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샤이엔의 언덕 파트 5

2012.01.22 15:50

연규호 조회 수:544 추천:18

그녀는 한국 사람이었다. 12. 어머니, 샤이엔, 어쨌거나 인디안 청년, 밥(Bob)은 인디안 사회를 떠나 백인들이 사는 샤이엔 시(Cheyenne city)에 와서 한국에서 올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일년..... 정말 힘들고 지친 일년이었다. 한국에 사는 김성숙 처녀는 ‘샤이엔 와이트도브 (Sheyenne Whitedove)'라는 이름으로 이민 신청을 하여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멀리 미국에서 온 비행기 표와 여객선 승선표에도 분명, 샤이엔 와이트도브라고 찍혔으며 행선지는 와이오밍주 샤이엔시였다. 경상도 처녀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시집을 간다고 하니 온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축하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왜 미국으로?’라고 의문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샤이엔 와이트도브(김성숙)는 한국 경상북도 칠곡군 전덕면을 떠나 아버지와 같이 왜관에 가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규모도 보잘 것 없는 군과 민간이 공용하는 김포공항에서 마침내 사랑하는 아버지의 곁을 떠나 일본으로 가는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당분간 볼 수가 없다고 하니 가슴이 메였다. “아버지? 어머니? 꼭 모시러 오겠습니다. 반드시!” 성숙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잘 살거라. 미국이란 나라는 좋은 나라이니까... 우리도 너를 보러 꼭 가마!” “어머니! 아버지! 오래 오래 사세요.” 성숙은 땅바닥에 넢죽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가 패잔병 밥(Bob)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도와 주었기에 딸 성숙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으니 아버지를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원망을 해야 할지.....비행기속에서 그녀는 여러차례 생각을 해보았다. 이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 언제나 다시 돌아 올까? 아마도 미국과 한국은 너무나 멀리 있기에 불가능하리라고 생각을 하였다. 아마도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국에 가서 남편 밥(Bob)과 정말 좋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리라고 각오를 하였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여객선을 타고 산프란시스코까지 오면서 웬 일일까 그녀는 배 아래 뵈는 태평양을 자신이 스스로 혜엄을 쳐서 건너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아마도 수십 년에 걸쳐서.......마치 진시황이 보낸 서복 장군의 수하들인 동남동녀처럼 수많은 세월을 보냈으리라.... 그러나 역사에 밝지 못한 성숙은 수. 인디안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며 오로지 미국 사람은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와이 호누룰루 항구에서 하루를 쉬는 동안 미국 수속 입국을 하였는데 분명히 영주권에 샤이엔 와이트도브라고 이름이 밖여 있었다. 산프란시스코까지 약 일개월이 걸렸는데 샤이엔에게는 영어를 배울 아주 좋은 기회였다. 처녀의 몸으로 한달에 걸친 긴 항해는 사실 무리였으나 그래도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게 된다고 하니 오히려 즐거웠다. 산프란시스코에서 하루를 잔 후 아침에 산프란시스코 공항으로 가 덴버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영어가 서툴다 보니 혹시라도 비행기를 놓칠까 걱정을 하였다. 비행기를 갈아 탄다고 하는 것이 이처럼 어려울까? 겁이 나기도 했으며 공포에 질리기도 했다. 산프란시스코에서 갈아탄 비행기가 럭키 산맥을 넘어 갈 때 샤이엔 와이트도브는 마치 독수리 깃을 머리에 꽂은 사나이들이 산등성이에서 손을 흔들며 환영을 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한국에서 시집오는 수. 인디안, 샤이엔 처녀!”라고. 콜로라도 덴버 공항에 내려 꽤 큰 이민 가방을 들고 사람들에 밀려 밖으로 나오니 꿈에도 그리던 남편 제임스 와이트도브가 기다리다가 샤이엔을 보자 달려와 와락 끌어 안았을 때 비로소 그녀는 그녀가 살 집에 왔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살았구나----’ 그녀는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다가 만나게 되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몸을 밀착하여 부등켜 안게 되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친가지였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 보아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보이지 않았으며 다른 친척도 없었다. 그리고 남편이 운전하고 가는 낡은 자동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는 곳은 시아버지, 불랙이글이 산다는 아이다호가 아닌 와이오밍이었다. 1953년 7월의 럭키 산과 와이오밍의 불랙힐스는 우거진 나무로 인해 모든 것이 진 초록이었다. 처음으로 타본 비록 낡은 차이기는 하나 쉐비 임팔라는 그녀에게는 황홀한 신혼여행으로 이끌어주는 자동차였으며 밥(Bob)은 아주 훌륭한 영원한 운전사였다. “밥(Bob)!, 사랑해요.” 샤이엔은 운전하고 있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아 보았다. 아주 따슷했으며 손목에서 맥박 뛰는 소리가 샤이엔의 온몸을 지진 처럼 뒤 흔들고 있었다. * 한국에서 온 인디안 색시: 1953년 7월..... 밥 와이트도브가 목숨을 바쳤던 한국전쟁은 마침내 휴전 협정으로 38선이 아닌 휴전선으로 인해 남북으로 갈리웠으며 전쟁의 포성이 그치자 남쪽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삽과 쟁기를 들고 논밭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울러 전쟁 미망인, 상이용사, 거지, 부모를 잃은 고아들로 인해 한국 전체가 전쟁이 할키고 지나간 손자국으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울음과 한숨이 넘쳐 나고 있었다. * 마침내, 한국에서 온 샤이엔(성숙)은 남편을 따라 그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와이오밍주 샤이엔을 거쳐 10마일 북쪽에 있는 쇼쇼니(Shoshone)타운에 도착하였다. 생각해 보면 꿈과 같은 만남이요 결혼이었다. 비록 영어가 서툴러 의사를 전달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었다. 비록 아버지와는 인연을 끊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아들 제임스는 아버지 불랙이글에게 새 며느리가 도착했으니 찾아가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했으나 수. 인디안이 아니기에 만나주기를 거절했다. “수. 인디안이 아닌 여자와 결혼은 안 된다고 했느니라....” “아버지!” “안 된다!” 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했으며 더 이상의 대화가 되질 않았다. 미국에 가면 시아버지를 만나 대단한 환영을 받으며 아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리라고 기대를 하였건만 시아버지는 만나주지도 않으니 샤이엔은 낙담하였다.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는 한 줌의 부케를 들고 수 많은 인디안들 앞에서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하리라고 기대를 했는데 어느 누구도 환영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미국에서의 호화로운 결혼식은 생략을 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온 처녀 샤이엔이 관찰한 것 중에 하나는 미국에는 소수민족이 많이 있는데 바로 흑인과 인디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인디안들은 백인들로부터 부당한 차별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모든 것이 기대 밖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백인들이 바라보는 인디안도 시답지 않은데 하물며 한국에서 온 샤이엔을 대하는 백인들도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 밥(Bob)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며 큰 위로가 되었다. 캄캄한 밤이면 가끔 집 뒷편에서 카요티의 울부짖는 소리와 늑대의 섬찍한 울음 소리가 무서웠지만 남편과 같이 있는 한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와이오밍의 장대비와 천둥 번개도 두렵지 않았다. 산세가 험한 와이오밍의 여인들은 카우보이들보다 더 강하다고 했지만 경상도 여인은 와이오밍의 여인들보다 더 강했다. 경상도에서 온 김성숙은 쇼쇼니 마을에서 샤이엔 와이트도브로 불렸는데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집들이기는 했지만 조용한 시골 농가의 사람들은 정말로 친절했다. “와! 예쁘기도 하지. 인디안 아가씨군요? 나는 옆집에 사는 밀러 부인((Mrs. Miller)이라고 해요. 남편은 아일랜드 계통이고 나는 독일 계통이랍니다. 이름은 그레첸(Grechen)이라고 부른다오. 그레첸.” 옆집에 산다는 밀러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한 말이었다. “예, 그렇습니까? 저는 얼마 전에 남편 따라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국에서? 그렇다면 당신은 인디안이 아니군요? 꼭 인디안, 수. 인디안처럼 생겼는데....” “수. 인디안처럼?” “그래요. 수.인디안처럼. 그렇다면 앞으로는 한국에서 온 인디안 색시라고 부르겠습니다. 어떻소? 한국에서 온 인디안 색시?“ “한국에서 온 인디안 색시...... 그렇게 하세요.” 결국 김성숙은 한국에서 온 인디안 색시로 불리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샤이엔(성숙)의 영어 실력도 매일 매일 몰라보게 진전을 보았으며 미국 생활에도 점차 적응하게 되었다. 집 뒤뜰에 옥수수를 심었으며 감자도 심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처럼 도마도와 고추 그리고 가지와 깨도 심었다. 남편을 졸라서 옆집 밀러 여사네처럼 송아지를 몇 마리 사서 울타리도 만들어 작은 목장을 만들었다. 움직이는 괴물처럼 보였던 자동차도 운전할 수 있게 되어 이젠 혼자 샤이엔(Cheyenne)시내에도 가서 장을 보기도 했다. 남편 밥(Bob)은 아침 일찍이 샤이엔 산림청으로 출근하였다가 저녁 늦게 퇴근하여 집에 들어 왔다. 때로는 깊은 산 속으로 출장을 나갔다가 며칠만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샤이엔(성숙)은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과 사랑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해가 바뀌어 1954년 8월에 샤이엔은 아들을 낳았다. 남편 밥(Bob)은 춤을 덩실덩실 추었으며 이름을 제임스(James)라고 지었다. 제임스는 분명, 수. 인디안의 후손이었다. 아버지 밥(Bob)은 기뻤으나 할아버지 불랙이글은 기쁘기보다 세상에 알려질 까봐 걱정이 되어 찾아 오지도 않았다. 한국 여자를 통해 태어난 아들이기에 수. 인디안의 순수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결코 수. 인디안이리고 부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밥(Bob)은 사랑하는 여인을 통해 낳은 아들이기에 순수한 인디안이든 아니든 그는 기쁘다고 하며 아들을 안고 활짝 웃었다. 결국 밥(Bob)은 언덕 위의 작은 집에 웃음이 가득한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들었으니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 뿐인가, 밥(Bob)은 산림청에서 승진을 했으며 연봉도 올랐다. 그리고 뒷뜰에 심어둔 옥수수, 감자, 가지, 도마도 오이들도 풍성하게 자라 열매를 맺었는가 하면 송아지들도 자라 이젠 제법 큰 소들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인디안 보호 구역을 떠나 당당하게 백인들의 사회에서 어깨를 나란히 살아가고 있었다. * 한국에서 온 인디안 색씨, 샤이엔(성숙)에게 몇 가지 의문이 생기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남편과 시아버지는 그토록 사이가 좋지 않아 의절까지 했는가?’ ‘수. 인디안은 소수 민족이기에 백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여 인디안 보호구역에서 사는데 왜, 남편은 그들과 같이 살지 못 하는가?’라는 의문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샤이엔(성숙)은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백인과 인디안과의 피비릿내 나던 싸움을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 인디안이 중국의 진시황이 보낸 후손이라는 것도 근자에 와서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수 인디안이 갖고 있는 종교관이 얼마나 엄하고 독선적인가를 알게 되었다. 수. 인디안이 아닌 한국 사람으로 수. 인디안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은 수. 인디안의 사회에서 축출 당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와콘다 신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와콘다라는 신이 얼마나 무서운가? 샤이엔은 남편 밥(Bob)에게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여보!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을 자유롭게 해 주고 싶습니다.” 13. 와콘다 신의 저주, 함부로 내 뱉은 말에는 씨가 있다고 했듯이 샤이엔이 한 말에도 씨가 있었다. - 불랙힐스에 있는 전능한 와콘다 신에 의해 창조된 수. 인디안들은 어린 아이를 낳게 되면 한 살이 되기 전에 반드시 불랙 힐스로 데리고 올라와 와콘다 신에게 경배를 한 후 축복을 받아야만 진정한 수. 인디안이 된다고 했다. 샤이엔의 아들 제임스도 태어난 후 와콘다 신을 만나야 했는데 할아버지 불랙이글은 제임스가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기에 와콘다 신을 만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결코 불랙힐스에 가지 마라! 와콘다 신이 노하시리라! 가지 마라!” * 아들이 한 살이 되어 오자 남편, 밥(Bob)은 아내 샤이엔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여보! 아들, 제임스를 위해 나와 같이 갈 데가 있으니 준비하시오!” “어디를 가시려고요?” “따라 와 보면 알게 되오.” “.........” 아내 샤이엔도 남편과 같이 살면서 수. 인디안들에 관한 많은 것을 알게 됐는데 특별히 샤이엔 강과 불랙힐스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한번도 아내 샤이엔을 데리고 샤이엔 강과 불랙힐스에 같이 간 일이 없었다. 남편 밥(Bob)은 비록 그가 한국 여자와 결혼을 했으므로 전통 인딘안의 대열에서 탈락했다고 해도 아들만큼은 불랙힐스로 데리고 가 와콘다 신 앞에서 축복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의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내를 대동하고 불랙힐스에 가려고 아내 몰래 계획을 세웠다. 빕(Bob)은 아버지 불랙이글이 준 독수리 깃털을 자신의 머리에 꽂고 아내와 아들을 차에 태운 후 쇼쇼니 마을을 떠나 동쪽 편으로 진입하여 불랙힐스의 북쪽 입구로 들어왔다. 울창한 숲이 연속된 높은 산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뚫린 길을 따라 조심조심 운전을 하여 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습기가 차고 무더운 7월 어느날이었다. 차 속이 평안했는지 한 살짜리, 아들 제임스는 어머니 품에서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한국 사람 아내인 샤이엔(성숙)에게 보이는 불랙힐스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단순히 관광객이 보는 자연 경치일 뿐이지만 이곳에서 수천년을 살아온 수. 인디안의 후손인 밥(Bob)에게는 와콘다라는 신 앞에 서 있는 엄숙하고 성스러운 예식이었다. 와콘다 신 외에도 태양, 천둥, 번개, 옥수수, 심지어는 뱀까지도 신앙의 대상이었기에 불랙힐스로 오르는 길과 주위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었다. 와콘다 신을 만나기 위해 목욕을 했으며 자동차도 깨끗이 세차를 하였다. 그리고 산에 가서 먹을 음식도 충분히 준비하였다. 울창한 나무 숲 속으로 자동차를 몰고 가고 있었으며 아슬아슬한 언덕길도 지났다. 2시간, 아니?, 3시간을 달렸을까? 샤이엔 크로싱(Chyenne Crossing)을 향해 더 가파른 산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자동차는 거의 없었으며 눈에 뵈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와콘다 신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해서 차를 몰고 있었다. 짙푸른 초록색의 나무 숲과 밝은 햇살로 불랙힐스는 청명하고 깨끗했다. 그런데, 웬 일일까? 갑자기 맑은 하늘이 검게 변하더니 심한 바람이 불며 천둥과 번개가 동반되면서 굵은 빗방울이 우두둑우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루릉 쾅! 우르릉 쾅!’ 천둥 치는 소리가 귓전에서 큰 북을 두드린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손가락만한 빗방울이 차창을 두두리자 운전을 하던 밥(Bob)은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조금도 앞으로 전진할 수가 없자 그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가 그치기는커녕 점점 더 오니 겂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물살에 차가 쓸리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여보, 비가 그칠 때까지 잠시 여기서 기다립시다.” 밥(Bob)은 아내에게 말을 하고는 엔진을 꺼 버렸다. 순간 밥(bob)은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우렸다. 분명, 그것은 불랙힐스에 사는 전능자 와콘다 신의 목소리였다. “와콘다신이십니까?” 그는 목소리를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그렇다. 밥(Bob)! 너는 수 인디안의 순수성을 잃었노라. 네가 데리고 가는 저 한국 여인과 너의 아들은 더 이상 순수한 인디안이 아니란 말이다. 나 와콘다는 너의 아들을 받아 드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너와 네 아내도 받아 드릴 수가 없노라. 너는 마치 나무 잎새가 나무에서 떨어져 썩어 없어지듯이 결국 너뿐만 아니라 너의 아내, 그리고 아들도 나뭇잎처럼 땅에 떨어져 죽으리라. 그러니 괜한 걸음을 하지 말고 돌아가거라. 나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 “아! 와콘다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나는 나의 아내를 사랑합니다. 아내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나의 은인....” “그래도 안 된다.” “아! 와콘다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남편 밥(Bob)은 소리를 치고 있었으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 “아니? 당신, 무슨 소리가 들립니까?”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 이상한 듯이 물었다. “여보, 샤이엔? 당신은 저기 와콘다 신의 목소리가 안 들립니까?” “예? 와콘다의 목소리?” “그래. 샤이엔.” “안 들리는데요....여보!” “안 들린다고?” “ 예?” 아내 샤이엔은 남편이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다. “분명, 와콘다 신이 내게 말을 했는데...와콘다 신이.....” 아내 샤이엔은 남편이 공포에 질려 정신적으로 이상해 졌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며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30분이나 지났을까? 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뚝 그치자 하늘은 말끔히 걷히고 태양이 쨍쨍 빛나고 있었다. 불랙힐스는 짙푸른 초록으로 보였으며 검은 독수리가 하늘에서 맴돌았다. “무슨 일이요, 여보? 당신 내게 감추는 게 있죠?” 아내 샤이엔이 다구쳐 물었다. “.........” “여보! 분명 당신은 ‘와콘다 신이여 용서 하소서’라고 말했는데....” “...........” “여보, 나는 당신의 아내요. 같이 알아야 해요. 같이.....” “그래. 당신에게 속인 것이 있어.....” -결국 밥(Bob)은 아내에게 그간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여보? 수. 인디안이 아닌 다른 인종과 결혼을 하거나 성관계를 하더라도 수 인디안의 순수성을 잃게 된다고 했어.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의 결혼을 그토록 반대를 한 거요.“ “아니, 여보? 그러면 우리는 물론, 아들도 와콘다신에게 갈 수가 없고 죽어 썩어 버린다는 거요? 단지 죽어 썩어 버린다는 거요?” 아내 샤이엔은 어이 없다는 듯이 물었다. 한국 사람의 관점에서는 너무도 허황한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여보. 당신은 와콘다가 한 말을 못 들었소?” “못 들었는데요. 단지 바람소리와 천둥소리를 들었을 뿐... 언젠가 왜관읍에 가서 들었던 교회와 천주교회의 종소리로 들었습니다. 여보!” “뭐라고? 교회당의 종소리로? 당신도 교회에 가서 예수를 믿었소.” “예. 가끔은 왜관읍에 있는 천주교당에도 간 적이 있었죠. 그리고 샤이엔에 있는 교회당에도 갔었죠. ” “샤이엔에 있는 교회당에?” “그래요. 그런데 인디안은 한명도 없던군요....” “인디안은 하나도 없었다고?” 밥(Bob)은 아내가 그가 모르는 사이에 교회당에 간 일이 있음을 알고 당황했다. * 순간......... 밥(Bob)은 아버지 불랙이글의 고함 소리가 그의 귀에서 쟁쟁 들리고 있는 듯했다. “옛끼 이놈! 내가 말하지 않던! 다른 종족과 결혼하면 와콘다 신이 노한다고! 그래서 내가 불랙힐스에 가지 말라고 했었지.. ” “아- 아버지?” 밥(bob)은 불랙힐스에 온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엎드려진 물이었다. 그러나 아내, 샤이엔은 남편이 숨겼던 비밀을 알아 냈으며 더불어 이들은 미신(迷信)속에서 살아 왔음을 알게 됐다. 허잘 것 없는 미신에 사로 잡혀 목숨을 걸다니.... 그러나, 한국에서 온 여인, 샤이엔(성숙)은 와콘다 신의 분노를 이해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와콘다 신도 수천년 간 수 인디안들과 같이 해 온 역사의 배후였으니까..... 그러나 남편 밥(Bob)과 수 인디안들은 이 사실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와콘다 신을 노하게 하면 반드시 보복을 받는다라고 믿고 있었다. “아-와콘다 신이여. 정말 우리를 용납하지 않으시렵니까?” 밥(Bob)은 안타까운 듯이 와콘다 신에게 또다시 자비를 빌었다. “여보! 비가 그쳤군요. 결국 와콘다신은 포기하고 돌아 갑시다.” 샤이엔은 말도 안된다는 듯이 남편의 팔을 잡았다. “가자구?” “그래요? 갑시다.” “와콘다 신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가자고?” “할 수 없지 않소?” “.............” 결국 밥(Bob)은 자동차의 방향을 서쪽으로 되돌려 와이오밍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와콘다 신의 축복을 못 받아도 제임스는 내가 축복한다!” 밥(Bob)은 와콘다 신을 영원히 잊기로 했다. * 한국에서 온 인디안 여인, 샤이엔은 무럭무럭 자라는 아들과 근검하게 일하여 가정을 돌보는 남편 밥(Bob)이 한 없이 대견하였고 자랑스러웠다. 미국에 와서 처음 일년은 적응하기 위해 임신이 되지 않아 한국에 있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못 했는데 남편 밥(Bob)은 오히려 아내에게 부모님을 미국으로 초청하자고 제안을 했다. “여보, 장인과 장모님에게 편지를 쓰세요. 기회가 되는 대로 부모님을 초청해 구경을 시켜 드립시다. 여보!” “돈이 많이 들텐데...” “돈? 여보 당신의 부모는 나의 목숨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요. 내가 받는 월급에서 매달 20%을 떼어서 비행기와 연락선표를 사려고 하오. 2-3년이면 충분히 됩니다. 샤이엔!” “월급에서?” “물론이지! 그리고 할 수 있으면 오버타임(정규시간 외의 노동)도 하려고 해요.” “밥(Bob)!" 아내 샤이엔은 남편이 고마웠으며 자랑스러웠기에 눈물이 흘렀다. 마침내 샤이엔(성숙)이 부모님에게 써 보낸 편지가 눈길을 모았다. 편지-1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드디어 여기 미국의 한 구석 와이오밍에 왔습니다. 와이오밍은 마치 우리가 사는 전덕면하고 비슷합니다. 높은 산과 계곡이 있으며 밀밭과 옥수수밭이 끝없이 넓습니다. 전덕면에서 가까운 금오산, 백마산, 가야산보다 더 높고 큰 산들이 있는가 하면 낙동강 평야보다 수 십배나 넓은 평원이 있군요. 한가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대평원에 들소들과 사슴들이 한가롭게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뿐인가요, 여기저기에서 솟아 오르는 유황 온천들을 보면서 어서 속히 부모님들을 이곳으로 모셔 오고 싶습니다. 남편은 인디안입니다. 그런데 인디안들은 우리 한국사람들과 얼굴도 비슷하며 생활 풍습도 비슷하기 때문에 꽤나 친근한 마음이 드는군요. 인디안들도 우리들처럼 사랑하고 슬퍼하는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이들은 백인들과 통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원한을 갖고 사는 불쌍한 소수 민족일 뿐입니다. 어머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들 소수민족 사이에서 평화를 가져다 주는 일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일입니다. 딸, 성숙(여기 미국에서는 샤이엔 와이트도브) 올림.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샤이엔의 아들, 제임스도 자라 세 살이 조금은 넘어 이젠 혼자 걷고 오줌도 가리고 유아 학교에도 등록을 하게 되었다. 또 다른 편지: “아버지 어머니!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지난 몇 해 동안 보낸 편지 중에 가장 마음 기쁜 편지를 보내 드리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부모님들을 미국으로 초청하는 수속도 끝나 여기 이 편지속에 왕복 비행기 표와 여객선 표를 보내 드리게 되었습니다. 꼭 오셔서 와이오밍과 콜로라도등을 구경도 하시고 같이 이곳에서 살고 싶어요. 와이오밍의 명물인 로데오도 꼭 보여 드리겠습니다. 로데오가 뭐냐구요? 황소같이 막 자란 소의 등에 안장도 없이 탄 카우보이를 떨어뜨리려고 발광을 하는 소가 마침내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면 날 살려라하고 도망을 가는 게임인데 한국 사람들로 치면 황소와 씨름을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잘못하면 뿔에 받쳐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하면서도 우수꽝스러운 운동이지요. 엄마! 나도 어쩌다 보니 이젠 와이오밍의 여인이 되어 소떼도 몰고 다니며 큰 트럭을 운전하기도 한답니다. 엄마! 샤이엔 강가에서 사는 인디안들의 모습도 보여 주고 싶어요. 아버지 엄마! 몇 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니 가슴이 뛰며 기뻐요.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사랑하는 딸, 샤이엔 와이트도브(김성숙) 올림. * 아-, 드디어 부모님이 오시는구나! 성숙(샤이엔)은 긴 한 숨을 내쉬었다. 감개 무량했다. 패잔병 밥(Bob)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에 숨어 들어와 치료를 받고 낙동강을 건너 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여기 와이오밍에서 어느덧 5년..... 이 편지를 샤이엔 우체국에 가서 등기로 부친 후 그날 저녁 그녀는 한 잠도 이룰 수가 없어 뒤치락 뒤치락 뜬 눈으로 보냈다. 비록 한국 남편이 아닌 미국 인디안 남편이기는 하나 한국 남편 못지 않게 자상하고 친절한 밥(Bob)이 고마웠다. 말과 풍습이 다른 이곳 와이오밍 산골에서 그래도 생명을 유지하고 살 수가 있었던 것은 그래도 사랑이라는 이 단어 때문이었다. 너무나 외로워 어느 때는 집을 뛰쳐나가 한국으로 무작정 달려가고 싶은 밤도 많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온 몸을 쓰다듬으며 창 밖을 내다 보며 어머니를 불러 보았다. 비오는 날에는 집을 뛰쳐 나가 무한정 걷고 또 걷고 싶었다. 미국이란 나라가 지상의 천국이라고는 하나 부모와 친구를 떠나 홀로 선 외로움 앞에서는 지옥과도 같았다. 외로움- 외로움- 외로움- 그러나 몸을 쓰다듬으면서라도 외로움을 잊어야 했다. 만일 밥(Bob)마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리라. 외로움을 이기는 것은 사랑이요, 앞으로 올 어떤 만남을 기다리는 희망밖에는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더더욱 고마운 것은 그녀를 통해 세상에 태어난 피붙이인 아들 제임스가 희망이요 위로의 대상이었다. “밥(Bob), 그리고 제임스(James)! 고마워요. 그대들 덕분에 나는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멀리 뵈는 초가집의 등불을 발견한 마음이요. 사막에서 홀로 외로울 때 내 앞에 나타난 오아시스였습니다.”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을 큰 소리로 외쳤다. -사막에서 홀로 된 사람은 너무나 외로워 사람이 그리웠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만날 수가 없었으며 찾아 오지도 않았다. 사람을 한 번 만나 봤으면....사막에 사는 사람은 자나 깨나 사람이 그리웠다. 늙은이든, 젊은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어느 누구도 좋았다. 결국 그 사람은 앞으로 걷지 않고 뒤로 걸었다. 뒤로 걸으면 자신의 발자국이 모래에 찍혀 보이니 사람을 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막에서 그는 너무나 외로워 뒤로 걸었다. 자신의 발자국이 보고 싶어서....’- 샤이엔, 그녀는 고마운 눈물을 밤새 떨구고 있었다. 14. 수.인디안의 전능자, 와콘다 신을 배반하면 죽느니라......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같이 따라 다닌다고 했다. 용맹스러웠던 수. 인디안의 전사 불랙이글은 아들 밥. 와이트도브(Bob Whitedove)에게 여러차례 강력하게 경고를 했었다. “아들아! 수.인디안이 아닌 한국인과 결혼을 했으니 너는 더 이상 수 인디안이 아니니라. 그러니 너는 그 여인을 데리고 불랙할스에 가지 말거라. 혹시라도 와콘다 신이 노할지 모르느니라. 와콘다 신이 노하면 너희들은 저주를 받고 죽으리라....” 그러나 이 경고를 받을 때마다 아들 밥(Bob)은 물론 한국에서 온 샤이엔(성숙)은 미신 같은 이 경고를 듣지 않았으며 오히려 마음속에 냉소를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지...와콘다? 그런 것이 어니 있나? 괜한 미신이겠지.....’ 그런데 이 미신같은 하잘 것 없는 말이 사실이었다. 아니 사실이 되고 말았다. 역시 와콘다 신은 전지 전능했나보다. * 아내, 샤이엔, 성숙의 죽음: -보슬비가 내리는 1958년 초 여름이었다. 와이오밍의 여인, 샤이엔(성숙)은 남편과 더불어 언덕 위의 작은 집의 지붕을 고치고 있었는데 굵은 나무 몇 개와 비닐 그리고 콜탈이 조금 필요하여 지붕에 올라가 있는 남편을 대신하여 샤이엔 시내에 있는 건축 재료상에 혼자 가야 했다. 항상 다니던 길이기에 마음을 놓고 시내에 가서 필요한 재료를 픽업 트럭에 싣고 쇼쇼니 집으로 되돌아 오고 있었다. 곧 미국을 방문할 부모님을 대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저절로 솟았으며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미국으로 온 지 어느덧 5년이 넘어 6년이 가까워 오는데. 부모님이 이미 한달전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내 한달여에 걸친 배를 타고 친정 부모님은 오늘이나 내일 산프란시스코 항구에 내려 하루저녁을 잔 후 비행기를 타고 덴버로 온다고 하니 너무나 행복했다. 부모님이 거처할 방에 더 푹신한 침대를 준비했는가 하면 밝은 전등불을 달아놓았으며 이제 지붕만 조금 손을 보면 모든 준비가 완료되는 셈이었다. ‘마침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오고 있는 중이다. 곧 만나게 된다.’ 영어도 모르는 한국의 시골 노인들이 여기 미국으로 온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곧 도착한다니....... 와이오밍의 한국 여인, 김성숙은 절로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샤이엔 상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준비한 후 샤이엔시를 벗어나 쇼쇼니 마을로 들어서는 언덕을 향해 트럭을 몰고 있었는데 차 뒤편에서 나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샤이엔(성숙)은 깜짝 놀라 픽업 트럭의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고 말았는데 이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촉촉히 내린 보슬비로 인해 로면(路面)이 미끄러워 차가 균형을 잃고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손쓸 시간도 없이 운전대만 꽉 잡았으나 몸이 밖으로 튕겨저 나오면서 차체에 심하게 부딪쳤으며 자동차는 더 굴러 계곡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교통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고 즉시 앰뷰런스가 현장에 달려와 인공 호흡을 했으나 얼굴을 알아 보기 힘들 만큼 이글어 졌으며 온몸에 피가 엉겨 남이 보기에도 끔찍해 보였다. 그래도 샤이엔은 숨을 쉬고 있었기에 와이오밍 카운티 병원으로 급히 실려 가 응급실에거 응급 치료를 받은 후 다행히 숨을 쉬고 있었기에 중환자 실로 옮겨 졌다. * 한편 교통 경찰은 쇼쇼니 마을로 가 지붕을 고치면서 이 때나 저 때나 도착할 아내를 기다리고 있던 밥(Bob)에게 교통사고로 샤이엔 병원으로 실려 갔음을 알려 주었다. “밥(Bob)! 당신의 아내가 교통 사고로 계곡에 떨어져 현장에서 앰뷸란스에 실려 샤이엔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아니? 아내가, 어떻게 만난 아내인데.....아-아-”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으나 믿을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 밥(Bob)은 통곡을 하였다. 밥(Bob) 은 차를 몰고 샤이엔 카운티 병원으로 달려가 응급실로 달려 들어갔다. “밥(Bob) 와이트도브입니다. 내 아내, 샤이엔은 어찌됐소? 살았지요?” “밥(Bob)! 살았으나 중태입니다.” “예? 내 아내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중환자 실에 있습니다.” “아! 샤이엔!” 중환자실에 들어가 보니 산소 마스크와 주사 바늘이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샤이엔! 나야. 나. 밥(Bob)!” 그러나 샤이엔은 말을 더듬었으며 숨쉬기가 힘들었다. “여보---” 밥(Bob)은 아내의 얼굴을 본인의 얼굴로 부비며 울고 있었다. “........” 아내, 샤이엔은 더듬거리며 눈을 뜨고 남편을 확인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나야! 밥(Bob)" 밥은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샤이엔은 남편의 손을 잡자 더듬 더듬 몇마디 말을 하였는다. “여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제. 임. 스. 는.........“ 아내 샤이엔은 분명 아들을 찾고 있었다. “제임스가 보고 싶어?” 아내는 고개를 움직였으며 눈을 뜨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밥(Bob)은 간호사에게 사정을 하였다. 비록 병원 규칙에 의해 어린 아이는 중환자 실에 들어 올 수가 없지만 잠시만, 딱 일분만이라도 죽어 가는 환자에게 아들 제임스를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가까스레 병원장의 허락을 받아 제임스는 중환자실에 누어 있는 어머니 샤이엔 앞으로 데려 왔다. “여보! 여기 우리의 아들, 제임스가 왔어.” “.제-임-스......” 샤이엔은 아들이 온 것을 알자 눈을 크게 뜨고 아들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밥(Bob)은 아들의 손을 아내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느껴지는 것은 따듣한 아들의 체온 뿐이었다. “제임스......” 그녀는 마침내 아들의 손을 잡자 비로서 더듬거리기는 하나 말을 할 수가 있었다. “여보! 나야, 그리고 제임스!” 남편 밥(Bob)은 큰 소리로 말하면서 아내의 손을 더 잡았다. 마침내 그녀는 눈을 떳다 감았다하며 더듬 더듬 남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 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간절한 유언이 되고 말았다. * -남편에게 참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수. 인디안의 풍속을 몰라 결혼하였기 때문에 남편(Bob)을 순수 인디안의 세계에서 살수 없게 만든 것이 너무나 미안하다고 했다.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수.인디안의 전통을 지켜 잘 살았을 텐데, 너무나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시아버지인 불랙이글로부터 버림받게 해 진정으로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샤이엔은 시아버지, 불랙이글을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 밥(Bob)이 낙동강을 건널 때 인민군과 뱃사공에게 줬던 두 개의 금반지는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반지였기에 부모님에게 큰 빗을 진 마음으로 살았다고 했다. 돈을 아껴 쓰고 남은 푼돈을 뫃아 작은 반지를 한 개 준비해 경대에 넣어 두었으니 친정 부모가 미국에 오면 꼭 전해 주고 미국 구경을 반드시 시킨 후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이것이 자식된 도리요 평생 소원이라고 더듬 거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 제임스만큼은 정통 인디안으로 길러 시아버지에게 자식된 도리를 다해 달라고 유언을 한 후 얼마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 “아니? 여보! 언제 그런 준비를 해 두었어? 내가 할 일을.....” “...........” 이미 죽은 샤이엔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여보! 죽으면 안 돼! 당신의 부모가 오고 있는데...눈을 떠 봐요! 눈을!” “..........” “장인 장모님 모시고 꼭 미국 구경시켜주겠으니 어서 당신 눈을 떠! 눈을 떠!” “................” 밥(Bob)은 아내의 얼굴을 부비며 울고 울었다. * “밥(Bob)? 당신의 아내, 샤이엔은 이미 운명했습니다.” 평소에는 인디안을 다소 무시하던 백인 간호사도 감동이 됐는지 눈물을 흘리며 “환자는 죽었다”고 말하면서 하얀 광목(쉬트)으로 샤이엔의 온 몸을 덮고 있었다. “아냐! 아냐!” 밥은 큰 소리로 울면서 광목을 뿌리쳤다. “밥(Bob)! 샤이엔은 운명했습니다. 와이오밍의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합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한번 더 보게 해 주소.” 밥은 애걸했다. “그렇게 하시요.” 간호사는 다소 냉정하게 말을 하였으며 잠시 후. 죽은 샤이엔의 시체는 이동 침대에 실려 지하실에 있는 시체 영안실로 옮겨 졌다. “샤이엔! 샤이엔!” 남편 밥(Bob)은 큰 소리로 울고 또 울었다. * -미국에 온 지, 겨우 5년..... 3살이 조금 넘은 아들, 제임스를 남겨두고 와이오밍의 한국여인, 샤이엔(성숙)은 이렇게 허망하게 죽고 말았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그토록 기다리고 보고 싶었던 한국의 부모가 이미 미국을 향해 한달전부터 비행기와 배를 타고 오고 있으며 내일 오후에는 장인 장모가 덴버 공항에 도착할 텐대. 어쩌나..... 밥(Bob)은 울고 또 울었다. 사랑스러운 아내요, 생명의 은인이었던 아내였는데. “왜? 아내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는 큰 소리로 외치며 통곡을 하였다. 순간 밥(Bob)의 귓 전에 쟁쟁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밥(Bob)? 나, 와콘다를 노엽게 하면 죽음이라고 했느니라. 알겠느냐?” “뭐라고? 와콘다! 아- 노(No), 노(no), 노(no)-----” “그래- 와콘다는 전능하니라.....” “와콘다! 나와 상관없다!” 밥(Bob)은 몸서리 치며 또 한 번 외쳤다. 비록 수 인디안의 법칙에 따르면 죽은 후에 시체를 불랙힐스에 있는 돌로 된 제단에 갖다 놓아야 하지만 밥(Bob)은 블랙힐스에 가지 않았음은 그는 더 이상, 수. 인디안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시신을 쇼쇼니의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었지만 와이오밍의 주법에 따라 샤이엔시 외곽에 있는 공원묘지에 묻기로 했다. 결국 시신은 병원 영안실에 보관해 둔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 와야 했다. * 밤 늦게 집으로 돌아 오니 한 장의 전보가 집에 와 있었다. ‘예정대로 우리는 도착한다. 부모가.’ 산프란시스코 우체국에서 친구가. 산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밥(Bob)의 친구가 부모님을 대신해서 보낸 전보였다. 예정대로라면 장인 장모가 되는 김노인 부부가 내일 오후에 덴버 공항에 도착한다는 말이었다. “장인님! 장모님!” 밥(Bob)은 전보 용지를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으며 영문을 모르는 아들, 제임스는 덩달아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밥(Bob)은 갑자기 닥친 일로 인해 정신을 가다듬기가 힘들었다. 장례식도 준비해야 했으며 장인 장모도 맞아야 했고 지붕도 마저 고쳐야 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영문을 모르는 아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꿈과도 같아야 했을 며칠 간의 휴가가 악몽과 같은 잔인한 날의 연속이 돼야 했다. “아- 아- 샤이엔? 여보!” 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으며 곁에서 어머니를 잃고 울어 대는 아들 제임스로 인해 밥(Bob)은 지칠대로 지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밥(Bob)은 아들을 들쳐 안고 와이오밍을 떠나 덴버를 향해 운전을 하였다. 2-3시간이 걸리는 길이 마치 몇 년이나 걸리는 멀고도 먼 고행 길이었다. 너무나 피곤하고 슬프다 보니 차선이 둘로 보이기도 했으며 속도를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울고 또 울며 운전한 밥(Bob)이 덴버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녹초가 되어 차에서 나오기가 힘들었다. 한국에서 온 장인 장모를 만나면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는지.... 사랑하는 딸이 아직도 샤이엔 카운티 병원 영안실에 안장되어 있는데. 어떻게 죽었다고 말을 해야 하나... 죽은 딸을 만나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할까?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한국 노인들이 한 달에 걸쳐 여기까지 온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사랑하는 딸이 죽은 것을 알면 그들은 어찌 될까? * 사실이 그러했다. 영어도 모르는 김 노인 부부는 말로만 들었던 미국으로 딸이 훌쩍 떠나 가버리자 큰 혼동에 빠졌었다. 정말로 미국으로 시집을 가는 것인지 아니면 속아서 가는 것인지 구별을 할 수가 없었다. ‘미국으로 시집을 간다는 것은 팔려가는 거나 마찬가지요! 미국놈이 뭐가 부족해서 한국 시골 처녀하고 결혼을 한단 말요? 가서 노동이나 하고, 식모처럼 부려 먹으려는 거지. 그저 그런 거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미국사람? 어떤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하던군요. 혹시 알아요? 밥(Bob)이라는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인지, 누가 아나?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 노인으로 볼 때, ‘딸년이 미쳤지, 미국이 어딘데, 그것도 모르고 괜한 바보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며 단념을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도착한 딸로부터 좋은 소식을 담은 편지가 오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된 결혼’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 딸년이 누군데. 악착같고 현명한 앤데.’ 그는 스스로 만족해 살며시 웃기도 했다. 게다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과 와이오밍에 집을 사서 잘 산다는 편지를 읽으며 김 노인 부부는 행복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몇 개월전에 받은 편지 속에 미국으로 오라는 왕복 비행기 표(서울 동경, 산프란시스코-덴버)와 여객선(요코하마-하와이-산프란시스코) 표가 각각 두장씩 들어 있을 때 김 노인 부부는 너무나 기뻐 온통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였다. “이것봐! 딸 년이 미국에 오라고 비행기 표와 여객선 표를 보냈어. 여기 봐!” “와! 이게 비행기 표라는 거여? 그리고 이게 여객선 표? 좋겠네! 따님 덕에 미국 구경도 하고....” 동네 사람들은 진정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그래도 미국에 간다고 하니 가슴이 떨렸으며 여권과 비자를 받기 위해 대구에도 몇 차례 갔었다. 그리고 서울로 가서 최종 비자를 받은 것이 몇 주 전이었으며 마침내 미국으로 떠날 준비가 완료되었다. 딸과 사위를 위해 고추장, 된장 그리고 한국 옷도 몇 벌 준비를 했으며 손자를 위해 과자도 준비했다. 꿈 속에서 본 미국이란 나라가 마치 지상의 천국이었다. “와! 우리가 미국에 간다니......” *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여객선표와 여행 일정이 예상보다 복잡했다. 서울에서 동경까지는 푸로펠러 비행기를 이용하고 동경에서 하루를 잔 후 요코하마 부두로 가 하와이로 가는 여객선을 타게 되었다. 약 2주간에 걸쳐 호누룰루에 도착하면 거기서 미국 입국 수속을 하게 되며 여객선은 하루를 그 곳에서 머문 후 다시 산프란시스코로 향하게 된다. 역시 2주에 걸친 항해 후 산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 아이다호 대학 동창인 백인 친구의 도움으로 산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덴버로 오는 비행기를 타게 된다. 무려 한 달이 걸리는 길고 먼 항해, 비행을 하여야 하는데 음식도 문제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아 큰 고생이 뻔하건만 딸과 사위를 본다고 하는 큰 희망으로 이들 김 노인 부부는 미국가는 여행을 시작하였다. * 와이오밍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복잡했으며 영어를 모르기에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 눈치껏 해야 했다. 처음 타 보는 비행기, 그리고 여객선이 마치 큰 괴물과도 같았다. 서울-동경-호누룰루-산프란시스코 그리고 덴버까지 가는 길이 무려 한 달이 넘는다고 했다. 떠나기 하루 전에 김 노인 부부는 왜관읍에서 전보를 보냈으며 모든 준비를 한 후 서울로 가서 그날 저녁 늦게 김포 공항에서 늦은 저녁 비행기를 타게 됐다. 푸로펠라 비행기에 오른 김 노인 부부는 우선 비행기에 오른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기가 죽었다. 그들은 모두 서울에서 동경으로 사업차 가는 정부 고관과 막강한 사업가들이었다. 한국을 떠나 동경으로 가면서 부부는 멀미를 하고 말았으나 그래도 딸을 만난다는 희망으로 참을 수가 있었다. 늦은 밤, 동경에 도착하여 주위 여관에서 잠을 자고 이른 아침에 요코하마 항구로 갔다. 그래도 일본 말을 조금은 알아듣기에 물어서 찾아 갈 수가 있었다. 요코하마 항구에 정박해 있는 미국에서 온 여객선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군용 선박을 개조해 일반인들을 태우고 하와이를 거쳐 산프란시스코로 가는 약 4500톤 급의 선박이었다. 김 노인부부의 눈에는 마치 거대한 건물이 바다에 떠 있는 듯했다. 산프란시스코로 가는 선박에는 많은 미국 사람과 일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말로 떠들고 있었다. ‘아- 저것이 바로, 영어로구나. 영어.’ 처음 타보는 선박에서 김 노인부부는 간간히 배 멀미를 하였으나 이내 적응이 되었다. 낮과 밤이 없이 선박은 항해를 하였다. 다소 퀘퀘한 3등실이었으나 김 노인부부에게는 꿈같은 잠자리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타본 비행기와 여객선에서 부부는 모처럼의 꿈같은 행복을 느껴 보았다. 딸이 보낸 비행기와 배삯으로 이렇게 평안하게 여행을 하다니..... 망망 대해를 가로 질러 태평양을 항해하였다. 낮에 보는 바다와 밤에 보는 바다는 완전히 달랐다. 밤에 보는 바다가 더 친근했음은 그래도 밤 하늘에 뵈는 별들 때문이었다. 전덕면 농촌의 밤 하늘에서 보던 그 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간 급유지이며 입국 수속을 해야 하는 하와이 호누룰루 항구에 배가 정박하니 밖앗 공기가 화끈하여 숨쉬기에 가빴다. “여보! 여기가 호노룰루라네, 거, 진주만이 있는 곳...” 김 노인은 아내에게 설명을 했다. “그러게.....” 김노인 부인도 대답을 하였다. 처음 본 야자 나무가 인상적이었으며 지루하고 힘든 세관 검사와 입국심사가 이들 부부를 더 힘들게 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질문과 기다림.... 미국 입국 수속을 하랴 세관 검사를 하랴, 김 노인 부부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지 몰랐다. 백인들이 이리 오라 저리가라 하는 대로 개가 사람에게 끌려 다니듯 했다. 마침내 다음날 저녁 여객선은 다시 산프란시스코를 향해 항해를 시작하였다. 또 다시 2주간, 망망 대해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밤이 되면 먼 하늘의 별을 바라다 보았다. 문득 2200년 전, 진시황이 보낸 3000명의 동남동녀가 된 기분이었다. 불로초를 캐러 나선 김 노인부부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서복 장군의 시중을 들던 졸병이 된 기분이었다. 긴 항해 끝에 산프란시스코 항구에 정박하니 오후였다. 항구로 들어 가는 바다 입구에서 본 금문교(金門橋, Golden Gate))가 반가웠다. “산프란시스코에 오면 사위의 친구가 마중나온다고 했는데.....” “백인이라고 하던데....” 김 노인부부는 긴장이 되었다. 한달에 걸친 항해로 심신이 고단하였다. 대합실에서 무조건 기다리고 있었다. 백인이라는 것 밖에 더 아는 것도 없이 모든 것을 맞겨야 하는 두 노인이었다. “김 노인? 김 노인?” 키가 크고 코가 큰 백인 청년이 김노인을 찾고 있었다. ‘아- 살았다. 저 사람이 바로 그 백인이겠지....’ “여기요! 여기!” 분명 한국 말이었으나 백인 청년은 알아 들었는지 가까이 닥아왔다. 김 노인부부는 다행스럽게도 백인 청년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친절했다 그리고 아들처럼 모든 것을 도와주면서 우체국으로 가 와이오밍으로 전보를 쳤다. (예정대로 덴버에 도착함.....산프란시스코에서) * 백인 청년은 김 노인부부를 작은 호텔로 데리고 가 하루를 자도록 주선해 주었다. 말로만 듣던 산프란시스코에서 하루저녁을 잣지만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단지 불안한 마음 뿐이었다. 혹시라도 납치를 당하지나 않을까? 아니면 길을 잃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인이거나 간간히 흑인이 보였을 뿐....그 많다는 중국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사위의 친구가 되는 백인 청년이 작은 호텔로 찾아 와 짐을 들고 산프란시스코 공항으로 가자고 했다. 그를 따라 찾아간 곳에서 마침내 큰 비행기를 보게 되었다. 마침내 김 노인부부는 덴버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그리고 사위의 친구와 이별을 하였으며 다음 번에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마침내 덴버로 가는 비행기가 이륙을 하였을때 피곤이 밀물처럼 몰려 들어왔다. 그래도, 그들은 사랑하는 딸을 만난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있었다. 비행기는 높이 올라 동쪽으로 비행하면서 눈아래로 유타, 콜로라도 그리고 록카 산맥이 눈에 띄였으며 이채로웠다. 덴버에 도착한 것은 오후였다. 덴버라고 하며 비행기에서 나가라고 했을 때 비로서 그들은 딸이 사는 근방에 왔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조금 늦은 도착이었으며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던 밥(Bob)과 제임스는 이제나 저제나하고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죽은 아내를 영안실에 두고 공항에 온 밥(Bob)이나, 5년여 만에 딸을 만나려고 달려온 부모의 마음은 상반되고 있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할까? 죽었다고 할까? 아니면 당분간 쉬쉬하여야 하나?’ 밥(Bob)은 고심하고 있었다. ‘만나면 딸 년에게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까?’ 부모의 고심도 컸다. 지상보다 일마일 높은 고지에 있는 덴버는 숨쉬는 산소가 조금은 부족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온 부모들의 호흡은 조금은 힘들어 보였다. 덴버공항에는 때아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침내 큰 짐을 찾아들고 사람들을 따라 대합실로 나오는 초라해 보이는 한국의 김 노인 부부의 모습이 밥(Bob)의 눈에 띄였을 때 밥(Bob)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부-지! 어-마-니!” 그가 아는 몇마디 한국 말이었다. 영어라고는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하고 사람들을 따라 온 김 노인 부부의 귀에 들린 한국 말....아-부-지, 어-마-니는 그들의 귀를 번뜩하게 만들었다. “여보게- 밥(Bob)!" 김 노인은 모르는 사람을 따라 다니면서 사람으로부터 느꼈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얼싸 안았으나 보고 싶었던 딸의 모습은 없었다. 아무리 둘러 봐도 없었으며 사진에서 본 손자 제임스가 딸의 모습을 대신했다. “성숙은 잘있나?” 김 노인은 참지 못하고 밥(Bob)에게 물었다. “...........” 순간 밥(Bob)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루르 흐르고 있음을 김 노인은 보았다. 무슨 일이 있구나...무슨 일이..., 김 노인은 직감을 했다. “성숙은?” 김 노인은 목이 매어 사위에게 물었다. “...........” 밥(Bob)은 마침내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보게나? 밥(Bob)!" 김노인은 밥(Bob)의 손을 잡았다. 밖에서는 비가 세차게 나리고 있었으며 캄캄해 보였다. “아버님! 죽었습니다.” “뭣이, 자네, 죽었다고 했나? 누가?” “아내가...교통사고로....” “뭐라고? 교통사고로? 언제?” “그저께입니다.” 밥(Bob)은 것잡을 수 없는 서러움으로 말을 잇지 못하였으며 제임스는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어-어-” 김 노인부부는 자초지총을 들은 후 털썩 공항 바닥에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다. “성숙아! 네가 죽다니! 아버지가 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웬 일인가 울고 있는 한국 사람을 처다 보다가 다시 그냥 지나갔다. 마치 샤이엔 인디안들이 상식없이 아무데서나 울고 있다고 생각을 한 듯했다. 덴버 공항에 내리는 비처럼 이들의 마음은 서글픔과 그리움의 눈물이 섞여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은 덴버를 빠져 나와 와이오밍의 샤이엔으로 돌아 왔는지 기억에도 남지 않았을 만큼 처참하고 한스러운 길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도 없었으며 오로지 죽은 샤이엔의 영혼이 그들의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맴을 돈다고 느꼈다. 샤이엔 병원, 영안실에 도착하여 하얀 광목을 벗기고 죽은 딸의 얼굴을 매만지며 울던 김노인과 부인은 마침내 혼절하고 말았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딸의 모습이 이렇게 싸늘하고 표정도 없는 얼굴이 되다니.... “성숙아! 성숙아! 네가 이 애비와 에미를 몰라보다니.....” 지난 5-6년, 김노인 부부는 딸의 모습을 그리고 그려 마음속에 새겼는데 오늘 본 딸의 모습은 그들이 그렸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밥(Bob)은 장인과 장모를 설득하여 일단 집으로 가려고 했으나 김 노인부부는 차마 발을 Ep어 놓을 수가 없었다. “여보게. 여기서 자면 안 되나? 딸 년 곁에서...” 마침내 영안실 담당직원이 나서서 설명을 하였는데 김 노인 부부는 미국 사람이 무서웠다. 병원 영안실에서 어떻게 쇼쇼니 마을의 집으로 왔는지 그들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산림청 직원들이 찾아와 위로를 해 주었으며 음식을 제공해 주었으며 휴가도 일주일을 더 연장해 준다고 했다. * 다음 날, 오후, 와이오밍의 5월은 맑았으며 언제 그런 비극이 있었느냐는 듯이 평화스러웠다. 샤이엔 시(市)의 도움을 받아 샤이엔 공동묘지 한 구석에 죽은 샤이엔(성숙)을 안장하게 되었다. 인디안이기는 하나 정통 인디안이 아니다 보니 멀리 불랙힐스에 있는 돌 제단(祭壇)에 갖다 놓지 않아도 됐으며 다른 종교가 없다보니 시에 속한 목사님의 간단한 말씀과 기도가 끝난 후 나무관에 잠든 샤이엔은 땅 속으로 하관되었다. “성숙아! 성숙아!” 어머니의 아련한 절규가 공동묘지에서 메아리쳤으며 “샤이엔! 샤이엔!”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절규가 맞 받아 치고 있었다. 마침내 한국에서 온 김성숙은 와이오밍에서 이렇게 허망하게 숨져 쓸쓸히 공동묘지의 한 귀퉁이 땅에 묻히고 말았다. 한국인 김 노인 부부는 반가운 딸을 만났으나 이렇게 눈물로 범벅이 된 후 영원한 이별을 하였다. 밥(Bob)은 전통대로 묘비를 돌판에 새겼으며 한국에서 온 부모는 사오제(四五祭)를 지낸 후 그 잔디에 눈물을 가득히 부어 이별을 고했다. “가자! 한국으로, 전덕면으로 가자!” 김노인은 딸의 묘비를 붙들고 애통을 하고 있었으나 묘비는 끄떡였으나 죽은 사람은 살아나지 못했다. “가자! 이것아! 전덕면으로! 못 살아도 고향이 좋지.....가자!” 김노인부부는 한국으로 가자고 했다. “............” 죽은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자---가아자아------전덕면으로----고향으로----” 그러나 이미 땅 속으로 들어간 딸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가 었었다. 그 다음 날 지역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 -한국에서 온 아름다운 여성의 이름은 여기 와이오밍에서는 샤이엔이었다. 그들은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였는대, 세상에 이토록 불운한 일도 있을까? 와이오밍에 온지 5년, 그리고 한국에서 부모가 만나러 오던 날, 원치 않은 교통사고로 인해 이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으로 만나다니..... 사랑하는 딸을 샤이엔에 묻고 한국으로 울면서 가다니..... 사랑하는 딸의 머리카락과 무덤을 덮은 잔디와 흙을 한얀 병속에 가득 채워 한국의 고향으로 가지고 가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과연 하나님에게도 눈물이 있는가? 와콘다 신에게도 눈물이 있는가? 와이오밍 데일리 뉴스- * 며칠 후 김 노인과 부인은 실성한 것처럼 멍하니 울고 있는 사위, 패잔병, 밥(Bob)을 와이오밍에 두고 덴버, 산프란시스코 그리고 하와이...동경을 거쳐 한국으로 되돌아 오는 길고 눈물어린 귀향을 하였다. 역시 한 달에 걸친 먼 비행-항해의 길이었다. 같이 미국에서 살고 싶었으나 딸이 없는 미국은 더 이상의 미국이 아니었다. 단지 고통과 원한이 범벅이 된 지옥이었기 때문이었다. 돌아 오는 한달의 여행은 100년의 세월과도 같았으며 마음이 아파 뿌린 눈물이 태평양을 몇미터나 더 수위를 높인 듯했다. “가자! 고향으로....” “가자! 전덕면으로.....” 김 노인부부는 밤 낮없이 가자! 소리를 연발했다. 서울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왜관에서 내린 후, 전덕면까지 터벅터벅 걸어 갔다. 마치 패잔병 밥(Bob)이 그러했듯이..... 고향 전덕면으로 돌아 온 김 노인부부는 일체 말이 없었다. “이것 보게? 김가(金家)? 미국 구경 얼마나 즐거웠나?” 동네 사람들은 미국에서 돌아 온 김 노인부부로부터 미국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 모여 들고 있었다. “..................” “딸년과 미국 사위는 잘 있나?” “..........................” “아니? 김씨? 좋았소? 어땠소?” “..................” “아니? 왜 말이 없는 거여?” “.....................” “미국 얘기좀 해 주소.” “............” 그 후부터 이들 부부는 웬 일인지 더 이상 미국에 대한 말을 동네 사람들에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더 이상 미국에 간 김 노인의 딸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다. “미국? 다 그런거여?” “..........” “말좀 해보게, 김가야!” “...........” “아하, 속은 게로군...” “............” “거 참, 뭔가 안좋았나 보군.” 동네 사람들은 수근거렸으나 김 노인 부부는 말이 없었다. 15. 또 다른 수.인디안, 어머니와 심한 우울증 환자가 된 아버지. 사랑스러운 한국인 아내를 잃고 난 밥(Bob)은 심한 우울증에 빠져 행동도 느렸으며 아들 제임스를 돌보는 것도 힘들었다. 옆집 밀러 부인에게 아들을 잠시 맡겨 보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를 못했으며 마침내 직장에서도 쫒겨 나고 말았다. 외롭고 한스러운 밥(Bob), 그는 죽음을 생각해 보았으나 어린 아들을 두고 어찌 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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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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