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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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환갑날의 소묘素描 / 수필

2021.07.01 09:31

민유자 조회 수:19

환갑날의 소묘素描

 

 내가 벌써 60회 생일을 맞아 환갑이 되었다니 정말 실감이 안 난다. “요즘 누가 환갑을 하느냐?” 아무 말 말라고 딱 잘라 말해도 아이들이 그럴 순 없다고 여행을 하든지 아니면 잔치를 하든지 좋을대로 하라며 독촉을 해댄다. 물러서지 않고 자꾸 조르기에 그러면 가을에 한국엘 가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한국에 다녀온 지 어언 20년이 되었다. 사업에 몸이 매였을 때는 일에 파묻혀 손익 계산을 하느라 못 가고, 사업을 청산하고는 연로하신 치매의 시어머님을 모시느라 무슨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남편 혼자서 한국을 드나들었다.

 

 주위에서 여행사를 통해 모국 방문을 했더니 참 좋더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서 그렇게 한번 다녀오리라 여기던 차였다. 별 생각 없이 지나온 20년인데 막상 마음을 먹고 보니 갑자기 한국의 모습이 눈앞에 어리고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들이 떠오른다. 조국의 눈부신 발전상이야 저절로 눈에 고 부딪치겠거니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을 옛 모습들이 있다면 두루 다녀보고 싶고 토속음식들도 먹어보고 싶다.

 

 생일에, 산호세에서 내려온 아들네 세 식구와 우리 부부는 점심을 먹으려고 한 차에 타고 떠났다. 가다가 우리가 늘 즐겨 가던 이탈리아 음식점 앞에 차가 추기에 딸과 만나기로 약속한 곳인 줄 알고 내리려고 하니 가만히 있으란다. 잠시 후 아들은 그곳에 서 무엇을 들고 나왔다. (나중에 보니 내가 좋아하는 ‘티라미수’를 주문해 두었다가 후식으로 생일 케이크를 대신했다.)

 

 다시 고속도로를 10분쯤 달리다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엄마가 좋아하는 오디세이로 가요.” 한다. 높은 지대에 있어서 밤에는 경치가 좋은 곳이다. 고속도로에서 내려야 할 곳을 그냥 지나쳤다. 길을 잘못 들어선 줄 알고 다음 출구에서 내려서 어떻게 가는지를 일렀는데 또 그냥 지나치며 달려갔다. “이곳 지리는 너 보다 우리가 더 잘 알잖어?” 안달하는 나에게 아들은 “맘! 나도 잘 찾아갈 수 있으니 정 마세요”라며 글거렸다. 궁금했지만 참고 기다리는데 차가 조용한 주택가로 들어섰다. 이런 곳에 음식점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꼬불꼬불 10분쯤 더 들어가 도착해 보니 그곳은 ‘서디나 리츠 튼’ 호텔이었다.

 

 아름답고 고풍스런 건물로 들어가서 잘 손질된 정원을 끼고 돌아가니 저만치 돌기둥 사이로 시원하게 수영장이 보이는 넓은 방이 나오고 그곳을 가로질러 안내된 곳에 이르렀다. 풍선과 꽃으로 가득 장식한 작은 방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깜짝 파티였다.

 

 이곳에는 친척들이 많지 않다. 시집 쪽으로 시누이와 조카, 친정 쪽으로 오빠와 성혼한 조카 이 있어 가족들을 모두 합하여 20여 명 정도다. 여기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한 시간 이상의 거리에 살고 있어서 한자리에서 모두를 만나기는 좀처럼 어려웠다.

 

 식사 후 아들이 제프리 게임을 진행했다. 유자가 좋아하는 것, 유자의 작은 명성들, 유자의 과거, 현재의 유자, 유 짜, 이렇게 다섯 종류로 나누어 한 종류에 다섯 가지 질문들이 적혀 있었다. 게임판을 걸어놓고 게임을 시작하려 할 때 조카가 다섯 번째의 ‘유 짜’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아들은 “알뜰한 엄마는 평소에 자기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절약을 해서 엄마 이름에 ‘짜다’는 뜻을 붙여놓은 엄마의 별명 중 하나다”라고 해서 모두 웃었다.

 

‘유 짜’의 질문이 제일 인기 있었다. 세 으로 나눠서 맞추기를 하는데 점수를 올리고자 머리를 짜내며 답하는 과정에서 기발한 상상과 유머로 서로를 웃겼다. 질문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나의 숨은 과거, 또 살아오면서 이룬 작은 업적들과 재능들, 마음 에 품은 소망들, 평소의 생활태도 등이 모두 들어 있었다. 이 게임을 통하여 그곳에 함께한 모든 사람이 몰랐던 나의 과거와 근년에 상복이 많아 신춘문예 수상, 풀무원의 두부 요리상, 효부상, 황성주 생식의 장금이상을 받은 것까지 소소한 현재의 모든 것을 알아가면서 놀라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게임이 끝나고 딸이 시상으로 준비한 상품을 소개했다. 일등한 팀의 상품으로는 평소에 의견차가 많고 개성이 강한 우리 식구들의 중심에서 항상 조용히 평화를 견지해 온 엄마를 생각하여 평화의 상징을 선물한다고 ‘도브’ 비누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이 등 상품은 겉보기로는 가늠할 수 없었던 숨겨진 욕망과 의외의 기호를 갖고 있는 엉뚱한 엄마를 생각하여 준비했다고 99전 가게에서 산 오색찬란한 바람개비를 하나씩 주었다. 삼등은 평소에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는 엄마의 미를 생각하며 작은 화분을 준비했다며 하나씩 분배했다.

 

 딸과 아들 내외가 서로 분담하여 베풀어준 깜짝쇼는 아름다운 장소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므로 오랫동안 잊지 못할 감동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더하여 게임 중에서 지금 당장 가면 어디를 여행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에 캐나다 프를 지명 했더니 남편이 캐나다 여행을 준비해 줘서 다음 주에 떠나기로 되었으니 그것도 기대 밖의 큰 기쁨이다. 가을에는 아이들이 약속한 한국여행도 기대할 일로 남아 있으니 아마도 올여름은 생애 최고의 행복한 여름이 분명하다.

 

 낯선 땅에서 뿌리 내리려 눈 돌릴 새 없이 허덕이며 살아왔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자라서 나를 이렇게 겨주는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깊다. 하늘 우러러 감사하는 마음에 눈물을 치며 변곡 점에 선 오늘 이후의 삶, 새로운 인생 이모작을 구상해 본다.

 

 https://youtu.be/pNjlj8sUA6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