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샤이엔의 언덕 파트 4

2012.01.22 15:46

연규호 조회 수:678 추천:34

10. 인디안의 눈에 비친 한국 사람들 아메리칸 인디안은 미국 본토박이라는 자존심을 갖고 타인종을 다소 깔보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들이야말로 시골 촌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모처럼 뉴욕이나 쉬카고에 가보면 나는 내가 정말 미국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날만큼 농촌사람이었다. 아울러 나의 마음은 도시 사람들에 비해 아무런 꾸밈도 없이 단순하기 그지 없었다. * 9월초, 노동절(Labor day)이 낀 주간에 마침 남칼리포니아, 아나하임에서 외과 학회(外科 學會)가 있어 큰 마음 먹고 아내와 같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남다코다에서 로스앤젤스로 가는 비행기 편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피에르(Pierre)에서 작은 비행기를 타고 콜로라도 덴버에 가서 로스앤젤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로스앤젤스에서 약 한 시간 남쪽에 있는 아나하임이 우리의 행선지였다. 아나하임은 나에게 좋은 추억을 준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곳이라고 하는 디즈니랜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디즈니랜드..... 마치 우리는 어린 아이가 소풍을 가듯, 들뜬 동심으로 바라다 보는 따슷하고 꽃이 만발한 동화 속의 공원일 뿐만 아니라 한국 봉사단의 서 약사가 그 근처에 산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꼭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더 벅찼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록키산맥은 아름답고 웅장했으며 네바다 산맥을 넘어 캘리포니아로 들어 섰는가 했는데 어느새 광활한 태평양이 우리들의 시야에 들어오면서 높은 산과 넓은 평원만을 보고 자란 나의 마음에 엄청난 물이 쏫아져 들어오는 듯 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디즈니랜드로 가는 리무진을 타고 보니 눈에 뵈는 야자나무와 종려나무가 마치 추운 다코다와 180도 다른 느낌을 주었다. 마치 한대지방에서 열대지방으로 이주한 듯이 모든 것이 신기로웠다. “제임스? 우리가 신혼여행으로 여기에 왔던 것이 몇 년만인가? 거의 16년 전이구먼. 역시 여기도 많이 변했네.” 아내 실비아는 감회가 깊은지 눈가장자리가 붉게 변하고 있었다. 신혼여행으로 왔던 디즈니랜드에서 우리는 기차를 타고 한 바퀴 삥돌면서 먹던 팝콘 냄새가 구수 했었다. 그리고 아이오아에서 먹었던 엉성한 콘덕(Corn Dog)을 여기 디즈니랜드에서는 빨간 케챱을 칠해 입을 크게 벌려 먹었던 기억이 눈 앞에 선했다. 전 세계의 인형들이 춤을 추는 작은 인형의 세계에서 본 중국 인형과 그 옆에 초란하게 서 있던 한국 인형도 생각이 났다. 외과 학회(外科 學會)가 열리는 콘벤숀 홀과 그 옆에 붙어 있는 마리오트 호텔에 5일간 머물게 되었는데 말이 디즈니랜드이지 외과 학회의 스케쥴은 꽉 차 있어 마음 놓고 구경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런가 하면 같이 간 아내는 반대로 할 일이 없어 무료하게 낮잠이나 자며 하루종일 호텔방에서 빈둥거리다가 남편이 돌아 오기를 기다려야 할 형편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것은 목요일 오후였으며 호텔 방을 배정받고 미리 학회 등록을 하고 나니 허기가 졌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 근처에 서 약사의 집이 있다고 하는데...’ 서 약사가 보고 싶었으나 모처럼 같이 온 아내를 위하여 야자수가 있는 아나하임 코코(CoCo) 식당에서 오봇한 저녁을 먹고는 인근 힐톤 나이트 클럽에서 와인을 들며 록앤 록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 보았다. 땀이 온 몸에서 나며 몸이 나를 듯이 가벼워 지는 듯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학회에서 발표되는 새로운 수술 방법과 수술기구를 보고자 호텔 방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학회에서 배우자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인근에 있는 명소도 관광하고 백화점에 가서 마음껏 쇼핑도 하라고요. 디즈니랜드 만큼은 나하고 같이 가기로 하고.....” “물론이죠. 디즈니랜드는 당신과 같이 갈 거예요.” 수많은 외과 의사들이 동부, 남부 등 각 주에서 왔는가 하면 더 놀란 것은 다른 나라에서 비싼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미국의 외과 학회의 권위가 얼마나 높은 지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에 단 한 시간이라도 빼 먹기가 아까웠다. 사실, 다코타에서 온 나도 참석 비용 등을 합쳐서 3천달라는 족히 지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문득문득 찾아 오는 유혹이 있었다. 큰 마음 먹고 학회를 생략하고 인근에 산다고 하는 서 약사와 그의 장인이 운영한다는 세탁소에 가 보고 싶었다. 여러 차례 물어서 찾아간 세탁소는 디즈니랜드에서 불과 1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작은 쇼핑 몰에 있는 꽤 큰 세탁소였다. 세탁소 입구에 서서 잠시 안을 들여다 보니 한국 사람인 듯한 남자와 멕시칸 종업원들이 아주 바쁘게 꽤 큰 빨래 기계를 돌리기도 하며 한 구석에서는 다림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다코다 같으면 9월 달은 다소 쌀쌀한 날씨인데 비해 여기 남가주는 소위 인디안 섬머(Indian Summer)로 인해 몹시 더운 듯 앞 뒷문을 활짝 열어 놓았으며 종업원들의 이마에는 땀 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다코타 주에도 세탁소는 있지만 여기처럼 규모가 크지 않으며 인구도 많지 않아 빨래의 양도 훨씬 적은데 여기는 그와는 반대였다. 그런데 여기 이 세탁소의 주인이 서 약사의 장인이라고 하니 분명 저기 있는 한국 사람 남자임에 틀림 없었다. 잘 하면 서 약사를 만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밖에 서서 기웃거리고 있는 나에게 한국 사람 남자가 밖으로 나와 “세탁물을 맡기려 왔나요?” 라고 물었다. “아- 예. 저, 서 약사님을 만나려고 왔습니다.” “서 약사? 아! 서 서방! 그 사람 얼마 전에 한국에 갔습니다. 갑자기 알아 볼 일이 있다고 하면서..... 그런대 댁은 누구신가요?” 70살이 넘어 보이며 다소 뚱뚱한 한국 사람 남자는 의아하다는 듯이 내게 반복해서 물었다. “예. 저는 다코타에서 온 외과 의사, 와이트도브라고 합니다. 서 약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나는 서운한 듯이 말 꼬리를 낮추었다. “다코타라고요? 아, 거기 몹시 춥고 더운 곳이라 사람 살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그래요? 누가 그랬습니까? 서 약사가?” “아뇨.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주던군요. 그런 곳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나의 사위와 딸이 불쌍하기도 하고, 아니면 정신이 조금은 돈 것이 아닌지...” “..........”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음은 그가 말한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생이 우리 사위의 목숨을 수술로 살려준 인디안 외과 의사군요? 생명의 은인이군요?“ “예. 제가 바로 그 의사입니다.” “고맙군요. 내 사위를 살려준 은인, 반갑습니다.” 그는 나의 손을 꽉 잡고 고개를 숙였다. 점점 나는 한국 사람들을 이해 하게 되었는데 오늘도 서 약사의 장인을 통해 ‘한국 사람은 정말 감정이 풍부하고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의리있는 민족임’을 새삼 더 느끼고 있었다. 뜻밖의 일이 생겼다. -서 약사의 장인은 학회 때문에 바쁜 나를 억지로 가든그로브 한인타운에 있는 불고기 집으로 데리고 가 사위가 진 빚을 갚겠다고 하며 맛 있는 한국 음식을 대접하였다. 생명의 은인이기에 반드시 대접을 해야 한다고 우기는 서 약사의 장인을 보며 ‘과연 한국 사람들, 은혜를 갚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사람들만이 모여 산다는 한인타운(韓人 town)을 보며 평소에 한국 사람들을 깔보았던 수. 인디안인 내가 받은 충격은 몹시 컸다.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인디안이 한국사람들을 깔본 것이 무척 부끄러웠다. 그러나 어머니가 한인이기에 내 몸 속에도 한국사람의 피가 50%나 돌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는 무척 자랑스러웠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나의 어머니의 이름인 김성숙의 세 글자, 김-성-숙-을 한글 간판에서 찾아 낼 수 있어 마치 내가 한글을 읽고 있다고 착각을 하였다. 놀랍게도 한글 간판이 여기저기에 있었는데, 자동차 판매점, 호텔, 식당, 옷가계 그리고 전자 상품점 등 그 종류도 많았다. “여기는 한국 사람들만이 사는 곳 입니까?” 나는 서 약사의 장인에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한국 사람, 스페니쉬, 월남 사람 그리고 백인들이 섞여 살고 있지요.” 그리고 그는 내가 묻지도 않은 한국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는데 다코타에서 온 수. 인디안인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이곳 남가주에만 한국 사람들이 50만명은 족히 넘으며 여기 가든그로브와 오렌지 카운티에만도 10만명이 살고 있다고 했다. “50만명이나?” 그것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수. 인디안 보호구역이라고 해 봐야 불과 1만 4천명도 안되었으니까. 그뿐인가 남가주에 한국 사람들이 소유한 전자, 자동차 대리점 등의 첨단 산업도 수도 없으며 더 놀라운 것은 한국인 의사의 숫자만도 600명이 된다고 했다. “한국인 의사가 600명이라고요?” 나는 깜짝 놀랐다. 수. 인디안 전체를 통해 볼 때, 의사는 불과 몇이 안 되며 특히 외과 전문의사는 나 하나뿐인데 이민 역사가 100년밖에 안 되는 한국사람 의사가 남가주에만 600명이라니, 미국 전체로 볼 때는 몇 배가 되리라..... 한국 사람하면 전쟁의 희생물이기에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며 깔보았는데 남가주 한인타운을 보면서 생각이 180도 바뀌게 되었다. 서 약사의 장인이 경영하는 세탁소만 해도 규모가 예상 밖으로 크며 종업원도 여러 민족이 섞여 즐겁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우리, 수. 인디안들은 분명 인종 편견에 매여 살고 있다고 느껴졌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불고기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엇이 기쁜지 한국말로 크게 떠들면서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불고기는 혀를 녹일 듯이 감촉이 가는 양념이 이미 되었기에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듯 했다. 또 한편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백인들이 서툰 젓가락질을 하면서 무엇이 그렇게도 좋은지 영어로 크게 떠들고 있었다. 다코다에서 우리 수. 인디안들이 양념도 없는 들소 고기를 구어 소금에 찍어 먹는 것 하고는 그 내용이 달랐다. 양념도 훌륭했지만 고추로 만든 쨈(고추장)은 나의 혀끝을 화끈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맛이 좋았다. 잠시 둘러본 한국 수퍼마켙은 또 한번 다코다에서 온 수. 인디안을 놀라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온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있는 이 물건들이 모두 다 한국에서 온 한국산 제품이란 말이요?” “예. 대부분이 한국산입니다.” 수 인디안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한국 사람 매네져(支配人)가 대답을 하면서 ‘웬 촌놈인가’라고 나를 비웃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 사람들, 정말 대단하군요. 여기에 있는 전자제품, 자동차, 삼성, 기아, 현대 등등....” 나는 서 약사의 장인을 바라다 보면서 감탄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한국은 6.25 전쟁의 잿더미에서 다시 불사조처럼 재건을 한 나라입니다. 아-참. 모래는 일요일입니다. 서 약사가 다니는 한인 교회에 한번 같이 가십시다. 서 약사가 오면 아주 좋아 할 것 같군요. 일요일 아침 9시에 마리오트 호텔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래요? 그래 주신다면.....” 나는 어쩌자고 약속을 하고 말았다. 사실 일요일 날 아침에 아주 중요한 외과 강의가 있어 꼭 들어야 하는데, 나는 어쩌자고 약속을 했는지 순간 후회의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말았다. 와콘다 신을 신봉하는 우리 수. 인디안이 서 약사가 다닌다는 교회에 갔다온 것이 알려진다면 우리는 인디안 사회로부터 치명적인 징벌을 받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토요일 오후 학회에 참석한 후 저녁 늦게 나는 호텔 방으로 가 아내를 보자 대뜸 이런 제안을 했다. “여보! 내일, 한국 타운에 한 번 가 봅시다.” “한국 타운? 아니 여기에 그런 곳이 있어요?” 아내는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 점심 때 서 약사의 장인을 만나 한국 타운에 가서 점심을 먹은 것을 알려 주었다. “아! 그렇지. 서 약사와 봉사단원들이 여기 아나하임에서 왔다고 그랬었지. 그렇지만 그 사람을 왜 만났어. 추장님이 알면 어쩔려고? 그 사람은 우리들에게 위험한 사람이니까요...” “여긴 칼리포니아요, 다코타가 아니지. 여기까지 온 김에 만나보고 가는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도 조심해야지요.” 아내는 한 발 후퇴를 하였다. 내일 일요일은 오늘보다 더 바쁜 스케쥴 있는데 한인 교회에 간다면 비싸게 지불한 등록금이 아까웠기에 마음 속에서 갈등이 생기고 있었다. “여보? 내일 아침에 잠시 갈 곳이 있으니 화장도 하고 옷도 깨끗이 입고 기다려요.” “아니? 어디를 가는데? 학회는 오후에 끝나는데...” “응, 그렇긴 하지만 같이 갈 곳이 있어서.” “.......” 아내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다물었다. 과연 일요일 날 아침 6시부터 학회에 참석했다가 아침 9시에 로비로 가니 약속대로 서 약사의 장인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아주 반가워 했다. 서 약사의 장인을 보고 놀란 것은 나의 아내였으며 눈이 둥그래졌다. 우리는 그가 운전해 가는 대로 약 30분을 고속도로를 통해 달려가니 잘 정리된 전원과 같은 얼바인 시에 있는 한국인 교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교회였으며 어디에서 왔는지 한국 사람들이 수 없이 많았으며 내가 이해 못할 한국말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영상 시설과 방송시설이 훌륭한 교회에 모인 수 많은 사람들이 다 기독교 신자라고 하니 와콘다 신을 신봉하는 우리에게는 부담이 들었다. “여보, 어쩔라고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에 왔단 말이요? 빨리 갑시다.” 아내는 불안한 마음으로 나를 재촉하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서 약사의 장인이 눈치를 채고 웃으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미세스 와이트도브? 이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 서 약사와 봉사 단원을 후원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이 교회 신도들은 다코타와 수. 인디안에 대해 잘 알고 있답니다.” “우리를 위해 교회가 후원을 한다고요?” “예.” 한인 교회를 방문하면서 나는 또 한번 한국 사람들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으며 이젠 한국 사람들을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비록 영어 통역을 통해 보고 들은 한 시간의 예배와 설교였지만 나는 한국 사회와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더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죽었다는 나의 어머니와 여기에 있는 한국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 방식으로 살았으리라.... 나는 마치 한국에 찾아 온 느낌이었으나 옆에 앉아 있는 아내의 표정은 괴로워 보였다. 일단 학회에 참석을 하여 몇 가지 강의를 듣고 보니 저녁이 되어 학회가 마무리 됐다. 나는 피곤한 듯이 방에 누어 있는 아내에게 한국타운으로 가서 ‘불고기’를 먹자고 제안했다. “불고기? 바베큐?” 아내는 마지 못해 나를 따라 나섰다. 기억을 더듬어 어제 점심때 들렸던 한국 음식점으로 가 양념이 풍부한 불고기를 주문했다. 불고기 굽는 냄새가 입맛을 돋구는가 하면 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보? 한국음식, 불고기 맛이 좋네.” 아내는 불고기를 몇 첨 먹더니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불고기뿐인가, 전자 제품, 자동차, 큰 교회, 음식점....한국사람들, 대단하군. 우리 인디안들 보다 훨씬 앞서 가는 사람들이여...” 나는 모처럼 한국 사람들을 칭찬해 주었으며 속으로는 나의 어머니도 한국 사람이라는 강한 자부심이 생겼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내가 왜 이렇게 자기를 데리고 한국 교회(韓國 敎會)와 음식점(韓國 食堂)으로 왔는지를 눈치 못 채고 있는 듯 했다. 아나하임, 얼바인 그리고 가든그로브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나는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다코타와 너무나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더구나 여기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로스앤젤스에 가면 50만명의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국타운이 있다고 하니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옥수수를 재배하며 들소들을 사냥해 와콘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온 우리 수.인디안들의 세계와 첨단 기술의 컴퓨터와 벤쳐 산업의 아나하임은 너무나도 다른 세계였다. 다음 날, 다코타로 되 돌아가는 비행기 속에서 나는 너무나도 다른 또 다른 우주 속을 여행하고 원시림으로 되 돌아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2200년 전에 진시황이 보낸 수. 인디안들이 중국을 떠나 태평양을 넘어 북미주의 원시림으로 찾아 가듯이.... 아나하임에서 보고 온 한국 사람들도 수. 인디안과 같은 뿌리를 가졌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 마치 샤이엔 강이 거꾸로 흘러 가고 있는 듯했다. 과거의 세계인 다코타와 미래의 세계인 디즈니랜드가 있는 아나하임은 인간성 마저도 바꿔 진 듯했다. 복잡하고 이기적인 아나하임에 사는 사람들보다 단순하고 순박한 다코타의 수. 인디안들의 세계는 아직도 옥수수와 감자를 먹으며 들소들과 사슴떼가 뒤 엉겨 뛰어 다니는 대평원에서 춤을 추는가 하면 맑은 샤이엔 강에 발을 담그기도 하며 멀리 불랙힐스를 바라다 보며 낮잠을 자기도 하는 평화스러운 과거의 세계라고 생각을 했다. 11.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서 약사가 밝혀낸 숨겨진 아버지의 비밀) 다코타 주의 10월은 제법 쌀쌀해지고 있었다. 비교적 짧은 가을이 지나면서 몹시 길고 혹독한 겨울을 맞게 된다. 그러기에 옛날의 수. 인디안들은 10월 중에 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대평원에서 들소들을 사냥하여 고기를 만들어 저장하였으며 들소 가죽을 베껴낸 후 옷을 만들거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살 집인 테피(Tepee)를 만들었다. 결국 들소들은 인디안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절대적인 동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슴을 잡아 긴 뿔로 잔을 만들었으며 사슴 고기도 겨울을 나기 위해 저장해 두었다. 봄에 파종한 옥수수와 채소를 수확하여 곡간에 저장을 해 길고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였으며 추수를 감사하여 불랙힐스에 있는 와콘다 신을 향해 ‘선 댄스 축제’를 벌려 제사를 드렸다. 긴 겨울에는 담배도 피우며 술을 마시기도 하며 그들대로 즐거운 삶을 영위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들소를 사냥하거나 옥수수를 저장할 필요가 없어진 것은 인디안들은 정부로부터 지급되는 돈과 농산물이 있기 때문이다. 칼리포니아도 아름답지만 다코다주의 짧은 가을은 더더욱 아름답기에 나는 서 약사의 장인에게 전화를 걸어 한번 놀러 오십사고 초청을 했으나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만 했지 워낙 바쁘다보니 올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초청의 글: “서 약사의 장인님? 칼리포니아도 아름답지만 여기 다코타의 가을은 특별히 아름답습니다. 자연 그대로 보존된 원시림이 있는가 하면 울긋불긋한 단풍은 마치 그 잎새들을 꽉 짜면 마치 붉은 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단풍 나무 사이에 숨어서 입을 우물거리며 무엇인가를 맛있게 먹고 있는 사슴이 있는가 하면 목을 길게 빼고 낮잠을 나는 글리즐리 곰들은 너무나 귀엽답니다. 샤이엔 강은 아침 이슬처럼 맑아 강물에 비친 나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으며 불랙힐스의 나뭇잎에서 방울방울 떨어져 나온 이슬들이 모여모여 흘러 내려 왔기에 그냥 마셔도 좋을 듯합니다. 자연뿐만이 아닙니다. 잠시 동편에 있는 디 스메트(De Smet)에 가서 유명한 여류작가 로라 와일더의 ‘푸른 초원의 작은 집’에 가 보십시오. 그리고 끝없이 피어있는 초원의 꽃들은 마치 빨간 융단을 펼쳐 놓은 듯합니다. 저녁 무렵에 작은 교회당에서 울리는 둔탁한 종소리를 들으며 멀리 서편 쪽을 바라다 보면 불랙힐스에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감미롭고 신비로운 바람 소리를 듣다보면 전능자, 와콘다 신이 우리를 부르는 듯 하답니다. 장인님! 한번 오십시오. 얼마 전에 아나하임에 가서 맛있게 먹었던 한국식 불고기와 수. 인디안식의 버팔로 불고기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뿐인가요, 맹세코 저는 금년에 선출된 수. 인디안의 미녀, 샤이엔을 만나게 해 주렵니다. 꼭 오십시오!“ 대충 내가 서 약사의 장인에게 보낸 초청의 글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뻐서 결국 오지 못했으며 다음 해로 연기하고 말았다. * 한국의 외가(外家): 깜짝 놀랄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 동안 소식이 없었던 서 약사가 드디어 여기 수. 인디안 보호 구역으로 다시 찾아 왔다는 소식이었다. 대추장의 명령이 하도 엄하고 보니 캘리포니아 한인 봉사단은 모든 것을 일시 중지하고 피에르를 거쳐 칼리포니아로 일단 철수 했다가 이번에는 서 약사 혼자 개인 자격으로 이곳에 다시 찾아 왔다고 하는 소문이었다. 이번에는 일절 기독교 전도는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썻기에 인디안 전사들은 과거처럼 호전적이지 않고 오히려 우호적이었다. 어쨌든 서 약사가 여기에 왔다면 나한테 들렸어야 하는데 왜 소식이 없는지 궁굼했다. 웬지 그가 나를 찾아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드디어 그 예감대로 서 약사가 나를 찾아 온 것은 1주일이 지난 10월 말의 늦은 저녁이었다. 비교적 쌀쌀한 밤이었다. 며칠 전에 나의 전화에 “꼭 만나고 싶습니다. 닥터 와이트도브!”라는 녹음이 있었기에 곧 나를 찾아 올 것이라고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마치 죽었던 친구가 찾아 온 것처럼 반가웠다. -지난 6월 어느날, 이곳에서 추방된 후 사라졌던 그가 거의 4개월 만에 이렇게 살아서 돌아 오다니.... “반갑습니다. 이렇게 찾아 주셔서......” 먼저 반갑다는 인사를 한 것은 이번에는 나로부터였다. “나도요.” 서 약사도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서 약사님? 한 달 전에 캘리포니아 아나하임에 가서 당신을 찾았는데 한국에 갔다고 해서 못 만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몬태나에 사는 아버지를 만났는데, 거기에 약사님이 찾아 왔다고 하던군요. 웬 일이었지요? 궁굼하군요.” “아! 저도 들어서 알고 있지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무엇이 감사합니까?” 나는 되물었다. “닥터.와이트도브, 나는 이곳에서 추방이 되었기에 다시 들어오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는데 인디안들이 내게 호의적으로 대해 주는 것을 느꼈지요. 알고 보니 닥터 와이트도브가 인디안 회의에서 나를 위해 적극적으로 옹호를 해 주었다고 하던군요. 위험을 무릅쓰고서 말입니다. ” “옹호를 하다니요? 당연한 말을 한 것뿐인데....” “어쨌든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그 은혜를 갚고자 아주 놀라운 사실을 가지고 찾아 왔습니다. 옛날 진시황이 불로초를 캐러 서복 장군과 동남 동녀 3000명을 보내 여기 다코타에 수. 인디안들이 살게 된 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을.....” “뭐라고요? 진시황과 불로초?”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약사님? 그 중요한 사실이 무엇인지 빨리 말좀하시지요?” 나는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젖을 달라고 보채듯이 그에게 물었다. “아-닥터. 와이트도브? 놀라운 소식은요....” 그가 더듬거리면서 말문을 열었는데 그 순간 방문이 살며시 열리면서 아내 실비아가 예쁜 나무 쟁반에 인디안 차와 과일들을 산뜻하게 깍아 받쳐들고 들어 왔기에 그는 하던 말을 중단하고 말았다. 생글거리며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이 예뻤으며 사랑스러웠다. 나와 서 약사는 하던 말을 어색하게 중지하고 그녀가 어서 쟁반을 놓고 나가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가지 않고 머뭇머뭇 거리더니 뜻밖의 질문을 하였을 때 우리는 놀라 서로 얼굴을 처다보고 있었다. “서 약사님? 그 놀라운 소식을 나도 들으면 안 될까요?” 문 밖에서 아내는 살며시 열린 문을 통해 새어 나오는 우리들의 담화를 옅들었다고 말하면서 미안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평소에 나의 아내가 나의 지갑을 뒤져보거나 남의 말을 옅듣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녀가 이렇게 버젓이 우리들의 담화를 엿들었다니,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그녀는 캘리포니아에 가서 학회도 빼 먹고 서 약사의 집을 찾은 것에 대해 일말의 의심을 품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을 하니 입맛이 뜹뜰음했다. 당황한 서 약사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닥터.와이트도브?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고 있는 듯 했다. “실비아, 같이 들읍시다.” 나는 정말 뜻밖의 대답을 했는데 잘못하면 나는 파멸의 길로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얘기하자고 미룰 수도 있었는데, 같이 듣자고 한 것이 무척 후회스러웠다. 그러기에 서 약사는 뜻밖의 허락에 무척 놀라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잠시 아내가 갖고 들어온 차를 마시기 시작했으며 과일도 곁들여 먹으며 서 약사의 입을 주시해 보고 있었다. * 마침내, 서 약사는 내가 평생 몰랐던 나의 그 비밀을 해부용 메스로 시체를 하나하나 해부하듯이 어떻게 알아 냈는지는 모르나 나와 나의 아버지의 비밀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한국 사람이 어떻게 수. 인디안의 비밀을 이렇게도 소상하게 알아 냈을까? * (지금부터의 증언은 서약사가 알아가지고 온 나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이다.) -“닥터.와이트도브? 나는 당신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고자 지난 몇 개월, 당신이 보여준 그 사진의 비밀을 알아 내려고 몬태나와 한국을 다녀왔습니다. 사실은 나의 아내가 당신을 도와 주자고 간절하게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지요. (여보! 우리가 본 그 사진 속의 한국 여인말이요. 꼭 나의 처녀시절의 내 모습이란 말입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닥터.와이트도브가 나를 보고 어디서 본 얼굴인데, 어디서 본 얼굴인데 라고 하며 나를 훔쳐 보던 것이 나에게는 간절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보였답니다. 그는 당신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인데 그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우리가 그 사진의 비밀을 알아 주는 거지요.) 그래서 나는 몬태나를 방문했답니다.“ “아! 그래서 몬태나에 있는 아버지가 내게 말했군요. 서 약사가 찾아 와 여러 가지를 묻고 갔다고...” “서 약사님? 나도 칼리포니아에 가서 당신의 장인을 만났는데 당신은 같은 시기에 한국에 갔었군요.” “그렇습니다. 한국에 가서 그 사진이 말하는 경상도 땅에 갔습니다.” “아- 그랬었군요.” 나는 그가 말하는 내용을 100% 알아 들을 수가 있었으나 나의 아내, 실비아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닥터 와이트도브? 이제부터는 듣기만 하십시오. 할 말이 많고 길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예. 듣기만 하겠습니다.” 나는 유치원 학생처럼 귀를 쫑끗 세우고 있었다. * 그가 들려준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제임스의 할아버지는 전쟁보다는 화친을 하여 교육에 전념하여야 한다는 온건 노선을 주장하다가 배반자라는 낙인을 받고 인디안 사회에서 추방되어 아이다호 주, 보이지(Boisie)를 거쳐 포카텔로에서 감자 농사를 하는 농부가 되었다. 땀과 눈물을 훔치며 열심히 일을 하였기에 그는 많은 수입을 올리기 시작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 밥 와이트도브(Bob. Whitedove)를 공부시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며 전념하였다. 아들, 밥(Bob)은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아버지에게 순종하였다. 포카텔로라는 도시는 아이다호에 있었던 인디안족의 추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도시로 인디안이 전체 인구의 25%는 되었다. 추장 포카텔로는 용맹스러웠으며 백인들과 투쟁을 할 뿐 아니라 외교도 잘하여 인디안들의 생명을 잘 보존시킨 추장이었다. 포카텔로에 있는 유황 온천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였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을 했으며 이곳에서 병도 고쳐 진다고 했다. 전사 불랙이글은 포카텔로 추장을 존경했기에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같이 여기에서 정착을 하였다고 한다. 포카텔로는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였기에 경치도 좋으며 주민들의 인심도 좋았다. 불랙이글(와이트도브)의 아들, 밥(Bob)은 총명할 뿐만 아니라 독립심이 강했으며 자기의 개성도 또한 독특했다. 문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아이디호 주립대학에 입학을 할 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그것이 1948년 8월이었다.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유사시에 2년간의 군 복무를 하기로 서약을 하였다. 아버지 불랙이글은 수. 인디안을 잔인하게 씨를 말려 죽인 미국정부가 주는 어떠한 돈도 거절하라고 요구를 했는데 아들은 이를 거절하고 장학금을 받은 것이 아버지를 노하게 만들었다. 장학금을 받은 밥(Bob)에게는 전쟁이 어디에서 발생하리라고 예상 못하고 있었다. 주립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을 가든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과대학에 가리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포카텔로 주립대학으로 진학한 밥(Bob)은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 공부에 전념을 하다가 아버지의 잔소리에서 벗어나고자 1948년 8월 미국군에 입대를 하여 훈련을 받고 미 육군 일병으로 보직을 받고 근무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극동의 고요한 신생국 한국으로 파병되어 근무하게 되어 1950년 4월, 수원 근교에 있는 미군부대로 전속을 갔다. 가능한 아버지를 만나지 않으려고 해외 주둔 사단으로 자원한 셈이었다. 처음으로 찾아온 한국이란 나라는 뜻밖에도 인디안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조용하며 평화스러웠다. 해방된지 불과 5년이었기에 경제적으로 아주 가난하여 미국의 구호로 겨우 살아가고 있었으며 북쪽에 있는 북조선도 역시 신생국가로 쏘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야 했다. 밥(Bob)이 근무하고 있는 수원 근교란 마치 아이디호, 다코타 그리고 와이오밍의 시골처럼 조용하고 평화스러웠기에 밥(Bob)은 마치 고향에 와서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한국 사람들과 얼굴도 비슷하며 도와주는 입장에 있다보니 친구요 형제처럼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근무하기에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더욱이 일본을 패망시킨 전승국, 미군이었기에 어느곳에 가든 특별 대우를 받았기에 아예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 사선(死線)을 넘어: 그런데......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아침...... 생각지도 않았던 극동의 신생국, 대한민국이 북조선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한국전쟁(6.25)이 발발했다. 5년 전에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남쪽에는 친미의 대한민국이 북쪽에는 친소 북한(조선인민공화국)이 설립되었는데 북한은 소련의 원조로 착실하게 무장을 하였으나 남쪽은 지리멸렬 무장되지 못한 채 미국에 의존해야만 되었는데, 웬 일일까?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그들의 초전 방어망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옮기면서 한국은 마침내 북한과 소련의 침공을 받게 되었다. 밥(Bob). 와이트도브가 소속된 미군부대는 소위 스미스부대라고 하는 미군, 정예부대이긴하나 밀려 내려오는 북한 군의 적수가 되질 못했다.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폭파된 한강다리를 우회하여 건넌 후 수원 근교에서 밥(Bob). 와이트도브 일병이 소속한 스미스부대를 향해 탱크에서 뿜는 포단과 곡사포는 스미스 부대를 단방에 괴멸시키고 말았다. 북조선의 화력이 생각보다 강한 줄을 전혀 예상 못한 부대장은 후퇴를 명령하였다. 수많은 사상자를 수원 근처에 남기고 남쪽으로 무조건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은 스미스 부대는 삼삼오오 패잔병이 되어 계급장과 미군 복장도 벗어버리다시피 하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도망을 하였다. 가엾게도 밥. 와이트도브 일병도 패잔병이 되어 남쪽으로 도망을 가고 있었다. 그 옛날, 수. 인디안들이 백인들에게 쫒겨 산 속으로 그리고 계곡으로 도망을 가다가 몰살을 당했던 그 잊지 못할 대학살처럼.... (그랬었다. 수.인디안들은 총칼을 든 백인들에게 쫒겨 불랙힐스로 도망을 가고 있었다. 미국 기병대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죽이려고 계곡까지도 삿삿히 뒤져 수.인디안들의 목에 비수를 꽂고 말았다. 불랙힐스의 계곡은 피바다가 되었다. 샤이엔강가로 도망을 간 수.인디안들도 마찬가지였다. 눈에 핏발이 선 백인들은 수 인디안 여성과 아이들 까지도 모조리 잡아 가슴에 칼을 꽂아 샤이엔강에 던져 버렸다. 맑은 샤이엔강도 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가까스레 살아 남은 수.인디안들은 목숨을 건지기위해 불랙힐스, 더 깊은 산속으로 도망을 가야했으며 300만명의 수 인디안은 겨우 4만명만 살아 남은 셈이었다.) 패잔병들은 밤낮으로 걸어서 무작정 남쪽으로 도망을 가고 있었다. 갖고 있던 양식도 다 떨어졌으며 구두도 너덜너덜 뒷축이 떨어져 나가고 보니 영낙없는 거지가 되어 농가에서 밥을 얻어 먹기도 했으며 때로는 밭에 들어가 채소와 농작물을 훔쳐먹기도 했다. 낮에는 숨고 밤이 되면 올빼미 처럼 무조건 남쪽을 향해 걸었다. 적의 포성 소리가 뒷편에서 들렸는대 이젠 앞 쪽에서 들려 오는 것으로 보아 패잔병들은 낙오가 된 셈이었다. 1950년 7월 20일, 북한군은 마침내 대전을 함락하였으며 전라도 지방과 추풍령을 항해 탱크를 앞세우고 남하하고 있었다. 밥. 와이트도브는 추풍령을 넘어 김천을 바라다 보는 지점에 도달했으나 팔다리가 아파 더 이상 걸어가기도 힘들었다. 추풍령 북쪽편에서 대포 소리가 들리는가 했는데 7월 30일, 북한군은 밥.와이트도브와 패잔병들을 앞질러 구미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결국 패잔병들은 북한군의 뒷편에 처져 고립이 되고 말았으나 그들은 그들의 위치를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 -1950년 7월 말, 제 8군 사령관 워커(Walker) 장군은 대한민국을 사수하기 위해서 최후의 보루인 부산을 지켜내려면 북한군의 우회 돌파가 허용되지 않도록 방어선을 단단히 구축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워커장군은 전선을 좀더 축소하여 부대간의 거리를 단축함과 동시에 절약된 병력으로 예비대를 구성하여 결사 항전하기로 구축한 교두보가 낙동강이었다. 낙동강 교두보를 구축하기 위해 한반도의 90%을 내어 주고 그간 7만여 명의 희생을 감수하였다. 모든 병력을 낙동강 이남으로 후퇴를 시키고 8월5일에는 왜관 철교를 푹파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마침내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부산 사수를 지시하는 등 반격의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으나 북한군의 공격은 더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 가련한 밥(Bob)과 동료들은 마침내 구미를 지나 칠곡군 전덕면 전덕 고개에 도착하여 앞을 내다보니 왜관읍이 보였으며 그 넘어로 끊긴 낙동강의 왜관 다리가 보였다. “다리다, 다리!” 패잔병들은 흥분하였는데 그것은 후퇴 할 때 상관의 지침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왜관과 왜관 다리를 건너면 너희들은 안전한 거다. 꼭 왜관 다리를 건너 대구로 오라!” ‘그렇다면 저 다리를 건너면 대구가 멀지 않고 이제는 살 수가 있는 거다....’ 밥. 와이트도브는 입술을 꽉 물었다. 8월 초, 전덕 고개에는 나무들이 빽빽했기에 숲속에 숨어 있으면 북한군의 눈에 뜨지 않을 것 같았다. 멀리서 뵈는 낙동강은 여름날 내린 비로 인해 제법 많은 물이 흐르는 듯 했으며 왜관 다리가 며칠 전에 끊어졌으니 낙동강을 건넌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더 불행한 것은 우물주물 하다가 이미 전덕면을 일부 점령한 북한군에게 발각되어 공격을 받게 되었다. 아직 어둡기 전에 숲 속을 나와 낙동강을 정찰하다가 북한군에 의해 발각이 되었다. 엎드려라! 패잔병 선임 하사가 큰 소리로 외쳤을 때 패잔병 밥(Bob)도 바위 옆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갑자기 굉음이 울리면서 수류탄과 총탄이 숲 속에 숨어 있는 패잔병들을 향해 날라 들어오고 있었다. “몸을 더 낮추라!” 선임 하사가 큰 소리로 외쳤을 때 밥(Bob).일병은 굉음소리를 뒤로 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낙동강이 빤히 보이며 왜관 다리를 지척에 두고 이렇게 죽다니....저기 보이는 왜관 다리를 건너면 살 수 가 있는데...... 다리를 못 건너고 쓸어지다니... 너무나 아쉬었다. 모든 것이 여기서 이렇게 물거품이 되다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나 밥(Bob). 일병은 한기를 느끼면서 눈을 떳다. 무엇인가 보이기는 하나 모든 것이 희미했으며 어둑어둑해진 저녁무렵이었다. 북한군에게 공격을 받고 쓸어졌던 것을 기억해 내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와중에 살아 난 것이 기적이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으며 심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을 움직이기가 조금씩 용이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움직여 보았으며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뜻밖이었다.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밥 일병은 오른쪽 허벅지에 많은 피가 응혈되었으며 어깨가 무거워 팔을 올리기가 힘들었다. 가까스레 정신을 차리고 옆을 둘러 보니 동료 백인 병사가 무참하게 죽어 있었다. 수류탄 파편에 머리를 다쳐 얼굴이 이글어져 형체를 알아 보기가 힘들었으며 누구의 짓인지는 모르나 총검으로 가슴을 찔려 죽은 동료도 있었다. “아니! 딕(Dick)! 딕!” 흔들어 보았으나 그는 이미 얼음장처럼 찬 시체로 변해 있었다. 딕은 멀리 알라바마에서 온 역시 20살의 백인 병사였는데 그와 같이 다니다 보니 형제와 같았는데 그는 이렇게 여기 극동의 작은 신생국, 한국에서 죽고 말았다. 같이 내려온 패잔병이 5명이었는데 모두 다 죽었는지...... 밥(Bob)은 딕(Dick)을 옆으로 끌어다 놓고 나뭇잎과 가지로 덮어 주었다. 묻어 줄 힘은 없으나 그래도 짐승이나 까마귀의 밥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딕(Dick)! 네가 믿는 예수의 곁으로 가거라. 내가 미국에 가면 알라바마의 네 집으로 가서 네가 장렬하게 한국을 위해 죽었노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그는 같이 내려왔던 동료, 리차드(Richard) 일병이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리차드! 리차드!”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순간 겁이 나며 눈앞이 핑 돌았다. 밥(Bob)은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혹시라도 북한군이 노려 보고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밥(Bob)은 바위 틈새에 쓸어져 죽은 리차드(Richard)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리차드는 가엾게도 한쪽 다리가 꺾여 있었으며 머리에 수류탄의 파편을 맞은 듯했다. 수류탄의 위력에 언덕으로 굴러 떨어지며 죽은 듯했다. “리차드! 리차드!” 밥(Bob)은 리차드의 손을 잡았다. 순간 얼음처럼 찬 손이 밥(Bob)을 놀라게 했다. “리차드(Richard)! 졸업하면 법과대학에 간다고 했었는데.....뉴저지에서....” 얼굴이 반듯한 백인의 프린스톤 대학생이었던 리차드는 무시당하고 살아온 흑인과 소수민족을 위해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고 했었는데 여기 한국전쟁에서 낙동강을 눈앞에 두고 죽다니.... 밥(Bob)은 역시 리차드를 돌 틈에서 꺼내 반듯이 누인 후에 나뭇잎으로 가리워 주었다. 나머지 두명은 어떻게 됐을까? 죽엇는가? 아니면 도망을 갔는지..... 8월초의 황혼은 아름다웠으나 전우를 잃고 홀로 된 패잔병 밥(Bob).에게는 절망감만 남았으며 두려웠다. 그래도 5명이 같이 행동을 했을 때는 서로 위안이 되었으며 외롭지는 않았는데 홀로 되고 보니 망망대해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잃고 떠 다니는 조각배와 같았다. 문득 다코타에서 보던 샤이엔 강이 굽이굽이 흘러 미쥬리 강과 만나듯이 낙동강은 말없이 왜관 다리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가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포성이 울리고 있었다. 긴 8월 저녁, 꺼져가던 장작불이 마지막 용틀음을 하고 서편으로 꺼져 들면서 캄캄한 밤이 찾아 왔기에 밥(Bob)은 허벅지를 손으로 누르면서 가다 서다 절룩거리면서 어기적 어기적 불빛이 보이는 동네를 향해 내려갔다.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는데 가만히 올려다보니 다코타에서 보던 인디안의 별들이 여기 한국에도 있었다. 불랙힐스의 정상에서 보았던 그 별, 쉐난도아의 별도 있었다. 허기진 배를 웅켜 잡기도 하고 아픈 허벅지를 누르면서 그는 밤새 동네로 내려왔다. 그곳이 바로 전덕면의 한 귀퉁이었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초가집이 하나 보였으며 그곳에 불이 켜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가 보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있음을 확인한 밥(Bob)은 도와달라는 소리를 치다가 힘에 부쳐 정신을 잃고 쓸어져 버렸다. 피를 너무 흘렸나 보다. 이른 새벽이 되었다. 운이 좋아 60살이 조금 넘은 김 노인(金 老人)이 밖으로 나왔다가 문 앞에 쓸어져 있는 패잔병 밥(Bob)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혹시 북한군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누더기 옷을 입은 남자였는데 한국사람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얼굴을 가진 청년이었다. ‘인민군(북한군)도 아니고? 국방군도 아닌데....’ 김 노인은 그 청년을 들쳐 엎고는 방으로 들어와 상처를 씻어 주었으며 입에 물을 조금씩 넣어주니 청년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으며 무슨 말을 하였는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끔 신음 소리를 내며 알아 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가사를 돕고 있는 딸이 이 광경을 보고 주의깊게 들어 보니 뜻밖에도 영어임을 알게 됐다. “아버지, 영어를 하네요. 영어를....” “영어? 그렇다면 미국 사람이란 말이냐?” “....” “그렇다면 미군 패잔병이구나. 미군! 우리를 도와준...” 김 노인은 혼잣말을 했다. “여보? 어쩔라고 그라우? 미군인 줄 알면 우리는 다 죽어요. 전덕면은 온통 인민군(북한군)의 수중에 있는 것을 모릅니까?” 김노인의 부인은 안정부절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알고 있소. 미군이라면 우리나라를 도와 주러 온 은인이요. ” “그러긴 하지만, 여보? 인민군에게 넘겨 주세요.!” 부인은 답답하다는 듯이 남편에게 제안을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줘야지. 우리를 도와주러 온 은인인데..” 김 노인은 중풍으로 누워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에 기동을 못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낙동강을 건너 피난을 갈 수가 없어 집에 머물고 있었다. 물론 아내와 딸 하나도 집에 숨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낮에는 국방군이 전덕면을 통치하고 있다가 밤이 되면 북한군이 출몰하는 기이한 현상이 며칠을 두고 벌어졌기에 낮에 만나는 동네 사람들을 통해 전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전황도 수일내에 바뀔 거라고 하는 불길한 말이 오고 갔으며 반대로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이 곧 반격을 할 거라는 말도 들렸다. 그러나 끊어진 왜관 다리를 보면서 북한군의 횡포도 심각했기에 전덕면은 두 개의 정권이 밤낮으로 바뀌는 동네였다. * -낙동강 전선에서 가끔 국방군의 승리도 전해지고 있었다. 워커 장군의 지휘 하에 영천 전투, 성주 전투가 있었는데 인민군에게도 타격을 주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속에서 낙동강 사수만이 살 길이었다. 낙동강 전선이 붕괴되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존재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 * 패잔병 밥(Bob) 와이트도브를 숨겨두고 치료를 해 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것도 밤낮없이 찾아다니는 북한군의 눈을 속인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기동을 못 하는 어머니는 사랑방에 계셨는데 대소변을 가누지 못 하다보니 방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으며 볏집과 쌀가마를 쌓아 둔 공간이 그래도 가장 좋은 장소였다. 김 노인은 밥.와이트도브 일병을 사랑채 윗편에 쌀가마를 쌓아 둔 곳에 숨겨두고 음식을 하루 두 번씩 공급했으며 대소변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치워 주었다. 김 노인의 딸이 있었다. 그녀도 역시 20살로 밥(Bob)과 같은 나이였으며 아름답기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처녀였다. 그녀도 또한 낙동강을 건너지 못한 것은 부모를 두고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기에 낮에는 집에 숨어서 살다가 밤이 되면 천장이나 다락 속에서 숨어 있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부상을 당하고 집에 숨어 들어온 밥(Bob)이라는 청년을 간호, 치료를 해주었으며 주먹밥과 같은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날라다 주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을 도맡아 하였다. 패잔병 밥(Bob)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했다. 허벅지에 수류탄 파편이 스친 자리에는 깊은 상처와 염증이 생겨 곪고 있었기에 파리가 달라 붙었으며 어깨는 심한 타박상으로 움직일 때마다 아픔이 심했다. 젊은 처녀의 이름은 김(金).성(聖).숙(淑)이라고 했으며 보통 키에 홀쭉한 모습이 전형적인 경상도 시골 처녀로 말수가 적었다. 처음 밥. 와이트도브 일병을 만난 김성숙 처녀는 미국 사람이기에 겁이 났으나 아픔과 고통으로 고생하는 젊은 청년을 간호하면서 비록 인종과 종교는 달랐지만 오히려 불쌍하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미군이라면 백인이거나 흑인을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한국사람처럼 생긴 밥(Bob)은 도대체 어디 사람인가?라는 궁굼증도 생겼다. 그러나 감히 묻기가 힘들었음은 미군에 대한 겁과 영어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전덕면이 북한군의 수중에 놓였으며 낮에도 북한군이 민가에 나타나 음식을 뺏거나 남자들을 잡으려고 눈을 부라렸으며 밤에는 만만한 여성을 찾아 겁탈을 하기도 했다. 김 노인의 집도 마찬가지였기에 젊은 처녀 김성숙은 낮에도 다락에 숨거나 방공호에 숨어있어야 했다. * -낙동강 전선이 예상 외로 뚫리지 않으니 북한군은 더더욱 신경질적으로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군(국방군)이 다부동 전투에서 큰 승리를 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구에서는 자발적으로 국군에 입대하는 젊은이들이 줄을 섰다고 하였다. 유엔 안보리에서 유엔군이 참전을 하기로 했으며 16개 국가가 군대를 파견한다고 했다. - * 아무리 북한군의 경계가 심하다고는 하나 패잔병 밥(Bob)은 운 좋게 발각되지 않았으며 상처도 점점 회복되고 있었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은다고는 하나 음식을 공급해 주며, 상처를 치료해 주는 한국 농촌의 노인들과 젊은 처녀의 정성 앞에 봄이 되어 날이 따슷해 지자 겨우내 얼었던 땅을 비집고 나오는 새싹처럼 사랑의 움이 트고 있었다. 가족과 사랑---위로와 사랑, 바로 이것이 사랑의 새싻이었다. 시골 처녀 김성숙의 정성스러운 치료와 음식, 그리고 냄새나는 분비물을 치워주는 그 정성 앞에 미국 사람의 마음도 한국 사람의 마음과 동화되고 있었다. 틈틈히 밥(Bob)과 김 노인 가족들은 영어를 조금하는 처녀, 김성숙의 통역(?)을 통해 그리고 발과 손짓으로 대화를 하였다. “어디서 왔소? 그리고 이름은 무엇이요?” “미국 아이다호에서 온 밥 와이트도브(Bob Whitedove) 일병입니다.” “어디요? 미국? 아이다호?” 모든 것이 놀라웠으며 잘 모르는 내용들이었다. “미국 사람이라면 얼굴이 흴 텐데 어째서 우리들처럼 누런 색이요?” “아, 나요? 인디안입니다. 수. 인디안(Souix Indian)!" "인디안이라고? 그런데 수. 인디안은 또 뭐요?“ 김 노인의 가족에게 인디안이란 가끔 영화에서 나오던 머리에 독수리 깃을 꽂고 도끼를 들고 백인들과 싸우다가 처절하게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인디안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인디안이라고 하니 섬찍했다. 혹시라도 괴성을 지르며 칼을 휘두를 것 같았는데 밥(Bob)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니 그럴 위인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어차피 밥(Bob)이란 인디안 미군병사는 상처가 아물게 되면 이곳을 떠나 가 버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김 노인과 가족은 한국을 위해 참전했다 패잔병이된 밥(Bob)을 정성껒 치료하여 살려 보내는 것만이 그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미군 패잔병, 밥(Bob) 일병의 병세는 하루하루 좋아졌으며 이젠 혼자서 걸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병세가 좋아지면 질수록 김 노인은 더 불안하였다. 언제 북한군(인민군)이 집으로 들어 닥쳐 올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어느날 저녁이었다. 북한군 2명이 총칼을 들고 집으로 들어 닥쳤는데 눈치를 챈 김성숙은 미리 익혀둔 훈련으로 다락을 통해 특별히 개조된 천장으로 숨어 들어가 몸을 감추었으며 패잔병, 밥(Bob)도 사랑방 윗쪽에 쌓아둔 볏집과 쌀가마 사이에 몸을 숨겼다. 인민군들은 김 노인집에 누군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왔기에 눈에 핏발이 섰으며 혹시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김 노인은 인민군(북한군)의 협박에 끄떡도 하지 않으니 인민군들은 김 노인을 총칼로 욱박지르기 시작하니 옆에 있는 김 노인의 아내는 참다 못해 겁이나서 거품을 토하며 쓸어지고 말았다. 성난 인민군들은 총칼로 천장을 여기저기 찔러 보았으나 총칼이 그녀가 숨어 있는 위치에 아슬아슬 닫지 못했다. 성이 난 인민군들은 이번에는 사랑채로 들어갔으나 중풍으로 누워 있는 노인 할머니를 보자 섬짓 놀라면서 위에 싸둔 쌀가마니를 역시 총칼로 찔러보았다. 그러나 방에서 나는 악취가 너무나 심하다 보니 코를 훌쩍거리고 말았다. “와! 냄새- 내래 똥 냄새야, 할망구! 더럽구먼!” “아-아파요....아파....” 노인 할머니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더러워! 죽여 버릴까보다!” 성난 인민군 하나가 큰 소리를 쳤다. “그냥 두라고! 괜히 총알만 아깝지.....에이! 나가자!” 별 소득이 없자 인민군들은 애꿎게도 닭장에 있는 닭 두 마리를 거칠게 채가지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으나 와콘다 신의 도움으로 밥(Bob)과 처녀 김성숙은 목숨을 부지할 수가 있었다. 인민군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사랑채 윗목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밥(Bob)과 천장에 숨어 있던 김성숙 처녀는 김 노인의 가족을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토록 어려운 일을 같이 겪다 보니 김 노인과 밥(Bob)은 비록 인종은 다르나 한 가족이 된 기분이었으며 자연스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15일간의 짧은 기간, 아니 15년과 같이 긴 기간은 그들에게는 잊지 못할 인생의 한 마디였다. 아슬아슬한 순간을 모면한 김 노인의 집은 언제나 불안했다. 낙동강을 앞에 두고 밤과 낮이 바뀌는 곳이 전덕면이었으니까...... 낮에는 그래도 국방군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다소 안전한 듯 했으나 오늘은 달랐다. 오정이나 됐을까? 배가 고픈 듯이 보이는 두 명의 인민군이 따발총을 들고 김노인의 집으로 들어 왔다. 다행이 눈치를 챈 패잔병 밥(Bob)과 처녀 김성숙은 능숙하게 각각 평소에 마련해 둔 숨을 곳으로 들어갔다. 역시 총을 들고 들어온 두 명의 인민군은 똥 냄새가 나는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 왔다가는 기겁을 하여 밖으로 나와 엉뚱하게 김노인을 족치기 시작했다. “말하라! 어디에 숨겼나? 양키 놈을 숨겨 뒀다고 하던데, 말하라!” 김 노인이 대답을 하지 않자 인민군은 따발총으로 김 노인을 후려쳤다. “악-”하고 김 노인은 땅바닥에 넘어졌으며 이마에서 그리고 어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말하라!” “여긴 그런 사람 없습니다.” “거짓말!” 인민군은 이번에는 발로 넘어져 있는 김 노인의 등를 걷어 차고 말았다. “악!” 김 노인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악취가 나는 사랑방에서 아우성 소리를 듣고 있던 밥(Bob)은 당장 뛰쳐 나가 김 노인을 구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친가지로 천장에 숨어 있던 성숙도 마친가지였으며 제발 아버지가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마침내 옆에서 살려달고 빌고 있는 김 노인의 부인을 인민군들은 발길로 세게 차버렸다. “아이구!” 김 노인의 아내도 땅바닥에 쓸어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순간 가까이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제길! 남조선 놈들이 오는가 보군...가자. 빨리!” 두 명의 인민군은 국방군이 나타났다고 생각을 했는지 서둘러 집 밖으로 도망을 갔기에 위기를 모면하였다. 하루 하루가 이토록 힘들었다. 영천에서 다부동에서 국방군과 미군이 인민군을 격퇴했다는 소문이 들리기는 했으나 전덕면은 안전한 곳이 못 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패잔병 밥(Bob)은 이제 완쾌되어 혼자 어디든지 갈 수가 있었기에 불안하게 여기에 숨어 있느니 보다 위험을 무릎쓰고 낙동강을 건너 대구로 가면 그곳에 있는 미군 사령부에 찾아 갈 수 있으리라고 계산을 했다. 김 노인도 그의 생각에 동의를 하였으며 달이 없는 그믐날을 이용하여 낙동강을 몰래 건너기로 계획을 세웠다. 김 노인은 뱃사공 친구에게 특별히 부탁을 하여 낙동강을 건널 나룻배를 준비해 놓았다. 왜관 다리 북쪽에 있는 갈대밭을 이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믐날, 으스름 저녁이 왔다. 김 노인은 주먹밥을 준비했으며 김성숙은 갖고 있던 흑백의 가족사진을 패잔병 밥(Bob)에게 기념으로 주었다. 그 사진에는 김 노인과 어머니 그리고 김성숙이 같이 웃으면서 찍은 모습이었으며 한 장은 김성숙 혼자 찍은 사진으로 다소 긴장한 듯이 웃음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 뒤에는 경상북도 칠곡군 전덕면 구서리 27번지. 김성숙(金聖淑)이라고 써서 주었다. 그들은 그가 여길 떠나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였다. 혹시 운이 나쁘면 인민군에게 잡힐 수도 있으며 아니면 낙동강 급류에 빠질 수도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패잔병, 밥(Bob)은 경상도 처녀 김성숙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손은 따슷했으며 밥(Bob)은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그녀의 손을 놓지 말고 평생을 살고 싶었다. 영원히, 그 손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 손을 더 꼭 잡았다. “성숙씨!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언젠가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반드시! 꼭 기다려 주세요.” 그는 조용히 그리고 강하게 말했다. “........” 김성숙과 김 노인은 눈물을 흘리는 밥(Bob)일병을 바라다 보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가능한 약속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자, 청년? 갑시다.” 김 노인은 밥(Bob)의 손을 잡았다. “예.” 그는 손을 놓고 의미있는 대답을 하였을 때 그의 미음 속에는 “반드시 찾아 오마. 그리고 나는 성숙씨를 나의 아내로 맞이 하리라.”라고 결심을 하였다. 밥(Bob)과 김 노인은 캄캄한 밤이 되자 낙동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동네 어귀를 거의 빠져 나갈 즈음에 운이 나쁘게도 따발총을 든 인민군 병사 하나를 만났다. 김 노인은 흠칮 놀랐으나 정신을 가다듬었다. “동무들? 어디로 가는 거요? 이 자는 누구야?” 인민군은 밥(Bob)을 보고 물었다. 순간 김 노인은 밥(Bob)을 옆에 두고 혼자 인민군에게 가까이가서 대답을 하였다. “인민군 동무, 수고 하십니다. 이걸 좀 잡숴 보시라구요. 아- 이 애 말이요? 내 아들인데 날 때부터 벙어리라서 말을 못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인민군의 손에 무엇인가를 집어 주었다. “이게 뭐요?” 인민군은 계면쩍은 듯이 물었으나 그의 손에 느끼는 것이 꽤나 값이 있어 보였는지 조용했다. “아-아- 금반지랍니다.” “금반지?” 인민군에게는 아주 큰 선물이었기에 횡재를 한 느낌이었다. “가보시라요, 날래!” 그리고 그는 묵인해 주었다. 순간 김 노인은 늙은 아내가 생각났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값은 별로 나가지 않는 오래된 금반지이지만 일본 놈들의 눈치를 보면서 가까스레 만들어 끼어준 결혼 반지였는데 늙은 아내는 이 반지를 평생의 보물로 장롱 깊숙이에 감춰 두고 보관했기 때문이었다. - 한국 여성들에게 금반지란 무엇인가? 남편과의 약조이며 생명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죽음을 무릎쓰고 평생 보관하여야 하는 사랑의 표시였다. 김노인과 그 부인에게 있어, 이 빈약한 금반지는 그들의 모든 것이었다.- ‘여보! 마누라, 어쩌겠소? 대한민국을 구해 주려고 온 미군 패잔병을 살려주려고 하니.... 언젠가 다시 더 좋은 반지를 만들어 주리이다.’ 김 노인은 밥(Bob)의 손을 잡고는 잽싸게 어둠 속으로 도망쳐서 드디어 낙동강 가에 있는 갈대밭으로 숨어 들었다. 그리고 그 둘은 밤 늦게까지 그 곳에 숨어 뱃사공의 신호를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갈대밭 주위에는 달이 없다 보니 칠흙같이 어두웠고 가끔 어디에서인지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강가에서는 갈대끼리 부딫치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마치 먼 옛날 수. 인디안들이 백인들을 피해 도망가는 그 모습이라고 느껴졌다. 밥(Bob)의 눈에는 멀리 샤이엔 강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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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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