이며 보리, 검정 쌀이 끼니 순번을 기다리고 있고, 반대편엔 화초들이 늦은 오후의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손바닥만하거나 혹은 좀더 큰 손바닥만한 화초들이다. 알로에, 선인장, 칼란디바, 염좌, 나비난 순이다. 키야 고만고만하니 서열을 가리긴 어렵지만, 나이로 따진다면 나비난이 최고참이다. 나비난은 다섯 살 난 둘째 아들과 생일이 같다. 이쯤 되면 화초들의 생일을 어떻게 아느냐고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그건 간단하다. 나무처럼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진짜냐고 되묻겠지만, 물론 농담이다. 그냥 나와 처음 인연을 맺은 날이나 우리집에 온 날이 그 분재의 생일이 되는 것이다. 나비난은 좀 특별해 생일까지 알지만 다른 녀석들을 대개 나이만 세어 준다. 8년 전에 키우던 선인장 하나만 빼면 일곱 살 난 큰딸과 동갑이거나 어리다. 그래도 이 나비난은 올 7월이면 만 네 살이 된다. 2004년 7월 27일 새볔 3시 7분. 100년 만의 최고 무더위를 기록한다는 대대적인 언론매체의 입담에 혀를 내두르며, 더위와 산통으로 잠을 못자고 아들을 낳았다. 출산의 기쁨에 앞서 태열기에 아기의 양볼이 볽으스름해져서 마음이 아팠다. 특별히 태교를 잘 한 것도 아니지만 나쁜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에게 몹시 미안하고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때 남편 친구가 작고 기다란 화분 바구니를 선물로 가져왔다. 하얀 바구니엔 스파트 필름과 테이블 야자와 나비난이 앙증맞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나비난에는 하얀 꽃이 피어있었다. 역시 손바닥 만한 크기였다. 워낙 화초들을 좋아하기에 잠시 잊고 마냥 기분이  좋았다. 산후조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아이와 화초를 키웠다. 아들녀석은 식성도 좋아 모유로는 부족해 분유로 바꿔야 했다. 스파트 필름과 테이블 야자, 나비난 이들 세 쌍둥이는 물만 주어도 쑥쑥 잘 자라주었다. 아들과 경쟁이나 하듯이. 아토피 공부도 하고 맘고생도 많이 할 무렵 아들의 태열기는 깨끗해졌다. 당시 다니던 소아과의사의 태열기도 아토피며 없어지지 않는다는 장담을 깨고 말이다. 마치 첫돌이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들의 옷이 해를 거듭해 작아지고 화초 세 쌍둥이도 시위를 했다. 성장이 빠른 스파트 필름과 테이블 야자는 당장이라도 화분을 뚫고 나올 기세였다. 베란다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분갈이를 해 주었다. 역시나 아들처럼 큰 옷으로 갈아 입은 화초들이 으젓하고 마냥 예쁘기만 했다. 아들은 가벼운 감기말고는 탈없이 잘 커 주었다. 그 흔한 보약 한 제, 비싼 영양제 한 번 먹지 않고도 튼튼했다. 세 쌍둥이 역시도 그랬다. 매번 쌀 뜨물을 받아 주는 게 고작이었다. 쌀 뜨물을 먹은 화초들은 윤기가 나고 생기가 있었다. 미백엔 쌀 뜨물 세안이 효과적이라는데 나비난을 보면 단번에 그걸 입증해 보일 수 있다. 연두색 잎에 연한 아이보리빛 테두리는 윤기가 흐르며 반질반질한 모습은 아기 피부 같아 샘이 날 정도다. 영양제보다도 효과가 즉각 나타난다. 얼마 전부터 아들은 한 동안 습관적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 등을 긁어달라곤 했다. 가렵지도 않으면서 내 손이 닿으면 위로 아래로를 주문했다. 그리곤 어느새 잠들어 버린다. 매번 귀찮아 투덜거리던 나도 아이의 작은 등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마냥 행복했다. 그런 아들이 다섯 살이 되어 올 3월 빨간 가방을 메고 누나와 함께 어린이 집에 갔다. 이젠 제번 어린이 같다. 스파트 필름과 테이블 야자는 두세 번의 분갈이를 마치고 봄이 되어 거실에서 베란다로 나갔다. 도무지 2,000원 하던 작고 귀여운 4년 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금붕어가 죽으면 이들 큰 화분에 장례을 치렀다. 어디선가 지렁이가 나오면 징그러움을 무릅쓰고 잡아 넣어 주었더니 일취월장이었다. 나비난은 두 해 전 아들이 실수로 깔고 앉아 한동안 줄기 몇 가닥 남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쌀 뜨물을 먹고 새순도 많이 나고 줄기도 길어져서 25cm 넘게 자랐다. '난'애호가들이 키우는 비싼 난은 아니지만 -무려 2,000원이나 하는-난 화분에 심어줬더니 제법 그럴싸해졌다. 나비난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보면 단번에 알아차릴 그런 우아한 자태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잎이며 꽃대에 진딧물이 생겼다. 아들녀석에 이어 이번엔 나비난 이다. 식탁에 볕이 들 때 앉아 나비난을 유심히 살폈다. 겨우내 그 작은 나비난에서 얇은 꽃대 서너 개가 올라와 시들라치면 쌀톨만한 하얀 꽃을 번갈아 피워냈다. 겨울에 이른 봄소식을 먼저 전해준 고마운 녀석이다. 이번에 내 차레였다. 손수 잎을 들춰가며 연두색 잎에 붙은 진드기를 잡아냈다. 그러기를 사나흘. 이젠 가렵지 않은가 보다. 이런 아들과 나비난에게 동생이 생겼다. 얼마 전 어린이 집에서 심었다며 컵 만한 화분에 강낭콩 새싹을 가져왔다. 막내는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내 놓았다. 콩깍지조차 채 벗지 못한 정말 풋풋한 아기다. 강낭콩도 따 먹을 수 있을까? 샘 많은 두 녀석들 동생이 생긴 느낌이 어떨지 모르겠다.                                 (2008.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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