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명의 문둥병 환자들,

2007.11.12 09:00

연규호 조회 수:971 추천:102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았는데 다른 아홉은 어디에 갔느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문둥병자 열명이 예수를 보고 멀리서 소리치기를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이 여기소서”라고 부르 짖으니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하시니 문둥병자들이 깨끗이 나았는데 그들중 한명의 문둥병자만이 예수께 돌아와 발아래 엎드려 사례를 하니, 예수께서 말하기를, “열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았는데, 그들중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은 후 찾아 온 사마리아의 문둥병자에게 말하기를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시더라.-
                           *
문둥병 환자들이 깨끗함을 받은 것은 마치 잘 못살던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잘사는 미국으로 와 인던 레지덴트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사가 된 한국 의사들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살아왔다. 혹자는 반감을 갖겠으나 예를 들면 그렇다는 말이다.
1950-70년 초의 한국, 특히 의과대학생들에게는 미국에 와서 전문의사가 되는 것이 크나큰 꿈이었기에 능력 있는 의사들은 미국으로 보따리 싸들고 이민으로 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의사들은 전문의사 과정을 성공리에 마쳤으나 그중에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 가 한국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 의사들은 얼마나 될까?
10%? 아니, 그 이하일게다. 90%는 아니올시다였다.  
연규호도 그중(90%)의 하나 임에 틀림이 없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았는데 그들중 아홉은 어디에 가고 너만 찾아 왔는가?”
이 질문은 나의 평생에 짐이 되었으며 죄 책감을 느끼게 하였다.
50살이 넘어서도 60이 넘어서도 그러했다.
어떻게 하여야 이 죄책감에서 해방이 될까? 나는 오늘도 생각하며 살고 있다.
대한민국....싫던 좋던 나의 부모가 살았으며 내가 태어나 의사교육을 받았던 곳...
대한민국, 비록 부조리가 심한 나라라고는 하나 그래도 내가 자라고 교육을 받은곳....
대한민국, 비록 잘 못 살았던 그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나는 먹고 자랐던 곳...
대한민국, 비록 거짖이 성행한다고는 하나 내게는 나의 조국이요 삶터였던 곳....
무엇으로 사죄를 할꼬? 무엇을 하여야 보상을 할 수가 있을까?
나는 오늘도 이 문제를 생각하며 살고 있다.
                          *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유행가를 부르면 나는 내 마음도 이런 심정임을 느끼게 된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이제 내 나이 60이 넘고 보니 이젠 이 문제로부터 자유스러워 지고 싶은 심정이다.
                            *
“그렇다면 다른 9명은 어디에 있는가? 과연 그들은 나라를 배반한 배신자들이란 말인가?”
“아닙니다. 결코......”
나는 이들 9명을 다른 곳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뜻밖이었다. 이들 9명은 결코 배은망덕한 부류의 의사들은 아니었다. 단지 뒤 늦게 깨닫고 다시 예수님에게 찾아와 문둥병이 다 나았음을 간곡하게 감사한 의사들임을 알게 되었다.
전문의사 과정을 마치고 개업을 하여 돈도 벌고 골프도 치며 벤즈도 굴리며 잘 살다가 어느날..........,
이들은 “아뿔싸! 나를 고쳐준 분이 있었어....”그리고 그들은 뒤 늦게 그(예수)를 찾아 간 것일 뿐 배은 망덕한 문둥병 환자(의사)들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아니 오히려 처음의 그 문둥병 환자보다고 더 예수에게 감사함을 더 표현하였으며 더 그를 위해 사회에 나가 그들보도 못한 사람들을 섬기며 도와 준 좋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되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소설,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의 주인공(모델)이 된 고. 이봉영 외과 전문의사를 보라!
그는 역시 9명, 문둥병 환자중의 하나였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후 육군 군의관 외과 전문의사 과정을 마치고 개업을 하여 돈도 많이 벌었으며 자식들 교육 잘 시켜 누가 보아도 성공한 의사였다.
그러던 그가 50이 조금 넘은 어느날 갑자기 그의 몸에 붙었던 문둥병을 치료해 주었던 은인, 예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지금까지 받은 은혜와 복을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어 주는 삶을 하자.어느말 그는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것은 어느 신문에 실린 광고였다.
-아프리카 남동쪽에 있는 말라위에 가서 외과 진료를 하실 분을 초대함“이라는 어느 교회의 광고였다.-
“아-바로 여기로구나! 아프리카, 말라위,  말라위(Malawi)."
그는 두말 하지 않고 그의 진료실을 닫고 자비로 3년간 그곳에 가기로 계약을 하였다.
“아니? 무슨 말씀을? 개업을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착실한 문둥병 환자였다.
아프리카에서의 3년...프랑스말을 쓰는 그곳에서 그는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전기 시설이 극도로 열악한 말라위의 병원에도 수술 도중에 정전이 되면 발전기를 돌려 가면서 수술을 하였으며 수술 장갑도 변변치 못해 바늘에 찔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3년간의 봉사가 끝나면 그는 남미나 중미로 가서 무료 외과 봉사를 하며 선교를 하려고 하였다.
한국으로 귀국하였을 때 그는 몹시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하였으며 뜻밖에도 그는 후천성 면역결핍증에 의한 혈액 감염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년간의 투병...
(주: 본인의 소설,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를 참조 해 주시기를 바람)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아내를 옆에 두고 눈을 감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가 소원하였던 중미 의료 선교.....
나는 친구로서 과테말라에 친구, 이봉영의 숭고한 봉사의 정신을 심어주고자 한자.
“나머지 9명의 문둥병 환자는 어디에 갔느냐? ”
“예, 그들은 중미로, 아프리카로, 우크라이나로, 터키로, 베트남으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남미 파라과이로 그리고 인도네시아로 갔습니다.”
나는 분명히 9명의 문둥병 환자의 외침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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