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샤이엔의 언덕 파트 3

2012.01.22 15:41

연규호 조회 수:456 추천:28

7. 두 어머니(Two Mothers)의 아들. 영웅적인 인디안 전사 불랙 이글의 손자로 자랑스럽게 살아 왔던 나는 알코홀 중독자인 아버지의 입을 통해 정통 인디안이 아님을 알게 되었는데 큰 충격이요 내 운명을 통채 바꿔 준 사건이 되었다. - “제임스야! 너의 친 어머니는 인디안이 아니고 한국여인이었다. 내가 20살 되던 해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거기서 만나 결혼을 했는데 불행하게도 너의 어머니는 와이오밍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어. 너의 할아버지는 내가 인디안 여성과 결혼을 하지 않고 엉뚱하게 한국여성과 결혼을 한 것이 못 마땅해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음은 물론 아버지와 아들의 의를 끊어 버렸어. 그러다가 너의 어머니가 죽자 할아버지는 거의 강제로 인디안 여성과 결혼을 시켰지. 왜냐구? 너도 알다시피 인디안은 다른 종족과 결혼을 하면 순수 인디안이 아니기에 인디안 사회로부터 축출되며 죽은 후에도 와콘다 신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지. 그래서 할아버지는 이 사실을 일체 비밀로 하여 숨겼으며 손자인 너에게도 아주 철저히 숨겼기에 너는 인디안 어머니를 생모(生母)로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어. 그래서 너의 어린 시절의 사진도 깡그리 없애 버렸고 너의 기억도 모두 없애버렸어. 한국사람과 결혼해 태어난 혼혈아가 너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너는 인디안 사회에서 축출 될 뿐만 아니라 의사일도 못하게 되지. 그리고 너와 결혼한 너의 아내도 더 이상 순수 인디안이 아닌 거야. 그러면 너는 당장 이혼을 당할 수도 있는거야. 거짓말을 했으니까. 그러니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비밀로 해다구. 제임스야! 누구에게도, 설령 너의 아내에게도....” “예? 아버지!” 나는 너무나도 놀래 ‘예?’ 소리를 낼 뿐이었다.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기에 나는 더 이상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었다. “아버지, 여기에 있는 이 여성이 나의 어머니라고요? 농담이죠? 아버지?” “..........”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고 술만 마실 뿐 좀체로 입을 열려고 하질 않았다. “댐! 댐! 댐!” 나는 아버지를 외면하면서 큰 소리를 쳤으나 카페에서 울려 퍼지는 칸튜리 음악에 묻혀 버렸다. 나도 아버지가 하듯이 맥주를 벌컥 벌컥 마셔버렸다. “제임스? 너의 어머니는 예쁘고 착한 사람이었어......” 이 한마디를 남기고 아버지는 혼자서 자리를 뜨고 말았다. “아버지!” 나는 사라지는 아버지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대로 카페에 앉아 탁자 위에 놓고 나간 그 사진을 다시 한번 드려다 보았다. 가냘프나 온순해 보이는 한국 여성이었다. 수줍은 듯이 웃고 있는 모습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바라다 보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진 속에 있는 이 여인이 나의 어머니라고 하니 지난 40년간 나는 철저히 나의 과거를 도둑맞고 살았단 말인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허망했다. 여기 몬태나에 살고 있는 나의 어머니(인디안)를 나는 얼마나 사랑했는데, 그리고 내 여동생도 나는 친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는데.... 나의 친어머니가 아니라니.... 나의 생모가 죽은 후 아버지와 재혼한 계모(繼母)라니...... 40년의 세월이 하루 사이에 이토록 겉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바뀌다니......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아버지가 괜히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한국전쟁에 가서 장난 삼아 친했던 여인이었겠지...결혼은 무슨 결혼? 게으르니 술이나 마시면서 살아온 주제에. 한국? 한국이란 나라와 이 여성이 나의 아버지를 알콜 중독자로 만든 거야! 이 여성이! 이 여성!’ 나는 아버지를 이 꼴로 만든 한국과 사진 속의 한국 여성을 저주하였다. ‘한국? 한국 사람! 꼴도 보기 싫다. 댐! 갓 댐!’ 나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카페에 있던 백인들과 여성들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댐----댐------갓 댐---------’ 나는 마침내 울고 말았다. * 밤 늦게 인디안 어머니 집으로 돌아와 어떻게 밤잠을 잣는지 나는 기억에 나질 않았다. 아마도 술에 취해 실려 왔는지도 모른다. 내 평생에 이토록 곤드래 만드래 술을 마셔 보기는 처음이었다. * 다음날 아침 늦게 일어난 나는 어머니(인디안)가 준비해 준 커피, 계란, 팬케이크 그리고 찐 감자를 억지로 먹고 작별을 한 후 몬태나를 떠나 다코타의 내 집으로 돌아 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갑작스레 알게 된 나의 치명적인 비밀이 나의 가슴을 짖누르고 있었기에 돌아오는 길이 멀고 힘들었다. 아버지가 준 그 사진 속의 한국 여인, 아니 나의 생모(生母)라는 여자의 웃고 있는 모습이 나의 눈앞에서 어른거렸기에 운전하기가 힘들었다. ‘죽었다니? 왜?’ 갑작스레 질문이 쏫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웬지 불길한 예감도 들었으나 나의 아버지가 이 여인으로 인해 술이나 마시며 마약을 한 것으로 보아 미운 생각도 솟아 났다. 다코타의 집으로 돌아 오는 동안 나는 몇차례 교통사고를 낼 번 했다. 아찔했었다. 언덕길과 벼랑길에서 나는 몇차례 굴러 떨어 질 수도 있었다. 마침내 이글뷰트의 집으로 돌아 온 후, 나는 몇 차례 이 사진을 들여다 보며 사진속의 어머니를 원망해 보았다. ‘차라리, 이 사진들을 없애버릴까? 찢어버릴까?’ 그러나 웬 일일까? 나는 이 두장 사진을 과감하게 찢어버리지 못하는 내 마음이 야속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몹시 미웠으나 나는 아버지가 헛소리를 한 것으로 결론을 짓고 사진을 책상 깊숙히 챙겨 넣고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로 작정하였다. “내 어머니는 인디안 어머니뿐....이 사진 속의 여자? 잊어버리자! 잊어버려!” 나는 철저히 잊기로 했다. * 그리고 살아 온 것이 어느덧 5년이나 되었으며 내 나이도 45살이 되었다. 물론 나의 아내, 실비아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슴 깊숙이 묻어 버리고 살아 왔으며 따지고 보면 나는 기억에서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몬타나에 사는 어머니(인디안)를 더 사랑하게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내게는 또 다른 어머니(한국인)가 있었다라는 생각이 불쑥 불쑥 떠오른 적도 있었다. -몬태나의 어머니(인디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 건강하시죠? 어머니 사랑합니다.” 나는 오늘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안부를 물었다. “그래, 제임스야, 나도.” 인디안 어머니가 전화 속에서 대답을 하였다.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어머니(한국인)가 “제임스야, 나도!”라고 대답을 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 나는 큰 소리로 물었다. “왜그러니? 제임스야, 갑작스레....” 인디안 어머니가 놀라서 물었다. “아, 예. 미안합니다. 어머니!” 나는 이번에는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을 했다. “어머니 어머니-----” 나에게는 두 분의 어머니가 있었다. 나를 길러 준 인디안 어머니 그리고 나를 낳아준 한국인 어머니..... * 출생의 비밀: 이것이 나의 숨겨진 비밀이었다. 미세스 서의 얼굴을 통해 나는 책상 서랍 깊숙히 숨겨두고 잊었던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나의 생모였음을 5년만에 알게 되었다. 인간은 비밀을 가슴에 깊이 묻고 살면 병이 난다고 한다. 그러기에 누군가에게 털어 놓아야 후련하다고 했는데 나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셈이었다. 콩나물이 삐죽 그 머리를 드러 내고 자라듯이 지난 5년간 나는 아버지가 주었던 그 사진이 삐죽거리며 솟아나온 셈인데 한 가지 더 강한 의문이 있었다. 사진 뒷편에 무슨 글자가 써 있었는데 한국 글자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단정을 지었으나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고 덮어 두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웬지 사진 뒷면에 써 있는 그 글자들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으며 그 글자를 통해 죽은 한국인 어머니의 비밀을 알아 낼 것 같았다. ‘그렇다면 서 약사를, 아니 그의 부인을 만나 물어보자!’ 남자에게 물어 보기보다 입이 무거워 뵈는 미세스 서가 더 적합해 보였다. 나는 여러 차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드디어 기회를 포착하였다. 나는 어느 날 오후, 아내 실비아를 따 돌리고 피에르로 가 칼리포니아 한국 봉사 단원들이 머물고 있는 아파트를 찾아갔다. 뜻밖에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나를 보고 서 약사와 그의 부인은 몹시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인디안 의사로 별로 아쉬울 것도 없으며 의식적으로 그들을 피해 온 나를 경계하는 표정과 반가운 표정이 서로 어울려 기묘한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아파트는 정말 빈약하여 책상 하나 놓기도 좁은 듯 했으나 저녁을 먹은 후 삥 둘러 앉자 성경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인디안 전통의 따슷하고 구수한 옥수수 차를 한 잔 마신 후 마침내 갖고 온 그 문제의 사진 두 장을 서 약사와 부인에게 보여주며 사진 뒤에 써 있는 글자를 읽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오래되어 색이 바랜 사진을 받아든 서 약사 부부는 흠칫 놀라는 듯이 그리고 흥미로운 듯이 유심히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와! 오래된 사진이군요? 빛이 많이 바랬군요. 그런데 이 사진에 있는 여인은 일본 사람, 아니 한국 사람 같아 보이는데 자세이 보니 꼭 아내의 처녀때 사진같군요.” 서 약사가 사진을 본 소감을 먼저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미세스 서의 처녀때 사진 같다고요?” 나는 미세스 서를 바라 보면서 동의를 구하듯이 물었다. “가냘프고... 예쁘군요. 사실 나도 처녀 때는 이 여성처럼 몹시 가냘펐지요.” 서 약사의 아내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마치 본인의 처녀 시절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예쁘군요, 한국 여성”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하였다. * “닥터 와이트도브? 이 사진은 꽤나 오랜 사진이군요. 뒷면에는 한글로 (경상북도 칠곡군 진덕면 구서리 27번지, 김성숙, 金聖淑)이라고 쓰여 있는데 김성숙이란 여자분과 같이 사진속에 있는 이 남자는 누구인가요?” “아- 나의 외조부랍니다.” “예? 의사 선생님의 외조부라고요? 한국 사람인데?” “예. 그리고 여긴 나의 어머니고 여긴 나의 외 할머니랍니다.” “닥터.와이트도브? 그래서 자꾸 제 아내를 보고 어디서 보았다고 했군요? 그러고 보니 내 아내와 얼굴이 아주 비슷하군요. 그런 것을 모르고 나는 오해를 했었군요. 닥터.와이트도브가 나의 아내를 자꾸 훔쳐보곤 했는데, 이젠 알 것 같습니다.” “서 약사님? 그동안 미안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여자분의 이름이 김-성-숙-이고 그 밑에 쓴 글은 주소로군요? 한국의 어디쯤 됩니까?” “아-한국의 남쪽 지방의 한 시골이군요. 그리고 여자분은 시골 여자 같습니다.” 결국 나는 나의 치명적인 비밀의 일부를 엉뚱하게도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한국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김성숙, 김성숙! 경상도?’ 나는 김성숙을 반복하다보니 생각보다 슆게 발음이 되었다. 한국 사람 생모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금까지 갖고 있던 한국 사람에 대한 편견이 사르르 녹아 내리고 있는 듯함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멸시하고 저주했던 나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도 바뀌면서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랑하던 한국인 아내가 죽자 그는 모든 것이 우울했으며 인디안 여성과 강제로 결혼하면서 인생이 허무했음을 느꼈는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아버지가 갑작스레 불쌍해 보였다.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있었구나...무슨 문제....’ 나는 갑작스레 40여년 전의 어느 날로 되 돌아 가는 느낌이었으며 그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닥터?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나의 모습을 눈여겨 보던 서 약사가 내 행동이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이 됐는지 오히려 궁굼하여 나에게 물었다. “........................” “닥터? 우리가 도와 줄 것이 있는지요?” 이번에는 동정심을 갖고 나에게 도와 주겠다고 말을 하였을 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 “닥터! 우리가 도와줄 것이 있나해서 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조금... 있습니다.” “도와주고 싶군요. 말씀해 보시죠.” “서 약사님. 사실, 나는 과거를 도둑맞고 살아온 인디안입니다.” “예? 도둑맞은 인디안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태어 났는지,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아이디호 주에서 할아버지와 같이 살다가 다코타. 수.훨스에 가서 의사공부를 하였지요. 나는 나의 아버지를 저주하며 살았답니다. 나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에서 돌아 온 후, 마약 중독자로 그리고 알코홀 중독자로 아무렇게나 살아온 상이용사랍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의 용사였으니 우리들의 은인이었군요? 게다가 어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한국인의 피를 받았군요. 우리처럼.와! 반갑습니다. 나와 같은 한국사람의 피가 50%가 되니까요. ” “예? 한국인의 피가? 그것도 50%나?” “그렇다니까요, 50%나....” 나는 순간 이 엄청난 비밀이 서 약사의 입에서 줄줄이 흘러 나오니 난감했으며 엎지러진 물이라고 생각을 하니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내 출생의 비밀이 인디안 사회에 알려 진다면 나는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기에 축출되는 것은 물론 외과 의사의 일도 끝장이 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게다가 아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순수 인디안이라고 속이고 결혼을 했기에 이혼을 당함은 물론 나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서 약사님? 부탁합니다. 제발 누구에게도 이 비밀을 말하지 마시오. 이 비밀이 인디안 사회에 알려지게 되면 나는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기에 가차없이 축출되게 되며 나의 가족도 산산히 흩어 집니다. 제발...” 나는 진심으로 눈물이 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걱정마십시오. 그럴 수록 닥터. 와이트도브, 성경을 한번 읽어 보십시오. 그 속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니까요. 성경은 당신의 길잡이가 될 것이며 미움과 비밀에서 자유로워 질 것입니다.” “성경을?” “예. 그렇습니다.” 나는 서 약사의 위로가 뜻밖에도 나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서 약사의 아파트에서 나왔다. 밖은 캄캄한 밤이었으며 멀리 하늘에 있는 별들은 더더욱 반짝이고 있었고 멀리 불랙힐스의 산 꼭대기에 있는 어느 별이 마치 죽은 나의 어머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한국 어머니!’ 나는 멀리 별을 바라다 보며 조용히 불러 보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나는 어머니가 ‘샤이엔(Sheyenne)’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40 여년 간 잊고 살아왔던 나의 어머니를 오늘 처음으로 찾은 감격스러운 밤이었기에 추운 피에르(Pierre)에서 이글뷰트(Eagle Bute)로 오는 길이 결코 외롭지 않았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처음으로 나를 낳아 준 어머니(한국사람)를 불러 보고 또 불러 보았다. * 나의 어머니, 샤이엔: 이글뷰트의 집으로 돌아 온 나는 한동안 서재에서 아내 몰래 어머니(한국인)의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사진 속의 여인이 ‘제임스야? 나는 너의 어머니이다. 네가 세 살되던 해에 너와 나는 이 세상에서 혜어지고 말았어. 그리고 너한테는 일체 비밀로 하였기에 너는 너의 어머니가 인디안 여성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오늘 저녁 진정으로 사진속의 여인을 나의 어머니로 생각하며 불러보고 있었다. 나의 눈 가장자리에 따듯한 눈물이 와이오밍의 강처럼 흐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 눈물은 아름다운 인디안 여성, 샤이엔(Sheyenne)의 눈물이라고 생각되었다. ‘샤이엔? 누가 진정 샤이엔인가?’ 나는 문득 나의 어머니가 샤이엔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 샤이엔(Sheyenne)---- 샤이엔, 나의 어머니(Cheyenne, My Mother)” 나는 나의 어머니의 이름을 샤.이.엔.이라고 불렀다. * “당신, 잠을 안 자고 혼자서 무얼 하는거에요?” 문득 방문이 살며시 열리면서 아내가 쟁반에 찻 잔을 들고 서재로 들어 왔다. 순수 인디안의 딸이며 오로지 남편만을 믿고 무조건 순종하며 살아온 여성이 바로 나의 아내 실비아였다. “아니? 당신, 노크도 없이....” 나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으며 서둘러서 사진을 서류 속에 감췄는데 아내는 눈치를 채지 못한 듯 했다. “아니? 당신 울고 있잖아?” 아내는 나의 눈가에 얼룩진 눈물을 본 모양이었다. 순간 나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순진하게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싶은 충동이 솟았다. 그러나 만일 내가 나의 비밀을 알려 준다면 그로 인해 야기될 충격이 너무나 클 것이 뻔하기에 밝히지 않기로 했다. “어? 아냐! 잠시 내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다 보니 그만 우울해졌나 보군. 실비아.” “우울하다고?” “그래. 인생은 우울한 거겠지.” “.........” 아내는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아- 실비아? 근래에 나, 성경을 한 번 읽어 보았어. 무슨 말이 써 있나 알고 싶어서...” “성경을?” “그래, 실비아, 당신도 한 번 성경을 읽어 보지 그래, 나하고 같이.......” 나는 무심코 아내에게 엉뚱한 말을 하면서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나 자신도 추스리지 못하고 있었다. “성경을? 여보! 사실 나도 한 번 읽어 보았어. 예배당에도 몇 차례, 백인 친구들과 같이 가 보았어, 여보!” “그래? 어떻던가?” 나는 아내의 뜻밖의 말에 새삼 놀라면서 되물었다. “우리가 믿는 수. 인디안의 신, 와콘다하고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어. 우리가 사는 세계말고 죽어서 가는 세계가 있는데 살아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던군. 그리고 하늘을 경배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敬天愛人)한다고 가르치더군요.“ “그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백인이건 인디안이건 상관없이?” “그렇다니까요. 이웃을 내 몸과 같이....백인이건 인디안이건....상관말고....” “인디안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백인들까지도?” “그렇다니까.....” “그건 안 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인은 안 돼. 우리는 복수를 해야 해! 복수를....” “.......” “백인은 안 돼! 그들은 우리 인디안들을 몰살시키려고 했던 원수들인데..” “여보, 그래도 용서를 해야지요.....” 아내 실비아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봉사단 서 약사도 그렇게 가르치던가, 실비아?” “그래요. 여보, 식기 전에 여기 따뜻한 옥수수 차를 조금 마시고....밤이 너무 늦기 전에 어서 주무세요, 자. 굿 나이트!” 아내는 갖고 들어온 옥수수 차를 내 책상에 얌전하게 올려 놓은 후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아내가 들어올 때 황급히 감추었던 어머니(한국인)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그래, 백인도....한국 사람도.....다 용서하고 사랑해야지.....’ 나는 모처럼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 스스로 인디안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오늘 생각해 보니 남을 용납하지 못하고 나밖에 모르는 편협한 이기주의자였음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아- 나라는 인간? 가면을 쓴 이기주의자였어. 인디안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인종주의자였어. ’ 8. 불랙이글의 가문. (할아버지 전사가 특별히 들려준 유언 ) 그날 저녁 나는 아내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였으나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는데 아내는 코를 골며 남편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 평소에 나는 나의 성장 과정에 대한 의문이 많이 있었는데 오늘 그 비밀을 눈 녹듯이 알아 낼 수가 있었다. -나는 왜, 나의 유년기를 할아버지와 같이 지냈던가?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엇을 했었나? -왜 나의 할아버지는 내가 아버지가 사는 몬태나에 가는 것을 못가게 말리셨던가? -나의 할아버지는 나에게 인디안의 정체 그리고 용맹성을 왜 그토록 강조하며 가르치셨는가? -할아버지는 내가 의사가 된 것을 왜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가?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는 수 인디안의 추장(부족장)의 딸인 실비아와 결혼한 것을 왜, 그토록 좋아 했던가? 이상의 몇 가지 의문에 대한 대답을 오늘 자연스럽게 알아 낼 수가 있었다. * 도리켜 보면, 나는 부모가 일찍 죽은 것으로 알고 자랐기에 나를 길러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생각했었다. 할아버지 집에는 독수리 깃털로 된 모자가 여러 개 있었으며 나무와 뼈로 만들어진 무기들도 있었다. 들소의 뼈를 갈아 만든 활촉도 있었으며 들소 뿔로 된 퉁수도 있었듯이 들소와 독수리로 만든 물건들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포카텔로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할아버지는 늘 인디안에 대한 역사와 전통을 가르쳐 주었으나 백인을 배척하는 과격한 교육은 삼가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 인디안이 잘 되려면 백인들보다 더 공부를 하고 더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말은 자주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불랙이글, 아니 와이트도브의 가문을 이끌어 갈 사람은 바로 제임스 나라고 강조해 주었다. 모든 것이 “하라! 하라!”였을 뿐 나의 의견은 있을 수가 없었다. 포카텔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할아버지는 나를 특별히 남다코타 주의 수. 훨스(Souix Falls)에 있는 다코타 대학으로 유학으로 보내면서 “제임스? 너는 우리 수.인디안의 본고장인 다코타에 가서 공부를 하고 거기서 살거라!”라고 명령 반 간청 반을 하였기에 나는 대학 4년과 의과대학 4년, 그리고 외과 수련 의사로 4년간 도합 12년 간을 다코타에서 살았다. 그후 나는 이글뷰트로 와 외과의사의 일을 하였기에 나는 결국 다코타에서 나의 중요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내가 처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에서 살았을 때 그들의 나이가 50세 초반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그들은 70대 중반을 지난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외과 수련의사 2년차 때 나는 인디안 부족장의 딸 실비아와 연애 끝에 결혼을 하였다. 결혼식은 인디안 전통과 현대문명의 전통을 가미한 결혼식으로 수 훨스에서 거행하였다. 독수리 깃털을 모자에 꽂은 인디안들과 정장을 한 백인 학생, 선생 그리고 친지들이 참석하여 축복을 해 준 인디안과 백인 문명의 조화였다. 들소와 사슴의 뿔 등을 이용한 술잔이 사용되었으며 괴성을 지르는 인디안 전통의 음악도 간간이 들려 주었기에 백인 친구들은 ‘인상 깊은 결혼식’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 -15년전, 내 나이 31살, 결혼을 한지 3개월 후의 일이 기억에 생생하기에 더듬어 보려고 한다.- 할아버지가 특별히 시간을 내어 찾아 와 달라고 요구를 한 적이 있었다. 70대 중반을 넘겨 눈이 흐리며 귀도 잘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는 나와 갖결혼한 손자 며느리 실비아에게 죽기 전에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제임스? 그리고 실비아? 잘 듣거라. 할아버지가 너희에게 꼭 할 말이 있어서 불렀다. 너희는 수. 인디안들이 자랑하는 용맹스러운 불랙이글의 후손이니라! 손자야! 내 말은 우리 가문의 전통을 얘기해 주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니라. 너도 알다시피, 황금과 돈에 눈이 먼 백인들이 성스러운 우리의 영토에 침입을 하기 시작한 것이 1800년 초였느니라. 용맹스러운 우리 수. 인디안들과 백인들은 서로 죽이고 빼앗는 피로 물든 전쟁이 시작되었느니라. 1890년 남다코타주에 있는 ‘상처받은 무릎의 강(Woundeed Knee Creek)에서 우리 수 인디안들은 대패를 하였으며 몰락하고 말았어. 용맹스러운 크레이지 홀스 추장도 결국 잡혀 총살을 당하였으며 나의 할아버지도 전사하였어. 당시 나의 아버지(불랙이글)는 젊은 전사로 추장들을 대신해 빼앗긴 땅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힘이 딸렸어. 1900년, 나의 아버지는 백인에게 체포되어 죽기 전에 수많은 수 인디안들과 전사들이 보는 앞에서 ‘일을 제대로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을 한 후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자결을 하였느니라. 그 때 내 나이 13세였어. 나는 솟구치는 아버지의 붉은 피를 바라다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어. 추장은 죽은 나의 아버지의 용맹을 칭찬하며 13살의 소년인 나에게 ‘전사 불랙이글’이라고 칭호를 내려 주었지. 나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용맹스러운 불랙이글의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였지.“ “할아버지? 자랑스럽군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와이트도브라고 성을 바꾸었지요?” “그래! 고맙다. 제임스야. 그 때 나는 생각을 달리하여 온건파가 되었기에 나는 인디안들로부터 ‘비겁한 배신자’라는 이름으로 추방을 당하게 되었지. 말이 추방이었지, 나의 동료 전사들은 인정사정 없이 구타를 했으며 내 어깨와 등판에 칼을 대어 깊은 상처를 입혔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쓸어져 있는 나를 도와 주려고 하지 않았어. 배신자! 배신자! 꺼져라! 꺼져. 그들은 소리를 치며 나를 끌어 내어 밖에 버렸어. 나는 기절을 한 후 정신을 잃었지. 전사들에 의해 죽지 않고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이었어. 결국 나는 아이다호 주로 이주를 하였고 그 곳에서 감자 농사를 하면서 너의 아버지를 공부 시켰느니라. 포카텔로에서 너의 아버지는 명석한 학생으로 소문이 났었는데,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당한 후, 마약과 알코홀에 중독이 되어 몬태나 주 가디에르로 이주했어. 그리고 나와 인연을 끊었느니라.... 어쨌든 제임스야, 네가 인디안 부족장의 딸과 결혼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너는 우리 용맹스럽고 자랑스러웠던 불랙이글-와이트도브의 가문을 이어주기 바란다. 설령 이 할아버지가 죽더러도, 네가 나의 희망을 이어주기 바란다. 알겠느냐?“ -나는 이렇게 진지하고 당당하게 말을 하는 할아버지를 본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나와 실비아는 감격하여 할아버지 앞에서 “예”라고 대답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는 나의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었으며 몬태나에 사는 인디안 어머니가 나를 낳았다고 거짓말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순수한 인디안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손자에게 철저히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극단적인 두 개의 가치관 속에서 살아온 셈이었다. - ‘불랙이글이라는 호전적이며 명예욕이 강한 가문과 와이트도브라는 유순하며 합리적인 가문..’- 참고로 나의 할아버지는 나와 마지막으로 만난 지 2년 후에 포카텔로에서 죽었으며 그 시체는 불랙힐스에 있는 돌 제단 위에 올려 놓은 후 와콘다 신이 보낸 전사들에 의해 좋은 세상으로 가셨는데 그의 나이 86세였다. 주: 수.인디안은 이름만 있었기에 아버지 불랙이글, 할아버지 불랙이글, 아들 불랙이글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대를 이은 아버지는 과감하게 이름을 밥(Robert, Bob)으로 명했으며 나는 제임스(James)를 택했는데 그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9. 샤이엔과 쉐난도아의 별들을 사랑한 인디안 아버지 (수.인디안 총각들의 연인 샤이엔, 아팔라치아 인디안들의 연인 쉐난도아) 수. 인디안의 대추장에 의해 추방 대신 강력한 경고를 받은 서 약사와 그 일행은 지례 겁을 먹고 자원 봉사를 중단하고 철수를 했는지 인디안 촌에서 볼 수가 없기에 나는 은근히 반갑기도 했으나 한편 궁굼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서 약사와 부인에 의해 나의 비밀이 탈로 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비밀이 가득한 사진을 경솔하게 보여 주었으며 내가 자란 과거를 적나라하게 알려 주었으니 나는 그들의 입술에 따라 곤경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서 약사의 부인을 ‘샤이엔’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 치명적인 문제였다. * 예정에도 없던 수. 인디안 족장 회의가 이글뷰트 공회당에서 열렸는데 이번에는 관심있는 모든 전사들은 물론 수. 인디안들이 다 모여 들었기에 공회당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독수리 깃털이 여기 저기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며 울긋 불긋한 채색 옷을 입은 인디안 처녀들은 공회당 밖에서 서성거리며 누군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오늘의 안건이 뜻밖이었다. -수. 인디안들이 숭배하는 와콘다 신(Wakonda)외에 다른 종교가 있을 수 있는가? 수. 인디안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가?- 라는 놀랄 만한 안건을 자유롭게 자기의 의견을 말해도 좋다는 대추장의 발언에 모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과거에는 엄두도 못낼 일이었는데 이곳 인디안 사회에도 20세기의 민주화와 종교의 자유라는 물결이 흘러오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많은 의견들이 오고 갔으며 여기 저기에서 고함소리도 들렸고 때로는 신음소리도 들릴 만큼 진지하며 건설적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견은 와콘다 신이 수. 인디안의 세계를 창조했으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론은 미신이요, 말도 안 된다는 쪽으로 대세는 기울고 있었다. 더욱이 컴퓨터 봉사를 한답시고 은근히 기독교를 전도하는 서 약사와 같은 사교 집단을 결코 방관할 수가 없다고 했으며 성난 전사들은 이번에는 가차없이 죽여 버리겠다고 공언을 하였다. 결국 회의는 살벌해졌으며 모든 것이 인디안 추장의 계획대로 강경일변도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 때였다. 회의를 주관하고 있던 인디안 총무가 조용히 앉아있는 나에게 한마디 말해 보라고 기회를 주었다. “닥터 와이트도브? 당신도 서 약사와 친하다고 하던데 한 말씀 해 보시죠?” “예.” 나는 주저하지 않고 용감하게 벌떡 일어나 차분하게 최근에 있었던 사건과 서 약사에 대한 나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순수 인디안이 아닌 내가 혹시라도 말의 실수를 하면 여기 인디안 사회에서 영원히 축출되어야 하는 판에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서 약사를 두둔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닌데, 서 약사를 두둔하면 안 되는데...’ 마음 속에서는 이렇게 말하면서 뜻밖에도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와 정 반대였다. “여러분! 서 약사는 우리 인디안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였기에 자비를 들여 여기에 찾아와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수. 인디안의 후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의 성씨가 말해 주듯이 진시황이 보낸 수. 장군(Souix)과 같은 이름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우리와 같은 수. 인디안이며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우리 수.인디안들은 너무나 안일하게 정부에서 주는 돈이나 받아 펑펑쓰고 술이나 퍼지도록 마시고 마약이나 하면서 아무런 희망도 대책도 없이 살고 있으며 근래에는 카지노 사업에서 나오는 눈 먼 큰 돈 때문에 교육도 기술도 거부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앞날이 우려가 된다고 생각이 들어 봉제, 컴퓨터 그리고 마약퇴치를 하려고 왔다고 합니다. 그의 말이 옳습니다. 우리 수 인디안들도 이젠 마약이나 술을 버리고 교육을 받아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와 같은 전문직을 양성하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속적인 종교를 버리고 개개인이 종교를 선택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대충 지금과 같은 말을 하였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이라고, 서 약사가 수 인디안이라고? ” “닥터. 와이트도브는 예수를 믿는 모양이군? 모두다 축출해야 겠군!” “지금이 어느 때인데, 20세기가 지나고 곧 21세기가 되는데, 인디안, 백인, 한국인의 구별이 어디있어? 종교? 종교에는 자유가 있는거지....자유가!”- 그러나 웅성거리던 말도 결국 와콘다 신을 버리면 안 된다는 것과 순수 인디안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으며 침입자들은 가차없이 축출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또 한 차례 후회를 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조용히 있을 걸....’ 나는 후회가 막급했다. 그러나 실낱같은 한 가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단위에 앉아 있는 85살의 대추장, 오레겔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대추장은 ‘제임스! 나는 너의 말을 100% 이해 한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감사합니다. 대추장님’ 나는 마음 한 구석에 안도감을 느끼면서 병원으로 돌아오니 먼저 돌아 온 간호사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말을 건네었다. “닥터. 와이트도브? 어찌된 일이요? 서 약사를 싫어 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좋아 하는군요?” “아뇨- 싫어 합니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그래요?” 간호사는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실이 그랬다. 나는 서 약사를 좋아하고 있었으며 그에게서 들은 말들이 우리 인디안들에게 아주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 낳은 정, 키운 정: 이 일이 있은 지 꼭 10일이 되는 어느날, 나는 생각지도 않은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몬태나에 사는 나의 아버지로부터였는데 “바쁘겠지만 시간을 내어 한번 몬태나로 찾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혹시 돈이 필요해서 부른다고 지례 짐작을 했다. “어-꼭 좀 보자!” 아버지는 애원 하듯이 말했는데 어쩐지 호소력이 들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6년전, 아버지가 65세가 되던 해에 그 곳에 가서 마지막으로 만났었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71살이 되었다니.... 65세 되던 그해부터 나는 생활비를 보내주지 않았으며 전화와 편지도 없었음은 아버지가 무책임하게 그 문제의 사진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너의 어머니의 사진이야. 잘 보관하거라...’ 이 무책임한 한 마디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고 마약 중독자, 그리고 무능력자로 간주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나는 오랜만에 조용히 불러 보았다. ‘웬 일일까?’ 나는 관심도 없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세월이 바람처럼 빨라 어느덧 6년이 되었다. 보기도 싫고 미워했던 아버지를 찾아 갔던 그 똑같은 길, 다코타-와이오밍을 통해 몬태나로 가는 멀고 지루했던 산길을 따라 운전하여 갔었는데, 이번에는 보고 싶은 아버지라 그런지 똑같은 길이 아름답고 그림같은 길로 변해 있었다. 미웠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니 다시 찾는 길이 더 아름다운 길이 되었으며 콧노래가 나기도 했다. 꽃이 만발한 산길을 따라 가다보니 와이오밍의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을 지나면서 여기 저기에서 솟아 오르는 화산의 수증기와 연기가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들소들이 떼를 지어 여기저기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한 때, 백인들에 의해 멸종이 되다시피 도살되었던 들소들도 이젠 인디안들처럼 동물 보호구역에서 주는 음식을 받아 먹으면서 살다보니 급속히 번식하고 있었다. ‘아-들소들. 너희들은 우리 수.인디안들과 같은 운명을 타고 태어난 동물이요 우리, 인디안들과 같은 식구이니라...’ 나는 오늘 새삼스레 들소들을 보며 나와 한 가족이라는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끔, 흑곰과 그리즐리 곰들이 길을 막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게으른 우리 수. 인디안들을 보는 듯해 마음이 아펐다. 자동차의 창문을 조금 열고 비스키트를 던저주니 잽싸게 받아 먹고는 사라졌다. ‘와! 곰도 먹는 것에는 잽싸군......“ 엘로우스톤 강가에서 한가로히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따슷한 화산-온천물이 흘러 내려 오는 물에도 큰 고기들이 살수 있다는 것이 신기로웠다. 8시간이나 되는 긴 운전 후에 나는 몬태나의 작은 도시 가디에르에 도착하여 보고 싶었던 아버지를 바라 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알코홀과 마약으로 찌들렸던 나의 아버지가 웬 일인지 혈기가 좋은 새사람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크게 포옹하였다. 놀랍게도 그 동안 술과 마약은 일체 손도 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옷도 깔끔하게 입고 있었으며 입에서 악취가 풍기지 않았다. “어머니!” 나는 여전히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어머니(인디안)를 크게 허깅하면서 나를 낳아준 친 어머니라고 생각하니 아무런 갈등도 생기지 않았음은 기른 정이 더 컸기 때문이리라..... 인디안 어머니는 변함없이 따뜻한 여성이었다. 비록 일을 많이해 손은 거칠거칠하였으며 관절은 뭉퉁하게 부르터 있었지만 늘 웃음을 띄고 있었다. “제임스야,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와 고맙구나. 고마워.” 어머니는 평소 내가 좋아하던 감자를 찧어 놓았으며 부드러운 감자 수프도 준비하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제임스야, 이 감자는 특별히 네가 좋아 하는 아이다호 산 감자야. 며칠 전에 아버지가 포카텔로에 가서 사온 거야. 그리고 이 쇠고기는 아버지가 특별히 맛이 좋은 놈으로 사온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 왜, 너의 아버지가 너를 위해 이토록 정성스럽게 준비를 하였는지.” “예? 나를 위해, 아버지가?” 나도 믿지 못할 만큼 달라진 아버지였다. 술만 마시고 마약이나 하던 아버지는 아들인 나를 데리고 좋은 음식점으로 간 기억이 전혀 없었으며 아들을 위해 감자를 사온 적도 없었는데..... 나도 놀랬지만 인디안 어머니도 어안이 벙벙했으나 아버지의 변화로 인해 어머니는 행복하다고 말하며 싱글벙글했다. 금년, 아버지는 71살이고 인디안 어머니는 74살이 되었으니 우리 인디안의 평균 나이로 보면 고령에 해당되는 노인들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버지는 인디안 어머니 몰래 나를 따로 불러 뜻밖의 말을 하였다. “제임스야? 캘리포니아에서 온 평화 봉사단원이라고 하면서 웬 남자와 여자 부부가 나를 찾아 왔더구나. 그리고 내게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냐고 물으면서 네가(제임스) 그 사람을 수술해 주었기에 죽지 않고 살아났기에 네가 그사람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깍듯이 절을 하더라......” 아버지는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처다보며 조용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아- 그랬어요? 그 사람, 믿을 만한 좋은 사람입니다. 아버지.” “그런데 그사람 말이 자기도 수. 인디안이라고 하던군....” “아- 예. 그 사람은 한국에서 뒤늦게 태평양을 넘어 찾아온 수 인디안입니다. ” “수. 인디안? 한국 사람인데?” “그래요. 아버지. 한국 사람, 수인디안.....” “한국 사람, 수. 인디안? 너의 어머니처럼?” “어머니요? 한국 사람 수 인디안....” “그래. 네 어머니처럼.....” 순간, 아버지는 ‘어머니? 한국사람도 수인디안?’ 이라는 말을 듣고 앗차 하는 느낌이 있었는지 한 숨을 쉬었다. “아버지? 한국 사람도 수. 인디안하고 같은 뿌리일지도 모르죠.” 나는 아버지에게 덧붙여서 말을 하자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제임스야? 내일 아침에 나하고 모처럼 옐로우스톤 강에 가서 낚시를 하자꾸나. 어떠냐?” “그래요! 아버지하고?” 나는 대답을 했지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지난 46년간, 아버지와 낚시는 커녕 운동 경기장에도 가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인디안)가 특별히 만들어 준 샌드위치와 과일을 차에 싣고 옐로우스톤 강을 따라 올라 갔다. 꼬불꼬불한 강이 햇볕에 반짝이며 강 주위에 널려 있는 푸른 초원에는 많은 들소들이 한가로히 누어 있기도 했으며 가끔은 사슴들이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몇 년전에 등산객들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큰 산불로 크고 높은 나무들이 불에 거슬려 죽어 있었고 군데 군데에서 검은 흙 무더기를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땅 밑에서 올라오는 훈훈한 열로 인해 작은 나무들이 여기저기에서 삐쭉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검게 타 버렸던 푸른 초원에도 옅은 연두색의 풀들이 점점 짙어지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있었나 보다. 이것이 자연의 신비요, 삶의 연속이었나 보다. 그러기에 이 대자연은 수 만년, 아니 수 억년 동안 새로운 생명으로 연속되는 삶의 연속이었다. 마치 우리 수. 인디안들이 낳고 죽고, 그리고 낳고 죽으면서 명맥을 유지해 왔듯이.... 큰 나무에 잎새가 돋고, 떨어지고....또 돋고 떨어지고..... 엘로우스톤 강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는 단 두 가지 종류라고 하며 그나마도 칼슘이 물 속에 너무나 많아 설령 고기를 잡아 먹는다고 해도 먹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한다. 어느새 점심 때가 되어 어머니(인디안)가 싸준 샌드위치와 가지고 간 맥주를 곁들여 점심 식사를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먹었다. 와! 지금까지 아버지와 같이 앉아 보기도 힘들었는데 같이 점심을 먹으니 그 맛이 마치 꿀맛같았다. 별로 말이 없던 아버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임스야? 네게 한가지 일을 부탁하려고 한다.” “부탁을요?” 나는 뜻밖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 제임스야. 아무래도 나는 오래 살 것 같지 않아. 혹시 내가 죽으면 너의 어머니(인디안)를 돌보아 주거라. 부탁한다.” “어머니(인디안)를? 물론이지요. 어머니라고는 하나뿐인데...” 이렇게 대답을 하는 순간 나는 ‘아냐! 어머니가 둘인데. 둘.’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고맙다. 제임스야!” 아버지는 이 말을 마치고 다시 낚시줄을 멀리 던지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낚시 끝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런 아버지가 새삼스레 좋아졌다. 생각해 보니 46살이 되도록 이토록 오붓한 시간을 아버지와 같이 가져 보기는 처음인 듯 했다. 꽃사슴 두 마리가 우리들 주위에서 빙빙 돌며 혹시라도 음식 부스러기라도 얻어 먹을까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눈망울이 크고 겁이 많은 듯한 천진난만한 모습이 마치 마약과 알코홀 중독에서 혜쳐나온 나의 아버지를 보는 듯 했다. 낚싯대를 물끄러미 바라다보노라니 ‘찌’가 흔들리고 있었다. 낙아채면 고기가 딸려 올라 올텐데 웬일일까 나는 그대로 보고만 있었더니 ‘찌’의 요동이 잠잠해 졌다. 물렸던 고기가 어떤 방법이었던지 자유로워 졌나보다. 해가 서쪽 산과 점점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낚싯대를 걷고 차를 몰고 몬태나 집으로 되 돌아 왔다. 어느새 꽤나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었다. 어머니(인디안)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반겼다. 어머니는 우리들을 위해 아이다호 산 감자와 몬태나 산 쇠고기로 만든 저녁 요리를 만들어 놓았다. “제임스야? 하루 종일 잡은 고기는 어디 있느냐?” 어머니는 잡은 고기가 하나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의아한 듯이 내게 물었다. “아- 어머니. 잡은 고기는 모두 강물에 도로 넣어주고 왔습니다.” “모두 다? 한 마리도 안 남기고?” “물론이죠. 그 대신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 속에 가득히 담아 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어쨌거나 옐로스톤 강의 고기는 칼슘이 너무 많아 먹지 못한다고 하던데. 그래, 필요없는 것은 다 버리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더구나. 그러기에 필요없는 것은 모두 다 버리거라.” “필요 없는 것은 다 버리라고 하셨나요?” “그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말이 구구절절이 옳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원망과 증오를 다 버리고 나니 갑자기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해 왔던 아버지로부터 뜻밖의 진실한 사랑을 발견하면서 나는 아버지가 갑자기 귀한 존재로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인디안)를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마음 속으로 굳게 약속을 하였다. * 다음 날, 아버지와 작별하고 이글뷰트로 되 돌아 오는 나의 운전길은 가볍고 행복했다. 그동안 마음 속에 품고 살아왔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과 경멸의 감정이 와이오밍의 산길에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마약이나 하며 빈둥빈둥 놀던 아버지가 이토록 다른 사람으로 변하였다니.... 나는 운전대를 잡고 ‘아버지-인디안 어머니- 그리고 한국인 어머니!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라고 반복해서 뇌까리다보니 내 눈가에 따슷한 눈물 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한국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어디에 계시나요?’ 나는 문득 한국인 어머니가 보고 싶어지고 있었다. 불랙힐스에서 흘러 내리는 샤이엔 강가에 차를 세우고 강가로 내려가 차가운 강물로 나의 얼굴을 씻었다. 찬물이 얼굴에 닿자 정신이 뻔쩍 났으며 찬 물이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했다. ‘수. 인디안의 남자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리고 수. 인디안은 다른 인종과 결혼하지 않는다!’라고. ‘그럴 수는 없어! 나의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지만 수. 인디안이다. 수. 인디안이야! 그러나 나를 길러준 인디안 어머니의 기른 정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나의 진정한 어머니이다.‘ * “어머니! 어머니!” 나는 불랙힐스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제임스야! 제임스야!” 멀리 불랙힐스에서 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국인 어머니, 그리고 인디안 어머니의 목소리가 하모니되어 나의 귀에 도달해 메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제-임-스-야----------- “어머니! 어머니!” 나는 불랙힐스를 향해 또 한 번 크게 불러 보았다. * 구원의 여인상, 쉐난도아: 다코다 주의 8월 말은 몹시 덥기도 하지만 찐득찐득한 습기로 인해 짜증이 나고 피곤하기 쉽다고 한다. 5월에 발정을 해 임신이 된 암컷 들소들은 배가 제법 불러 느릿느릿 움직이며 봄(5월초)에 파종한 옥수수는 어느새 사람의 키보다 더 크게 자라 주렁주렁 열매가 맺히고 있었다. 어느새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오고 있나 보다. 그리고 인디안 공회당 마당에서는 흥겨운 인디안 축제인 ‘선 댄스(Sun Dance)'가 열리고 있었다. 옛날 인디안의 전성기에는 가장 크고 흥겨운 축제였으나 인디안 보호구역으로 밀려 들어온 지금에 있어서는 규모도 적은 동네 잔치에 불과했다. 비록 동네 잔치이긴 하지만 마지막 절정은 해가 지기 전에 뽑은 이 해의 미인, ‘인디안의 공주, 샤이엔(Sheyenne)'이었다. 인디안들 중에 가장 예쁜 처녀가 단(檀)위에 등장하자 총각 전사들은 물론 나머지 인디안 총각들도 회파람을 부르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총각들의 가슴은 온통 울렁이고 있었으며 가슴을 치기도 했다. 이어서 대추장은 와콘다 신이 살고 있는 불랙힐스를 향해 주문을 외며 제단에 불을 부치고 있었다. 그뿐인가, 들소 고기를 굽는 냄새, 옥수수 타는 냄새가 이글뷰트 공회당과 저녁 노을이 지는 샤이엔 강과 불랙힐스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해가 지자 축제는 마무리 되었으며 술취한 인디안들은 하나 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정적이 밀려오며 깊은 밤이 되었다. * 깊은 밤... 나는 병원 당직실에 혼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조로운 외과 의사 생활에 나는 지쳐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남편이 출타 중인 큰 집에서 혼자 잠들었을 아내가 그리워졌으며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말이 외과 전문의사이지 3-4일에 한번씩 병원에서 당직을 하는 것도 미안한데 응급 수술이 생기면 시도 때도 없이 병원에 불려가 수술을 해야 했으니 아내와 같이 자는 시간이나 당직하는 시간이나 엇 비슷했으니 하루 건너 홀로 밤을 자야 하는 신세였다. 아무리 의사의 사명이 인술(仁術)이라고는 하나 의사인 나도 인간이기에 가정과 따듯한 휴식이 필요했다. 오늘밤도 그러했다. 깊은 밤. 아내가 그리웠다. 오늘도 그런 밤이었다. 유리창 너머 멀리 보이는 캄캄한 밤 하늘에는 별들이 ‘캄캄한 것’에 반비례하여 유달리 더 총총했다. 오늘 따라 북극성, 사자 그리고 오리온들이 더 선명했으며 그 별자리 사이에 오늘 보았던 수 인디안 처녀, ‘샤이엔’의 모습이 환히 웃고 있었다. 오늘 본 샤이엔은 나의 한국인 어머니처럼 머리가 길었으며 울긋불긋한 채색 옷을 입었으며 얼굴이 갸름한 처녀였다. “어머니---,샤이엔(Sheyenne)” 나는 큰 소리로 불러 보았다. 멀리 불랙힐스의 산 꼭대기에 산 신령이라도 나타났는지 은은한 바람이 그 곳에서 샤이엔 강과 이글뷰트를 향해 불어 오는 듯 했다. 순간 동쪽 대평원 쪽에서도 훈훈한 바람이 마주 불어온다고 느껴졌다. -멀리 아팔라치아 산에 있는 인디안 처녀, ‘쉐난도아(Shenanndoah)'가 오늘 선출된 샤이엔을 축하해 주려고 오고 있는지 별들이 더더욱 빛나고 있었다. 쉐난도아와 샤이엔의 만남이었다. -별들의 딸이라는 아팔라치아 인디안의 처녀, 쉐난도아는 16살의 꽃같은 예쁜 소녀로 추장의 외동 딸이었다. 추장은 어느날, 모든 인디안 총각들에게 말했다. “가문과 지위를 막론하고 가장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총각을 만나면 나의 딸, 쉐난도아를 주어 사위로 삼을 것이며 나를 이어 추장이 될 것이다.”라고. 아팔라치아 인디안 총각들은 너무나 기뻐 흥분이 되었다. 마치 하늘의 별처럼 맑은 눈동자를 가졌으며 활짝핀 버지니아의 꽃처럼 싱그러운 그녀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데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니..... 그러나 이런 꿈도 잠시였다. 별들의 딸 쉐난도아가 갑자기 시들시들 병이 들어 누었다고 하는 소문이 들렸다. 아마도 심장의 판막에 염증이 생겼는지 아니면 백혈병에 걸렸는지 하루하루 꽃같은 처녀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부디 별들의 딸, 쉐난도아를 살려주소서.....” 인디안들은 수호신에게, 별들에게 기도를 드렸지만, 인디안 총각들의 울음을 외면하고 쉐난도아는 어이없게도 죽고 말았다. 결국 어느누구도 쉐난도아를 차지 하지 못했으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오늘도 살고 있다고 한다. 쉐난도아는 죽어 이곳 불랙힐스의 하늘에서 밤마다 총총히 빛나며 낮에는 샤이엔 강에서 그곳에 묻힌 아름다운 처녀들인 샤이엔들을 만나고 있으리라....... * 깊은 밤, 외로운밤.... 멀리 불랙힐스를 바라보며 샤이엔과 쉐난도아를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뜻밖의 방문자가 있었다. 오늘 선택된 샤이엔은 아니었으며 쉐난도아도 아니었다. 나를 불쑥 찾아온 방문자는 혼자 집에서 자고 있어야 할 나의 아내 실비아(Sylvia)였다. “실비아!” * -반가웠고 기뻣다. 생각해 보면 이 인디안 처녀, 실비아와 결혼하여 같이 살아 온 지 어느덧 17년이 지났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반가웠던 것은 아마도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동반자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내 실비아를 처음 만난 것은 수. 훨스에 있는 다코다 의과대학에 다닐 때였다. 실비아는 당시 다코다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녀는 독수리 깃털을 머리에 달고 말을 타고 다니는 수.인디안 부족장(추장)의 딸이었다. 훌쭉한 키에 다소 우울한 듯한 눈망울을 가졌으나 얼굴에는 그래도 미소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그녀는 의과대학 도서관에 들린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피곤에 지쳐 책상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었다. 평소에 내가 인디안임을 알고 있던 그녀는 지쳐서 잠을 자고 있는 나를 보면서, ‘백인들과 경쟁하여야 하는 의사’의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곁에서 도와주는 연인이 되겠다고 결심을 했으며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참으로 놀란 것은 그녀가 내게 한 말이었다. “제임스? 나는 당신이 의과대학생이기 때문에 그리고 훌륭한 불랙이글의 손자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라는 하나의 순수한 개체를 보고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저의 마음을 활짝 열고 당신을 받아 드립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그렇게 받아 주세요. 비록 내가 부족하고 허물이 많더라도....있는 그대로 받아 주세요. 제임스....” 다코타 대학과 의과대학을 각각 졸업한 우리는 서로를 믿고 미래를 약속했다. 해가 지나 인디안으로는 드물게 외과 전문의사 수련을 받고 있던 나는 부족장인 그녀의 아버지에게 소개 되었는데 그는 너무나 기뻐 내게 들소의 뿔로 만든 술잔에 수.인디안의 전통술을 가득히 부어 내게 부면서 말했다. “이것 보게. 제임스! 너의 할아버지는 용맹스러웠던 전사, 불랙이글이었어. 내가 늘 존경하던 가문이었는데 자네가 나의 딸을 좋아 한다니, 내 마음이 확 놓이는군. 자네 내 딸과 결혼해서 잘 살게나! 자 한 잔 쭉 마시게나.” “아! 추장님, 추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그가 준 술잔을 마시기 시작했다. “좋았어. 제임스, 아니 불랙이글!” 그리고 그는 스스로 한 잔을 부어 용맹스러운 전사답게 단숨에 마셔 버렸다. 우리는 수. 인디안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17년 전에 수. 훨스에서 백인과 인디안들이 보는 앞에서 결혼을 했다. 결혼식에서 본 나의 아내 실비아는 너무나 예뻤기에 많은 인디안들은 감탄하였다. “너무나 예쁘군! 샤이엔처럼...그리고 쉐난도아처럼.....” 그러기에 나는 나의 아내 실비아를 샤이엔처럼, 쉐난도아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 왔다. 다코타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고는 하나 남편인 나를 위해 철저히 가정주부로서 직장도 갖지 않고 오로지 내곁에서 살아 온 아내요 친구였다.- * “실비아? 여길 언제 왔어?” “방금. 그런데 당신, 무엇을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당신 저기 저 먼 하늘의 별들을 바라다 보고 있었군....” “그래, 실비아! 저기 저 불랙 힐스의 산 위에 있는 별들을 보라고, 저 별을!” “와! 밝기도 하지. 별들의 딸, 쉐난도아의 별 같군요. 그렇지, 제임스?” “그래. 쉐난도아의 별, 아니, 저 별은 당신의 별인가 봐. 당신.” “뭐라고, 제임스? 나의 별?” “그래. 당신. 인디안 추장의 외동딸이었던 쉐난도아.” “인디안 추장의 딸?” “여보, 당신도 추장의 딸이지 않소? 쉐난도아처럼. 실비아? 나는 당신을 쉐난도아 그리고 샤이엔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 나는 아내를 살며시 감싸 포옹을 했다. 아내는 행복한 듯이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여보, 실비아? 만일에 내가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당신? 나를 사랑할 수가 있을까?” 나는 아내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조용히 나의 비밀을 말하고 있었다. “제임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신은 순수한 수. 인디안인데.” 아내는 뜻밖의 질문에 어리둥절하여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나를 밀치면서 물었을 때 나는 퍼뜩 놀라 말을 바꾸었다. “아냐, 갑자기 쉐난도아의 별을 말하다가 나는 내가 아팔라치아의 인디안 총각으로 착각을 했었어.” “아팔라치아의 인디안 총각으로? 제임스, 당신은 나의 사랑하는 남편일 뿐....” “........”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아내를 꼭 끌어 안으며 변명 섞인 말을 하였다. “실비아? 당신은 쉐난도아의 별이요. 사랑해.” 라고. “나도...제임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말하려던 비밀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나는 그녀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이 두근 거리기 시작하더니 순간 현기증을 느끼며 오히려 연약한 실비아의 가슴에 내 머리를 밖고 말았다. ‘아- 내가 정통 수 인디안이 아닌 것을 아내가 알게 되면 나는 어쩌나.....’ * 아들, 프랑크의 꿈: 나에게는 금년에 고등학교(11학년)에 다니는 16살된 아들이 있다. 이글뷰트 인디안 보호구역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10학년부터는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자 수.훨스(Souix Falls)로 보내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이글뷰트를 떠날 때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안들과 추장들로부터 상상도 못할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인디안 구역을 떠나 백인들이 많이 사는 수.훨스로 간다는 것이 정통 인디안들에게는 용납못할 배반이라고 했다. “이것 봐! 닥터 와이트도브? 어째서 우리 인디안의 지도자가 되는 의사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고향에 있는 인디안 고교를 버리고 백인들 세계로 간단 말요? 당신은 인디안이 아니란 말요? 그러고서 어떻게 인디안 병원에서 우리 인디안을 봉사한다고 할 수 있소? 알고 보니 당신은 기회주의자요, 위선자군. 순수 인디안이기를 거부하다니, 당신의 할아버지 불랙이글도 배신자였어. 이것 봐요? 꼭 의사, 변호사 그리고 기술자가 돼야 하는 법이 어디 있소? 옛날, 우리 조상들처럼 들소 고기를 굽고 옥수수와 감자를 먹으면서 그렇게 한 세상을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요. 아시겠소!”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들을 내가 대학과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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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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