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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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오염된 일상어 / 수필

2021.07.08 16:49

민유자 조회 수:4

오염된 일상어

 

 글을 쓰다 보면 자꾸 한자어나 영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순수한 우리말을 생각하여 바꾸지만 어떤 때는 생각과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기가 어렵고 아주 불가능할 때도 있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어언 40년이 넘었다. 팔팔하던 삼십대가 어느 결에 칠십대에 이르렀다. 아직도 나는 영어 무섬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일상의 언어 가운데는 영어가 많이 들어 있다. 좋은 한국말을 모르지 않음에도 영어가 먼저 튀어 나온다.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은 처음부터 영어로만 말하든지 아니면 아주 한국말로 다 하라고 핀잔을 주어 찬물을 뒤집어쓴 듯 머쓱하게 만든다. 주제 파악을 못하고 주체를 잃어버린 상황이니 지당한 얘기임이 분명하다. 영어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터에 주절대다가 따끔하게 지적받은 부끄러움에 할 말이 없다.

 

 왜 이런 반갑지 않은 습관이 붙었을까? 듣고 말하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만나고 부딪힌 경험에 따라서 익숙해진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때문일 게다. 가만히 보면 나뿐 아니라 이곳에 살고 있는 많은 한인들이 그런 습관에 젖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어뿐만 아니라 스패니시도 섞여 있다. 오랫동안 생산 공장에서 히스패닉과 함께 일하는 동안에 스패니시를 배우게 되었다. 정식으로 말을 공부한 게 아니다. 그 사람들도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일하는 현장에서 서로 답답한 가슴을 치면서 울고 웃으며 그냥 명사와 동사만을 나열하며 배운 말이다. 그것이 실제 상황에 수없이 부딪치며 써먹던 단어들이라서 나에게는 아주 매끄럽게 익숙하다.

 

 때론 우습게도 영어로 말을 하다가 무심코 스패니시 단어를 섞어서 말하는 경우도 가끔 생긴다. 스패니시를 모르는 상대가 못 알아듣고 짓는 의아한 표정을 보고서 얼른 고쳐 말하곤 한다. 상대편에서 볼 때는 가뜩이나 발음도 나쁘고 영어도 서툴러 알아듣기 힘든데다가 엉뚱하게 스패니시까지 섞어 버무려 놓았으니 얼마나 어처구니없을 일인가? 진풍경의 코미디가 따로 없다.

 

 미국에 오래 살아 그런지 요즘은 한국말도 서툴다. 한국 젊은 이들의 말은 억양까지도 옛날과 상당히 다르다. 인터넷 안에서의 말들은 구겨지고 잘려서 도무지 뜻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긴 생활이 옛날과 많이 다르다 보니 언어도 그에 따라 변천되어 간다. 그러나 지나친 조급함과 천박함이 느껴지는 경향도 있다. 이렇게 빨리 말들이 변해간다면 함께 공존하는 세대 간에도 통역을 써야만 대화가 가능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두렵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구세대는 물론 신세대에게도 큰 재앙이 될 게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한자로 인해 빼앗긴 순수 우리말의 영역을 모두 되찾기에는 한참 먼 상황이다. 우리말의 성장 속도로는 문화의 팽창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도 있다. 외래어를 꼭 섞어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허다하다. 더욱이 반세기 이상을 담 쌓고 살아온 반쪽 나라가 통일된다면 언어의 혼란이 한층 더 클 게다. 이 혼란을 어떻게 겪어나갈지 의문이다.

 

 실생활에 맞추어 새로이 생겨나는 말들은 의사소통을 돕고 언어를 살찌운다. 한편 사라져 가는 고운 말들도 꼭 붙잡아서 우리의 생각과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어 나가야 하겠다.

 

 말은 자꾸 써야 익숙해져서 자기의 것이 되고 서로 소통의 구실도 하게 된다. 영어를 더 배워야 하는 일이 내가 이곳에서 눈뜨면 날마다 부딪치는 문제지만 글에서만은 우리말을 바르고 아름답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운 우리말과 함께 으뜸 우리글을 두고두고 오는 세대에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남겨주어야겠다.

 

 이는 무심함으로 넘겨버릴 일이 절대 아니다. 상당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힘써야 할 일이다.

 

 글짓기야말로 오염된 일상어들을 정화된 우리말로 아름답게 가꾸고 갈무리해 나가는 더 없이 좋은 역할을 감당하리라. 풍성한 문학의 유산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다양성의 밑받침이 되고, 민족의 얼과 정신세계도 맑고 깊어지는 근간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