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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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테메큘라 와이너리 탐방/ 여행수필

2024.05.03 15:40

yujaster 조회 수:24

 

테메큘라 와이너리 탐방 / 민유자

 

 

     앙칼진 꽃샘 추위는 진눈개비에 폭풍까지 앞세우지만

     그 중에도 울긋불긋 망울은 소리 없이 벙글고

     농염 진한 부푼 입술 수줍은 듯 내밀면 

     풍선마냥 들뜨는 여심 발바닥이 간지럽다

     날개가 돋으려는지

 

 

  꽃샘 추위 동반한 폭풍. 기온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더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2 하순인데 이상하다. 삼십년만의 추위라 했다. 추위, , 바람을 모두 생각해서 방수가 되고 후드가 달린 옷을 두둑히 입어 대비했다. 나이 탓인가 점점 추위를 많이 탄다.  내가 봐도 모양새가 우스웠지만 춥고 젖는 것보다 실리를 따르기로 했다. 

원래는 애나카파 섬에 가기로 했던 날인데 날씨 때문에 취소했다. 변변한 쉴곳이 없는 야생 섬에서 비를 맞으며 하이킹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다. 어차피 비워놓은 하루, 대신에 테메귤라 와이너리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이런 날씨에 어딜 간다구?  무슨 방귀에 맛으로?” 남편이 혀를 찬다.  길도 미끄러울텐데 자기를 하루종일 안전을 위해 기도하게 하는냐는 남편의 만류가 들뜬 나를 붙들어 세우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이다. 

 

  마침 일행의 지인이 테메큘라에  있다하여 곳으로 먼저 갔다. 멋진 수영장을 갖춘 저택이 작은 언덕 위에 있어 아래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멀리 겹겹이 음영을 드리운 아래엔 은빛 호수가 길게 누어있어 평화로운 정경이다. 무슨 근심도 여기에 잠시 있으면 금새 날아가버릴 같다. 주인은 처음 여기에 집을 보러 왔다가 시간만에 사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부부는 수 년째  주말에는 이곳에 와서 조경을 설계하고 유실수를 심고 정원을 가꾸며 보낸다고 한다. 젊은 열심을 다해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은퇴한 후에 이처럼 멋진 곳에다 꿈의 거처를 마련하고 열과 성을 바쳐서 몰두하는 여유와 정열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뒤편에 심겨진 사과나무에는 방금 터진 분홍색 사과꽃이 여섯 섬색시의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고 살구나무에서도 하얀 꽃망울이 팝콘처럼   터질것 같이 부풀었다. 집의 뒤로 부엉이 맨숀을 높이 세워놓았다. 삼월쯤이면 부엉이가 와서 알을 낳고 새끼를 치고 가을에는 어디론가 날아간다고 한다. 전에는 과일이 열려도 짐승들이 극성으로 달려들어 과일을 먹을 수가 없었다. 부엉이가 있으니까 짐승들이 오지 않아 유실수의 과일들을 손실 없이 거둘 있다고 했다.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가 있는 거실에서 따근한 차와 금방 구운 쿠키를 대접받고 일행중에 우쿠렐레를 가져온 분의 리드로 싱얼롱을 잠시 했다. 혹시나 하여 오카리나를 가져갔더니 비가 와서 공기중의 수분이 많고 댁의 천정이 높으니까 공명이 잘되어 듣기 좋았던지 박수를 많이 받았다. ‘새소리 연주했는데 사실은 오랫만이라 곡도 기억을 못해서 틀리고 손도 어눌하여 연주로는 낙제 수준이였으나  오카리나의 맑은 음색에 모두 홀딱 반한 즐거워했다. 

 

  이댁 주인은 여러 방면에 전문성을 갖춘 여성이다. 이십여년 미국 스토랑을 운영했고, 부로커 라이센스에다 건축 사업 라이센스 소유자이며, 합기도 유단자이기도 했다. 한국 음식에도 관심이 많아 된장 고추장을 손수 담가서 먹는다는 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오늘의 영광을 거머쥔 그녀를 섣불리 부럽다고 것이 오히려 부끄러웠다. 

그녀의 성실과 적극적인 열정, 안목 있는 품격,  넉넉한 인품은 오늘의 추위 속에 눈비를 맞으며 발그레  피어난 사과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미라몬테 와이너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비가 오고 날씨가 궂어서 차를 타고 근방을 지나올 때에는 마주치는 차량도 전혀 없더니 와이너리에 도착하고 보니 비를 뚫고 사람들이   많고 북적대기까지 했다. 지역 와이너리 몇곳에 멤버쉽이 있다는 분들은 우리에게 Opulente  2018년도 가버네 소비뇽 고급 와인을 2 대접했다. 멤버쉽 덕분에  점심값도 반으로 할인 받을 있었다. 

집에서 남편이 포도주를 마셔도 위장이 약하기 때문에 혀끝으로 맛만 보고 마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객기가 동해 맘을 터놓고 마셨다. 흔들어서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니 상큼하고 향기로와서 입술만 적신다는게 홀짝 홀짝 목구멍으로 잘도 흘러들어간다. 

포도주를 즐기는 남편은 포도주를 새로 따면 언제나 내게 먼저 내밀고 시음을 권한다. 그러면 내가 무릎을 치며 읽었던 로알드 * 나오는 미식가 리처드 프랏의 흉내를 내서조신하다느니 수줍다느니 아니면 수더분하다든가 명랑하다고 또는 매혹적이고 귀엽다라며 사람에 빗대어 표현하는 말을 하곤 한다. 

점심시간이 늦은데다 음식도 좋았지만 포도주 덕분에 맛있게 점심을 끝냈다. 그분들은 떠나오는 우리에게 포도주를 병씩 선물로 안겨주고 다음에는 날씨 좋을 때에 와서 하루 묵고 가라고 하여 우리를 감동시켰다. 본채와 떨어진 곳에 3베드룸 개스트 하우스가 따로 있어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 우리가 받은 포도주는 각자 한병이지만 베푸는 사람은 한꺼번에 여러병을 베풀었으니  마음씀이 푸근하다. 받은 사람은 마음 씀씀이가 복을 받게 되어있나보다! 

캘리포니아의 손꼽히는 와인 생산지인 테메큘라의 명성에 걸맞게  춥고 비오던 날의 추억을 상쇄하려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다음에 다시 그곳에 기회가 온다면 오늘의 고마움을 듬뿍 얹어서 선물을 준비하여 가리라!

 

230227

 

 

 

*로알드 Royald Dahl - ‘애드가 앨런 상을 두번, 전미 미스터리 작가상을 세차례 수상한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 중의 사람. 2000세계 책의 세계의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뽑혔다. 소설가 성석제는이제까지 내가 읽었던 소설의 서열을 매기라 한다면 나는 로알드 달의 소설을 다섯 손가락 안에 놓겠다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