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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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선화와 봄맛 / 수필

2021.07.08 16:43

민유자 조회 수:16

수선화와 봄맛

 

 어머! 언제 이렇게 자라 올라 꽃을 피웠지? 봄이 왔구나 했더니 변덕스레 찬바람이 불고 추웠다. 며칠 밖을 내다보지 않다가 오늘 보니 어느새 한 이나 자란 수선화가 청초한 노란 꽃을 활짝 피우고는 다소곳이 봄을 안고 웃고 있다.

 

 지난가을에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장미 몇 그루를 심으며 내가 좋아하는 립, 수선화, 라넌큘러스, 알리움 같은 구근식물의 알뿌리를 사이사이에 묻어두었더니 그중 수선화가 제일 먼저 피었다.

 

 지난겨울엔 80년 만의 추위가 닥쳐서 좀처럼 추위를 모르던 이 곳에 얼음이 다 얼었고 기온이 화씨 17도까지 내려갔다. 선인장을 비롯하여 하와이 무궁화와 부겐베리아 같은 온대식물들은 거의 다 얼어서 삶아놓은 듯하더니 녹으니까 누렇게 변하고 주저앉아 공들인 화단이 삭막하게 변해 버렸다. 수선화는 이런 겨울을 지나고 제일 먼저 피워낸 꽃이라 새삼 반가웠다.

 

 나는 날씨가 좋으면 별 목적 없이 오가다 너서리Nursery6)에 들러 한참씩 돌아보며 계절 따라 바뀌는 온갖 기화요초琪花瑤草 들을 감상한다. 꽃의 종류가 신기하게 많고 나무, 넝쿨, 유실수도 수없이 여러 가지다. 희귀한 열대식물들도 풍성하고 특이한 선인장도 갖가지다. 아마도 이곳 남가주의 기후 조건으로는 다른 어느 고장보다 많은 종류의 꽃과 나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각 나라의 여러 인종이 모여 살아 음식도 다양해서 동서양 6대주의 과일과 음식이 철을 가리지 않고 거의 다 있다. 입맛대로 나라별로 돌아가며 찾아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젊은 날 뇌리에 각인된 보잘것없을 것 같은 고향의 옛 음식들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마당 한편에 연하게 자란 부추를 한 줌 뜯어 오이소박이 속을 박고, 빨간 생고추를 설킁 갈아서 풋배추 김치를 담갔다. 풋김치 가 맛이 들면, 땅에 꾹꾹 찔러두었던 파뿌리가 가늘고 길게 자랐으니, 뽑아다 잣을 물리어 강회를 만들고 초고추장도 곁들여 봄 맛을 살려봐야겠다.

 

 280세대가 사는 시니어 단지에 한국 가정이 여섯 세대 산다. 두 집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연세가 더 드신 세 집은 완전히 은퇴 했다. 모두 일찍 미국에 와서 피나게 노력하여 전문직이나 사업으로 성공하고, 일면 조국의 번영에도 일조하고, 유복한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다.

 

 질곡의 수난을 겪은 조국의 매듭 많은 근세사. 참담한 망국과 혹독한 식민지, 혼란의 해방, 건국과 비참했던 육이오전쟁, 그 이 후의 분단과 냉전의 세월만 해도 지난했던 오랜 세월. 그 각박한 토양에서도 거칠 것 없는 푸른 꿈을 향한 정열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험난한 고산준령을 넘어오신 어른들이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로 시작하여 2절의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볼까나’로 끝맺는 학창시절에 불렀던 이은상 작시 홍난파 작곡의 ‘봄처녀’. 이 시와 곡은 여기 은퇴 마을에 사시는 분들이면 누구나 참 오랜만이긴 하겠지만 서두만 떼면 입에서 술술 이어나오는 가사와 곡일 테다. 이 곡을 김동명 작시 김동진 작곡의 ‘수선화’와 함께 준비해두려 한다.

 

 낮에 집에 계신 분들을 불러다 이 곡을 들으면서 부칠 곳 없는 정열을 가슴에 깊이 감추고 찬바람과 추위를 이기고 제일 먼저 찾아온 봄처녀 수선화를 선보여야겠다.

 

 봄을 제일 먼저 알려준 노오란 수선화가 보이는 창가에 모여 앉아 새파란 풋김치와 파강회로 맑은 새봄을 맛봐야겠다. 수선화를 바라보며 그분들의 성공담을 곱씹어 듣는 맛도 한몫을 톡톡히 하리라.

 

6) 너서리Nursery - 꽃과 나무, 정원용품을 파는 곳.

 

https://youtu.be/_wdAZXfDz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