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란 직업?

2007.11.12 09:07

연규호 조회 수:1137 추천:163

산디에고, 동물원의 원숭이나 다람쥐보다도 못한 것.....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디에고 동물원에 가보면 철망 속에서 갖가지의 원숭이들이 괴성 소리를 내며 나무를 타며 놀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쭉 늘어서서 깔깔거리며 구경을 하다가 바나나를 던져주면 앙증맞은 손으로 껍질을 깐 후 오물오물 삽시간에 먹어 치우고는 또 달라고 한다. 구경꾼들은 이 것이 재미있어 또 다른 바나나를 던져 준다. 배가 부른 원숭이는 저편 구석으로 가서 쭈구리고 앉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이것도 재미가 있어 깔깔대며 그곳을 향해 소리를 쳐보나 배부른 원숭이는 들은척도 없이 잠에 빠져든다.          
또 다른 한 귀퉁이에는 다람쥐들이 총총히 밖힌 철망 속에서 바쁘게 돌아다닌다.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에서 보던 다람쥐가 재주를 피우던 그 쳇바퀴가 없었다.
“미국 다람쥐는 쳇바퀴도 못 돌리나?”
문득 나에게 생각나는 한국에서 즐겨 보았던 다람쥐 쳇 바퀴가 떠오른다.
작은 철망 속에 쳇바퀴가 있으며 그 쳇바퀴를 두발로 열심히 타며 재주를 부리던 다람쥐에게 잘했다고 던져 주던 도토리가 그리웠다.
“도토리? 아니 갑자기 도토리는?”
놀랍게도 미국에도 도토리가 있다. 무료한 한국 노인들이 도토리를 주어서 도토리 묵을 쑤어 그래도 그들의 생명을 돌보아 주는 주치의사라고 갖다 주어서 맛있게 먹은 적도 꽤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
어쨋거나 원숭이와 다람쥐는 재주를 부린다. 비록 동물원에 갖혀 살지만 먹고 자고 입을 걱정은 없는 마음 편한 동물들이다.
의식주(衣食住)가 해결되었다는 말이다. 단지, 갖혀 있다는 것...제한된 공간에 산다는 것....
그래도 한가지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선택의 자유란?
“원숭이는 재주를 피우다가 싫으면 안하고 자면 그만이라는 것...”
“다람쥐도 쳇 바퀴를 돌리다가 하기 싫으면 그만두면 된다는 것....”
이것이 이들 원숭이와 다람쥐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나를 부럽게 한 선택의 자유였다.
                             *
“그러면 의사 선생님은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말입니까? 공부도 많이 하고 부러운 직업인데.....”
“그렇습니다.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말이요....”
“ 그래요? 다소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무슨 뜻인지 감이 오는군요.
의사 38년? 와! 와! 선생님? 참 지겹지도 않으세요? 아니, 좋은 직업이니까, 계속하세요!”
“아니? 누굴 놀리세요?”
사실이 그러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백인들과 경쟁을 하여야 하는 미국에서의 의사생활은 말 그대로 목숨을 내 놓고 밤낮 없이 뛰어 다녀야 하는 전쟁터였다. 게다가 영어마저 신통치 않다보니 몸으로 때워야만 하는 막 노동판이라고 하여야겠다.
이런 과정을 뚫고 내과 전문의사 과정을 마치고 보니 내게 남는 것은 B-형 간염이었다.
어쩌다가 나는 간염에 오염되어 일년간을 기운 없이 코피 흘려가며 요양을 하여야했다.
전문의사 시험도 몇 차례씩이나 반복하여 겨우 합격을 하였다.  
그리고 한국으로 가려고 하니 받아 주는 곳도 별로 없었다. 강원도 원주 기독병원에 가서 신경과를 하라고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충청도 촌놈이니 그곳도 나에게는 과분하였기에 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나마도 쉽지가 않았다. 결국, 산 버나디노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내과, 신경과 의사로 6개월간 근무를 하다가 집어치우고 가든그로브 한인타운에 와서 내과를 개원하였다. 그리고 한국 사람, 히스패닉, 월남, 중국, 등등 닥치는 대로 환자를 보았다. 마치 원숭이가 정신없이, 신들린 듯이  그네 타듯이...
그리고 다람쥐 쳇 바퀴를 돌 듯이 가든그로브와 오렌지를 오가며 살아왔다.
개업의사가 되어서 한 일은?
집 값 월부금, 작은 건물의 월부금, 등록금, 자동차 할부금을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50살이 되었다.
집은 낡은 집이 되었으나 아직도 월부금은 계속내야 했으며 내 머리는 완전히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어-반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아- 이것이 의사의 길이었던가? 아냐! 아냐!” 나는 외치고 말았다.
숨이 막힐 것 만 같았다.
지난 세월동안 나는 의학 논문 한편도 써 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문의 시험에도 수 차래나 응시를 하여 가까스레 합격을 하였었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였으며 재미없는 세월이었다.
“에라! 그만두자!”
의학 책들은 책상 구석에 접어 두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를 그만두었다.
                  *  
그리고 시작한 것이 문학이었다. 문학 소년의 꿈을 나는 50이 되어서야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노력하여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으며 펜클럽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과테말라에 오고 가며 마야 인디안들을 돕는 의사가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의 그 모습을 하고 있는 인디안들을 찾아가 진료를 하여 주는 작은 선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 기쁘다. 좋다!.”라고........
다람쥐 쳇 바퀴와 원숭이 그네 타기에서 벗어난 기쁨을 나는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내 나이 60을 넘어 63세가 되었다.  이젠 완전히 노인이 되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의사의 단순한 직업에서 벗어나고 보니 지난 38년의 세월이 동물원 울타리에서 벗어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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