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유전인자의 비밀

2012.12.09 13:12

연규호 조회 수:228 추천:47

3-단편소설: 유전인자(遺傳因子)의 비밀(秘密) 1.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하지만 2010년의 4월은 내 인생에 가장 운수대통한 달이었다. 유능한 동료 의사들을 제치고 명문 S 의대 피부과 교수로 승진됐는가 하면, 사랑하는 외동딸은 들어가기 어렵다는 K 예고(藝高)에 보라는 듯이 합격을 한, 겹경사로 인해 온 집안이 웃음 밭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나이 두 살 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나는 그 순간부터 밑바닥 인생인 거지로 전락해 이집 저집 구걸하여 목숨을 유지해온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런 내가 감히 넘보기도 어려운 S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수련의(修鍊醫)와 박사 학위(博士學位) 과정을 거쳐 당당하게 교수(皮膚科 敎授)가 됐으니 사람들은 나를 두고 ' 김명수 교수는 개천에서 용 난 사나이"라고 불렀다. 16세가 된, 딸 수경(秀敬)은 아버지의 도움 없이 순전히 제 노력으로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니, 3년 후 내가 교수로 있는 S 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성적 외에 교수의 자녀에게 주는 가산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고(藝高)에 입학한 지 2주,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호들갑을 떨면서 수경이 흥분하여 큰 소리로 말한 것이 기억에 난다. -"아빠! 연아라는 친구가 생겼는데 나하고 아주 비슷하게 생겼기에 우리를 쌍둥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래? 쌍둥이? 와 궁금하구나. 언제, 한번 집으로 데려와 보려무나. 얼굴 좀 보자!"나는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대답을 해주었다.- 오늘(토요일) 아침에 수경은 쌍둥이 같다는 친구 박연아(淵雅)를 오후에 집으로 데리고 온다고 약속했는데 마침내 그 시간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아빠! 연아를 데리고 왔어요." 수경의 목소리에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으면서 그쪽을 향했다. "연아를 데려 왔어?" 나는 쌍둥이 같다는 딸의 친구 연아를 바라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와! 정말 수경과 똑 닮았구나. 그래, 쌍둥이 같구나...." 나도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아빠! 우린 쌍둥이에요." 수경이도 큰 소리로 자랑스러운 듯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잠시 후, 연아와 수경은 손을 잡고이 층으로 올라가더니 킥킥, 깔깔거리며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컴퓨터 그래픽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늦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고 하며 연아는 내게 가까이 와서 공손히 인사를 했다. "저녁이라도 먹고 가야지, 그냥 가면 되나?" "너무 늦으면 어머니가 걱정한답니다. 다음번에 오면 저녁 먹고 갈게요." 연아는 가방을 챙겨 들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쌍둥이라면, 물론 외모가 아주 비슷하다는 말인데 엄밀히 의학적으로 보면 비슷한 유전인자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유전인자란 창조 이래로 변함없이 다음 세대와 연결해주는 고리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 연아가 간 후 수경에게 그녀의 부모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엉, 아빠! 연아 아빠와 엄마도 아빠처럼 S 대학교 철학과 그리고 간호대학 교수래요." "그래?"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자초지 총을 듣고 보니 연아의 아버지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철학과 박정우 교수이며 어머니는 조용하고 인자하다는 간호대학의 이영신 교수였다. '박정우 그리고 이영신?' 나는 야구 선수가 방향을 잃고 던진 방망이에 머리를 얻어맞고 정신을 잃은 듯이 눈을 감고 말았다. -의과대학 교정과 교수 회의에서 가끔 보았던 박 교수와 이 교수의 딸이라니..... 30여 년 전, 나의 검은 망막세포 속에 컴퓨터 칩처럼 차곡차곡 입력되었던 서글프고 괴로웠던 프로그램들이 양파껍질처럼 하나하나 순서대로 벗겨지듯이 내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2. 경기도 가평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소변도 변변히 가리지도 못하던 2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천애 고아가 되어 작은아버지 밑에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다. 아버지보다 세 살 어린 작은아버지(叔父)는 농사 짖는 것보다 술 마시고 노는 것을 더 즐기다 보니 가산은 기울대로 기울어져 살기가 아주 어려웠다. 그런 작은 아버지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것보다 차라리 그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오히려 그를 도와주는 셈이라고 생각하여 미련 없이 가출했다. 꽤 큰 가방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탄 것이 내 나이 13세, 아직도 코를 흘리는 나이였다. 2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서울, 동마장(東馬場) 고속버스 터미널 벤치에 무작정 앉아 있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50대 신사가나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의 두려움보다 혹시라도 저 사내가 나를 납치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다. "너, 가출(家出)했지?"라고 묻는 이 신사가 칼이라도 들이댈 것 같아 말도 못했다. ".............." "너, 이름이 뭐냐?" "김,... 김명수입니다." "김명수? 너, 나를 따라 오너라, 도와주마!" 뜻밖의 제안에 귀가 확 열렸다. "예? 따라 오라고요?" "그래. 따라와라!" 그 신사는 생각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이판사판 갈 곳이 없으니 나는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를 하며 엉 기정 엉 기정 그를 따라 갔는데 얼마 후 도착한 곳은 우중충한 건물 속에 있는 구세군(救世軍) 사무실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는 악과 선이 같이 존재하고 있는데 어느 편의 손길이 먼저 닿는가에 따라 인생이 바뀌는데, 나는 다행히도 긍휼의 손을 먼저 잡았기에 내 인생과 영혼이 구원받는 행운아가 되었다. 더더욱 큰 행운은 구세군 목사님이 주신 장학금을 받아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생각지도 않게 명문 K 고교에 입학이 되었다. 목사님의 도움으로 동대문 근처에 있는 제지공장 사장님의 집에서 나보다 세 살 어린 남학생 이영남(泳男)과 5살 어린 이영철(泳哲)의 가정교사가 되어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제지공장 이사장(李 社長)은 두 아들을 성공적으로 기르려면 착실한 학생을 선택해 애들과 같이 먹고 자며 살게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여 명문 K고교에 입학한 나를 택했다고 했다. 두 남학생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나이의 여고생, 이영신(泳信)을 만나게 되었으며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다. 처음 만나던 날, 이영신은 얼굴을 붉히면서 G 여고에 입학했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영신은 나보다 3개월이 더 많았기에 그녀의 어머니는 나에게 명령조로 '앞으로 영신을 누나로 대하거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영신과 나는 이성으로 느끼게 되었다. 부모를 잃은 후, 처음으로 느껴본 가정의 포근함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신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딸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여 나를 은근히 경계하기 시작했다. 신분과 격이 떨어지기 때문이었으리라.... 나와 영신은 소설, '폭풍의 언덕'을 같이 읽으며 나는 소설 속의 가난한 소년, '히스클리프'라고, 영신은 그를 사랑하는 누나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이번에도 운 좋게 S 의대 의예과에 영신은 간호학과에 입학 하게 되었다. 입학식을 하던 날, 우리는 손을 잡고 '나는 의사, 영신은 간호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상록수(常綠樹)의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이 되기로 약속을 했다. 졸업한 후 결혼을 하기로 우리끼리 약속을 하고 보니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그 후 우리는 의사-간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우리의 계획을 눈치챈 영신의 어머니와 이사장님은 나를 가정교사의 직에서 해고한 후 집에서 나가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 사장님의 집에서 나온 나는 병원실험실에서 보조 일을 하면서 의과대학을 겨우겨우 다녔는데 몸은 힘들었으나 마음만은 훨씬 자유로웠으며 영신을 만나는 것도 당당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준 영신과 나와의 잊지 못할 사건 하나는 1986년 멀리 경상북도 청송 무의촌(無醫村)으로 보낸 의료 봉사 활동에서 그녀와 같이 보낸 며칠이었다. 두 명의 의사들과 7명의 의학생 그리고 10명의 간호학생으로 구성된 의료봉사는 힘은 들었으나 보람된 하루하루였다. 의료봉사 마지막 날, 성공적인 봉사를 자축하는 의미로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부족한 반찬거리를 청송읍에 있는 가게에 가서 사오라고 단장은 나와 영신에게 명령을 하였다. 나와 영신은 덜렁거리는 승용차를 몰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서둘러서 다녀오라는 단장님의 명령이 귓전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주먹만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길가에 차를 멈추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빗줄기는 마치 우리 둘의 앞날을 점치는 복채처럼 차창을 요란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밀폐된 작은 차 속에는 우리 두 사람의 코에서 뿜어 나온 탄산가스가 찬 공기를 맞아 뿌연 안개가 되어 차안을 밀폐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밖에서 보는 눈도 없으며 안에서도 밖을 내다볼 수 없으니 갑작스레 우리는 '밀폐된 공간 속의 안정'을 느끼게 되었다. 아니 사랑을 갈망하는 도적이 된 듯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으며 부끄러움에서 벗어난 강렬한 기관차가 된 듯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밀폐된 공간이 이토록 우리를 강렬하고 대담하게 하여 줄 수 있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레 서로 포옹하다 보니 식료품을 사서 오기를 기다리는 봉사 팀을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다. 졸업 후 결혼하기로 다시 한 번 약속을 하였다. 3. 한해가 지나고 나는 본과 3학년, 그리고 영신은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나이팅게일처럼 우아한 간호사가 되었으며 간호대학 교수가 되고자 대학원에도 등록하였다. * 본과 3학년 때 꼭 거쳐야 하는 2주간의 산부인과 임상실습은 '순결, 윤리 그리고 종교'가 교차하는 의미심장하며 아울러 피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현실(現實)이냐 이상(理想)이냐를 놓고 현실을 택함으로 인해 나는 사랑하는 영신을 배신한 비윤리적이며 비종교적인 큰 죄를 짓고 크게 통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비윤리적이며 비종교적인 배신의 사건이란 생각하기에 따라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었다. - 선배가 되는 산부인과 주임 레지덴트(수련의사)가 실습으로 나온 8명의 학생 그룹을 작은 방에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너희! 잘 알고 있겠지만, 산부인과란 애 낳는 것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를 못 낳는 불임 환자에게 애를 갖도록 머리 좋고 튼튼한 남자의 정자를 공급해 주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다. 인공수정을 위해 공부 잘하고 몸이 튼튼한 의대생이나 사관학교 생도들의 정자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법적으로 정자를 사고팔 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서 결국 대학병원에서는 너희처럼 머리 좋고 건강한 의대생 몸에서 나오는 정액이 필요하기에 2주 실습하는 동안 1-2회에 걸쳐서 너희들이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 물론 실습 점수에 크게 반영이 되는 것은 물론 선배인 나의 체면을 봐서라도 꼭 협조하기 바란다. 혹시 무슨 질문이라도 있는지? 없는 걸로 알고 ...." 선배는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나가려고 하는 찰나에 내 곁에 있던 박정일이 손을 번쩍 들면서 물었다. "선배님? 그 일을 하려면 분위기 있어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분위기를 조성해 줍니까?" 정일은 농담조로 물었다. "좋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해.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거다. 단지 우리는 시험관 튜브와 플레이보이 누드 잡지를 줄 테니, 화장실에서 뽑든 교실에서 뽑든 아니면 애인하고 뽑든 네 마음대로 하라고. 단지 튜브에 꽉 채워 15분 내에 가져오는 거다. 아니면 정자는 비실비실하다 죽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례비는 알아서 챙기는 거다. 그럼 다시 보자!" 라고 말한 후 선배는 나가 버렸다. "야! 박정일! 너 낙제 안 하려면 네가 도맡아서 해. 그리고 우리가 받는 사례비는 반반으로 나누어 줄 테니." "뭐라고? 반반?" "그래, 반반. 그리고 너 졸업 후 산부인과나 전공하려무나." 8명의 동료 사이에 갖가지 의견이 있었다. 도덕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도무지 이것만은 못하겠다고 하는 친구, 의과대학이 이렇게 비윤리적인 곳인지 미처 몰랐다는 친구도 있었다. 산부인과 실습 기간에 분만, 유방암, 자궁암, 난소암 등의 수술을 도와주면서 새 생명의 출산과 죽음을 동시에 내 눈으로 바라다보는듯했다. 그리고 여성을 통해 사랑과 인내를 배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액을 뽑아 오라고 하는 레지덴트의 명령에는 웬일인지 역겨운 마음이 들었다. 의과대학은 비윤리적인 일을 합법적으로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김명수! 자, 이거 갖고 가서 채워와!"라고 명령조로 인공 수정용 정액 채취 튜브를 까운에 찔러 넣어 주면서 나의 등을 살짝 밀었을 때 나는 다소 휘청거렸다. 백인 여성이 요염하게 웃고 있는 풀레이 보이 잡지를 손에 들고 산부인과 병동에 있는 남자 화장실로 가면서 나는 겸연쩍었다. '거절하면 산부인과 실습 점수가 좋지 않겠지....혹시 낙제를 시키는 게 아닌지...' 결국 나는 낙제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숨을 죽이고 백인 여성의 나체 사진을 바라다보노라니 그녀는 요염하게 나를 유혹하는 듯했다. 또한, 얼핏 보면 '너까진 놈이 감히 내 요염한 여체를 훔쳐보다니, 예잇 가소로운 놈..' 이라고 업신여기는 듯해 보였다. 일 년 전에 실습을 했던 어느 선배가 일러준 충고가 생각났다. '가능한 바셀린이나 비누를 이용해야 덜 아픈 단 말야.' 선배가 일러준 대로 강행하였다. 얼굴이 벌게지며 숨소리가 가빠지고 있었다. 요염한 여배우의 웃음은 팽창하는 속도에 비례하여 더 섹시해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나체 속으로 나는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인간의 욕정을 이렇게 하다니, 다른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했는데... 나는 분명히 다른 여자도 아닌 잡지 속의 나체를 보고 음욕을 품고 있었다. 숨을 죽인 5-6분의 흥분과 불안한 절정 후에 느낀 분출의 쾌감을 느끼며 유리관 속에서 꿈틀대는 수 억 마리의 생명이 나를 공격해 오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저 튜브 속에 들어 있는 저들 생명체는 어떻게 되는 건가? -언젠가 불임클리닉에서 보았던 우울해 보이며 신경질적이었던 못생긴 그 여인의 자궁 속으로 긴 튜브를 통해 공급이 될 건가? 아니면, 예쁜 여자, 미운 여자? 같은 값이면 예쁘고 마음씨 고운 여자가 좋겠지... 튜브의 용액을 한 번에 다 쓸까? 아니면 두셋으로 나누어 공급할 건가? 만일 성공적으로 임신이 된다면? 와! 와! 말도 안 돼....... 이건 분명히 생명을 잉태하는 건데. 말도 안 돼. 나를 통해 한 생명이 태어난다니...그렇다면 이건 무엇인가? 나는 엄연히 한 생명의 아버지가 되는데...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 셋...... 안돼! 이건 아냐. 아무리 산부인과 학점이 중요하긴 하지만 애초에 아니라고 거부를 해야 했는데...지금이라도, 내 양심에 걸리니 못하겠다고 할까? 이 튜브를 버릴까? 그러면 선배가 뭐라고 하겠지...점수를 안 준다느니, 낙제 점수를 준다느니...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내 마음은 온통 우울하기만 했다. 다들 잘 살아. 돈 많은 사람들이 애가 없어서 하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특별히 시술하는 인공수정이니까..." "인공수정? 이건 아닌 것 같다.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그래?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 애를 못 가지는 부부들의 고통을 생각해 보라고. 어짜피 네 몸에서 생리적으로 생겼다가 없어질 것을 조금 선사한 것이 오히려 긍휼과 자비가 될 수도 있어. 그리고 고상한 희생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종교적으로 고상한척 하지마라. 나, 그런거 제일 싫어하니까..... 그렇다면 나와 영신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건가? 비 오던 날, 청송의 어느 길가에 세워둔 차속에서포옹하며 당신뿐이라고 맹세를 했는데, 약속을 위반하는 꼴이 되다니, 분통이 터졌다. 히죽 웃고 있는 선배에게 튜브를 건네주었을 때 그가 '수고 했어'라고 말하면서 내 까운에 넣어준 흰 봉투속의 지폐 몇 장이 야속했다. 비록 낙제점수룰 받지 않으려고 선배의 명령에 응했다고는 하나 내 몸과 양심을 팔아먹은 것 같아 서글펐다. 양심을 운운하는 자는 망상증이 있든지 아니면 정신 분열의 증세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산부인과 레지덴트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럴까? 양심과의 갈등이 망상이라고?' 나는 레지덴트 선배가 오히려 망상을 가진 환자일 지도 모른다고 정의를 했다. 청량리역 앞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지나가는 남성을 유혹해 낡고 냄새나는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가 짙은 향수 냄새를 풍기며 알몸이 되어 뒹굴다가 이름도 모르는 머저리 같은 남성을 즐겁게 해준 대가로 화대(花代)를 받은 살짝곰보 매춘부와 무엇이 다른가? 살짝곰보 그 여성은 하나뿐인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그렇게 했지만, 나와 정일은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기름이 많은 돼지고기 삼겹살에 얼근한 막걸리를 마시고 역 앞 으슥한 곳에서 왈칵 토하고 오줌을 눈 것이 다였으니 한심하다 못해 역겨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정의 대가가 이토록 다를 수가 있을까? 어찌 보면 살짝곰보의 욕정은 숭고한 자기희생이라고 볼 수가 있었다. 의과대학이란 결국 선을 가장한 비윤리적인 곳이요, 학점을 미끼로 매춘을 강요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무조건 응해야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순간 나의 등을 탁치면서 하는 말이 들려 왔다. 정일이 였다. "야. 임마! 너 되게 심각하게 보이는구나. 너, 뭐, 네 자식 하나 만들었다고 걱정 하는 거냐? 그렇게 해서 난 애들...... " "그래?" 나는 정일을 바라보며 그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야! 명수, 정일! 빨리 손 닦고 수술 방으로 오라. 빨리!" 선배 레지덴트가 눈을 부릅뜨고 손을 흔들었다. 제왕절개 수술이 진행 되는 동안 나는 10개월 후에 나 때문에 생길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생명을 상상해 보았다. "아닌데, 아냐!"나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 뱉었다. "야, 명수! 정신 차려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선배 레지덴트가 더 큰소리로 고함을 쳤을 때 나는 비로소 빗속에서 포옹하며 맹세했던 영신의 얼굴을 잊을 수가 있었다. 영신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는 진심으로 용서를 빌며 수술 방을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4.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나와 영신은 결혼하기로 굳게 맹세를 하였는데, 먼저 눈치를 챘는지 영신의 아버지는 그와 친한 친구의 아들과 결혼을 시키려고 했다. 영신과 결혼을 시키려는 사나이는 그녀보다 6살 더 많은 S 대학교 철학과 전임강사, 박정우였는데 고아 출신인 나보다 월등히 훌륭한 신랑감이었다. 졸업하기 6개월 전에 생긴 이 사건은 나에게 있어 너무나 치명적이었으며 충격적이었기에 불안하고 우울하기 시작했다. 의사고시와 미국의사 자격시험에도 합격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 판인데 영신의 혼담 때문에 나는 안절부절 하다 보니 성적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로지 기대하기는 사랑하는 영신이 내가 졸업할 때까지 꿋꿋이 기다려 주리라고 굳게 믿었는데 뜻밖에도 아버지의 강압에 굴복하여 박정식과 결혼을 하기로 결정을 보았을 때 나는 손 한번 못쓰고 떠나야 하는 힘없는 나 자신을 원망하였다. 보다 못해 친구, 박정일이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야, 명수야! 너무 고민 말아라. 내가 보기엔 지금이라도 깨끗이 단념하고 의사공부에 전념 하라. 여자? 너 의사가 되면 열쇠 세 개를 들고 찾아와 내 딸과 결혼하라고 사정할 사람들이 많을 거야...." "열쇠 셋?" "그래, 아파트, 자동차 그리고 병원 열쇠 말이야." 의대생과 의사의 차이점이 이토록 컸다. 의대생이란 나비(의사)가 되려고 꿈틀거리는 번데기 일뿐....아직 나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10월 중순, 나의 사랑, 이영신은 명동에 있는 YWCA회관에서 수많은 하객이 축하해 주는 앞에서 눈에 띄도록 인상 깊은 하얀 면사포를 쓰고 붉은 장미를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박정우와 팔짱을 끼고 행진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기절하여 쓰러질 뻔했다. 가까스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예식장을 빠져나온 패배자 나는 어떤 경로로 청량리 로터리, 현대백화점 앞에 있는 포장마차 집 앞에 왔는지 나도 모른다. '대포, 오뎅, 순대, 떡 뽑기'라는 어순선한 글자를 읽고 있는 내가 정신이 있는 것인지 나도 몰랐다. 포장마차집의 커텐을 열고 들어서니 오뎅 끓는 큰 솥에서 나오는 김발이 내 눈을 뿌옇게 가리고 있었다. 소주 한 병과 오뎅 한 그릇을 비우고 보니 박정우라는 존재가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박정우? 네가 감히 내 길을 막다니....." 눈앞이 가물거리기 시작하더니, 내 마음속에서 패배자의 굴욕적인 울분이 더욱더 솟구치기 시작했다. "한 잔 더 주세요!" 나는 휘청거리며 빨간 모자를 쓴 포장마차 집 주인에게 손을 내저었다. "청년? 이젠 그만 마시라고. 취했어. 그리고 계산을 하지.." "그만 하라고요?" "절제(節制)를 해야지." "알겠습니다. 자 여기 돈이 있습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집히는 돈을 아저씨에게 쥐여 주고 밖으로 튀어 나오니 어느새 청량리 로터리는 캄캄했으며 비례해서 네온사인이 번쩍 번쩍거리고 있었다. 청량리 현대백화점이라고 쓴 간판이 둘로 보이기도 하고 셋으로 튕겨 보이기도 했다. 발 가는대로 가려고 무작정 앞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나의 손을 낚아채는 부드러운 손길이 있었다.. "아저씨, 아니 총각. 많이 취했네. 자고 가요?" 나는 자고 가라는 말을 집에 왔으니 자라는 말로 들었는지 비몽사몽간에 그 손에 이끌려가 아주 푹신한 느낌을 받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 후 간지러운 느낌에 눈을 뜨고 보니 침대에 벌렁 누워 있는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이 있었다. 나 또한 벌거벗은 맨몸으로 누워있었다. "영신아? 언제 여기에 왔어?"나는 내 눈에 뵈는 여인이 영신이라고 생각했다. "영신? 애인인가 보죠?" 나를 빤히 바라다보는 여자가 물었다. "그래, 애인이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나. 당신과 잠을 잔 볼품없는 계집애..." 그녀는 당돌하게 대답을 했다. 순간 나는 술에 취해 윤락녀의 손에 이끌려 청량리 588 홍등가(紅燈街)에서 볼품없다는 계집애와 잠을 잔 것을 알게 됐다. '아- 사랑하는 영신이 시집간 날, 나는 윤락녀와 잠을 자다니...아- 이건 아닌데.' 나는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무능함에 나 자신이 비참해 보여 스스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으시군요. 아까부터 영신아! 영신아! 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 아마도 실연을 하신 모양이군요. 마음이 아프시면 잠시라도 좋으니 여기 이순영(李順映)이를 안아보세요. 나도 따스한 계집이랍니다. 눈물도 있는......" "순영이라고요? 고맙습니다?" "고맙다니요?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인정인데..." "아- 얼마요? 얼마를 줘야 합니까?" "돈은 필요 없어요. 돈 대신 당신의 슬픔 마음을 내게 던져 주고 가면 됩니다. 보아하니 가난한 대학생 같은데, 나 같은 계집애, 평생에 당신같이 고상하고 공부 잘하는 의대생하고 몸을 섞은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돈만 가지면 마치 세상이 제 것 인양 반말 찍찍거리며 짐승처럼 덤벼드는 무식한 놈들하고는 다르니까...." "짐승 같은? 얼마를 낼까요?" "그냥 가세요. 돈도 없으면서. 지갑이 텅 비었던데...오늘 돈 안 받을 테니 의사가 되면 대신 가난한 사람들 잘 봐주세요. 가난한 환자를 만나면 순영이라고 생각하고, 아시겠죠?" "순영이라고 생각하라?" "예. 순영!" 돈에 굶주린 홍등가 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긍휼의 마음과 사랑의 굶주림'을 느끼고 있을 때, 내 마음속에 꽁꽁 묶어 두었던 영신이라는 잡지 못할 한 마리의 새가 훌쩍 날아가 버린듯했다. 5. 나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남은 3개월 동안 의사공부에 전념하여 마침내 다음해, 2월 25일 진눈개비가 내리는 추운 날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번데기(의과대학생)에서 나비(의사)가 되었다. 졸업식 날, 나를 축하하러 온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기다리고 마음 조리던 영신이 아니고 생각도 못했던 가평에 사는 작은 아버지 부부였다. "조카가 의사가 됐는데 나도 축하해 주고 덕을 봐야지. 안 그러냐, 명수야?" 그래도 내게도 이런 피붙이가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같이 졸업한 정일이 뒤 늦게 내 등을 치면서 "명수야! 이젠 그만 잊어버려. 부잣집 딸과 너는 인연이 아니었어. 너도 이젠 가난뱅이가 아냐. 그러니 어깨를 쭉 펴라."라고 위로의 말을 던졌다. 비가 오는 날은 마음 설레는 날이요 내 가슴이 졸아드는 날인데 그것은 '비 오던 청송의 기억'이 아직도 내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의사가 되고 보니 우선 먹고 자는 것을 걱정 하지 않아도 되니 모처럼 빈곤에서 자유를 얻은 듯했다. 정일은 예상대로 산부인과 나는 엉뚱하게도 피부과 수련의사가 됐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듯이 사랑했던 여인 영신도 점점 내 마음에서 멀어져 이젠 남남이 되고 말았다. 의과대학 졸업, 그리고 의사 생활 4년, 가난뱅이 출신이었던 나도 이젠 훌륭한 일등 신랑감이 됐는지 병원장과 다른 교수들이 나에게 좋은 규수를 소개하겠다고 부를 때마다 나는 먼저 장가를 든 친구 박정일이 부럽지가 않았다. 정일의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어느 날 나를 찾아와 엉뚱한 제안을 했는데 그럴 듯했기에 얼떨결에 허락하고 말은 일이 있었다. "명수야, 잘 들어봐! 다른 게 아니라 내가 결혼을 하고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내가 임신 하지 못해 우리는 혹시 애를 못 갖나 하는 걱정이 생겨, 우선 나부터 검사해 보았어. 혹시 무정자증(無精子症)이 아닐까 해서. 그런데 정상이란 말야. 그래서 집중적으로 아내의 배란기에 맞춰 밤일 했는데, 물론 성공을 보았어. 그러니 너도 결혼하기 전에 한 번 너 자신을 점검해보렴." "그래? 그런데 그걸 또?" 나는 얼떨결에 바보처럼 대답 했다. "그걸? 야, 명수야? 너, 의과대학 때 실습으로 뽑아준 '그걸' 생각 하는가 본데. 지금은 다르지." "물론 그렇지만...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되는군. 혹시라도?" "오늘은 다르지. 너를 위한 검사니까....자 여기, 튜브가 있으니 어서 뽑아 갖고 와!" 정일은 몇 년 전보다 더 좋은 튜브와 비교적 깨끗한 잡지를 주었는데 백인 여성이 아닌 아름다운 한국 여배우의 사진이었다. "야! 아무개 탈렌트 아냐?" "그래. 너한테 딱 좋은 여자다. 잘 해봐라." 나는 못 이기는 척하고 피부과 교수들이 사용하는 깨끗하고 시설도 좋은 화장실로 가 한국여배우의 요염한 사진을 바라보며 의과대학 시절로 돌아갔다.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며 숨이 가빠지기는 마찬가지였으며 정신이 아른거리더니 순간적인 쾌감을 느끼며 날씬한 튜브에 생명체를 쏟아 넣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오늘은 의과대학 시절에 느꼈던 그 죄의식은 없었다. 이젠 결혼을 앞둔 어엿한 의사라고 하지만 역시 요염한 여성의 웃음에 매료되며 그녀의 몸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은 여전했다. 그럴뿐만 아니라 튜브속의 수 억 마리 생명체가 꿈틀대며 나를 비웃는 듯했다. 남자란 공부를 많이 하여 지위가 높아진다고 해도 역시 동물임에 틀림없어 전립선에 정액이 꽉 차면 정욕을 느끼는 것은 정한 이치였다. "정일아? 여기" 나는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생명체가 가득한 튜브를 건네주었다. "와, 원더플! 내가 곧 결과를 알려주마." 정일이 튜브를 들고 쏜살같이 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아뿔싸!' 나는 곧 후회 하고 말았다. '혹시, 이 녀석이 무슨 장난을 치려는 게 아닌가?' 나는 기분이 씁쓰름해 애꿎은 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고 있는데 정일이 내게로 웃으면서 되돌아왔다. "야! 명수야. 네 것, 100% 훌륭해. 너, 장가가도 되겠어." "그래? 고맙군." 나는 고맙다고 대답을 했으나 계면쩍었다. 몇 개월 후 나는 정일이 소개해준 어느 교육자 집안의 규수와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정일은 내게 있어 제일 가까운 친구였으며 중매쟁이였다. 튜브에 관한 생각도 까맣게 사라지고 신혼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던 어느 날, 정일로부터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달받았다. "명수야? 너만 알고 있어. 거시기, 너의 애인이었던 영신이 말이야. 결혼 한지 벌써 5년인데 애가 없는 거야. 근데 알고 보니 남편 박정우가 바로 무정자증(無精子症)이란 말이야." "무정자증?" "그렇다니까. 병신같이." 정일은 킥킥 웃고 있었다. 한 때 나와 결혼을 약속했던 영신의 남편이 무정자증이라고 하니 마치 약자를 대하는 듯한 동정심이 생겼다. 한편 그러면 그렇지 나를 배신했으니 당연하지. 나는 통쾌하게 복수를 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버리고 그를 선택한 영신이 벌을 받았다고도 생각했다. '나를 버렸으니, 당연하지.......' * 그리고 일 년 후인 1995년 나와 정일은 전문의(專門醫) 과정을 마치고 육군 군의관 대위로 후송병원에서 복무하게 됐다. 이 무렵 나는 딸을 낳았는데 그녀가 바로 수경이다. 정보가 빠른 정일을 통해 나의 옛 애인, 이영신도 결혼 6년 만에 처음으로 딸을 낳았다고 알려 주었으나 축하해 주기보다, 나를 슬프게 한 옛 과거를 더 이상 떠 올리고 싶지 않아 아예 무시해 버렸다. 군의관 복무 3년 후, 우리는 대학병원 피부과와 산부인과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았다. 열심히 연구, 수술을 하다 보니 차근차근 승진하여 마침내 교수가 되었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크게 '성공한 사람'이 된 셈이었다. 경기도 가평에서 찌들고 찌들었던 가난뱅이 고아가 이렇게 성공하여 교수가 된 것은 단지 세월이 내 방향으로 흐르게 해준 하나님의 은혜였다. 6. "아빠- 연아가 왔어요." 수경이 나에게 큰 소리로 말했을 때 나는 서재에서 새로 발표된 논문을 읽고 있었다. 문득 '연아'라는 말에 얼른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다보며 " 반갑다, 연아야!"라고 대답을 했다. 또 한 차례 놀란 것은 연아와 수경의 모습이 아주 비슷한 것보다, 16년 전에 정일이가 '박정우 교수는 무정자증 환자'라고 말했던 그 기억이었다. '무정자증인데 어떻게 애를 낳았을까? 그뿐인가 딸 하나를 낳고는 더 애를 갖지 못했다니.....' 모처럼 나는 잊었던 옛 애인을 생각해 보았으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연아와 영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와 결혼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엉뚱한 상상의 날개를 피우다 보니 비가 오던 날, 청송에서 있었던 밀폐된 작은 차 속에서 영신과 포옹했던 그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 며칠 전,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교수 공동 회의를 할 때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영신을 바라다보았는데, 그녀는 몹시 우울해 보였다. 남편과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몸이 아픈지... 나는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회의에서 무엇을 결정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야, 명수?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똘하게 하는 거야?" 언제 왔는지 친구 정일이 나의 등을 탁 치면서 물었을 때 나는 비로소 정신이 퍼뜩 들었다. "........." "야, 나 다 봤어. 너, 영신 씨만 멍청히 바라다보더라. 다 잊으라고 했는데 아직도 못 잊고 쯧쯧.....허긴 첫 사랑은 영원한 미완성 교향곡이니까..." 그리고 그는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며 산부인과 교수실로 데리고 갔다. "야, 얼마 전에 영신의 딸을 본적이 있는데, 인상이 아주, 아주, 네 딸과 비슷하더라. 마치 쌍둥이 같아서..." ".........." 나는 훔칠 놀랐다. "유전인자란 정말 정확하단 말이야." "유전인자?" 나는 정일을 바라보며 혹시 이 녀석이 무슨 수작이라도 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혹시 명수야? 너, 박정우 몰래 영신을 만나 뭐라도 한 거니?" "뭐라고?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미친 놈 같으니라구!" 나는 아주 불쾌하여 문을 열고 나오려고 하는데 그는 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사람이 누굴 사랑하다 보면 엉뚱한 짓을 할 수도 있는 거야...." "엉뚱한 짓?" "그렇다니까. 상상 밖의 일을." 그는 내 손을 놓아 주면서 씩 웃었다. 상상 밖의 일이라니.... 나는 정일에게 망상형 정신분렬증의 증세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내 방으로 돌아와 나는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정일이 한말을 골똘히 생각하였다. 문득 17년 전 어느 날, 결혼 전에 미리 정액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하며 나의 정액을 가지고 갖던 일과, 박정우 교수가 무정자증 환자이며 영신이 애를 갖고 싶어 한다는 등, 횡성수설 했던 정일의 행동이 혹시라도 현재와 연관이 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떠오르며 내 얼굴은 온통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정일이 처럼, 망상형 정신분렬증(妄想型 精神分列症) 환자가 아닌가? 아니면 엉겅퀴 같은 불 품 없는 존재이던가? 7. 연아를 볼 때마다 나는 참으로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정일이 혹시라도 장난을 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참다못해 나는 강남에 있는 양식집에서 붉은 와인을 마시며 진심 어린 말로 정일에게 물었다. "정일아? 너, 혹시, 나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지? 말해봐!" "나, 너한테 숨기는 것 없어." 그는 아니라고 대답을 했지만 나는 의심을 풀을 수가 없었다. 인간은 어떤 종류의 의심 속에 빠지면 그 의심으로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그 의심의 노예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도 망상형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는 듯 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이번에는 정일이 나를 데리고 그 양식집으로 가 이번에도 붉은 와인을 마시며 얘기를 했다. 취기가 조금 들기 시작했는지 뜻밖의 질문을 내게 했다. "명수야? 너, 진정, 영신을 사랑했었지?" "어..." "지금도?" "지금은 아냐. 그런데 왜 그건 묻느냐?" "아냐, 그냥 확인하고 싶어서....." "그때는 진정, 나의 모든 것을 주고서라도 그녀를 갖고 싶었어. 그러나 그것은 괜한 욕심 일 뿐이었어. 박정우와 결혼한 것이 오히려 아주 잘 됐다고 생각하네. 진정한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을 알 때, 비로소 내가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 같아...." "그렇다면 내가 오해를 했나... 너,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기억하지?" "물론이지!"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뜻밖의 말을 정일로부터 들었다. 가난했기에 사랑하는 애인을 빼앗긴 나를 볼 때마다 정일은 마음이 아파 무엇인가를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더욱이 실망에 찬 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정일은 복수를 해 주리라라고 결심을 했다고 고백했다. 마침내 친구를 위해 복수를 해줄 기회가 찾아 왔다. 결혼한 지 5년이나 지났는데도 애를 갖지 못한 박정우 부부는 인공수정을 통해 애를 갖기로 결정을 보았다. 인공수정을 위해 비밀리에 산부인과 과장을 만나 시술을 하게 됐는데 수련의사였던 박정일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때를 맞춰 친구인 나를 찾아와 실험실 튜브를 준 듯했었다.- 혹시, 이 녀석이 그때 무슨 꿍꿍이를 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이 갔으나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한편 이것이 사실이었다면 나는 비가 오던 날, 청송에서 영신에게 약속했던 그 약속을 현실로 지킨 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 보았다. 우정이란 이런 것인가? 이토록 나의 옛 모습이 그토록 슬퍼 보였던가? 친구의 동정심을 받을 만큼.....나는 나 자신을 생각하며 비통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 대한 친구의 우정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언을 위반했다고 해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 드리고 싶었다. 비록 의사 면허증을 반납하라고 해도 기꺼이 하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치 청신경(聽神經) 속 깊이 감춰져 있는 미로(迷路) 속을 헤매고 있는 한 마리의 길 잃은 사슴처럼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듯 했다. 비록 정신분열증(망상형) 환자가 되어 사랑의 미로 속에서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해도 비가 오던 날의 그 약속을 지켰다면 나는 스스로 엉겅키가 품고 있는 유전인자의 비밀을 가슴에 묻으리라..... 2012년 문예운동 봄호에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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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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