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돌계단의 비밀

2012.12.09 13:17

연규호 조회 수:809 추천:68

5-단편 소설: 돌계단의 비밀(秘密) 1. 칠흑같이 캄캄한 '디즈니랜드' 상공으로 휘황찬란한 불꽃들이 "펑""펑" 소리를 내며 솟구쳐 오를 때마다 수많은 관중들은 잠시나마 대낮처럼 환해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와-와"하는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솟아오르다 말고 환한 불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초라하게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가련한 불꽃도 있었다. 불발탄(不發彈), 아니 오발탄(誤發彈)이라고 불리는 미완성의 불꽃이지만 그래도 한 여름 밤의 '디즈니랜드의 불꽃놀이'의 한 과정이기에 사람들은 이것마저도 즐기고 있었다. * 나는 물끄러미 창가에 서서 디즈니랜드 상공의 불꽃들을 바라다보며 오늘 일어났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오후 5시가 되자 바쁜 하루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진료실을 나오려고 하는데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정신과 의사, '제임스 야마시로, (James Yamashiro, 山城)'로부터 급한 전화가 울렸다. "닥터. 강? 브레아(Brea) 정신병원에 있는 내 환자가 죽어가니 급히 가서 진료해 주소!"라는 부탁이었다. 다소 신경질 나는 전화였기에 바쁘다고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신과 의사, 야마시로는 일본계 이민 삼세(移民 三世)로 비록 예일(Yale))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고는 하나 정작 일본 말은 못하기 때문에 "바나나( Banana)" 의사라고 불리었다. 바나나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양 사람들은 걷 모양은 동양 사람처럼 노란 피부 색갈을 갖고 있으나 영어만 쓰며 서양 문명에 익숙한 동양 사람을 비하하는 은어이다. 그러기에 나도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일본 규슈(九州)에 있는 오이따(大分)에서 하와이로 이민을 왔다고 하기에 나는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려고 "닥터. 야마시로? 오이따 현(大分縣) 말이요! 그곳에는 벳부(別附)온천도 있다고 하며 아주 아름다운 도시라고 하던데..."라고 아첨에 가까운 칭찬의 말을 하였으나 그의 대답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으며 모욕적이었다. "닥터.강! 오이따인지 벳부인지 나는 그곳에 가본 일도 없소! 내 고향은 콜로라도 덴버입니다. 이차대전중에 일본 사람들을 집단 수용했다고 하는 덴버말이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하였기 때문이었다. * 어쨋거나 나는 다소 피곤은 하였지만 그의 부탁을 거절 할 수가 없었기에 그 환자에 대한 인적 사항을 물었다. 브레아 정신병원에 있는 그 환자는 금년에 52세가 되며 이름은 로즈 맥.나이트(Rose McKnight)라는 여자 환자로 정신과 병동에서 내과 중환자 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가끔 정신과 의사가 부탁하는 환자들은 약물 중독으로 인한 응급환자가 꽤 있었다. 가까스레 찾아 간 브레아 정신병원(Brea Psychiatric hospital)은 생각보다 그 건물의 규모는 작았으나 주위경관은 아주 훌륭하였다. 창문마다 굳게 걸려 있는 쇠창살도 없었으며 검은 제복을 입고 큰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니는 우락부락한 남자 간호사도 그리고 총을 들고 있는 안전 요원들도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이곳이 과연 정신병원인가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급히 중환자 실로 들어가니 금발의 백인 간호원이 나를 알아보고는 "닥터. 강이지요? 환자가 악화되어 이제는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서두르세요."라고 재촉하며 환자의 진료 차트를 내게 건네주었다. -환자, 로즈 맥.나이트(Rose McKnight), 52세의 동양계 미국인, 남편은 칼리포니아 주립대학 경제학 교수. 심한 우울증으로 입원중이며 폐렴이 발병되어 강석호 내과의사에게 진료를 부탁함- 이라고 쓰여 있었다. 환자는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간호원! 간호원! 산소를 주세요. 그리고 급히 동맥의 산소를 측정하시오. 급히!" 나는 큰 소리로 간호원에게 지시를 하였다. 그녀는 분명히 호흡 부전증(呼吸 不全症)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 잠시 후 측정된 동맥 속의 산소와 탄산가스의 측정치는 위험 수위였기에 나는 목구멍을 통해 기관지로 튜브를 삽입한 후 자동 호흡기를 걸고 산소를 투여하니 환자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규정상 내과 시설이 훨씬 좋은 카운티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여야 했다. 환자를 실은 앰뷰란스가 정신병원에서 나갔을 때는 밤 9시가 조금 넘었으며 비로써 나는 배가 몹시 고프며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나의 진료실로 돌아 와 집에 갈 가방을 준비하고 있는데 캄캄한 디즈니랜드 상공에서 휘황찬란한 불꽃들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하늘로 솟구치다 중도에 어둠속으로 묻혀 버리는 그 초라한 오발탄과 불발탄을 바라다보면서 나는 조금 전에 진료하였던 '로즈'라고 하는 그 동양 여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녀는 가엾게도 어둠속으로 묻혀 버린 불발탄, 아니 오발탄이라고 생각되었다. 2. 나는 닥터.야마시로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전에 생겼던 일을 보고 하였다. 조금만 더 지체 하였더라면 그 환자는 혼수에 빠져 죽을 번 하였기에 서둘러 카운티 병원으로 이송하였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며 "그런데, 그 환자? 일본 사람이요?"라고 나는 호기심을 갖고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 아니요! 닥터. 강.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사람...." "예? 한국사람?" 나는 깜짝 놀랐다. * 닥터.야마시로가 내게 알려준 그 환자, 로즈 맥.나이트의 입원경로는 이러했다. -훌러톤 경찰서(Fulerton city) 순찰차가 새벽녘에 성공회당 앞을 지나가다가 돌계단 층층대에 쓰러져 누워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였다. 그녀의 몸은 싸늘하여 죽은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숨을 쉬고 있었다. 급히 '세인트 쥬드(SaintJude) 병원'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약 10일간 치료를 받아 호전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뜻밖에도 우울증으로 인해 가출을 하여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돌계단에 엎드려 슬피 우는 모습을 성공회당 수위가 목격을 하였다고 하였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입원하지 사흘이나 되어서야 남편이 병원으로 찾아 왔는데, 그는 백인으로 칼리포니아 주립대학 경제학과 교수였다. 뿐만 아니라 환자도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화가로 부부 사이에 심상치 않은 불화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서글픈지 환자는 도무지 먹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도 하지를 않았기에 영양실조로 폐렴이 생겼다고 닥터.야마시로는 설명해 주었다.- * 이 주(二週)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병원 의사 식당에서 닥터.야마시로를 만났을 때 그동안 까마득하게 잊었던 그 한국 여자 환자가 생각났다. 기억이란 대뇌의 히포캄푸스에서 벗어나면 마치 우주 공간 궤도에서 이탈한 작은 혹성이 무한한 공간 속에서 맴돌다가 불랙 홀(Black Hole)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 것과도 같으니까. "닥터. 강, 그 환자 말이오? 다시브레아 병원으로 되돌아갔지요. 참,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지요. 폐렴도 깨끗이 치료되어 신체적으로 건강하여 졌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군요. 아- 아니, 가끔 중얼거리기는 하는데, 신기한 것은 가끔 반복해서 33! 44!라고 하는 숫자를 세고 있단 말요...." 닥터. 야마시로는 기이하다는 듯이 내게 웃으면서 말했다. "33? 44? 허허...그것 참! 그 여자, 웃기는 군요. 아마 화투를 좋아하는가 보죠. 33이면 삼 땡이고, 44는 사 땡이란 말요. 땡 잡으면 할 만 하지!"나는 조소 섞인 말로 야마시로에게 말하였으나 '바나나'라고 불리는 제임스 야마시로에게는 한갓 잡소리일 뿐... '어떤 여자일까? 어째서 미국 사람과 결혼을 하였을까?' 나는 갑자기 그녀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금년 52세, 화가, 로즈 맥.나이트, 아이리쉬인데.' 결국 나는 그 날 오후 시간을 내어 브레아 정신병원으로 로즈라고 하는 여자 환자를 찾아 갔다. 병실에는 뜻밖에도 젊은 여자가 환자 옆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닥터.강이라 합니다. 닥터.야마시로가 보내서 온 내과 의사입니다. 잠시 진찰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청진기를 그녀의 가슴에 대고 심장의 박동을 듣고 있었다. '뚝 뚝 뚝 뚝....' 분명 그녀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백인, 그리고 흑인의 가슴에서 듣던 그 박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뜻밖에도 나는 나의 심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듣고 있었다. 살며시 진정하고 바라본 그녀의 딸은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이 반반씩 섞인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마치 오뚝한 코를 가진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기도 하였으며 청순한 모습의 오드리 헵번 같았다. 그녀의 이름은 제니퍼 맥.나이트라고 했으며 U.C.L.A 대학생이었다. U.C 버클리에 다니는 내 딸과 같은 나이의 예쁜 대학생이었다. 진찰을 끝내고 정신을 가다듬고 내려다 본 로즈. 맥.나이트의 얼굴에서 나는 먼 옛날의 동화책을 읽고 있는 듯했다. '낙엽(落葉)이 지던 어느 가을날, 파란 스카프를 내게 던져버리고 어디로인지 사라졌던 옆집 소녀를 본다고' 생각을 하였다. 'Rose H. McKnight?'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 다음날 아침 내게 걸려온 전화가 있었는데 뜻밖에도 로즈의 딸, '제니퍼'였다. "닥터.강? 어머니가 말입니다. 어제 진찰을 하고 간 후부터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3과 44를 반복하여 중얼댄답니다." "33 그리고 44?" 나는 분명히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하였기에 제니퍼에게 로즈에 관한 질문을 했다. 가까스로 딸로부터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인적 사항을 얻어내는데 성공을 하였다. -어머니, 로즈는 30년 전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으며, 친척이라고는 하나도 없기에 늘 외롭게 살아 왔다고 했다. 더욱이 독선적이며 위선적인 남편 앞에서 굴욕적인 수모도 당하곤 했다.- '이질적인 문화와 타향살이에서 오는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한 우울증이었구나....' 이렇게 결론을 짓고 보니 갑자기 로즈가 측은해 지기 시작했다. 3. 일주일 후, 나는 닥터.야마시로를 통해 우울증 환자, 로즈의 근황을 들려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건강을 회복해, 며칠 전에 집으로 퇴원을 했는데, 아무래도 한국 사람인 내가 내과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아예 우울증까지 치료해 달라고 그는 내게 부탁했다. "내과 의사인 나더러, 우울증을 치료하라고?" 나는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며 웃기만 하였다. 그러나 며칠 후, 로즈는 그녀의 남편과 같이 나의 진료실로 정식으로 찾아 왔다. 과연 백인인 남편은 훤칠한 키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미남이었으며, 칼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답게 지성적이기에 동양 의사인 나를 압도하고 있는 듯 해, 나는 초반부터 기가 죽었다. 그는 무관심한 듯이 갖고 온 잡지를 읽고 있었다. 그 동안 나는 로즈를 진찰하였다. 진찰결과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건강하였지만 말을 하지 않으며 가끔 나를 뚫어 질듯이 바라다 볼 뿐이었다. "로즈. 맥.나이트씨? 한국 사람입니까? 한국사람! 아- 이름이 예쁘군요. 장미? 장미...그렇죠?" 그녀는 대답대신, 물끄러미 나를 바라다보는 것으로 보아 내가 말하는 것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한국 사람이라고 했소? 닥터. 강? 진찰을 다 했으면 이만 내 아내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마크라는 남편이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거칠게 그의 아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 저 미국 사람이...한국말을 알아듣다니..." 나는 깜짝 놀랐으며 당황하였다. 그리고 모멸감을 느꼈다. * 다음날 아침이었다. 응급 전화를 받고 보니 놀랍게도 어제 나에게 무례를 범하고 사라졌던 로즈의 남편인 마크였다. 그의 목소리는 어제와는 정반대로 공손했으며 정중하게 어제 있었던 무례함을 사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아내가 우울증에 빠진 것은 아마도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국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이 악화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놀랍게도 한국에서 배운 동화를 들려주었다. "나무꾼과 선녀라는 동화를 기억하시죠? 하늘에서 옥황상제를 모시고 살던 선녀 셋이 어느 깊은 산골의 계곡으로 내려와 목욕하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나무꾼이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았죠. 그리고 그는 엉뚱하게도 선녀들이 벗어 놓은 날개 옷 하나를 감쳐 두었지요. 결국 하늘에 오르지 못한 예쁜 선녀 하나는 이 나무꾼을 따라가 그녀의 아내가 되어 가난하게 그러나 행복하게 살면서 아이들을 셋이나 낳았지요. 십년 후 나무꾼은 감춰 두었던 날개옷을 선녀에게 보여주니 그녀는 애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지요. 그런데 그녀는 옥황상제에게 말을 잘하여서 두레박을 내려 보내 나무꾼을 하늘로 올려 보냈지 뭡니까..." "아- 그것 참 멋있군요."나는 감탄하였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그 반대였다. "문제는 로즈라는 선녀는 자기만을 위해 달라고 우기는 욕심꾸러기 선녀라는 거지요. 두레박을 내려 주는 그런 사랑도 없는...무슨 말이냐고요? 내 아내는 성공회 신부님의 손녀딸로 태어나 마치 자기만이 공주라고 생각을 하였으니까요...남편인 나를 마치 가난한 나무꾼으로 간주하고 자기만을 위해 평생 살아 달라고 떼거지를 썻지요. 운전을 제대로 합니까? 영어를 제대로 합니까? 그러니 이곳 미국사회에서는 낙오자가 된 셈이지요. 우울증에 걸린 것은 필연적인 일이지요. 닥터. 강! 아시겠어요? " 마크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녀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요 철저하게 남에게 의존하는 무능력자였다. 지난 삼십 년 동안 그녀는 몸은 미국에, 마음은 한국에 두고 살아 온 두 얼굴의 인격체였다는 말이었다. 마크는 내게 다음같이 부탁했다. "닥터. 강? 아무래도 내 아내는 일본 사람 의사보다는 한국 사람인 당신이 비록 내과 의사라고는 하나 더 좋은 치료를 할 것 같기에 부탁합니다. 계속해서 제 아내를 돌 봐 주십시오. "라고. 30여 년 전 마크의 아버지는 한국에 있는 성공회에서 신부 일을 했었다. 같이 일하던 로즈의 할아버지(주임 신부)가 뇌출혈로 죽자 갈 곳 없는 로즈를 미국으로 데리고 와 아들 마크와 결혼을 시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을 들으면서 로즈의 우울증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를 할 것 같았다. 4 며칠 후 나는 정신과 의사가 정식으로 로즈를 치료해 달라고 거듭 부탁하자 또 한 번 놀랐다. "닥터. 강? 아무래도 정신병이란 역시 같은 동족의 의사가 더 잘 치료를 한다고 나는 생각하오. 같은 말을 하며 같은 문화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느 약보다도 더 효과가 있다는 말이지요. " 사실이 그러했다. 우울병에 쓰는 약들이라야 환자를 졸리게 만들며 생각을 무디게 할 뿐, 별 효과가 없다고 나는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며칠 후, 로즈는 나의 진료실로 그녀의 딸, 제니퍼와 같이 찾아 왔는데 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 진 듯 했다. 나는 진찰을 마치고 정색을 하고 로즈에게 물었다. "로즈씨? 나도 한국 사람입니다. 제 이름은 강석호라고 합니다. 강석호!" "............" 순간 나는 로즈의 얼굴이 실룩실룩 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로즈씨? 그런데, 한국 이름은 무엇인가요? 한국이름은? 장미?" "한.해.정이라고 합니다. 한해정." "한해정(韓海晶)?" 웬일일까? 아주 익숙한 이름이었다. "......." "한해정이라면? 바다에서 나는 수정(海晶)이라는 뜻인데. 바다수정!" "예? 바다 수정?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이번에는 로즈가 놀라서 물었다. "기억에 희미하지만 지금부터 30여 년 전, 그러니까, 1957년이었지요. 내가 아는 어떤 소녀가 이렇게 말했지요. 나의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지을 때, 바다수정(해정)이라고 지었답니다. 왜냐하면 충청북도는 바다가 없는 도(道)이기에 바다를 생각하라고 그렇게 지었답니다." "그렇다면 로즈씨도 바다 수정이라는 이름이군요?" "..............." 로즈는 말이 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하였다. 잠시 후 로즈와 그녀의 딸 제니퍼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 그 날 저녁,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대신 오늘 보았던 로즈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1957년의 일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로즈라는 이 환자? 혹시, 청주에 있는 성공회 돌계단에서 만났던 그 소녀가 아닐까? 그럴 리가? 여기가 미국인데...청주에 살았던 그 소녀는 지금쯤 어느 시골에서 농사 짖던지, 아니면 초등학교 선생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다 이젠 정년퇴직 했겠지...'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부인하였지만 그럴수록 그 소녀의 얼굴이 나의 머릿속에서 영화 자막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자막처럼 떠오르는 그 기억(記憶)이란? -소년, 강석호는 원래 강원도 화천에서 살다가 6.25전쟁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난가다 가까스로 정착한 곳이 바로 청주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였다. 그곳에서 거지처럼 살던 중 휴전이 되면서 수용소 신세를 면했다. 그러나, 강석호의 아버지는 먹고 살기 위해 시계 수리 점을 청주 변두리에 내어 아들 석호와 아내를 먹여 살렸다. 마침내 어린 강석호는 피난민 수용소 인근에 있는 청주 교동초등학교로 전학 되어 청주 토박이 애들과 같이 공부하는 것이 더 없이 소원이었다. 그보다 더 즐거운 것은 교동학교 바로 위 편 언덕에 있는 성공회로 올라가는 돌계단에 앉아 선생님으로부터 특별 야외 수업을 받는 것이었다. 어린 강석호에게 있어서는 청주란 도시는 마치 어머니의 젖과 같이 포근한 제 이(2)의 고향이었다. 우안산(牛岩山) 산꼭대기에, 먼동이 뜰 때 무심천(無心川) 찬 물결에 샛별이 지는 고요한 청주! 그리고 그곳에 있는 교동학교에 가보면 훤출하게 큰 전나무들이 학교 건물을 감싸고 있었으며 그 교정에서 눈을 들어 동편을 바라보면 가파른 언덕 위에 아름드리나무 들이 울창한 숲속에 서양 픙(西洋風)과 조선식으로 지은 성공회(聖公會)건물이 마치 디즈니랜드에 있는 마녀(魔女)의 성(城)처럼 우아하였기에 성공회 교인들은 물론 젊은 남녀들이 즐겨 찾는 산책길이기도 하였다. 더욱이 성공회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앉아 먼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을 헤아리곤 하였다. 그러나, 허름한 옷을 입은 피난민인 내가 찾아 가기에는 격이 맞지 않는 아름다운 곳이었기에 감히 돌계단에 찾아가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교동학교 학생이 된 후부터는 비록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당당하게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바랜 은행나무 잎을 줒어 책갈피에 꽂곤 했는데 그것이 아마도 6학년 이학기인 11월 초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나의 인생이 수렁으로 빠지고 있었다. 시름시름 잔병을 자주 앓고 있던 어머니가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동네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이틀 후, 어머니는 속절없이 눈을 감고 말았으며 우암산 기슭에 매장되어 한 많던 35세의 젊은 나이로 어린 나를 두고 멀리 멀리 어디로인가로 가버렸다. 세상이 캄캄하고 우울하였다. 돌부리를 발로 차기도 하며 애꿎은 나무 가지를 꺾어 버리기도 했으며 화단의 꽃을 발로 이겨 버리기도 하였다. 학교 수업이 끝났지만 나는 집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시계를 고치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녀석아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하라고! 중학교에 가고 싶으면..." 아버지는 죽은 어머니보다도 시계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늦은 가을, 마음이 울적하면 늘 찾아갔던 그 돌계단으로 가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은행잎이 떨어지며 낙엽이 돌계단에서 뒹글고 있는 모습이 마치 죽은 어머니처럼 보였다. 그 때, 우연히 만난 소녀가 있었다. 바둑이 무늬가 박힌 원피스에 푸른색의 쉐터를 입고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공주 같았다. 반면 누더기나 다름없는 허름한 옷을 입고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상대적으로 초라한 거지였다. 내게 말을 걸어 온 편은 오히려 공주 같은 그 소녀였다. "너, 교동 학교에 다니니?" "그래. 나, 육학년 일반, 강석호야, 강석호!" "강석호? 강석호. 나는 한해정이라고 해." "한해정? 해정(海晶)?" "응, 한해정. 나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인데, 충청북도에는 바다가 없잖아. 그래서 바다 수정이라고 지어 주었어." "바다 수정? 예쁜 이름이구나." 그리고 나와 그녀는 제법 큰 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돌계단의 쇠 난간을 툭툭 치면서 꼭대기 까지 오르내리곤 하였다. 그리고 성공회 당 앞에서 그곳에 걸린 그림을 바라다보았다. '어린양을 가슴에 안고 수많은 양떼를 지키고 있는 머리가 긴 외국 남자의 그림을'- * 그렇구나! 그래. 한해정! 한해정! 바로 그 소녀였구나! 나는 갑자기 큰 진리를 발견 한 듯이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로 나가 밖을 내다보았다. 사실 그 때, 내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나는 해정이라고 하는 소녀를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라고 생각했었다. -돌이켜 보면 1957년 가을 어느 날, 나는 나보다 두 살 어린 4학년 소녀, 한해정으로 부터 터득한 것이 많았다. 화천에서 피난 나와 가난하게 살던 거지같은 소년인 내게 보이는 성공회 건물은 마치 일본의 황궁(皇宮)이나 알프스 산 속에 있는 옛 성주가 살던 고성(古城)과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 옥황상제와 선녀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을 뿐 내 눈으로 그 속을 볼 기회가 없었다. 허름한 옷을 입은 내가 막대기를 들고 성공회 건물 주위를 기웃거리면 검은 옷을 입은 수위가 어느새 달려와 개 쫓듯이 쫒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성당 옆으로 뚫린 꼬불꼬불한 언덕길로 랜드로버와 집 차가 오르내릴 때마다 눈에 띄던 백인소년과 소녀들의 모습이 마치 선녀와 왕자님과 같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해정이라고 하는 소녀 덕분에 내 눈으로 직접 왕성과 같은 성공회당과 그 부속 건물들을 돌아 볼 기회가 있었다. "너, 여기 사니?"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응- 우리 집? 성당 뒤에 있어. 그런데 너, 육학년이라고 했지? 전학 왔니?" "그래, 전학 온지 벌써 일 년은 됐어. 와! 여기 근사하구나. 유리창마다 그림이 그려있네. 그림이?" 나는 성당 내부를 신기한 듯이 바라다보며 해정에게 말했다. "너, 성당에 안 다니는구나? 이 그림? 예수님이야. 예수님." 예수님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옥황상제가 사는 곳이 아니란 말이었다. 성당 뒤편으로 크고 작은 집들이 여러 채 있었으며 검은 제복을 입은 신부님들과 흰 수건을 머리에 쓴 수녀들이 보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이곳 신부님이야. 그리고 저 집에는 미국 신부님이 살고." "그래? 그럼 너의 아버지도 신부님이니?"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괴뢰군들이 쏜 총에 죽었어. 벌써 육 년 전이야..." "그래? 너도 나처럼 고아로구나? 고아!" 나는 그녀가 고아 인 것을 알고는 얼마 전에 죽은 나의 어머니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래? 너도 고아야?" "엉..."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성공회당 동편으로는 높은 종 탑(鍾 塔)이 있어 아침 여섯시, 정오, 그리고 저녁 여섯시마다 규칙적으로 은은한 찬송을 울려 주었다. 더욱이 12시에 울려 나오던 그 종소리는 죽은 어머니를 더더욱 생각나게 했다. '아-여기가 천국이구나. 옥황상제도 그리고 예수님도 사는 곳... 그리고 해정, 너는 바로 천사로구나. 그리고 선녀로구나...나와 같은 피난민 소년은 도무지 가까이 할 수가 없는 그런 곳, 천국이요 낙원이구나.....' 나는 생전에 몰랐던 진리를 터득한 듯이 돌계단을 터벅터벅 걸어서 나려왔다. "다음에 또 와! 석호 오빠!"라고 소리치는 그 소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망각의 미로 속에 잠겨 있던 그 기억(記憶)을 밤새 생각하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5. 그리고 다음날, 졸리움을 무릅쓰고 나의 진료실로 출근을 하였는데 내게 걸려온 전화가 있었다. 다름 아닌 로즈의 남편인 마크였다. 그러고 보니 마크란 랜드로버와 짚 차를 타고 성공회당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내리던 그 백인 소년이었음을 기억해 낼 수가 있었다. "헤이! 닥터. 강? 이거 기적이군요. 기적! 당신의 진료실에 갔다 온 이후부터 로즈의 병세가 완연하게 좋아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까마득하게 잊었던 청주와 성공회당을 얘기하지 뭡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자진해서 닥터. 강, 당신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는군요. 어쨌든 이번 주에 또 찾아 올 겁니다." 남편의 얘기를 듣고 보니 로즈라는 그 환자가 옛날의 그 소녀인 한해정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서글픈 심정은 그토록 선녀처럼 순진하고 유쾌했던 소녀가 심한 우울증 환자가 되어 정신병원을 전전하다니...어찌 생각하면 그토록 부러웠던 해정은 이젠 패배자(敗北者)요, 거지같이 가난했던 피난민 강석호는 이민에서 승리한 성공자였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말 못할 이유가 있을게다. 말 못할...' * 며칠 후, 그녀는 남편과 같이 나의 진료실을 다시 찾아 왔는데 이젠 스스럼없이 말도 하며 얼굴에는 미소를 띄고 있었다. 진찰결과 그녀는 정상적인 건강을 되찾은 것이 역력했다. "로즈씨? 이젠 건강을 회복하였군요. 정상입니다." 나는 웃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흔들고 있는데 그녀는 내게 물었다. "닥터.강? 혹시, 옛날 청주에 살었지요? 청주에?" "예, 그렇습니다. 피난민 시절에.. 그것이 1957년도 였지요." "그랬군요. 강석호 씨였군요. 성공회 돌계단에서 만났던 그 소년...그렇죠?" "그렇습니다. 로즈, 아니 한해정씨. 나도 며칠 동안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꼭 물어 보려고 했는데. .바로 제가 그 거지 같았던 피난민 소년 강석호입니다." "그랬군요. 브레아 병원에서 처음 보던 그 날부터 강석호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지요. 결국 석호 오빠였군요. 석호 오빠. 그 때 그 성당 돌계단에서 헤어졌던 그 오빠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나는 '이제는 살아야 한다.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을 하였지요. '아니 우울 할 이유가 없다. 살아야한다' 라고요. '언제가 나는 그곳 돌계단이 있는 청주, 성공회당에 가 보아야 한다'라고 다짐을 하였지요." "돌계단에? 그러고 보니 종탑에서 울려 나오던 그 노래도 듣고 싶군요, 로즈?" "로즈? 한해정? 무슨 얘기야? 아니, 아는 사람이었어? 닥터. 강을?" 옆에 무심하게 앉아 있던 로즈의 남편 마크가 참견을 했다. "그렇습니다. 마크! 저도 청주에 살았지요. 청주에." 나는 로즈를 대신하여 대답하였다. "청주에서? 그러면 성공회당도 아신단 말이군요?" 그는 놀란 듯이 말을 했다. 순간 나에게 갑자기 떠오르는 참담하고 쓰라린 기억이 있었다. -'마크라면? 아! 바로 그 소년이었구나. 그 소년!' 마크에 대한 나의 기억은 거지같은 피난민의 서러움과 정복자가 느끼는 승리와 환희가 동시에 칙넝클처럼 얽혀 있는 기억이었다. 1957년 가을에 있었던 그 기억은 이러했다. 소녀 해정과 돌계단에서 헤어진 후 종탑에서 은은히 울려 나오는 노래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는 것이라고는 먹다 남은 찬밥과 김치 몇 조각이었다. 시계포를 경영하는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은 후부터는 집에 돌아오는 시간도 늦었으며 그나마도 늘 술에 취해 들어왔기에 아버지와 같이 밥을 먹어본 기억도 없었다. 그 날도 그러했다. 12시를 알리는 통금 사이렌 소리에 맞춰 거나하게 술에 취한 아버지가 들어오더니 '쿵'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쓸어져 누어 코를 골고 있었다. 가끔은 죽은 아내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더니 이내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골았다. 이것이 우리 집의 현실이었기에 나는 옆집 아주머니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수요일 날 오후, 나는 학교공부가 끝나고 성공회당으로 올라가는 그 돌계단으로 갔다. 약속대로 해정이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게 건네 준 것은 김밥과 생전에 먹어 보지도 못한 비스켙트, 소세지 같은 아주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신 김치와 찬밥이나 먹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그런 음식이었다. 그뿐인가 그녀는 내게 "어서 먹어! 석호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석호 오빠? 나는 감격하여 눈물이 났다. 선녀같이 예쁜 소녀가 거지같은 나에게 오빠라고 부르다니.... "석호 오빠? 우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먼저 한 계단씩 올라가기로 하자. 어때?" "좋아, 해정아!" 나는 그녀와 같이 논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기뻣다. 우리는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이기는 사람이 한 계단씩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옛날 수도사들이 무릎을 꿇고 한 계단씩 올라갔듯이., 성당을 향해, 하나, 둘, 셋 넷... 열, 수물, 설흔... 가위 바위 보를 하여 계단을 올라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지만 마침내 계단의 정상에 먼저 오른 것은 나였다. 해정은 나보다 무려 여섯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이겼다! 이겼어!" 나는 큰 소리를 쳤다. 주위는 어느새 어둠 컴컴했으며 늦가을답게 날씨는 차가웠다. 그리고 가랑잎이 돌계단에서 뒹굴고 있었다. "이겼어? 자식!"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 막으며 큰 소리를 치는 소년이 있었는데, 아뿔싸! 그 소리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덩치가 나보다 곱절이나 돼 보이는 백인소년이었다. 그리고 순간 나에게 다가오는 묵직한 주먹이 있었다. "악!"소리를 내며 나는 계단에서 나뒹굴어 떨어져 아래에 서 있는 해정의 무릎 앞에서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다. "뭐하는 거야, 마크!" 해정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속에서 맴돌았다. "보면 몰라! 너, 거지같은 이 자식하고 놀지 말라고 했는데. 이 녀석이 너를 해 칠지도 모르잖아?" "그래? 나쁜 자식!" 해정은 백인 소년을 향해 큰 소리쳤다. 잠시 후 깨어난 내 앞에 검은 제복을 입은 미국 신부님과 백인 소년이 서 있었다. "학생? 미안하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마크가 잘못했다고 하더라. 용서해주게. 자 우리 집에 가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구나." 그러면서 신부님은 나의 다친 어깨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마치 다정한 아버지를 만난 것 같았다. 비록 미국사람이었으나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었다. "아닙니다. 그냥 가겠습니다. 해정아? 갈게. 안녕!" 나는 싸움에서 진 개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을 가듯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석호 오빠! 잠간! 가지마!" 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이만 됐어! 들어가자! 해정아!"라고 하는 백인 소년의 목소리에 묻혀 버리고 있었다. 이것이 마크에 대한 나의 기억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피해자이기에 잊지 않고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마음의 상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살다보니 이보다 더 큰 상처를 백인들로부터 받으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살아 온 것이 신기했다. 흑인들이 당했던 그 고통보다는 덜하겠지만.....우리네 동양 사람들도 이보다 더 큰 고통과 피해를 당하고 살아 왔다.- * "마크? 나는 당신을 만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에서요..." "예? 한국에서?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그렇겠지요. 나는 피해자였으며 당신은 가해자였으니까요. 약한 사람은 그 고통을 마음에 간직하고 평생을 살고 있으니까요. 허긴 나도 누구인가를 괴롭힌 가해자 일수도 있으나 세월이 지나고 보면 씁쓸한 기억일 뿐이지요. 성공회당 돌계단에서 당신에게 한방 맞아 뒹글었던 그 소년이 바로 나였습니다." "아- 그랬었군요. 내가 그런 못 된 짖을 했었군요. 그 쓰라린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구 있었다니. 죄송합니다. 닥터.강!" "아닙니다. 마크, 당신은 해정을 사랑하였기에 그랬었지요. 잘 압니다. 내가 맞을 짖을 하였었지요." 나는 마크에게 이렇게 말은 하였지만 사실 나도 해정을 좋아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 그 날 나는 또 다른 눈물겨운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소녀 해정도 나를 잊지 못하고 살아 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마크에게 얻어맞고 돌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던 그 날, 절룩거리면서 집으로 돌아 온 나에게 또 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이나 되어서야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가 오늘따라 일찍 집에 와 있었으며 처음 보는 웬 아주머니와 같이 분주하게 짐을 꾸리고 있었다. "야! 석호, 이리 와서 이 분에게 인사를 하 거라. 너의 새 어머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말도 잘 듣고, 알겠니?"라고 일방적인 말을 할 때 나는 아찔함을 느끼고 있었다. "석호? 그래 내가 새 어머니다. 잘 지내자꾸나! 그런데? 웬 멍이 이렇게 들었지? 아니, 너, 어디에 가서 싸우고 온 거냐?" 나는 어쩌다가 새 어머니 앞에서 싸움이나 하고 다니는 그런 불량소년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버지는 전학 증명서를 떼러 학교에 간다고 하면서 "석호! 내일 모래, 우리 서울로 이사 간다. 알았나?"라고 소리를 쳤을 때야 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사를 가다니? 나는 친구들은 고사하고 그 소녀 '해정'을 만나고자 성공회 돌계단에 가서 오후 내내 기다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날, 나는 그 천사 같은 소녀, 해정을 만나지 못하고 다음날 아버지가 운전하는 트럭을 타고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 서울이라고는 하나 광나루 건너기전에 있는 천호동이었으며 단 칸 방에 세 들어 사는 신세였다. 그리고 아버지와 새 어머니는 근처 염색공장에서 막 일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 그랬었군요? 닥터. 강?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나는 육학년 일반 교실로 오빠를 찾아 갔지요. 사과도 하고 얼마나 다쳣는지 궁굼도 해서. 그러나 오빠는 며칠 전에 서울로 전학을 갔다고 하던군요. 그 뿐인가요 어느 누구도 오빠가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답니다. 아- 그랬었군요. 그렇게 이사를 갔었군요. 그래도 오빠의 모습은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답니다." 로즈는 울먹였다. "아! 닥터. 강!" 옆에서 조용히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만 있던 마크가 내 손을 꼭 잡았는데 그의 손은 생각보다 따스하였다. 6, 정신병의 치료는 약물보다 정서적인 치료가 때로는 더 효과적 일수도 있다고 예일의대(Yale Medical School) 출신의 닥터.야마시로가 한 말이 사실일 수도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나와 친해진 마크는 내게 말했다. "아일랜드사람인 우리도 고향에 대한 집념이 크지만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기에 정신병으로 진행이 되는가 보군요. 이민을 왔으면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여 새 인생을 살아야하는데. 과거에 대한 집착이 모든 것을 가로막는 큰 장벽이 되었군요." 모든 것이 하나 둘 실타래를 풀듯이 풀리고 있었는데 한 가지 로즈가 말하는 그 숫자들, 33과 44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대답은 쉽사리 풀렸다. 며칠 후 로즈와 같이 찾아간 훌러톤의 성공회당과 그 돌계단에서였다. 성공회당 앞에는 훤칠하게 큰 야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으며, 그 사이로 시원하게 뚫린 잔디밭에 잠시 쉬어 가라고 마련된 나무 벤치에서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였다. -해정의 할아버지는 청주 성공회당의 주임 신부였으며 마크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파견 나온 신부였다. 마음 아픈 것은 로즈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육이오(한국전쟁) 전쟁 중에 이북 공산군에 의해 총살을 당하였기에 신부인 할아버지가 로즈를 기르고 있었으며 할머니도 죽은 지 꽤 오래였기에 그녀는 고아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기에 두 살 위인 마크와 해정은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지냈다. 해정은 서울로 유학하여 미술을 전공하였으며 마크는 미국 칼리포니아주 옥스나드( Oxnard)를 오가며 대학과정을 마쳤다. 뜻밖에도 해정의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엉뚱하게도 그녀는 마크의 부모들이 사는 옥스나드로 이민을 와 마크와 결혼했다고 한다. 환경이 바뀌어 미국 이민자가 되고 보니 공주처럼 떠 받쳐 살아왔던 그녀에게 모든 것이 스스로 하여야만 하는 각박한 생존 경쟁에서 그녀는 패배자가 된 셈이었다. "그렇습니다. 미국 이민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네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마치 청주 성공회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에서 가위 바위 보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닥터. 강? 여기 훌러톤 성공회당(Episcopal Church of Fullerton)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의 숫자를 세어 봅시다." "돌계단이 몇 개인가? 세어 보자고." 나는 무심코 말을 하였는데 그녀는 사뭇 진지하게 돌계단을 하나둘 세어가고 있었다. "하나. 둘. 열. 수물 서른 셋! 서른 셋 이 군요! 그러면? 아닌데? 아닌데?"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문득 나에게 떠오르는 숫자가 있었다. 청주의 성공회당으로 오르는 그 돌계단의 숫자였다. 아-아-로즈는 아직도 청주에 있는 그 성공회당의 돌계단을 기억하고 있구나. 아- 가엾은... "로즈? 그래 청주에 있는 성공회당의 돌계단은 44개였어. 44개!" 나는 마치 큰 진리를 발견한 듯이 소리쳤다. "그렇지! 석호 오빠? 44개 였어. 44개..." 그녀는 나를 힘껏 포옹하였다. 마치 어려운 인생의 숙제를 풀어냈듯이...." 아- 가엾은 로즈는 비록 몸은 미국에서 살고 있으나 마음은 아직도 태평양 건너 청주에 있었다는 말이었다. 두고 온 고향이 마치 망각 속에서 가물가물 꺼져 가는 촛불처럼 실 가닥 같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며칠 후 이 사실을 남편 마크에게 일러 주었을 때 그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7. 로즈부부와 내가 청주를 함께 방문한 것은 10월 말이었다. 칼리포니아의 10월은 아직도 무더웠지만 청주의 10월은 역시 선선하며 아름다운 가을의 그 모습이었다. 나무 입새가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으며 30년 만에 찾아 온 나는 물론이요 로즈의 감격은 더 절박하였다. 그뿐인가 벽안의 아이리쉬계 미국인 마크도 그러했는지 가끔 눈시울을 닦고 있었다. 수많은 인종이 모여 사는 용광로 같은 미국 속에서 고달프게 지낸 우리 인생들이 이젠 이곳 고향에서 평안한 안식을 찾을게라고 기대를 하니 기억 속에 아물거리던 우암산과 무심천이 나의 가슴속에서 고동치고 있었으며 몰라보게 변해 버린 고향이기는 하지만 노인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마음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 그러나 천진난만했던 우리의 동심(童心)은 산산 조각이 나고야 말았다. 있어야 할 곳에 다른 것들이 들어서 있었으며 우리를 향해 무관심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로즈의 가슴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 초등학교 건물들은 어디인가로 사라졌으며 그곳에는 현대식으로 지은 학생 전시회관이 서 있었다. 내가 즐겨 놀던 그 철봉대도 없어졌으며, 더 안타까운 것은 동쪽 언덕에 마치 디즈니랜드의 마녀의 성처럼 우뚝 솟아 있던 그 성공회당(聖公會堂)마저 나의 망막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뿐인가 그토록 만져보고 세어보고 싶었던 그 돌계단들이 있던 그곳에는 말끔하게 정돈된 아스팔드 길과 그 주위에 서있는 낙엽송들이 두 팔을 벌리고 우리들을 조롱하고 있는 듯이 서 있었다. 그리고 동쪽에 우뚝 솟아 6시 12시 그리고 6시마다 울려 주던 그 종탑도 내 눈에서는 사라지고 말았다. 현대식으로 잘 정돈된 새로운 성공회당과 주차장이 있을 뿐이었다.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고색창연한 마녀의 궁전과 돌계단을 찾는다는 것 그 자체가 정신병자요 눈부신 발전을 한 조국에 대한 모독이었구나....' 라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 하였다마는 불쌍하게도 로즈(해정)는 아직도 눈을 부비고 옛 건물들을 찾고 있었다. 마치 젖먹이 아이가 어머니의 가슴에서 젖꼭지를 찾듯이..... "로즈? 44개의 돌계단은 이젠, 여기에는 더 이상 없소. 당신의 가슴속에나 존재 할 뿐이요... 그뿐인가요, 12살의 소년과 10 살의 소녀도 여기에는 없습니다. 1957년의 그 가을에 보았던 그 단풍잎도 그와 비슷한 또 다른 것일 뿐, 그 때 우리가 만져보던 그 단풍잎은 아니요....." 나는 마치 어린 아이에게 대하듯이 그녀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그렇군요.........." 그녀는 마크의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 "마크! 그리고 로즈! 내 친구가 쓴 시 한구 절을 들어보세요. 뉴욕 만해탄에서 전문의사 과정을 밟다가 결핵에 걸려 몇 개월을 쉬면서 썼던 향수(鄕愁)라는 시 한편입니다." - 검은 구름이 덮고 있는 도시에서 나는 이름 없이 살고 있다. 아무도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타국에 유랑하는 사람은 이름을 고국에 남겨두고 부운 발로 이국의 거리를 떠돈다. 이제 서리 내리는 가을이 오고, 아-나는 돌아가야겠다. 나의 이름이 있고 눈물이 있는 고국으로. 가을에는 돌아가야겠다. 가방 하나에다 여권과 고국에 갈 여비를 넣어 놓고 살았다. 아들 딸 키우면서 이사를 자주 다니다가 언제 버렸는지.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 가방이 남아 있고 푸르디푸른 하늘에 새들이 자꾸 날아오른다. - * 이것이 바로 미국 이민자들의 현실이었다. 마음은 두고 온 고향에, 육체는 차가운 미국이라고 하는 현실에서 제각기 놀고 있다는 말이다. 그토록 그리고 그리던 고향에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변했으며 반기는 사람이 없다보니 터벅터벅 미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 이민자의 운명이라고 해야겠다. * "해정씨, 아니 바다 수정 아가씨? 세월이 많이 흘렀군요. 그리고 많이 변했군요. 가난했던 강석호도 선녀같이 예뻤던 소녀, 해정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군요. 44개의 돌계단은 어디로인가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앞에는 33개의 돌계단이 있는 훌러톤 시의 성공회당과 로즈. 맥.나이트 라고 하는 정신병자가 현실이군요. 그리고 로즈씨? 캄캄한 디즈니랜드의 하늘로 솟구치는 아름다운 불꽃들이 있는가 하면 개중에는 초라하게 불발탄이 되어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 가련한 불꽃도 있음을 기억하십시요.. 그렇습니다. 없어진 돌계단처럼, 해정이라는 이름은 이제 잊어버리고 로즈라는 이름만 기억하고 싶군요." "그렇군요. 석호 오빠! 아니, 닥터. 강!" 마침내 로즈는 마크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면서 체념한 듯이 말하였다. 늦가을을 알리는 은행잎들이 아스팔트 길에서 뒹글고 있었으며 지나가는 아이들은 우리들을 흘끗 흘끗 바라다보며 지나갔다. 1957년 가을, 강석호라는 소년과 한해정이라는 소녀가 그랬듯이..... 2012년 미주 펜문학에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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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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