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망상의 비밀

2012.12.09 13:20

연규호 조회 수:372 추천:46

6- 단편소설: 망상(妄想)의 비밀(秘密) 1. 양로병원, 안식처(養老病院 安息處)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차창에 부딪칠 때마다 눈꺼풀을 반쯤 감고 밖으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뉴.포트 해안을 흘끗흘끗 바라보노라면 태평양 바다는 마치 비단 위에 뿌려놓은 듯한 진주들이 사르르사르르 굴러다니고 있는 듯이 보였다. 라구나 해안이 가까워지면서 왼편쪽으로 꽤나 가파른 언덕이 보이더니 , '안식처 길. Pacific Haven Drive'이라는 신호판이 눈에 띄였다. 순간 나는 "아-"하는 반가움과 함께 좌회전을 하여 안식처 양로원 입구를 향해 자동차를 운전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양로원 건물 뒤 편 언덕에는 꽤나 큰 바위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혹시라도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양로원 입구에 우뚝 솟아 있는 수많은 야자수들이 나를 환영하고 있는 듯 해 내 마음은 어느새 지은 지 50년이 넘는 듯한 스페인풍의 2층 건물 속에 누워 있는 한 환자의 모습 앞에 다 달은 기분이었다. 남가주 특유의 건조한 여름날의 미풍에 높이 솟은 야자수 나무의 잎새가 파르르파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태평양 안식처(Pacific Haven)'라고 쓰인 양로원 간판을 지나 방문자 주차장이라고 특별히 구분되어 있는 공간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잠시 건물과 정원을 살펴보았다. 양로원이란 처음 와 보는 사람에게는 우중충해 보이며 다소 우울하게 만드는 곳이지만 넓은 잔디밭에 잘 가꾸어진 잔디밭과 부채처럼 생긴 팜 나무들을 바라다보노라면 새로운 삶을 생각해 보는 곳이기도 하여 숙연스럽기도 하다. 나는 병원입구에서 멀금어니 앉아 있는 멕시코 계통의 안내원에게 닥아가 '박정식.朴正植)'이라는 환자를 면회한다고 신청했다. "박정식이라? 누군데?" 고향 오빠라고 관계를 밝혀 주니 "아! 친척이 되는군요?"라고 반기면서 면회를 허락하며 내 가슴에 방문자(Visitor)라고 쓴 스틱커를 부쳐 주며 친절하게 가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1층 137호 실은 왼쪽으로 곧바로 가다가 보면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마침 보호자(아내)가 출타중이니 조심하시오." "감사합니다." 나는 안내원이 알려 준대로 왼편으로 쭉 가다가 마침내 137호실을 발견하고 반쯤 열려진 문을 밀치고 환자가 누어있는 침침한 방으로 주섬주섬 들어섰다. 다소 캄캄한 방에 쾨쾨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는데, 가만히 보니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환자의 위(胃)에서 나온 튜브가 스탠드에 세워둔 영양 공급용 기계에 걸려 있었으며 일분에 12번씩 회전하는 소리가 마치 타악기를 치고 있는 듯 했는데 고약한 냄새는 바로 피부에서 나오는 썩는 냄새였다. 금년, 78세가 된 노인, 박정식 씨가 정신을 잃고 침대에 누워 있었으며 코에는 초록색갈의 풀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산소 마스크가 덮여 있어 얼굴을 제대로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위(胃)에 구멍을 뚫어 튜브를 연결하여 영양액체를 공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 환자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도 모르는 뇌사 상태의 가망 없는 환자임에 틀림이 없었다. 뇌사(腦死) 상태의 환자가 대개 그렇듯이 환자 보호자들도 간호를 하는 것을 포기를 하고 양로병원에 내 맡기고는 하루에 한번 아니면 일주일에 한 두 번 찾아오는 것이 상례였기에 환자 목욕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환자에게서 게옥질나는 냄새가 나곤했다. 여기 누워 있는 이 환자의 부인도 오늘 아침에 잠시 찾아와 마지못해 1-2시간 남편을 돌보는 척 하다가는 바쁜 일이 있는지 환자를 팽개치다시피 출타를 하였기에 환자 곁에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다. * "정식 씨?" 나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멀뚱히 누워 있는 환자를 향해 아름을 불러 보았으나 대답도 없고 반응도 없었다. "정식 씨?"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다시 불러 보았으나 역시 대답도 없었으며 어쩌다가 눈이 약간 움직이는 듯했을 뿐 아주 조용했다. "정식 씨, 아- 이렇게 말도 못하고 누어 계시다니... 내가 이렇게 찾아 왔는데도 나를 몰라보고...나-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남인데...정식 씨. 어쩌다가 이렇게 누어 계세요. 정식씨. 말 좀 해봐요! 녜?" 그러나 멀거니 누워 있는 정식 씨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죽은 사람과 같았다. "아- 이렇게, 이렇게....말도 안 돼....." 나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도 72세인노인인데 나는 정식 씨 앞에서는 늘 아이와 같은 마음이었다. " 정식 씨, 나, 당신을 사랑했던 까닭은 아무도 당신이 준만큼의 자유를 내게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신 앞에 서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었음은 그대 아닌 누구에게서도 그토록 나 자신을 깊이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니 정식 씨, 눈 좀 떠보세요. 그리고 말 좀 해 보세요. 네?" 나는 마침내 정식 씨의 손을 꼭 잡고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박정식'이라는 이 노인 환자는 꼼짝도 하질 않았다. "환자는 뇌사 상태입니다. 벌써 3개월째..." 마침 환자 상태를 보러 들어 왔던 나이 많은 백인 간호사가 안타까운지 나에게 귀 뜀을 해주었다. "깨어 날 수 있을 까요. 간호사님?" "글쎄요. 아마, 힘들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죽는 날만 기다리는 희망도 없는....." "...................." 나는 마침내 정식 씨의 손을 잡고 울고 말았다. 눈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이렇게 되다니..정식 씨가..' 생각해 보면 얼마나 기다렸던 사람인가? 54년의 긴 세월이었는데,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만남이었나? 허무하다 못해 나 자신이 미웠다. 누군가 말한 것이 기억에 났다. "인생은 과거보다, 그리고 미래보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현재가...." 공학 박사, 박정식 씨는 78세가 되면서 갑작이 찾아온 뇌졸중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언재 죽을지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것도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아 음산한 미국 양로병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만성병 환자로.... -하루 밤을 자고 나면 "존(John)이 죽었어."라는 소식에 잠시 숙연해 지는가 하면 다음날은 "제인(Jane)이 죽었어"라는 소식에 또 다른 슬픔이 이어지는 곳이 바로 양로원이다. 간암, 췌장암, 위암, 중풍, 식물인간으로 입원했다가 어느 날 저 먼 세상으로 가야하는 환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마지막 남은 인생의 한 때를 가족들과 즐기기도 하는 곳이 바로 여기 안식처(安息處) 양로원(養老院)이다. 2. 51년 전, 내 나이 21살, 그리고 46년 전, 내 나이 26세였을 때, 나는 세브란스병원과 대구 동산병원 정신과 병동에 강제로 입원 그리고 통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정신분렬증 망상형(精神分烈證 妄想型)이라는 거창한 진단을 받고 철창살이 쳐진 음산한 정신과 병실에 혼자 갖쳐있었다. "박정식은 내 남편!" "나를 안아줘!."라고 엉뚱한 말을 하는가 하면 히죽히죽 웃으면서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이 나의 증상이었다. 느닷없이 브라자를 벋어 던졌다. 그리고 유방을 내보이고, 쓰다듬으면서 킬킬 웃는 모습이 꼴 사나웠기에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켜 정신 안정제와 수면제를 복용하다보니 늘 졸리운 모습이었다. 다행히 3개월간 입원 치료를 한 후 호전되어 복학하여 겨우겨우 대학과정을 마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운이 좋았는지 병세가 더 호전되어 내 나이 28세에 대구 근교에 있는 변두리 여자중학교에서 음악선생이 되었다. 고무신짝도 짝이 있다고 했듯이 나는 같은 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는 노총각 선생을 만나 결혼을 했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정상적인 삶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남편은 12살이나 연상이었는데 생각보다 나를 잘 대해 주었으며 천만 다행인 것은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것을 모르는 듯했었다. 순진한 남편과 더불어 지내온 지난 31 년간의 결혼생활은 정신병 전력이 들통날까봐 마치 감옥소에 갇혀 사는 죄수의 심정으로 조마조마하게 살았다. 내 나이 60, 남편의 나이 70세에, 그가 대장암 말기 증상으로 세상을 떠나자 나는 남편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워 졌다. 몸만 자유로워 진 것이 아니고 정신분렬증 망상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졌다. 남편이 죽은 후 자유로워지고 보니 나는 교회에 나가 다른 노인들과 어울려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죄에서의 자유가 이토록 나를 이렇게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남편이 죽은 지 2년 후, 내 나이 62살이 되던 해, 나는 용기를 내어 산디에고에 사는 박정식 씨와 그의 아내, 최진선 씨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정숙아! 제발 내 남편을 잊어 주렴. 너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야! 네가 내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어. 아니, 남편이 식물인간이라도 된다면 똥오줌이나 치워 주면 다행이지....어쨋건, 너와 그이는 인연이 아니었어." "인연이 아니었다고?" "그래, 정숙아. 제발 망상에서 벗어나려무나." "망상이라니요? 나는 정상사람입니다. 식물인간이 돼도 좋습니다. 나는 그이를 사랑해요...아시겠죠?" "그래, 식물인간이 되면 내가 포기할 테니, 네가 차지해도 좋다. 제발..." 이렇게 말한 최진선 씨는 대학 3년 선배가 되며 대학시절, 그녀는 나의 애인, 박정식을 가로챈 후 결혼을 한 여우같은 여자였다. "식물인간이 되면 포기하고 나에게 준다고요?" "물론이지...정숙아." "고마워, 언니." 나는 바보같은 제안을 받아 드렸으나 피식 웃고 말았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일어 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8년이 지난 오늘, 그 바보 같았던 제안이 현실로 나타났다. - 박정식 씨는 그의 부인이 말한 대로 중풍으로 쓸어져, 식물인간이 돼 여기 안식처라는 양로원에 멀거니 누어있기 때문이다. 식물인간이 된다면 포기 할 테니 그때는 내가 차지해도 좋다고 말한 박정식의 부인(최진선 선배)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내게는 한 가닥, 큰 희망이었기 때문이었다. 박정식 씨가 멀정했을 때에는 그녀가 단물을 다 빼먹고, 식물인간이 돼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된 지금은 쓴물을 내게 준다고 해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드리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는 정신병자인가? 아니면 사랑의 약속을 지키려는 애절한 마음인가? * "자, 아주머니? 이제 면회를 끝내시고 돌아가세요."병원 간호사가 병원 규칙을 일러주면서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간호사님? 식물인간은 제 차지입니다." "예? 무슨 말씀이요?" "식물인간이 된 박정식 씨를 남은 여생동안 돌봐주려고 합니다." "예? 아내가 아닌 대도? 허긴 환자의 부인이 돌보지 않으니 누군가가 와주기를 바랬는데, 고맙군요." 간호사가 한마디 덧 부쳤다. 3. 내가 세브란스 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정신과의사들이 "정신병의 원인과 치료"라는 제목을 놓고 토론하는 것을 보고 들은 적이 있었다. 정신병의 원인은 유전인자, 가정환경, 종교, 그리고 정치적인 스트레스등이 원인이 된다고 하면서 열을 올리던 모습이었다. 누가 정신병자인가? 누가 정상인인가? 라는 질문 앞에 정신과 의사들이 이렇게 답을 하였었다. "정신병과 정상인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 어느 누구나 다 정신병자가 될 소인이 있다."라고 말하면서 웃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내 눈에는 정신병자와 같아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정신병자가 되어 여기 철창 속에 갇혀 있는가? '유전인자? 스트레스? 그렇다면, 박정식이라는 사람 때문에?' 나의 대답은 박정식이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 어느듯 54년 전, 1957년 봄.... 불을 뿜으며 아름다운 산천을 초토화 시켰던 6.25전쟁도 휴전이라는 애매모호한 방법으로 끝났다. 그 후 4년이 지나자 불바다였던 남한 땅에도 상공업이 서서히 발전돼 먹고 사는 것도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했다. 노란 개나리가 피고 먼 산에 진달래가 물들기 시작한 봄날, 나는 대구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S 대학에 입학했다. 서울에서 청운의 꿈을 펼치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피아노의 신동이라고 불릴만큼 피아노를 잘 쳤기에 음악과를 졸업한 후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뿐인가 기독교인이기에 K교회 성가대 반주를 맡게 되었는데 이것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성가대에서 나는 두 명의 남녀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로인해 삼각관계라는 사랑과 갈등의 싸움 속에서 정신분렬증을 앓게 되었다. 성가대 반주자로 단원들 앞에서 소개되던 날, 나는 성가대 지휘자, 박정식 씨와 앨토 파트장인 최진순 씨를 만나게 되었다. 박정식 씨는 나보다 6살 위가 되며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군대도 마치고 한국전력에서 특별히 앞으로 닥쳐 올 원자력 발전을 개발할 인재였다. 더욱이 그는 키가 크고 피부도 흰 훤출하게 생긴 미남으로 나는 그를 처음 보는 순간 반하고 말았다. 공대출신인 그는 음악에도 재능이 있는 팔방미인이었다. "미스 김, 지휘자 박정식입니다. 지휘자와 반주자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잘 부탁합니다."라고 내 손을 덥석 잡았을 때 나는 내 인생의 전부가 여기있구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다음으로 소개된 사람이 바로 앨토 파트장, 최진순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으며 나와 같은 학교, 음악과 3년 선배였다. "미스 김? 내 후배가 되는구먼...." 그녀는 입가에 아주 얇은 미소를 먹음고 있었다. 아주 영리해 뵈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어느 마귀에게 홀린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날 이후 나는 박정식 씨를 만나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 되었으며 성가연습을 이유로 자주 만났다. 더욱이 대구에서 온 나는 학교 기숙사에 기거했기에 자연스럽게 나를 바라다 주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박정식 씨를 오빠라고 불렀으며 그는 나를 정숙아 아니면 반주자님이라고 불러 주었다. 운명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나는 학교 선배 되는 최진선 씨와 박정식 씨가 나 몰래 서로 만나는 사이임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봄날, 풀꽃이 싻트는 것처럼 내 마음에서 자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당신은 나의 것'이라고 하는 소유욕이 덩달아 자라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버려 무소유욕(無所有慾)을 가질 수는 있으나, 두 사람이 하나 되고 싶은 소유욕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 판국에 학교 선배, 최진선 씨가 박정식 씨를 만난다고 하는 소식을 알게 되니 영락없는 삼각관계(三角關係)라고 하는 떨떠름한 전쟁터로 빠져들고 있었다. 박정식은 분명 나에게 "정숙아, 나는 너만을 사랑해."라고 속삭였는데...... 학교 앞에 있는 어느 다방에서 뿌연 연기 넘어로 나의 애인 박정식과 선배 최진선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모았을 때, 나는 마치 패배자가 된 듯 했었다. "정식 오빠? 혹시 나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나는 얼마 후 그에게 작심을 하고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 나는 오로지, 정숙이 너뿐이야. 알았지?" "나만을?" "그렇다니까....정숙아." 나는 내 마음속에 다소 껄끄럽고 역겨운 것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으나 오빠의 말을 100% 믿기로 작정을 하고 보니 최진선 씨를 보아도 떳떳했었다. 대학 2학년, 가을.... 코스모스가 피고 하늘도 높고 공기도 시원한 어느 가을 날. 박정식 씨가 일방적인 선언을 했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원자력 발전을 위한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에 가서 약 3년간 공부를 하고 온다고 했다. 아울러 공부를 끝내고 반드시 돌아와 나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며 청혼을 했다. 내가 고개를 끄떡여 허락을 하자 그는 이번 토요일 날, 강화도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강화도에? 거긴 왜?" 나는 너무나 뜻밖의 제안 앞에서 망서렸다. "당일로 다녀 올 수 있으니, 7시까지 신촌 로타리, 시외 뻐스장으로 오는 걸로 알고 갈게. 안녕." 일방적인선언을 한 후 박정식 씨는 사라졌다. '당일로 못 온다면...안되지, 혹시라도 아버지가 알면 큰일 나지.' 나는 결정을 못 내리고 우왕좌왕하고 있었지만 오빠의 청혼을 거절하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결국 토요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김밥과 과일을 가방에 넣고 신촌 로타리로 가니, 기다리던 박정식이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둘이 나란히 앉은 시외버스는 김포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며 밖으로 보이는 논에는 누런 벼이삭이 눈에 가즈런히 마치 노랫가락을 연주하고 있는 듯했다. 강화도 입구에서 큰 배에 실려 강화도 섬으로 이동될 때 나는 신비로움 속에서 오빠와 더불어 멀리 다른 세계로 이민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강화읍에 내려 바라다본 강화의 바닷가에는 프랑스와 몽골의 침략을 피부로 느끼는 듯했다. 강화읍에서 전등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꾸불꾸불 돌아 올라가니 단풍나무가 가을 냄새를 풍기고 있었으며 가끔 눈에 띄는 등산객들이 입은 울긋불긋한 등산복이 이채로웠다. 전등사에서 내려 절 입구로 들어가노라니 맑은 시냇물에 내 얼굴이 비쳐보였다. 문득 내손을 꼭 잡아주는 오빠의 손등이 따스했다. 꼭 쥔 오빠의 손을 나도 꼭 잡으면서 "그래, 오빠, 당신의 손을 놓치 않을 거야."라고 마음속 깊이 읖조리고 있었다. 손을 잡고 전등사 주위의 경치를 즐기고 있다 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지나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나는 준비해온 흰 책상보를 나무그늘 아래 잔디밭에 깔고 가방 속에서 김밥과 과일을 가지런히 챙겨 놓았다. "와! 정숙아, 맛있겠다." 라고 말하면서 오빠는 볼 따귀를 씰룩 거리며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내 사랑을 맛있게 받아 드리고 있는 듯했다. 오후 4시경, 우리는 서둘러서 하산해 강화읍으로 가는 뻐스를 탓다. 그러나 강화읍에 도착하고 보니 온통 읍내가 어수선했다. 김포 쪽에 무장 공비가 나타났기에 서울로 가는 뻐스가 끊겼다고 했다. 당황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우선 식당에 들려 저녁을 사먹으면서 서울로 가는 뻐스를 타려고 했으나 불가능하여 일단 강화읍에서 하루 저녁을 자야 할 판이었다. 밖은 캄캄해 졌으며 서울로 가지 못하는 등산객들로 인해 여관방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발을 동동 굴렀으나 허사였다. "방이 없습니다." 여관집 주인이 방이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나를 흘끗흘끗 바라 볼 때 나는 수치감을 느꼈다. 다행히 어느 민박집에서 구걸하다시피 하여 작고 누추한 방을 구할 수가 있었다. "방하나는 빌려 줄 수 있는데. 둘은 안 됩니다." 민박 주인은 나와 정식 씨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정숙아? 방이 하나밖에 없데. 천상." "..........." 나는 말도 못하고 못 마땅한 듯이 고개만 끄덕거렸지만 속 마음으로는 오히려 기쁜 마음이었다. 우리가 하루를 유숙할 방은 작은 방에 형광등이 켜 있었으며 우리를 위해 제공된 이불은 세탁을 한지 꽤나 오래 돼 얼룩졌으며 냄새가 났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공비가 김포반도에 출몰했으며 경찰병력이 총출동하여 잡으려고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오빠는 걱정 말고 정숙아 너나 따스하게 이불 속에 들어가 있거라. 나는 그냥 옆에서 너를 지켜주마." "오빠...." 나는 감격했다. "아, 그리고 정숙아, 나, 먼저 미국에 가서 너를 기다릴거야. 네가 올 때까지..." "오빠!" 나는 눈물이 날만큼 감격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내 곁에서 나를 지켜 준다고 했던 정식 오빠는 마침내 내가 누운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나를 안아주었다. 사실, 나는 그가 이불 속으로 어서 들어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내 몸처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미국으로 먼저 떠나가는 사랑하는 님을 보내기 위해 마련된 밤이라고 생각을 했다.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서울로 가는 뻐스가 운행을 재개했으며 무장공비는 김포근처에서 사살 됐다고 하는 뉴스를 들으며 우리는 서울로 되돌아가는 뻐스에 올랐다.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행복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반반이었다. 오빠의 어깨에 기댄채 눈을 감기도 했으며 그의 손을 꼭 잡기도 했다. "우리, 결혼하는 거죠? 약속 지키죠?" "물론이지.....배신은 없어....." 4. 학교 선배와 싸워야 하는 삼각관계(三角關係)이기에 나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화도를 다녀온 후 나는 오빠를 완전히 독점하였으며 결혼은 당연하다고 자신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정식과 선배 최진선이 공공연하게 만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 유학관계로 만나 정보를 교환 한 것 뿐이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웬지 정식 씨는 나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듯했다. "그럼, 왜 나를 피하는 거요?" "피하다니, 우리는 결혼할 사인데...." 그는 당연히 결혼 할 사이니 당분간은 남모르게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며 다른 사람 앞에서 너무 대 놓고 아는 체하면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으니 피차 조심하자고 말했을 때 나는 안심을 하였다. 예정대로 3개월 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 3년간 공부하고 돌아오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 1년차가 되었을 테니 그때 마음 놓고 결혼을 하자고 제의를 했다. 그렇다면 부모님들 앞에서 약혼이라도 하고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제안하자 그는 흔쾌히 찬성했을 때 나는 깊은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 그리고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약혼식 준비를 논의하기 위해 광화문 사거리, 종각 뒤에 있는 금란 다방(金蘭 茶房)에서 저녁 8시에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야속하게도 가랑비와 진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8시전에 다방에 도착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15분이 지났다. 다방에서는 청년들을 위해 클래식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30분, 그리고 45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질 않았다. 창 문밖으로 뵈는 길거리에는 점점 더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가끔 강한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히는 모습도 보였다. 처음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화가 났으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젠 걱정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1시간이 지났으나 그는 오질 않았으며 시내버스는 비를 길가로 뿌리며 엉기정엉기정 오고가고 있었다. 방 10시가 되었으니 어느새 2시간을 기다린 셈이었다. 담배 연기 자욱한 다방에서 밖을 바라다보며 마음 조리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다방 안은 담배 연기가 자욱해 숨을 쉬기도 힘들었으며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남학생들이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가하면 내 옆자리로 와 나와 얘기를 하려고 수작을 버렸다. 다방 레지가 다시 찾아와 옆 차를 한잔 더 따라주면서 동정의 눈으로 바라다보고 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저녁을 굶었으며 진한 커피를 두잔 마신 것이 오히려 텅 빈 위벽을 자극했는지 점차 쓰리기 시작했다. "학생? 10시 반이 됐어." 언니같은 레지가 시간을 알려주었을 때 눈물이 펑펑 솟고 있었다. "조금 더 있으면 안 되나요?" "11시에 문을 닫으니까, 나갈 준비를 해주세요. 학생." "........" 나는 다방 밖으로 나왔다. 언제 그랬는지 비는 멈추었으며 11시가 넘어 뻐스도 띄엄띄엄 다니고 있었다. 비가 온 후의 하늘에는 밝은 별들이 선명했으며 밤공기가 무척 차가워지고 있었다. '오빠는 올거다. 반드시.' 나는 하늘을 바라다보며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나는 그를 믿었다. 11시 반, 경찰들이 밤거리를 다니며 취객을 단속하고 있었다. 12시가 되면 통행금지가 된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어디에 가서 자야 할지 아득했다. 그 순간, 다방을 향해 급히 뛰어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정숙아! 미안해..."비를 흠뻑 맞고 들어 온 사람은 바로 박정식 오빠였다. "아, 오빠!" 나는 너무나 기뻐 그의 팔에 매달렸으나 너무나 피곤하고 허기져 땅바닥에 쓸어지고 말았다. "정숙아? 정신차려!" "......." 나는 마침내 혼미함에서 깨어나 오빠의 어깨에 기대어 가까스레 내몸을 지탱할 수가 있었다. 어찌해서 이렇게 늦었는지는 모르나 그가 와 준 것이 내게는 행복했다. 오빠는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들쳐 엎고 서린동에 있는 누추한 여인숙으로 갈 때, 나는 이 세상 어디라도 그가 가는 곳을 아무 말 없이 무조건 따라가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누추한 서린동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은 얼마 전 강화도에서의 그 하루 밤의 연속이요 대답이었다. 사랑을 확인하고 다짐한 또 다른 밤이었다. 5. 안식처 양로원을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 와보니 박정식 씨 곁에서 침대에 머리를 대고 잠을 자고 있는 최진선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껄끄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나는 그녀를 무시한 채 "정식 씨, 내가 왔어요."라고 큰 소리로 식물인간에게 인사를 했더니 졸고 있던 그녀가 눈을 뜨고 나를 알아보고 당황해 하였다. "정숙이로군...." 그녀는 후배라고 반말을 했다. "........."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것 봐, 정숙 씨, 이왕 여기 왔으니, 여기 의자에 앉아 정식 씨를 간호하시지. 산소마스크도 닦고 영양 튜브도 청소를 하고, 정식 씨를 정말 사랑한다면 말야. 나 잠간 볼 일이 있으니, 부탁한다. 아, 그러고, 뇌졸 증으로 인해 식물인간이 됐으니 정숙아 이젠 네가 차지 하거라. 너, 갖고 싶어 했잖아." 그녀는 나를 의식했는지 병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식물인간이 됐으니 내가 갖으라. 대소변 치우기도 싫은 참에. 생각해 보니 10년 전에 산디애고에서 그녀가 내게 던진 말이었는데 그 농담 같았던 말이 이제 현실로 된 셈이었다. '그래, 최진선, 뇌졸 증도 좋고 식물인간이라도 좋다. 나는 배신하지 않아.' 나는 마침내 박정식을 독점할 수가 있었다. -(박정식! 내 남편이요! 그이는 나를 사랑한다.)라는 환청(幻聽)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지난 30년동안 나는 망상의 말(幻聽)이나 허상(幻像)을 본 일이 없었는데 오늘 다시 그 증상이 재발한 듯 했다. 그러나 이젠 어느 누구도 나를 불러 정신분렬증 환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문득 박정식 씨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던 때가 생각났다. -강화도를 다녀온 후 그리고 광화문 근처 서린동 여인숙에서 한 밤을 보낸 그때.... 예정대로 약혼식은 갖지 못했으나 나와 박정식은 중국집에서 값비싼 음식을 먹으면서 단 둘만의 약혼식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뉴욕에 가서 정착하는 대로 기숙사로 편지를 보낸다고 궂게 약속을 하고 떠났는데 그로부터 편지가 오질 않았다. 기숙사 편지함에도 가 보았으니 내게 온 편지는 없었다. 초조했으며 마음이 아프다 못해 우울해지고 있었다. 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다. 외로웠으며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박정식의 모습을 환상(幻想)으로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환청(幻聽)을 듣게 되었으나 나는 내가 너무나 그를 기다리기에 생기는 그리움이라고 생각을 했다. * 2학년 과정을 다 마치게 된 무렵, 나는 선배 최진선을 만난 일이 있었다. 뜻밖의 말을 하였을 때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정숙아? 나, 다음 달에 미국, 뉴욕으로 유학 가. 그이 곁으로..." 선배는 큰 소리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이? 그이라니요? " 나는 놀라서 물었다. "아, 정숙아? 몰라서 묻는거니? 박정식 씨 말이지." "예?" "가서 같이 공부하고, 그리고 결혼을 할 예정이지." 나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질 것 같았으나 이를 꽉 물고 버티었다. '아냐! 아냐! 그는 배신하지 않아. 나에게 올거야. 내가 놓지 않아...' 나는 기숙사로 돌아오면서 그를 내 곁에서 놓친다는 것을 상상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에게 보낸 편지는 어찌 됐는지? 주소가 틀렸는지? 그리고 그에게서 정말 편지가 없었는지? 그후 3개월 후 최진선 선배는 정말로 뉴욕으로 유학을 갔으며 그녀의 주소도 역시 후러싱이었다. 대학 3학년 때 나는 가끔 내 귀에서 들리는 환청(幻聽)과 눈에 뵈는 환상(幻想)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으나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두 차례 약물을 과다 복용하여 기숙사에서 쓸어져 일어나지 못해 응급실로 실려간 일이 발생하자 마침내 학교에서 나를 불러 조사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음악과 김정숙은 실연을 당해 우울증 환자가 됐대. 그리고 조금 미쳤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실력이 워낙 탁월하다보니 무난히 4학년으로 진급을 하였다. 4학년, 봄. 6월 실록이 우거지는 계절... 박정식 씨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지 어느듯 2년 반, 최진선 씨마저 훌쩍 미국으로 간지 어느새 일 년이 되었으나 나는 박정식 씨로부터 한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기에 심신이 쇠약해 질대로 쇠약했다.. 대구에 계시는 부모님의 말대로 착실하게 공부한 후 대구로 내려와 취직을 하든지 결혼을 해 잘 살라고 하신 충고가 고마웠다. 최진선 선배와 박정식 씨가 뉴욕에서 약혼을 했으며 곧 결혼을 한다고 하는 소문이 나돌았다. 설마설마 했는데 내 친구에게 날라 온 청첩장을 보니 분명 나와 결혼을 하겠다고 약혼까지 했던 박정식 씨가 삼각관계의 선배와 뉴욕에 있는 고풍스러운 미국 장로교회에서 이미 결혼식을 치룬지 2주가 되었음을 알게 됐다. "아니? 이럴 수가?" 기숙사로 돌아 온 나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잠을 자기도 힘들었다. 방안의 물건들이 빙빙 돌기 시작했으며 귀에서는 박정식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뿐만 아니라, 눈앞에는 박정식과 최진선이 팔장을 끼고 결혼식장으로 행진해 가며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정숙아? 나, 너를 사랑해. 우린 결혼하는 거야. 네가 졸업하고 나면..." 분명, 박정식의 달콤한 목소리였다. 그뿐인가, 내 눈에 선명하게 뵈는 것은 전등사와 여관방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의 모습이었다. "아-" 나는 신음 소리를 내다가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눈을 뜬 것은 세브란스 병원 정신과 병실에서 였다. 흰 가운을 단정하게 입고 은빛 나는 청진기를 목에 걸은 잘 생긴 남자 의사가 내게 닥아와 질문을 하였다. "정숙 씨? S.여대를 다니고 있군요? 졸업반?" "............" "언제부터 귓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지요? 남자? 아니면 여자 목소리?" "......................." "언제부터 이상한 물체가 보였나요?" "............................." 젊은 의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힘든 모양이군? 더 푹 쉬고 난후 다시 오겠습니다." 흰 가운을 입고 아주 잘 생긴 젊은 의사가 진찰을 끝내고 나간 후 이번에는 조금 나이가 든 간호원이 내게 물병을 갖다 주었다. 흘끝 간호원이 가지고 온 챠트를 보니, 환자 김정숙, 21세. 정신분렬증 망상형(Schizophrenia Paranoid Type)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정신분렬증 환자라고? 무슨 소리. 나는 단지 정식 씨를 사랑하는 집착일 뿐...." 그러나 정신과 의사와 간호원들에게는 단지 정신 나간 정신병 환자일 뿐, 정상인이 아니란 말이다. 다음 날 대구에서 아버지가 허겁지겁 올라왔으며 서둘러서 퇴원시켰다. "아니? 이것보소. 멀정한 가시내를 정신병동에 입원시키면 이 가시나의 앞날이 어찌 되겠소. 정신병자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소. 비록 정신과 문제라고 해도 신중하게 처리해야지. 곧 퇴원시켜주소. 대구로 가서 동산병원에 입원 시킬테니까..."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앞날, 즉 결혼에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정신병이었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이었다. 정식씨로부터 받은 배신감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으로 차라리 죽으려고 한 것도 몇 차례 되었듯이 정신병이 아니라 배신과 의리에 관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정식 씨를 놓친 내 인생, 의미가 없어 죽고 싶을 뿐이었다. "정신 차려, 이년아! 서울 가서 공부하라고 했지, 연애질 하라고 했니? 집에서 몇 개월 푹 쉬고 학교에 다시가거라. 일단 여름방학이 됐으니....." 나는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대구로 내려와 동산병원 외래를 오고 가며 치료를 한 결과 여름방학 동안에 정상으로 회복이 되었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마지못해 공부를 해 졸업을 하였다. 워낙 피아노 연주가 탁월 했기에 교수들이 많이 참작을 해 주었다고 했다. 5. 졸업 후 대구 근교에 있는 변두리 중학교 음악 선생으로 취직이 되었다.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던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변두리 중학교에서 일개 음악 선생으로 피아노 연주를 아주 훌륭하게 하자 많은 선생들이 깜짝 놀랐으며 오히려 실력발휘를 하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워해 주었으며 오히려 사랑해 주었다. 수소문해 가까스레 알아낸 박정식 씨의 주소는 엉뚱하게도 미국 뉴저지주 잉글우드(350 Engle St. Englewood N.J)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 박정식 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당신을 기다리고 기다렸으며 수많은 편지를 보냈는데 어찌 답장도 없이 나를 배신했는가라는 질책과 아직도 기다리며 사랑하고 있다는 애절한 부탁을 곁 드렸다.- 얼마 후 두통의 편지가 내게 도착했는데 첫 번째 편지는 생각도 하기 싫은 선배 최진선으로부터였다. '잘살고 있는 우리 집으로 다시는 편지를 보내지 말라. 너는 가정파괴범이다'라는 편지였다. "뭐라고? 가정 파괴범? 나의 사랑을 가로채간 나쁜 년이...."나는 이를 갈았다. -또 하나의 편지를 받고 나는 땅을 치며 울고 말았다. 박정식 씨의 편지였다. 뉴욕에 가자마자 편지를 보냈으며 수시로 편지를 보냈는데 받지 못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보낸 편지도 받질 못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최진선이 내가 보낸 편지와 그가 보낸 편지를 미리 가로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선배 최진선은 계획적으로 내가 보낸 편지와 내게 오는 편지를 중간에 가로채기도 했으며 중간에 훔쳐 버리기도 했다는 사실이었다. 남의 편지를 훔치고 가로채고, 그리고 애인마저 가로채 결혼한 최진선이야 말로 정신병 환자요, 반사회적인 범죄자가 아니던가..... 나는 분하여 울고 또 울었으나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단지 사랑에 대한 집착과 집념이요, 배신과 의리에 의한 감정의 대응일 뿐이다. 아니, 남을 기만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한 최진선이야 말로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 나는 한 번의 사랑을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라고 결론을 짓고 정상인의 생활로 돌아갔다. * 변두리 중학교에서 물리(物理)를 가르치는 정준성 선생이 나를 좋아하였는데 나도 그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이 늦도록 결혼도 못하고 변두리 중학교에서 특별한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그의 모습에서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다. 나 역시 무기력하며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생의 패배자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부터 나는 나 자신을 밑바닥, 삼류 인생으로 스스로 강등하고 살았다. 혹시라도 내가 정신병원에서 치료 받은 사실을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봐 무척 경계를 하며 살아왔다. 정준성 선생은 나보다 무려 12살이 더 많은 띠 동갑이요, 키는 작달막하였으며 친척도 없이 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가 가장 좋아 하는 것은 방과 후 집에 들어 박혀 술을 조금씩 마시며 책을 보는 거라고 했다. 그는 내가 정신병원에 있었던 것을 전혀 알지도 못하며 관심도 없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다음해, 노총각, 정준성 선생과 결혼을 했을 때, 나의 부모님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결혼 초, 나는 남편을 볼 때마다 박정식 씨와 혼동하였다. 더욱이 그가 나를 안아 줄 때도 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였다. 아니, 오히려 강화도와 서린동에서 보낸 밤을 생각하곤 했다. 결국, 내게 있어 결혼이란 또 다른 교도소의 감방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생활의 절반은 미국에 간 박정식을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절반은 그를 잊는 것이었으니까.... 사랑도 없는 결혼이었다. 사랑보다는 동정심을 갖고 살다보니 아들과 딸을 낳았다. 그리고 애들을 위해 많은 교육의 투자도 했다. 내 나이 42세, 남편의 나이 54세 되던 해, 우리는 더 좋은 삶을 위해 미국, 칼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교장으로 승급이 되지 않고 후배에게 밀려 자동적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보니 창피하게 한국에 남아 있기보다 새로운 세상에 가서 한번 살다 죽고 싶다는 남편의 의견에 따른 결과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리 부부는 인공 심장 판막을 만드는 회사(공장)에 취직을 하였기에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자, 나는 수소문을 해 박정식 씨의 거주지를 알아내었다.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휴스톤, 나사(NASA)에서 근무를 하다가 현재는 산디애고에서 은퇴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생활 18년, 아저씨같은 남편이 72세의 나이로 죽자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임자(남편) 있는 유부녀라는 굴레에서 벋어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 것이 내게는 마치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와 자유의 몸이 된 기분이었다. * 산디애고에 살고 있는 옛 애인, 박정식과 최진선의 집을 찾은 것이 내 나이 62살 때 였다. 내가 박정식 씨의 집을 찾아 갔을 때, 그들은 놀래 기겁을 하는 눈치였다. 특별히 최진선 선배는 악을 쓰면서 내게 소리쳤다. "그래, 그이가 식물인간이라도 된다면 네가 찾이 하거라. 똥오줌도 가려주고. 알겠니? 이 가정 파괴범아!" "가정 파괴범이라고요?" "그래. 너는 정신병자에, 가정 파괴범이야!" 그녀는 아주 당당하게 대답을 했으나 나의 대답은 그녀와 반대였다. 내가 보낸 서신을 도둑질해 버린 여자,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나에게 해를 낀친 여자, 그리고 남의 사랑하는 남자를 훔쳐간 여자. "최진선 너야 말로 진짜 정신병자야." 7. 내가 안식처 양로원을 찾아 와 박정식 씨를 만나는 것과 반비례해서 최진선 씨는 양로원에서 밖으로 나도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박정식 씨는 뇌출혈이 심해 사경을 헤매다가 가까스레 생명을 건졌는데, 정작 부인은 남편을 여기 양로원에 입원만 시켰지 간호는 하지 않고 남편이 죽기만을 바라고 있는 듯 하다고 말을 했다. 식물인간이 된 박정식 씨의 주치의사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고 그의 부인이 원하는 대로 소극적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다시 건강을 찾기가 힘들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박정식 씨를 위해 거의 매일같이 양로병원으로 출퇴근을 하였는데, 최진선 씨는 반대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박정식 씨의 위벽을 뚫고 삽입해 준 튜브 근처를 물로 깨끗이 닦아 주었으며 팔과 다리를 정성'껏 마싸지를 하였다. 그리고 가끔 얼굴을 비벼 주었으며 눈꺼풀을 비집어 눈을 떠 보았다. 간호원이 하라고 알려준 물리치료를 열심히 해 보았다. "식물인간도 가끔은 의식을 회복하는 기적이 생긴답니다." 간호원이 내게 격려를 하면서 들려준 말이 내 귀에서 맴돌았다. 오랜만에 최진선 씨가 병실에 나타나 나에게 환자의 상황을 알려 달라고 했다. "아- 박정식 씨는 현재 물리 재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곧 회복이 될 것 같습니다."나는 긍정적인 대답을 하였다. "회복이 된다구요? 천만에...그렇게 된다면 기적이지...." "기적을 바랍니다. 나는....." "정신분렬증 환자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 "정신병자는 그런 기적을 믿습니다." "기적이 생기면 정숙 씨가 그이를 찾이 하소. 평생의 소원이라니까...게다가 남편도 죽었으니 , 잘 됐구먼." "감사합니다."나는 환자가 회복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내 평생 망상 속에서 기대해 온 그이를 차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최진선 씨는 이 말을 한 후 "부탁해."라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 "정신분렬증이라니요? 최진선 씨는 요즘 남편 간호를 포기한 듯합니다. 내가 보기엔 최진선 씨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듯 하군요." 곁에서 우리말을 엿들었던 간호원이 오히려 내게 얘기를 걸어 왔다. "식물인간이 되면 나더러 환자를 차지해도 된다고 했지요... 분명히 들으셨지요?" "무슨 말씀을? 환자를 차지한다니.... 물건을 주고받는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정신병자들의 세계에서는 사람도 물건처럼 주고받습니다." "예? 무슨 말들을 하는 건지...." 간호원은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병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내가 세브란스 병원 정신과에 입원 중일 때 어느 의사가 말해 주었었다. "정신병과 정상사람은 종이 한 장 차이 일뿐이요......" 그렇다면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최진선 씨와 정신병자라고 말한 나와의 사이는 역시 종이 한 장 차이일 뿐..... * 정신병과 신경병은 전혀 별개라고 했다. 뇌졸증, 뇌출혈로 인해 혼수에 빠져 식물인간이 된 신경과 환자들 중에 한 달, 두 달, 아니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손을 움직이고 말을 하는 기적 같은 회복이 있다고 했다. 나는 이 기적을 믿고 매일같이 양로병원으로 와 물리치료를 돕고 아울러 간호를 정성껏 했다. 사람들이 나를 불러 정신분렬증 망상형이라고 불러도 좋다. 단지 뇌출혈로 뇌 신경세포가 손상된 박정식 씨가 어느 날, 눈을 뜨고 일어나 나를 꼭 안아 준다면 나는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양로원으로 차를 몰고 찾아 왔다. 내일도..... 내 귓속에서 어느 날, '환자가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기를 바랄 뿐.' 그리고 내 눈에는 어느 날, '환자의 손이 움직이며 두 발로 일어나 서있는 모습을 보는 환각' 증세가 나타나기를 바랄 뿐...... * 한 달 후, "김정숙 씨! 당신의 정성과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가보군요. 어제 밤, 당신이 집으로 가고 난 후부터 환자의 손이 움직이며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나봅니다." 간호원이 내게 전화를 걸어 주었다. "예? 기적이?" 정신분렬증 환자의 망상, 그리고 그 기도가 현실로 나타난 것인가? 내게는 아무런 소리도 물체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기쁜 마음으로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캄캄한 밤에 급히 양로원으로 차를 몰고 달려 왔다. "보세요. 정숙 씨! 여기 손바닥을 꼭꼭 찔러주시면 양쪽 손을 다 움직인답니다." 간호원이 말한 대로 나는 그의 손바닥을 꼭꼭 찔러주었다. 내가 물리치료를 할 때마다 꼭.꼭.꼭 눌러주면서, 마음속으로 "정식 씨, 부디 움직여 봐요!"라고 기도를 했었는데 그에 대한 반응 같았다. "눈을 살살 비벼보세요. 그럼 눈을 뜰겝니다." 역시 내가 그의 눈을 비벼주면서 기도한 그대로 그는 눈을 비벼주니 눈을 뜨고 멍하니 무엇인가를 보는 듯했다. "정식 씨? 나요. 나, 정숙이....나 보여요? 보이면 손을 움직여 봐요." 아 놀랍게도 그는 양손을 움직였다. "환자가 반응을 하는군요! 기적입니다. 기적......"간호원도 반가워 내손을 꼭 잡았다. "정말 뇌가 다시 살아나는 가 봅니다. 신경과 의사를 하다보면 가끔 이런 기적 같은 회복을 봅니다마는..분명......우선 호흡기부터 떼도 좋을 듯하군요." 환자의 상태는 진전과 답보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그는 다리도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호흡도 스스로 하게 되면서 마침내 성대에서 나오는 의미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분명 환자는 다시 소생하고 있습니다." 며칠 후 신경과의사는 내게 이 말을 한 후 내일 뇌 정밀 사진을 다시 찍어보렵니다. 라고 말한 후 병실을 나갔다. * 뇌 사진은 찍어 보나마나 분명 정상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내가 망상병에서 벗어난 것처럼 그도 신경병에서 벗어나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믿은 것처럼 그도 나를 믿어 줬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 왔으니까... 장편 소설. 망상의 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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