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김재희가 만난 수필가 김학씨

2007.05.20 22:29

김재희 조회 수:458 추천:6


수필가 김재희가 만난 수필가 김학씨


흐드러진 꽃 잔치의 소란과 연둣빛 잎사귀들의 새살거림이 어우러진 어느 봄 날, 전북대 평생교육원 교정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지칠 줄 모르는 의욕과 정열이 넘치는 표정이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팽팽한 분이다. 선생님에게 수필은 정년을 모르는 평생 직업이다. 틈틈이 글을 쓰고 제자를 가르치는 일에 여념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불광불급(不狂不及)을 강조하는 열정으로 오직 수필만을 위해 살아 왔고 앞으로도 수필만을 위해 살아가려는, 강렬한 집념과 뜨거운 애착으로 한국 문단에 우뚝 선 수필의 거목이다.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교정을 둘러보고 있자니 활기찬 모습으로 다가오신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니 오랜만이라고 대답하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치아가 다 들여다보이도록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왠지 예사롭지 않았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응, 이 봄이 참 아름다워요.” “특별히 이 봄이라고 하시는 이유는요?” “이 봄이 좋은 소식을 물어다 주더군. 잊고 있었던 옛 애인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참 당황스럽더라고. 예전처럼 반말을 해야 하나 높임말을 써야 하나,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어서.” 멋쩍은 듯하면서도 환한 얼굴에 복사꽃 같은 기운이 살짝 감돈다. 정말 화사한 봄날에 알맞은 화사한 마음이시다.

우리들 앞에서는 오로지 수필 공부에만 전력하라며 교과서적이더니 저런 여린 마음도 있었구나 싶게 다정다감한 모습이시다. 모처럼 색다른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5년 전 강의실에서 첫 대면 이후 처음으로 대하는, 거대한 거목 어느 한 줄기에서 살포시 피어난 연분홍 꽃송이 같은 모습이시다. 그렇지만 본연의 자세를 결코 흐트러트리지는 않으시려는 듯 다시 수필이야기로 이어진다.

선생님이 글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어느 시인의 집에 드나든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다. 선생님보다 한 살 많은 내종형이 그의 4촌 형인 시인 최승범 교수님댁에서 하숙을 했다. 학교가 끝나면 날마다 내종형을 만나러 최승범 교수님댁을 찾아 갔다. 그 집에 가면 책장에 꽂힌 수 천 권의 책을 마음대로 뽑아 읽을 수 있었으니 투자도 하지 않고 횡재를 한 셈이었다. 마음대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을 수 있어 여느 도서관도 부럽지 않았다. 그 시인의 집에 드나들다 수렁 같은 문학의 매력에 푹 빠진 셈이다.

또한 방송국 PD생활은 늘 원고지와 함께 한 생활이었다. 1970년대쯤 신설 에세이프로그램인 ‘밤의 여로’를 맡은 2년여 동안 매일 원고지 10장 정도의 수필 한 편을 쓰게 된 것이 동기가 되어 수필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다 1980년 월간문학에서 ‘전화번호’란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아 중안문단에 등단한 것이다.

선생님은 그 시절 ‘밤의 여로’에 작품을 쓰신 필진들과 함께 전북수필문학회를 창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회장 재임 중에는 전북수필문학상을 제정했다. 전북펜클럽 창립 회장을 맡아서는 '작촌문학상'과 '전북예술문학상'을 제정하고 제1회 ‘가람 이병기 시조시인 추모 전국 시조현상 공모’를 만들어 전북문단의 활성화에 이바지했다. 그 많은 약력과 화려한 경력 중 선생님에게 가장 큰 보람은 아마 지금 평생교육원에서의 후진 양성일 것이다.

5년여 동안 3백여 명이 수강을 했고 70여명이 등단해 수필가로 문단에 나왔으며, 다수가 외부문학상, 수필집 출간, 신춘문예 당선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어느 문예지가 조사한 전국의 수필교실 현황에 전북대평생교육원이 4개 반으로 가장 큰 규모임이 발표되었다. 그곳 출신 수필가들의 모임인 ‘행촌수필문학회’는 선생님이 큰 자랑으로 여기는 모임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활동무대가 어찌 한 지역에만 머물 것인가. 전국의 주요 문예지에 기여하는바 또한 크다. 각종 월간지나 계간지의 신인상 심사위원과 수필 평을 쓰면서 수필평론가의 길도 겸한다.

선생님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문학활동을 한다. 수필이론과 수강생들의 작품을 받아 읽고 첨삭 지도하는 것도 메일로 하며 문학 사이트 게시판에 게재하여 여러 회원들이 같이 공부할 수 있게 한다. 홈페이지에서 댓글을 주고받으니 회원들의 친목이 더욱 돈독해지는 효과가 크다. 문학 외에도 생활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시로 전하는 등 요즘 젊은이들처럼 능수능란하지는 못해도 결코 그들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실력이다. 거의 날마다 컴퓨터 앞에서 몇 시간씩 보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는 본능적으로 모든 감각이 소재 찾기 안테나 역할을 한다. 우수마발(牛?馬勃)이 모두 수필의 소재이고 그것에서 선택된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며 수필가는 항상 역시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수필의 소재가 어떤 것이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수필가의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씌어진 편향된 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수필 중에는 고향이나 친구 이야기가 많고 특히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가득 깃들어 있다. ‘사모곡’은 대표작으로 꼽힌다. 감칠맛 나는 비빔밥같이, 구수한 숭늉같이, 은은한 옥양목 같이, 담담한 물같이, 묵직한 뚝배기 속의 막걸리같이 토속적이고도 정감어린 언어들로 독자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또한 서정수필보다는 서사수필에 더 비중을 크게 두며 반드시 어떤 메시지를 담아낸다. 이런 글들을 모아 9권의 수필집을 탄생시켰다.

선생님의 수필사랑은 어느 누구보다 강해서 현실문제들을 놓고 위기감을 느낀다고 걱정을 한다. 문학이란 심오한 사상과 깊은 감동을 줌으로써 인간을 격려하고 보다 가치 있는 정신세계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논지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수필도 변해야 하며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니 만큼 그것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필의 길이가 인터넷시대에 걸맞게 짧아졌으면 좋겠다는 것, 재미와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 시각적인 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썼으면 한다는 것, 독자들의 관심을 갖는 주제를 찾아내면 좋겠다는 것 등을 지적한다.

특히 환경친화적인 소재를 찾자고 한다. 날로 자연이 파괴되고 환경이 오염되는 현실에서 건강한 자연을 유지 회복시키기 위해 수필가들이 환경 지킴이로서 나서야 하며, 그 자연을 잘 사용한 뒤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의 미학이 가득 담겼으면 한다는 것. 이 시대에는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 사이에 정이 흐르지 않아 교류가 막힌 정의 동맥경화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수필이 막힌 그 통로를 뚫어주고 순수성을 되찾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한 수필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담았으면 한다는 것.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가 밝은 것보다는 어두운 이야기가 더 많아 고통스럽고 짜증나는 시대이니만큼 따사로운 이야기나 밝고 맑은 미담들을 수필에 담아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타산적이고 기계적인 일상의 삶 속에서도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우리를 기쁘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깃거리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가 있을 것이니 복잡하고 잡다한 일상 속에서도 조화롭고 감동적인 소재를 찾아 아름다운 수필로 빚어낸다면 영롱한 아침이슬처럼 찬란히 빛날 것이라는 말이다.

글을 쓰려면 먼저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은 문학의 기본자세. 선생님은 특히 이것을 강조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에 세끼 식사를 하듯 매일 수필 3편은 읽으라고 당부하거니와 당신께서도 꼭 지키려 노력하신다 한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수필을 노래하는 선생님의 극성(?)에 제자들은 신물이 날 정도다. 글을 썼으면 수필집으로 엮어 내야만 그 글이 오래 살아남는다며 책 내기를 권하는 통에 선생님 앞에선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쉽게 그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이렇듯 한 번 맺은 인연을 굵은 줄에 엮어 놓는 선생님의 역량이 참으로 놀랍다. 잠깐의 만남을 시샘하듯 수업을 기다리는 수강생들의 눈빛이 선생님의 마음을 채근한다. 아쉬움을 남기며 손을 흔드는 모습 위로 꽃향기 버무려진 봄날의 햇살이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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